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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 간 문 학 이 야 기 원문보기 글쓴이: 마운틴
8. 재
매디슨 카운티에 밤의 장막이 내렸다. 이날은 1987년 그녀의 예순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프란체스카는 침대에 두 시간 동안 누워 있었다. 그녀는 22년 전의 그 모든 것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추억했다. 추억하고 또 추억했다. 아이오와 92번 도로를 따라 빗속을 달리던 빨간 후미등의 이미지. 20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 안개가 내리는 가운데 살았다. 그녀는 무심결에 자기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녀 위로 그의 가슴 근육이 스치고 지나가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다. 맙소사, 그녀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 도저히 그렇게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리라 생각 될 만큼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예전보다도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 가족을 망치고 그를 망칠지도 모르는 일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했으리라.
프란체스카는 계단을 내려가 부엌에 놓인 노란 포마이카 상판이 얹혀진 낡은 식탁에 앉았다. 리처드는 새 식탁을 사서는 그것을 써야 한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에 쓰던 것을 헛간에 보관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비닐로 조심스럽게 싸서 헛간 한 구석에 치워뒀었다.
"왜 당신이 이 낡은 식탁에 그렇게 애착을 갖는지 모르겠군."
리처드는 그녀가 식탁을 옮기는 것을 도우면서 투덜댔었다. 리처드가 죽은 후, 마이클이 그녀를 위해 식탁을 다시 집 안으로 들여왔다. 아들은 왜 새 식탁이 있는데도 낡은 식탁을 고집하스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프란체스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그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찬장으로 가서 작은 황동 촛대에 꽂힌 흰 양초 두 개를 가지고 왔다. 그녀느 촛불에 불을 붙이고 라디오를 켰다. 조용한 음악이 나오는 주파수가 나올 때까지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
그녀는 한참 동안 싱크대 옆에 서 있었다. 고개를 약간 위도 드니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가 속삭였다.
"난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로버트 킨케이드. 어쩌면 그 사막의 성자 말이 옳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마지막 카우보이였어요. 카우보이들이 이제는 거의 모두 죽였거든요."
리처드가 죽기 전, 그녀는 킨케이드에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려고 해본 일이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날이면 날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살았다. 만일 한 번이라도 더 킨케이드와 이야기를 했다면, 그녀는 그에게로 갔으리라. 그에게 편지를 썼다면, 그가 그녀에게 달려왔으리라는 것을 프란체스카는 알고 있었다.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사진과 원고가 든 소포만 한 번 보냈을 뿐 그 후로는 편지를 보내지도,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면 그녀의 마음이 혼란을 겪을 것임을 그는 이해했다. 자신으로 하여 그녀의 생활이 복잡해지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고, 그의 그러한 심경을 그녀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1965년 9월,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의 정기 구독을 신청했다. 다음 해에 지붕 있는 다리에 관한 기사가 잡지에 실렸다. 프란체스카가 메모를 남겼던 이튿날 아침, 따스한 첫햇살을 받고 서 있는 로즈먼 다리의 사진도 나왔다. 표지는, 아침에 호그백 다리 쪽으로 가는 마차 사진이었다. 그는 또 기사도 쓰고 있었다.
잡지 제일 뒤에는 작가와 사진 작가 명단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따금씩 그들의 사진도 함께 게재되었는데, 킨케이드도 가끔 거기 나왔다. 여전히 은발 머리는 길었고, 은팔찌를 하고, 청바지나 카키색 바지를 입고, 어깨에는 카메라를 매고, 팔뚝에는 핏줄이 선 모습. 칼라하리 사막에서, 인도의 자이푸르 성에서, 과테말라에서는 카누를 타고, 혹은 북부 캐나다에서. 길과 카우보이.
