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농기구의 매력
손 원
부모님이 물려주신 시골집과 밭 한 뙈기가 있다. 주말이면 시골에 간다. 시골집 헛간에는 아버님이 쓰시던 전통 농기구가 가득하다. 밭이 없다면 불필요한 농기구지만 유용하게 쓰고 있다. 삽, 괭이, 호미, 낫, 리어카 등 종류만도 줄잡아 쉰 가지는 될 듯하다. 이들 농기구는 시골 생활에서 필수적이다. 낫이 녹슬거나 무뎌지면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운다. 삽자루가 헐렁거리면 새것으로 교체하기에 헛간의 농기구는 항상 사용이 가능하다.
구순의 아버님은 평생 농사를 지으시면서 전통 농기구만을 사용하셨다. 우리집에는 동력 농기계가 전무한 상태였으나, 몇 해 전 내가 구입한 예취기가 유일하다. 예취기는 어머니 산소 벌초용이다. 돌아가신 지 10년 동안 첫 5년은 낫으로 벌초를 했다. 보다 수월한 벌초를 위해 동력 예취기를 구입하였다. 기계 사용에 서툰 나로서는 예취기가 낯설고 생각 같지 않았다. 점차 익숙해지겠지 하고 억지로라도 예취기를 사용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무거운 본체를 등에 지고 칼날 달린 긴 봉을 잡고, 요란한 소음을 내는 예취기 작업은 힘들었다. 다소 더디지만 낫으로 쉬엄쉬엄하는 것이 내게 적합할 것 같았다. 점점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훈련쯤으로 생각하고 예취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6년째 예취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서툴기는 매한가지다. 벌초할 때만 사용하는 예취기이기에 쉽게 익숙해질 리가 없다.
농사에 동력 농기계 사용이 보편적이지만 나는 아직까지 전통 농기구를 고수하고 있다. 아버님이 그랬고, 나도 동력 농기계보다 전통 농기구에 익숙하다. 은퇴 후 밭 한 뙈기를 삽 한 자루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밭갈이를 제대로 못하고, 퇴비도 충분히 넣을 수가 없어 작황은 좋지 않았다. 그럭저럭 품이 덜 가는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동력 농기계를 구입하자니 가성비가 낮고 다루기도 부담이 되었다. 남의 손을 빌리자니 번거롭기도 하여 여전히 삽 한 자루가 제격이란 생각이다. 승용차 트렁크에 삽 한 자루 싣고 다니며, 여가 치기로 조금씩 밭일을 해도 되기 때문이다.
농사일에 삽 한 자루, 손끝으로 경작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힘들지만 부담이 적어 좋다. 낫으로 하는 벌초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이 역시 내게는 제격이다. 이러한 전통 농기구 사용은 작업량이 많지 않을 때는 할만하지만, 작업량이 많다면 적절한 동력농기계 사용은 필수다. 봇물이 터지면 호미로 막을 것인가 가래로 막을 것인가의 지혜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과학 문명 발전의 원천은 인간의 도구 사용이다. 돌칼, 돌도끼, 돌낫 등은 도구의 시초다. 이들 도구는 재료만 다를 뿐 원시적부터 사용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도구들이다. 일상 생활에서 자르고 다듬는 작업이 필수적이고, 그때마다 이들 도구를 사용한다. 자원을 채취하고, 경작지를 일구고, 물건을 다듬으려면 도구가 있어야 한다. 도구의 효용이 더해지고, 기능이 점점 개선되어 오늘날 중장비로까지 발전했다. 원천적인 손기구의 기능이 중장비가 된 것이다. 삽이 굴삭기로, 낫이 예취기나 바인더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전통 농기구의 효용이 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위대한 발명품인 손도구가 지금까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터라 웬만한 손도구 사용은 익숙한 편이다. 다만 동력 농기구는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진정한 농부는 중장비화 된 농기계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농업은 규모가 크고 능률성과 효율성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업농이 아니기에 아무래도 좋다. 160평 텃밭을 가꾸는 데는 가지고 있는 농기구만으로도 충분하다. 비능률적이고 힘이 더 들어가긴 하지만 감수해야 할 나의 몫이다. 동력 농기구를 갖추는 데는 비용도 만만찮고, 다루는 기술도 필요하다. 나에게는 삽, 호미, 낫 정도면 그만이다. 우리 조상들도 손도구로만 농사를 지었다. 지금처럼 많은 토지의 경작은 어렵지만 무난히 농사를 지었다.
텃밭 농사는 여가와 취미생활의 일환이기에 부담이 적어야 한다. 그러기에 동력 농기계는 과하다. 비교적 넓은 나의 텃밭에 삽질만 고집하는 것은 다소 무리지만 그래도 익숙한 삽질이 좋다. 조금 양보한다면 삽을 대신할 간편한 동력 농기계가 있으면 좋겠다. SNS 영상물에 예취기 비슷한 동력 밭갈이 기계를 보고 마음이 갔다. 휴대하기 좋고 사용도 간편해 보였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상당수가 어릴 때 향수를 갖고 귀농하는 이가 많다. 노인이 된 그들은 대부분 텃밭정도로 농사를 짓는다. 그들에게 삽 한 자루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트랙터는 더욱 아니다. 휴대용 밭갈이 기계 정도면 될 듯하다.
TV프로그램 "극한 직업" 방영에 대장간 호미 생산 장면이 나왔다. 호미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쇳덩이를 달구고 두드리고 자르는 공정별로 땀 흘리는 대장간 종업원들의 이야기였다. 호미 생산에도 10여 단계의 엄정한 공정으로 최고의 제품읕 생산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의가 돋보였다. 덕분에 명품 호미가 탄생하고 인기리에 수출까지 된다고 한다. 이 호미로 신나게 나의 밭을 가꾸고자 한다.
※ 2024. 7. 8. 영남경제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