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부산시 주최 2005년도 민방위 창설 30주년 기념 수필 공모전에서 본인이 받은 최우수상 작품입니다.
- 전쟁과 재난에 대비하며 살아야 -
옛말에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지만 요즘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물질문명의 진화로 의료기술도 향상되고 영양상태도 양호해서 인간의 평균수명이 놀라우리만큼 늘었다. 남녀 통털어 평균수명 여든살을 바라보게 되었고 백살을 넘겨 장수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대다수 사람들은 만수무강과 무병장수를 꿈꾼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가 복잡다기하다보니 여러가지 후천적 요인에 의해 사고로 장애를 입거나 죽음을 맞는 불행한 사태도 종종 발생한다. 그런 후천적 요인은 자연 재난일 수도 있고 안전을 무시한 인위적 재난일수도 있다.
자연 재난과 인위적 재난을 맞아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려면 살아가는 동안에 꾸준히 재난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살아야 한다. 재난은 항시 예고없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연 재난이라면 화재, 수재, 가뭄, 해일, 지진, 화산 등이겠고 인위적 재난이라면 전쟁, 폭력, 사고를 비롯해 전기, 가스, 산업현장의 안전사고, 비행기, 자동차, 선박, 열차에 의한 사고 등 인간이 발명한 문명의 이기에 의한 사고를 들 수 있다.
자연 재난이건 인위적 재난이건 태반은 인간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에 의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물질문명은 거의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지만 재난대비나 안전에 관한 사람들의 태도나 자세는 거의 후진국 수준이다. 그래서 해마다 일부 재난은 되풀이되는악몽을 겪고 있다. 재난에 대비한 안전의식이나 대처요령은 실전에 준하는 훈련과 일상적 관심으로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한 데도 사람들의 무관심과 설마하는 안이한 자세로 피해를 당하고서야 허둥지둥 헤매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나도 불혹을 약간 넘긴 나이지만 한국사람 특유의 냄비근성과 대충하는 일처리가 몸에 배어있고 안전을 소홀히 하는 성향이 농후한 편이다. 평상시에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랄까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다가 막상 사건이나 재해가 발생하면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하곤 한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폐단은 주변에서 왕왕 발견한게 된다. 안전을 무시하는 삶의 방식 때문에 내게는 얼굴에 곱지않은 흉터가 하나 있다. 아랫입술 밑이라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얼굴에 흉터가 있다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 흉터의 내력을 얘기하자면 약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2년을 마친 뒤 군대에 가기까지는 6개월 가량의 시간이 있었다. 무얼 하며 6개월을 요긴하게 보낼까 노심초사하다가 먼 뒷날 직업전선에서 밥벌이를 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산업현장의 경험을 미연에 해보자는 생각에서 공장에 노동자로 일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전봇대에 붙은 사원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빵과 과자를 만드는 회사였다. 생산직에서 공원으로 일할 사원을 뽑는다기에 대학을 중퇴하고 군대를 간다는 사실을 숨기고 이력서와 주민등록등본을 넣고는 채용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스낵과자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와 각종 재료를 섞어 배합하는 일이었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철재 배합기에 밀가루 두포와 다른 직원이 계량한 재료및 적당한 물을 부어 돌려서 알맞게 배합해 뜨거운 수증기로 쪄내는 일인데 노동 강도가 좀 강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었다. 난 젊음의 혈기를 밑천삼아 주어진 일을 열심히 처리했다. 이 일을 못하면 다음에 사회에 나가서 아무 일도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주어진 일에 매진했다. 저녁 무렵에 배합이 끝나면 항상 배합기 내부를 깨끗이 청소해야 다음날 쓸 수 있다. 배합기를 청소할 적에는 위의 뚜껑을 반드시 들어올려 고리에 걸고 해야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는 뚜껑을 고리에 거는 일을 무시하고 몸을 숙여 배합기를 청소하다가 뚜껑이 닫히며 나의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그만 아랫입술 밑이 입구 날카로운 부분에 부딪혀 5센티미터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얼른 회사의 지정병원으로 가서 꿰맸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안전을 무시하고 작업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내가 다침으로서 작업반장은 안전교육 소홀로 책임추궁을 당하고 난 치료받으며 정신교육을 받았으며 다 낫고도 약간의 흉터가 생기는 결과를 얻었다. 