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는 눈이 아무리 많이 내려 쌓인곳 이라도 양지녁은 따뜻하다.
그리고 온화하고 다사롭다...
그곳의 철쭉을 자세히 보니 꽃봉오리는 벌써 물이 올라 푸름의 통통함이 완연하다.
날씨만 풀린다면 바로 만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잎들은 최대한 안으로 오무려 추위에 노출되는 면적을 줄여서 이 겨울을 나고 있다.
자연의 지혜이고 계절에 순명하며 순응하는 겸손함 이었다.
이번 1월 2일 신년여행을 그렇게 떠났다. 늘 하던대로 또 기약이 없이 대강 몇군데의 방향만 정하고 집을 나선다. 남녘의 이른 봄맞이를 갈까, 동해의 호쾌함을 찾을까, 내륙의 무주 진안 장수쪽을 갈까, 생각해 보니 거의 다 다녀온 곳들이라 방향 정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 큰 방향만 정하고 이동한다. 목적지는 문경의 점촌, 대승사로 정한다. 큰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곳 보다는 그져 사람들이 없고, 자연만이 있는곳을 좋아하고, 전기가 안들어 오고 핸드폰이 안되는 곳이면 더 좋은데...그러려면 외진 암자를 찾아야 하나 외진 암자는 손님께 내어줄 방이 없기 십상이고, 방이 있다해도 공부하는 스님 혼자 계시 곳이 대부분이며, 더우기 밥해줄 사람이 없는 곳들이 많다. 사람이란 먹어야 사는 지라, 이를 해결하며 칩거(?)하기에 좋은 여행지를 찾기가 만만치 않다.
몇년 전에는 거문도 등대의 부속건물 - 아마 직원들을 위한 콘도 비슷한 숙소 - 로 들어 가면서 아예 라면 1박스를 사가 줄기장창 라면만 먹고 온적도 있다. 물론 나올때 남은 라면은 그곳에 기증을 하고...그곳에 흐드러 지게 피어 있던, 중국 황실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금잔옥대 라는 특이종 수선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그 노란 품위의 꽃들만 가슴에 않고 돌아왔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짙푸른 바다와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악마의 이빨 같은 세찬 파도를 이겨내며 피어있던 그 아름다운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2월의 그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구석구석에 무리지어 봄을 알리던 그 수선화...많이 있고 흔하게 피니 사람들은 그꽃이 그렇게 귀한줄 모르고 그냥 무심히 넘기나, 옛날 중국의 황실에서 그리도 애끼던 꽃인 줄을 모른다. 수선화는 매화보다 봄을 더 먼저 알려준다.
도심을 벗어 나기 까지 우선 눈을 붙여 한잠을 자고 일어나니, 주변 풍경은 엊그제의 서설로 온 천지는 눈에 덮여 하얗다. 온통 흰산에 잎이 모두 비워진 나목들이, 푸름의 창공을 배경으로 깊은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차창은 외기와의 차이로 어름이 두꺼워 창으로의 풍경 감상은 불가, 혼자 운전하는 기사양반 옆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다가오고 지나가는 퐁경을 본다. 올해의 신정휴일은 단 하루로 모두들 생활에 복귀해서 인지 차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중부내륙 고속도로, 우리 국토 정 중앙 산악지대를 달린다. 쭉 뻗은 고속도로 옆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겨울의 산들이 듬직하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점촌, 역시 춥다. 남으로 한참을 왔으나 산악 지대이고 동장군의 기세가 이곳 이라고 예외 일수 있겠는가...
절집에서 전화가 온다. 저녁 공양시간이 지났으니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 오란다. 시골의 버스는 예상외로 일찍 끊긴다. 어쩔수 없이 택시를 이용해야 하기에 우선 마음을 느긋히 먹고 이동하기로 한다. 시골에는 밤이 빨리 온다. 겨울의 밤은 더 빨리 온다. 어둠 내리면서 깊은 밤인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흩어지는 사람들, 오가는 행인도 없고 그져 스산히 춥기만 하다. 그래 우선 저녁 요기를 하고 택시를 이용 대승사를 향한다.
도심을 벗어 나니 그 나마의 불빛도 사라지고 드믄드믄 가로등이 흰눈 사이로 외롭다. 오가는 차도 없다. 오직 우리 택시만이 하이 빔 헤트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택시기사는 제설작업이 안되어 있을수도 있다며 진입로 3.5 킬로 정도를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준다. 그래 그러면 하는수 없지 뭐, 이 밤길을 혼자 걸어 보는것도 겨울 여행의 맛이다 라고 자위 하며 달리는 길, 그러나 멀리서 흰눈 사이로 홀로 빛나는 가로등의 노란빛이 정겹다. 다행히 제설 작업은 잘되어 있다. 기사양반 왈 자기가 겁준게 미안한지 국보가 있는 절은 군에서 우선으로 제설 작업을 한다고 얼버 무린다. 이렇게 대승사에 도착하니 한 밤중이다. 외곽의 방범등만 이 어둠을 가르고 모두는 불이 꺼져 적막 이다.
종무소에 들르니 젊은 보살 한분이 기다리고 있다. 미리 전화를 한 관계로 기다려 주신것이다. 우선 인적 사항을 작성하고 나니 절집에서 준수해야할 사항과 예불시간, 공양시간, 주변의 약도를 그린 안내서를 한장 주고 돈내라는 소리도 없이 한 방으로 안내한다. 방은 정갈 했다. 절집답게 아무 장식이 없는 담백한 도배와 정리된 화장실이 다행이다. 물은 화장실 물도 약수이니 바로 먹어도 된다고 하신다. 화장실 물도 약수? 참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아직까지 화장실 물도 바로 먹을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우선 보일러의 스위치를 올리고 자리를 펴니 바로 온기가 올라온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한다. 물은 생각보다 무지 뜨겁다.
잠시 산책을 위해 방을 나선다. 창호지 바른 문을 여니 아차! 바깥 기온이 장난이 아니다. 아니 창호지 한장의 보온과 단열효과가 이정도...새삼 놀란다. 평소 간과했던 창호지 한장의 효과가 이정도 인지를 실감하며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와 혜안에 다시 놀라는 순간이다. 밖은 여전히 깊은 적막이고 하늘의 별들은 총총, 오리온 성좌와 삼태성, 이어 카시오페아 자리와 북극성이 또렸하다. 오래전 몽골 광야에서 본 밤하늘은, 별들은 소쿠리로 쏱아 부은듯 했는데 이곳의 별들은 양은 그리 많지 않으나 그렇게 총명할수가 없다. 잠시 밤공기의 청량함과 상큼함을 음미하고 들어와 이제 꽤나 데워진 방바닥을 누리며 첫 밤을 청한다. 산사의 밤이 정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