그녀는 이런 사진들을 잘라서 마닐라지 봉투에 넣어 보관했다. 지붕 덮인 다리 사진이 나온 잡지 한 부와 원고, 사진 두 장과 그의 편지도 함께 넣었다. 그녀는 이 봉투를 서랍장의 속옷 아래에 감추었다. 리처드의 눈에 띌 일이 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 동안,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처럼,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 있었고, 길다랗고 홀쭉한 몸매에 멋진 근육도 예전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눈가의 주름과 강한 어깨가 조금 처진 것이며 얼굴이 늘어진 것을 알아볼 수 있엇다. 그런 것은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평생을 살면서 그 어떤 대상보다도 그의 몸을 자세히 연구했었다. 그녀 자신의 몸보다도 더 자세히. 그리고 그가 나이를 먹어가는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그를 더욱 더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프란체스카는 그가 혼자일 거라고 짐작했다. 아니, 그럴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촛불을 밝히고 식탁에 앉아서, 그녀는 그 기사들을 찬찬히 살폈다. 멀리 어느 곳에서인가 그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1967년 잡지에 게재된 특별한 사진이 그녀의 손에 잡혔다. 그는 아프리카 동부의 어느 강가에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촬영하려고 카메라의 접안렌즈에 한쪽 눈을 대고 있는 사진이었다.
오래 전 처음 이 사진을 잡지에서 봤을 때, 그녀는 그가 목에 걸고 있는 은목걸이에 작은 메달이 달린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마이클은 대학에 다니느라 집을 떠나 있었고, 리처드와 캐롤린은 잠자리에 든 시간, 그녀는 마이클이 어릴 때 우표 수집을 하면서 쓰던 확대경을 꺼내들고 사진을 비췄다.
"맙소사."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메달에는 프란체스카 라고 적혀 있었다. 분별없는 행동인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그녀는 미소지으며 그를 용서했다. 그 후로 모든 사진에서, 그 메달은 언제나 은목걸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1975년 후로 프란체스카는 잡지에서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의 이름이 적히곤 했던 줄도 다른 이름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매달 그의 이름을 찾아봤지만,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해에 그는 예순두 살이었다.
1979년 리처드가 죽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이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순여섯 살일 테고, 그녀는 쉰아홉 살이었다. 아직도 시간이 있었다. 14년이란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긴 했지만. 프란체스카는 일주일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의 편지지 위에 적힌 번호를 눌렀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자 가슴이 거의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저쪽에서 수화기를 드는 소리를 듣고는, 하마터면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을 뻔했다.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맥그리거 보험입니다."
프란체스카는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마음을 진정하고, 그 여비서에게 전화 번호가 맞는지 물었다. 번호는 맞았다. 프란체스카는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음으로 그녀는 워싱턴 주 벨링햄 시의 안내에 전화를 걸었다. 그의 이름은 없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시애틀 쪽으로 시도해 보았다.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벨링햄과 시애틀의 상공회의소에 연락했다. 시내 전화번호부를 점검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상공회의소 쪽에서 점검해 보았지만, 그의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그래, 킨케이드는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사람이지. 프란체스카는 생각했다.
그녀는 잡지를 떠올렸다. 그는 거기에 전화해 보라고 말했었다. 잡지사의 교환수는 친절했지만 신입 사원이었다. 그녀의 부탁을 도와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불러야 했다. 프란체스카의 전화는 세 차례나 다른 곳에 연결되었다가 마침내 잡지사에서 20년동안 일했다는 부편집인과 연결되었다.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에 대해 물었다.
당연히 편집인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현재 거처를 알고 싶으시다구요? 이렇게 말씀드려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는 끝내주는 사진 작가였습니다. 다루기 힘든 사람이었죠. 못되게 굴어서가 아니라 고집이 워낙 세워서요.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는데, 그런 점이 우리 출판 의도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죠. 우리 출판 의도는 멋진 사진, 기술이 뛰어난 사진이지만 지나치게 야성적인 것은 잘 안 맞아요.
우리는 늘 킨케이드가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죠.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가 우리를 위해 해주는 일 외에는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프로였죠. 우린 그를 어디에든 파견할 수 있었고, 그는 우리가 게재하기로 결정한 사항에 대부분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잘 해주었어요. 그가 어디 있느냐를 알아보려고 지금 파일을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1975년에 잡지사 일을 그만뒀지요. 제가 가진 주소와 전화 번호는……."
그는 프란체스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읽어 주었다. 그녀는 더이상 그를 찾으려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그런 노력을 경주한 끝에 알아낼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에 대한 생각에 몸과 마음을 내맡겼다. 그녀는 아직도 제대로 운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1년에 몇 번씩은 디모인으로 가서, 그가 그녀를 데려갔던 그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곤 했다. 한 번은 그런 나들이를 하는 길에 가죽 장장된 공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그 페이지 위에 깔끔한 글씨로 그와의 사랑 이야기와, 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자세히 써내려갔다. 공책을 세 권이나 채우고서야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윈터셋은 개발의 바람을 타고 있었다. 예술 그룹이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구성원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낡은 다리들을 새로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몇 년 동안이나 이야기만 오갔다. 젊은 사람들이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바뀌어서 이제는 장발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비록 샌들을 신은 남자는 거의 없었고, 또 시인도 없었지만.
