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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를 통하여 ◈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지난 금요일에 판교 환풍구에서 떨어진 클라우디아가 계속 악몽을 꾼다하여 가서 기도를 해주고 왔습니다. 클라우디아는 그 당시 떨어지는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끝도 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땅에 맞닿는 순간 의식이 끊어졌고, 다시 의식이 돌아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앉아있는 사람들, 여기저기 나뒹굴어져있는 사람들, 그런 기억이 모두 머릿속에 다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묵주기도를 하며 미사 때도 지향을 두고 기도해주고 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니 건강하게 잠도 잘 자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늘 어디에서 누구든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즉시 기도를 합니다. 산책을 하거나 등산 중 일 때도 무덤을 보면 늘 ‘주님 저 영혼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하고 기도를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있어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에로 나아가는 과정이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못 다한 보속들이 있다면 연옥기간을 거쳐서 정화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자란 곳이 성지가 가까운 시골 공소였습니다. 그 당시에 누군가 돌아가시면 선종의 종이 천천히 33번 울렸습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일하다말고 그 돌아가신 영혼을 위해서 즉시 성호경을 긋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이나 기도나 그 모든 것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희망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서는 “아, 슬프다. 죽은 이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불충분하다. 장례식 종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그들의 생각은 우리의 삶 중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죽음과 함께 없어진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성서에 의하면 참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성녀 파우스티나에게 이런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연옥에 갇혀있는 영혼들을 내게로 인도하여라. 이들도 모두 내게 매우 사랑스러운 영혼들이다. 오, 만일 네가 그들이 받는 고통을 안다면 그들을 위해 영신적 자선을 계속 제공할 것이다.”
치릴로 성인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을 한데 합친 것보다 연옥의 미소한 괴로움이 더 혹독합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이 분명히 계시는데 나는 그분을 볼 수가 없다는 것, 거룩해지지 못하여 하느님이 분명히 계시는 데 그 분을 뵙지 못하고 그분을 마주 대할 수 없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연옥에서 영혼을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론 미사입니다.” 또 예로니모 성인도 “연옥영혼을 위하여 미사가 봉헌되면 그 동안은 그들이 조금도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옥영혼들은 이 위령성월이 오기만을 기다리시고 또 이 위령의 날을 학수고대하십니다. 특별히 11월1일부터 8일까지는 연옥영혼을 위해 전대사를 양도해줄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전에 한 할머니가 병자성사를 청하셔서 갔는데 저에게 말하셨습니다. ‘신부님, 저 잠 좀 자게 해주세요.’ 왜 잠을 못 주무시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잠만 자려고 누우면 아이들이 내 등 뒤에서 막 울어댑니다.’ 하셨습니다. 몇 명이나 울고 있냐고 물었더니 세 명이 운다고 하기에 제가 ‘할머니 혹시 낙태하신 적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네, 세 번 했습니다.’ 하십니다. 저는 할머니께 ‘할머니,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라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미사를 부탁하셨습니다. 다음 달에 할머니를 뵈러 갔더니 이제 잠을 잘 주무신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탓 없이 죽었다 하더라도 기도 해주어야 합니다. 왜냐면 인간은 누구나 다 원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죄라도 하느님 뵙기에 부족함이 있다면 누군가가 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셨을 때에 구원의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며 연옥영혼을 돌보시되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지금도 일 년에 수천만 명이 낙태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 가서 절규도 하지 못하고 저항도 하지 못하고 또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영혼들이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셔 누군가가 끊임없이 기도해주고 위로해주고 희생해줄 때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성인이 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줄 것입니다.
