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0일(월) 광주일보
영화 <멜랑콜리아>는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이다. 항상 맹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적인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 이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는 지구 종말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우울증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하나로 엮어 놓은 독특하고도 멋진 영화다.
영화는 두 자매의 이야기로 1부는 동생 저스트(커스틴 던스트)의 이야기, 2부는 언니 클레어(샬롯 갱스부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1부가 우울증에 걸린 저스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2부는 행성과의 충돌을 앞둔 사람들 가운데, 클레어의 불안한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간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정말이지 압도적이다. 바그너가 작곡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유장한 선율
이 흐르는 가운데 약 10여분 동안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압축한 영상들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역시 같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수많은 물음과 생각들을 던져주며 막을 내린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바그너의 음악으로 통합하고,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감독의 창의적인 능력은 직접 영화를 보지 않는 한, 글로써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영화의 내용 또한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요약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꼭 직접 시청하길 권한다.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쓰이는 클래식 음악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유럽 각국에서 중세 기사도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모든 러브스토리의 원형이 된 켈트족의 전설이다.
바그너의 악극은 강력한 매니아들이 많지만 장대한 규모와 길이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쉽고, 멜로디도 풍성하고 아름다워서 다가서기가 한결 편하다.
하지만, 주인공 가수들에게는 아주 혹독한 기교와 호흡을 요구하는 노래들이 많고, 노래들이 두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어서 3막 정도에 이르면 가수들의 목소리가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이졸데가 부르는 ‘사랑의 죽음’이며, 이졸데 역으로 꼭 기억해야할 20세기 최고의 가수는 키르스텐 플라그슈타트다. 그녀가 메트로폴리탄과 코벤트 가든에서 행한 공연은 전설이 되었으며, <트리스탄과 이졸데> 공연 얘기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은 두 거장의 레코딩으로 정리될 수 밖에 없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칼 뵘의 음반.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반주의 1952년 음반은 비록 모노지만 스테레오 못지 않게 녹음이 훌륭하고 이졸데 역으로 플라그슈타트가 출연하여 잊을 수 없는 가창을 들려준다. 전주곡의 작렬하는 에너지도 푸르트벵글러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칼 뵘의 음반은 1966년 바이로이트 실황 녹음인데, 당대 최고의 가수진, 그리고 다소 규범적인 스타일로 냉정하게 곡을 이끌어가는 뵘의 지휘가 빛을 발한다.
영화에서처럼 어색한 불협화음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아름답고 조화로운 화로 완성되는 이 오페라의 멜로디에는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사랑의 시작과 끝에 대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바그너의 같은 생각이 담겨있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
첫댓글 바그너 음악 팬들이라면 반드시 한장 소장하고 있을 음반입니다. 키르스텐 클라그슈타트의 액기스만 모아놓은 음반입니다. 최근 디지털로 리마스터링 되어 가격은 착해지고 음질은 한결 좋아졌습니다.
푸르트벵글러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플라그슈타트가 출연하는 전곡 녹음 앨범입니다. 푸르트벵글러의 음악과 해석은 이상하리만치 어떤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 들으면 묘하게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여러 음반을 들을 수록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아직도 푸르트벵글러의 모노레코딩을 광적으로 수집하는 애호가들도 여럿 있습니다.
유럽의 온갖 음악잡지의 상을 휩쓴 트리스탄과 이졸데 최고의 명반! 칼뵘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실황 녹음입니다. 실황으로 이정도의 완성도를 뽑아내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닐슨이 노래하는 이졸데도 정말 플라그슈타트 못지 않습니다. 바그너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도 목록에 하나쯤 사서 꽂아놓는 그런 음반입니다.
한 장 더 추천드립니다. 원고내용에는 빠져있지만, 카를로스 클라이버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전곡 녹음했습니다. 들어보면 아주 '똑똑한!' 연주입니다. 바그너 음악의 요소요소를 속속들이 들춰내어 연주합니다. 클라이버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녹음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인데... 어쨌든 이 녹음은 그가 출시를 허락한 것 만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장!
이건 다락 회원분들이 좋아하실 연주자 클리스티안 틸레만의 전곡 녹음 음반입니다. 가장 최근에 발매된 음반 가운데 하나입니다. 녹음은 아주 훌륭하며 틸레만도 자신있게 연주하며, 아주 보수적으로 연주합니다. 이를테면 정통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합니다. 칼 뵘의 공연을 많이 참고한 듯한 느낌도 아주 강합니다. 틸레만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오페라 전곡을 감상하기 힘드신 분들을 위해선 ㅋㅋ 이렇게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오래된 구닥다리 영화 아닙니다. 오페라의 줄거리를 따라잡는데는 나름대로 좋은 역할을 해줄 듯. 하지만 영화 내용은 오페라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점 참고하시고 보시기 바랍니다. 블루레이, DVD 모두 출시되어 있습니다. 기억으론 지난 여름에 케이블 티브이에서도 한 번 방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