프란체스카는 몇몇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 지역 사회와 완전히 발을 끊고 살았다.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해 입방아를 찧곤 했다. 그녀가 로즈먼 다리 옆에 서 있는 것을 자주 봤다는 이야기를 수군거렸다. 노인들이란 그렇게 별난 짓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들 말했다. 그리고는 이런 설명에 스스로 만족했다.
1982년 2월 2일, 우편국 소속 트럭이 그녀의 집 드라이브 웨이로 들어섰다. 그녀는 물건을 주문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당황해하면서 소포를 받았다고 서명을 하고, '프란체스카 존슨, RR2, 윈터셋, 아이오와 50273.'이라고 적힌 주소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회신인 주소는 시애틀의 어떤 법률 사무소로 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포장한 소포는 추가 보험 처리가 되어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소포를 부엌 식탁 위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안에는 상자가 세 개 들어 있었고, 스티로폼에 안전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한 상자 위에는 작은 봉투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다른 상자에는 그녀의 주소가 적힌 법률 회사 봉투가 붙여져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법률 회사 봉투를 뜯어서 열어 보았다. 손이 떨렸다.
1월 25일, 1982
프란체스카 존슨 여사
RR2
윈터셋, 아이오와 50273
존슨 여사,
우리는 최근에 작고하신 로버트 킨케이드란 분의 유품을 보내드리는 바입니다…….
프란체스카는 편지를 식탁 위에 놓았다. 밖에는 겨울 들녘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바람에 옥수수 줄기와 그루터기가 함께 날려서 전선에 걸쳐지는 모양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편지를 읽었다.
우리는 최근에 작고하신 로버트 킨케이드란 분의 유품을 보내드리는 바입니다…….
"오, 로버트…… 로버트…… 안 돼요."
그녀는 나즉하게 외치며 머리를 숙였다.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계속 읽을 수 있었다. 단도직입적인 법률 용어와 분명한 표현에 화가 났다.
우리는 최근에……
변호사가 의뢰인에 대해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어투.
그러나 유성 꼬리를 타고 날아다니던 표범은, 그 힘은, 8월의 어느 더운 여름날 로즈먼 다리를 찾았던 무당 같은 사내는, 해리라는 이름의 트럭 받ㅌ침대에 서서 아이오와의 농장 앞길의 먼지 속에서 죽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뒤돌아보던 그 남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편지는 천 페이지쯤 되어야 했다. 진화의 가지 끝에 대해, 자유의 상실에 대해, 겨울의 옥수수 줄기처럼 땅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카우보이에 대해, 뭔가 이야기가 있어야 마땅했다.
그가 남긴 단 한 장의 유서는 1967년 7월 8일에 작성된 것입니다. 그는 동봉한 물건을 당신께 전달하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만일 당신을 찾을 수 없다면 물건은 소각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상자 안에 동봉한 편지 라고 적힌 것은, 그가 1978년 우리에게 남긴, 당신에게 보내는 메모입니다. 그가 봉투를 봉인했고, 그 이후로는 개봉된 적이 없습니다.
킨케이드 씨의 나머지 유품은 소각되었습니다. 그분의 요청에 따라,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뼈 또한, 그분의 요청에 따라 부인의 집 근처에 뿌려졌습니다. 그 부근이 로즈먼 다리라고 불리는 것 같습니다.
혹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성실한 변호사
알렌 B. 퀴펜.
그녀는 숨을 멈추고, 다시 눈을 훔쳤다. 그리고 상자에 든 물건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프란체스카는 작은 봉투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알고 있었다. 올해 다시 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아는 것만큼이나 확실히 알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고, 손을 넣었다. 은목걸이가 나왔다. 줄에 달린 메달에는 긁히긴 했지만 '프란체스카'라고 쓰여 있었다.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이걸 줍는 분은 RR2. 윈터셋, 아이오와, 미국의 프란체스카 존슨에게 보내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은팔찌는 휴지에 싸인 채 봉투 제 일 밑에 있었다. 팔찌에는 종이 한 장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글씨였다.