◈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처럼 ◈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오늘 제2독서에서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듣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릅니다.” 저와 여러분들 마음 안에 주님께서 항상 머무시기를 이 미사 중에 함께 간절히 청합시다. 또한 오늘은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우리 교황님을 비롯해서 모든 성직자들이 거룩하신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담아서 더 많은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또한 간절히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신명기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수많은 백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똑똑하고 훌륭하고 위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은 아닙니다. 떠돌아다니는 천민들이었던 가장 불쌍하고 보잘것없는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며 그들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늘 기억하시고 천대에 이르기까지 그 약속을 지키신다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과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이지 우리 인간이 잘나고 똑똑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자녀들이 잘나고 똑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 아파서 낳았으니까 사랑하게 되는 그런 마음인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예쁘고 귀여워 보입니다. 아기들이 잘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칭얼대서 잠을 못 자게 해도 방긋 울어줄 때, 엄마하고 불렀을 때, 부모들은 더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로 당신이 이 세상만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렇게만 해도 하느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때 그 고백을 듣고 마치 아기가 엄마하고 불렀을 때 기쁨에 겨워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기쁨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꼭 성체 앞에 가서만이 기도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더 거룩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기도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정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하느님 하고 부르기만 해도 내 마음을 알아듣고 왜 그러는 것처럼, 한시도 우리를 안 잊으시고 바라보시는 당신 눈동자처럼 늘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보시고 우리 영혼 구령을 위해서 혹여 우리가 죄에 떨어지는 것 아니가 죄에 허덕이는 건 아닌가! 인생의 고뇌에 허덕이지는 않은가! 늘 이렇게 지켜보시고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 마음을 알고 내가 인간의 고뇌를 다 안다. 나도 참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과 고뇌를 내가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나에게 나오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엄마가 젖먹이를 늘 지켜보는 것처럼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 그런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하느님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고, 더 하느님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이미 그런 아가페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이 다 있습니다. 오늘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이해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 누구든지 그 영혼을 구원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생명까지 십자가에 매달려서 돌아가신 그런 사랑의 마음이 우리 마음 안에도 나도 저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끊임없이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가정 방문을 하고 있는데 어제는 어느 냉담자 가정을 갔을 때 그 냉담자는 제가 온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은 방문을 했을 때 그 형제님이 몸소 저희 집까지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며 기쁘게 맞아 주시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집을 나가셨든 어쨌든 저는 그들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가정 방문을 하기로 한 것은 예수님이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다니시는 그런 성경 말씀이 제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나도 예수님의 그 말씀대로 살아야하겠다고 해서 가정방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제는 어느 자매님께서 지혜를 짜내어 제가 남편을 만나게 하고 하느님께로 인도될 수 있도록 하신 분을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오늘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이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달파 하시는 예수 성심에 그 큰 사랑에 감사드리고,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처럼 하느님 예수님 부를 때마다 귀여운 마음으로 들으시는 그 사랑에 감사를 드리면서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서 한 영혼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미사 중에 청합시다. 아멘.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 자신의 삶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또한 잊혀져가는 연옥영혼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들도 더욱 성화되고 죽음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합시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이 미사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도록 미사 중에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 천국에 나의 가족을 두게 될 것입니다. ◈
예전에 어느 어르신 병자영성체를 해드리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병자영성체를 해드리고 나오려 하는데 어르신께서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할머니, 무슨 일로 잠을 못 주무셔요?”
“내가 잠을 자려고 하기만 하면, 아기들이 등 뒤에서 울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요. 몇 명이나 나타나요?”
“세 명이요."
“혹시 전에 낙태시키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몇 번이나 하셨어요?”
“세 번이요.”
“아, 그러셨군요. 하느님께서 할머니 임종을 잘 준비하라고 깨우쳐 주시나 봐요.”
“그 영혼들을 위하여 미사 봉헌해주신 적 있으신가요?”
“없어요.”
“그러셨군요. 그 영혼들을 위해서 미사 봉헌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 영혼을 위해서 몇 번씩 연미사를 드려 주시면 좋겠네요.”
저는 그렇게 말씀드렸고, 어르신의 부탁으로 그 영혼들을 위하여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병자영성체 해드리러 갔을 때 잠을 잘 주무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신기하게 꿈도 없어지고 잠도 잘 주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주교 교리는 수정되는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이고,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갖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자신의 탓 없이 죽었다 하더라도 바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경우는 바로 그 영혼의 부모가 기도를 하는 것이겠지요.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연옥에서 영혼을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론 미사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성 예로니모는 “연옥 영혼을 위하여 미사가 봉헌되면 그동안 그들은 조금도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월은 위령성월이고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세상을 떠난 나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기도해주어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낙태되었거나 때로는 자연 유산된 자녀들의 영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영혼을 잊지 않고 기도해준다면 하루 빨리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 나의 가족을 두게 될 것입니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