8.1~2일간의 여주 여행에서 여주박물관 내에 류주현 문학관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작가의 간결하고
깔끔한 작품구성과 많은 중단편과 장편소설을 남겼고 대학시절 우연히 그의 수필에서 자신을 간절히 만나길 원하는 한 독자(중년여성)에 대한 사랑의
상담을 쓴 내용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애정이 어느정도였는지를 짐작하리라.
상담에 대한 답신즉 '당신이 안고 있는
그 사랑의 열병은 그 수많은 젊은날 사랑을 해보지 않은 죄값이니 지금이라도 어떤 대상을 열렬히 사랑하는 열정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 정신적인
사랑이 되었던, 육체와 정신을 담은 사랑이면 더 좋고...'라는 사랑의 해법을 제시함으로 사랑에 대한 편린을 통해 류주현에 대한 동경이
가득했다. 그 류주현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 2008년 수도일보에 한성근 기자가 쓴 기사를 통하여 살펴보는 것은 작가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여주의 긍지로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여주군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과 관심이 부러울뿐이다. 윤석중, 민태원, 윤곤강의
삶의 터전이었던 서산은 시에 걸맞는 문화예술적 안목은 미비하기 이를데 없다. 박물관이나 문학관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언제쯤 해결될 수
있을까?
여주의 자랑인 류주현의 생애와 작품세계로 빠져보자.
묵사 류주현의 조명
묵사 류주현은 ‘조선총독부’와 ‘대원군’ 등 장편 역사소설을 통해 ‘대하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며 그 연대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발표 작품분량이 가장 많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여주 출신 소설가 묵사
류주현의 생애와 작품세계, 소장품, 문인과의 교류를 담은 자료들을 통해 묵사의 일생을 조명하기 위한 특별전이 여주 향토사료관에서 열리고 있다.
단편이 100여 편, 장편이 20여 편으로 그 중 ‘조선총독부’ ‘대원군’ ‘황녀’ 등은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꼽힌다. 묵사의 작품은
문장이 매끄럽고 간명하며 생동감이 있어 어느 작품을 접하더라도 장면 묘사나 대화가 선명한 인상을 준다.
묵사 류주현의 작품세계
1950년대까지 68편의 작품들은 주로 단편 위주인 반면 1960년대 이후에 발표된 55편의 작품들은
장판이 대중을 이루며 대부분 신문에 연재된 소설이기도 하다.
묵사의 문학을 연구한 평자들은 묵사의 작품세계를 대체로 3기로 분류하고
있다.
1기의 작품들은 절제된 문장, 빈틈없는 구성, 명확한 묘사를 통해 사실주의에 근간을 둔 사회적 비판의식과 풍자가 날카롭게 번뜩이는
통렬한 리얼리즘 문학으로 평가된다. ‘번요의 거리’(1948년), ‘노염’(1955년), ‘일각선생’(1957년), ‘태양의
유산’(1957년), ‘언덕을 향해’(1958년), ‘장씨일가’(1959년), ‘희화사제’(1959년) 등을 발표했으며, ‘언덕을 향해’로
‘제6회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2기에는 자유당 독재정권의 붕괴와 4·19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예술적 형식을 갖추기
보다는 역사를 오도하고 선량한 민중을 기만하는 악에 대한 비판으로 작가 의식은 바뀌었다. 이에 사회현상의 원인이 되고 과거의 문제, 즉 역사와
인식의 심층화를 통해서 역사의식 윤리와 풍속의 갈등, 개인과 집단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자유의지의 문제로 확산돼 역사와 실록을 바탕으로 해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기법으로 표현한 민족문학, 역사문학기요 완벽한 예술성으로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특히, 선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조선총독부’와 ‘대원군’ 등의 장편 역사소설을 통해 ‘대하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장편 ‘강건너 정인들’(1960년)
‘잃어버린 여정’(1960년) ‘임진강’(1962년) ‘6인 공화국’(1964년), ‘대원군’(1965년) ‘대한제국’(1968년)
‘통곡’(1969년) ‘군학도’(1969년) 등을 발표했으며 ‘조선총독부’로 ‘제8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했다.
3기에는
‘고요한 종말’ ‘죽음이 보이는 안경’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구도자의 자세로 인간 그 자체의 본질적 문제와 영혼, 죽음, 종교적 차원의 구원
문제에까지 집요하게 접근해간 구도적 문학가로 이해 될 수 있다.