'흰 나방이 날개짓을 할' 무렵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밤 일을 끝내고 들르세요.
로즈먼 다리에 붙였던 그녀의 메모. 킨케이드는 추억을 위해 그것까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프란체스카는, 그가 가진 그녀의 물건이 유일하게 그것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가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는, 그것뿐이었다. 세우러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흐려지는 필름의 감광 유제에, 그녀의 모습이 담겨져 있기는 했지만. 로즈먼 다리에 남긴 작은 쪽지. 그것은 오랫동안 그가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얼룩지고 구겨져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미들 강 언덕에서 그다지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는 몇 번이나 그 쪽지를 읽었을가. 어딘가로 날아가는 논스톱 비행기 안에서 흐릿한 독서등을 켜놓고 앉아서 쪽지를 펴들고 있는 킨케이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호랑이 원산지의 나라, 대나무 오두막 바닥에 앉아서 손전등 불빛으로 쪽지를 읽는 모습도 떠올랐다. 벨링햄의 비오는 밤, 쪽지를 접어서 한켠으로 치워두고는 어느 여름날 울타리 기둥에 기댄 여자의 사진이나 해질녘 지붕 있는 다리에서 나오는 여자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모습도 떠올리 수 있었다.
상자 세 개에는 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한 대씩 들어 있었다. 움푹 들어가거나 긁힌 자국이 많았다. 카메라 한 대를 돌리자 파인더에 '니콘'이라는 상표가 눈에 들어왔다. 니콘 라벨 바로 왼쪽 위로는 'F'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시더 다리에서 그에게 건네줬던 바로 그 카메라 였다.
마침내 그녀는 그가 쓴 편지를 개봉했다. 편지지에 길쭉한 글씨로 써내려간 편지는 쓴 날짜가 1978년 8월 16일로 되어 있었다.
친애하는 프란체스카,
이 편지는 당신 손에 제대로 들어가길 바라오. 언제 당신이 이걸 받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소. 내가 죽은 후 언젠가가 될 거요. 나는 이제 예순다섯 살이오. 그러니까 내가 당신 집 앞길에서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원 것이 13년 전의 바로 오늘이오.
이 소포가 어떤 식이로든 당신의 생활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으리라는 데 도박을 걸고 있소. 이 카메라들이 카메라 가게의 중고품 진열장이나 낯선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가 없었소. 당신이 이것들을 받을 때쯤에는 모양이 아주 형편없을 거요. 하지만 달리 이걸 남길 만한 사람도 없소. 이것들을 당신에게 보내는 위험을, 당신으로 하여금 무릅쓰게 해서 정말 미안하오.
나는 1965년에서 1975년까지 거의 길에서 살았소. 당신에게 전화하거나 당신을 찾아가고픈 유혹을 없애기 위해서였소. 깨어 있는 순간마다 느끼곤 하는 그 유혹을 없애려고, 얻을 수 있는 모든 해외 작업을 따냈소. '빌어먹을, 난 아이오와의 윈터셋으로 가겠어.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프란체스카를 데리고 와야겠어.'라고 중얼거린 때가 여러 번 있었소.
하지만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고, 또 당신의 감정을 존중해요. 어쩌면 당신 말이 옳았는지도 모르겠소. 그 무더운 금요일 아침, 당신 집 앞길을 빠져 나왔던 일이 내가 지금까지 한 일과 앞으로 할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소. 사실, 살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을 겪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지 의아스럽소.
나는 197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그만두고 나머지 세월을, 대부분 내가 직접 고른 일에 바치고 살고 있소. 한 번에 며칠 정도만 떠나면 되는 작은 일을 골라 하고 있소. 재정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그런 대로 살아나가고 있소.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오.
작업의 많은 부분이 푸겟 사운드 주변에서 이루어지오. 나는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게 마음에 들어요.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물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소. 강이나 바다 말이오.
아, 그렇소. 이젠 내게 개도 한 마리 생겼소. 황금색 리트리버. 나는 녀석을 '하이웨이'라고 부르는데, 여행할 때도 대부분 데리고 다녀요. 녀석은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좋은 촬영거리가 없나 두리번거리곤 핮.