나의 사소한 부주의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회사의 작업능률 향상에도 지장을 주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안전을 등한시하므로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좋지못한 사태가 발생하는 실수를 저지름으로서 앞으로는 매사를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요즘 시행하는 민방위 활동도 보면 전쟁이나 재난에 대비해 인명과 재산을 지키자는 측면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너무나 형식적으로 실시하고 있어 비상시에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북한의 침략 위협으로 정말 민방위 훈련을 실전처럼 했었다. 어린 나이에도 적극적으로 민방위 행사에 참여해 위기 시에 대처요령을 체득했다. 열심히 한 덕분에 민방위 노래도 잘 알고 있다. "조국의 부름받아 /일어선 우리// 침략막고 재난막는 /향토의 방패// 나라위해 바친몸 /다시 바치려 //민방위 깃발아래 /굳게굳게 뭉쳤다// 내 마을 내 직장은/ 내가 지키고// 내조국 내민족은 /내가 지킨다." 민방위 노래를 열창하며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노랑색 깃발은 경계경보 파랑색 깃발은 공습경보 초록색 깃발은 해제경보라는 사실을 잘 파악하며 훈련에 동참했다. 지금도 비상시에 대비해 민방위 훈련을 하지만 참여열기가 무척 저조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 못해 참여한다. 안정과 평화가 지속되니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며 민방위 훈련을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
그렇지만 세상만사라는 게 변화가 무쌍하고 호사다마(好事多魔)의 법칙이 있으며 인생만사(人生萬事) 또한 새옹지마(塞翁之馬)다. 고대 로마의 영웅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If you wish peace, prepare for war.)" 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이나 재난에 대비하려면 경제력과 국방력도 좋지만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민방위의 적극적 참여, 안전의식 고취 등도 중요하다. 영어에도 격언이 있다. "Be prepared, and you will have no cause for regrets." 해석해 보자면 '준비하여라, 그러면 당신은 후회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즉 유비무환을 표현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일은 한가할 때에 위기를 대처해야 후환이 없는 법이다.
가뭄에 대비해 저수지를 만들고 홍수에 대비해 나무를 심거나 둑을 만들며 해일에 대비해 방파제를 쌓는다. 또한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 국방의 의무를 지고 안보정신으로 돈독히 무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나라의 힘이 미약해 숱한 외침을 당했다. 무수한 전란으로 백성들은 모진 고문과 시련을 겪었다. 위정자들이 비상시를 제대로 대비하지 않아 애꿎은 민초들만 고난스런 삶을 살아온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외침이나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바탕은 국력을 기르고 국민들은 똘똘 뭉칠 것이며 민방위 훈련 등에 적극적 참여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꼭 무슨 일이 생겨야 수선을 떨며 관심을 갖다가 막상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전형적 냄비근성의 민족이다. 수재를 당하면 피해대책을 세우고 수재의연금품을 거두는 등 난리법석을 떨다가 좀 지나면 유야무야되기 일쑤다. 열차나 선박 등 대형사고가 생기면 안전부주의니 책임자 문책이니 하며 시끌벅적하다가 또 금방 시들해진다.
제발 이제는 냄비근성의 성향에서 벗어나 뚝배기 근성으로 바꿔야 한다. 안전을 중요시여기고 전쟁과 재난및 사고에 대비하는 자세는 사시사철 평생동안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야말로 재난이나 사고는 때와 장소가 없고 예고없이 발생한다. 모든 불행한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난다는 사실만 알면 무슨 걱정이랴마는 미래에 대한 예측은 신(神)만 알지 인간은 전혀 알 수 없다. 주식가격과 럭비공 튀는 방향을 신만 알 듯 재난사고 발생도 신 만이 알 수 있는 사항이다. 그렇지만 재난사고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무사태평으로 살다가 재난을 맞아 인명과 재산과 삶터가 초토화되느냐, 유비무환의 자세로 지속적 대처방법을 익혀 귀중한 내삶터, 내마을, 내직장, 내재산, 내가족을 보호하느냐의 차이다. 예고없는 재난사고를 맞더라도 꾸준히 민방위 훈련을 실시하고 정부에서도 정책적으로도 안전이나 재난대비에 따른 행정적 지도를 펼칠 것이며 기업이나 단체들도 당장 가시적 성과가 없다고 안전을 소홀히 하지 말고 다각적인 안전대책을 수립하고 개개인들도 국가나 자신이 소속한 집단만 믿지말고 상시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재난에 대비해 위기 극복 방안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겠다. 준비하는 사람은 후일의 평화나 안전이 보장된다는 진리를 터득해 지혜로운 인생을 엮어나가자.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고 안전을 원하거든 재난에 대비하자.
첫댓글 유비무환..지금이 그때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