묵사는 그의 창작집 ‘죽음이 보이는 안경’의 후기에 “문학은 나의
도덕이고 질서이며 법칙이고 의미임을 밝혀둬도 무방할 듯 싶다. 따라서 나는 문학과 분리시켜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비록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거부한다”라고 적고 있다. 늘 10년 앞을 내다보며 문학을 해왔던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이토록 비장한 자신의 문학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단편 ‘경자의 집’(1970년) 장편 ‘황녀’(1975년) 중편 ‘죽음이 보이는 안경’(1977년) ‘소복입은
묵시’(1978년) 단편 ‘환상의 현상’(1978년) 등을 발표했다.
인간 류주현
△ 가족사와 성장기 = 1921년 여주군 능서면 번도리에서 부친 류기하와 모친 구리곡과의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선생은 조부 류세열이 의병항쟁을 해 일본 헌병들이 그의 집을 불태우자 일가족이 양주군 노해면 상계리(현재 서울 도봉구
상계동)으로 이사하게 된다.
만9세에 의정부에 있는 양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5세가 되던 1935년 졸업하고 가난으로 인해 중학교 진학을
못하게 되자 학비를 벌기위해 1936년 원산으로 1937년 청진을 간다. 1939년 2월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조선인으로서 많은 고생과 어려움을
겪는다. 1943년 고학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 문과를 수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듬해 1944년 3월 조점봉과 결혼 상계소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다.
그는 1948년 백민지에 ‘번요의 거리’로 단편을 투고해 그 해 10월1일자 발행의 추계특대호에 게재,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문학 입문의 계기 = 5세 때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6학년 담임선생을 만난다. “너는 작문에 뛰어
났었어. 네 글 솜씨는 타고난 것이야. 춘원선생같은 대문호가 될 수도 있지 않겠니. 나는 네가 그 길로 정진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라는 담임선생의 격려말씀이 류주현의 문학입문계기라 전한다.
△류주현의 성품 = 차분하고 순했으며 지극히 검소했다. 본래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경청했으며 술은 못했지만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이야기해야 한다며 남 앞에서 사담 한마디 하는 것조차
절제했다.
‘류주현문학상’ 제정
중앙일보사는 묵사가 서거한 다음해인 1983년 ‘류주현문학상’을 제정해 1989년 제6회까지 총 5명의
수상자와 수상작을 선정해 오늘날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배출하기도 했다. 이 상은 대한민국 신문 역사상 개인의 이름을 딴 최초의 문학상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05년부터 여주문화원에서 그 명맥을 이어 ‘묵사 류주현문학상’을 제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인과의 교류
협회활동과 모임을 통해 김동리, 박두진, 조병화, 김구용, 어효선, 최백선 등 여러 문인들과 교류했다. 집에 문인들을 초대해
송년회를 열고 서로의 글과 그림을 주고 받기도 했다. 특히 선생이 와병 중일때 보낸 문인들의 편지에서는 선생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구구절절
녹아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을 보면 30여 년전 시절의 중후하면서도 산뜻한 문장과 그림을 통해 주고 받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술을 마셔도 깊은 풍류가 조선의 선비를 대하는 듯하다.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지만 정초 연하장을 써서 보내는 모습에서는 정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1982년 묵사의 영결식에는 동고동락했던 많은 문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떠나보냄을 안타까워 했다.
향토사료관을 방문하면
이번 전시에는 묵사가 생전에 쓰던 탁자, 3층서가, 사방탁자, 만년필, 문진, 원고지, 메모지 등으로
집필실을 재현했다. 또한 선생이 착용했던 안경과 구두, 악어가죽 지갑과 작품구상 때 적었던 노트와 창작 때 항상 애용하던 담배파이프, 김세종
화백이 직접 제작해 선물해 준 낙관 등 선생의 생전 모습들을 추억할 수 있는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집필실에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앞에 놓고
담배를 쉴 새 없이 바꿔 물며 작품을 구상하던 선생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하다.
“묵사의 아드님인 류호창(55) 건국대
실내디자인학과 교수와 교류를 해 오던 중 작년 본격적으로 묵사 선생님을 재조명하기 위한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대한민국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분인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아쉬움이 많았습니다”라고 기획전시의 계기를 말하는 구본만 향토사료관 부관장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향토사료관은 여주읍 천송리 545-1 신륵사과광지내에 있으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구 부관장과 박보경 학예연구사의 친절한
설명과 해설을 곁들을 수 있어 묵사의 일대기가 생생하게 전해 온다.
또한, 묵사의 작품을 각본해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송됐던
‘파천무’(1990년), ‘대원군’(1982년)의 8분 가량 요약영상본을 대하면 그 당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한편, 묵사의
일대기를 둘러본 후 최종적으로 묵사 류주현을 조명한 요약본 영상물을 보면 묵사가 얼마나 대단한 문학계의 거목인가를 실감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