1972년, 메인 주의 아카디아 국립 공원에 있는 벼랑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졌소. 떨어지면서 목걸이와 메달도 달아나 버렸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주변에 떨어져 있었소. 보석상에가서 목걸이줄을 고쳐야 했소.
나는 마음에 먼지를 안은 채 살고 있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요. 당신 전에도 여자들이 몇몇 있었지만, 당신을 만난 이후로는 없었소. 의식적으로 금욕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오.
한번은 제 짝꿍을 사냥꾼의 총에 잃은 거위를 보았소. 당신도 아다시피, 거위들은 평생토록 한쌍으로 살잖소. 거위는 며칠 동안 호수를 맴돌았소. 내가 마지막으로 거위를 봤을 때는, 갈대밭 사이에서 아직도 짝을 찾으며 헤엄치고 있었소. 문학적인 면에서 약간 적나라한 유추일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내 기분이랑 똑같은 것 같았소.
안개 내린 아침이나 해가 북서쪽으로 이울어지는 오후에는, 당신이 인생에서 어디쯤 와 있을지,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순간에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려고 애쓴다오. 뭐, 복잡할 건 없지. 당신네 마당에 있거나, 현관의 그네에 앉아 있거나, 아니면 부엌의 싱크대 옆에 서 있겠지. 그렇지 않소?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소. 당신에에 어떤 향기가 나는지, 당신에게 얼마나 여름 같은 맛이 나는지도, 내 살에 닿는 당신의 살갗이며, 사랑을 나눌 때 당신이 속삭이는 소리.
로버트 펜 위렌은 '신이 포기한 것 같은 세상'이란 구절을 사용한 적이 있소. 내가 시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아주 가까운 표현이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살 수는 없잖소. 그런 느낌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나는 하이웨이와 함께 해리를 몰고 나가 며칠씩 도로를 달리곤 한다오.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느끼지도 않고. 대신, 당신을 발견한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쏘. 우리는 우주의 먼지 두 조각처럼 서로에게 빛을 던졌던 것 같소.
신이라고 해도 좋고, 우주 자체라고 해도 좋소. 그 무엇이든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위대한 구조하에서는, 지상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광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나흥리든 4억 광년이든 별 차이가 없을 거요. 그 점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려고 애쓴다오.
하지만 결국, 나도 사람이오. 그리고 아무리 철학적인 이성을 끌어대도, 매일, 매 순간, 당신을 원하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소. 자비심도 없이, 시간이, 당신과 함게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 소리가, 내 머리 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이오.
마지막 카우보이,
로버트
추신 : 지난 여름 해리에 새 엔진을 달았더니 이젠 잘 달리오.
이 소포는 5년 전에 도착했다. 그 안에 동봉된 것들을 꺼내 보는 것이, 매년 그녀의 생일날 거행하는 의식의 일부분이었다. 그녀는 그의 카메라와 팔찌, 메달이 달린 목걸이를 특별한 상자에 넣어 옷장에 보관했다. 인근에 사는 목수에게 부탁해서 그녀가 디자인한 대로 호두나무 상자를 만들게한 다음, 안에는 칸막이를 했었다.
"상자가 예쁜데요."
목수의 칭찬을 듣고 프란체스카는 슬며시 미소만 지었었다.
의식의 마지막 부분은 원고였다. 날이 저물면 그녀는 언제나 촛불 아래서 그 원고를 읽었다. 원고를 거실에서 가져와 조심스레 포마이카 상판 위에 놓고, 촛불을 켜고, 그해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해마다 이날이면 카멜을 한 개비씩 피우는 것 역시 의식의 일부였다. 그녀는 브랜디를 홀짝이며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Z차원에서의 추락
로버트 킨케이드
나는 바람을 타고 다닌다.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바람을. 지금껏 타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탈 것 같은 바람을 타고 다닌다. 바람의 등줄기에 올란탄 채 떠돈다. 그 바람을 타고 나는 Z차원으로 들어간다. 나와는 영영 무관할 것 같은 세계, 그러나 손만 뻗치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 같은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Z차원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뉴멕시코에서 막달레나의 커브길을 빗속을 뚫고 돌아들자면, 난 마치 고속도로가 아닌 어느 동물의 꼬리 부분에 올라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와이퍼가 한 번 움직이면, 넌 다시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다.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거대한 숲속에서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느낌. 와이커가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세상이 바뀐다. 자꾸 자꾸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나는 모피를 걸치고 머리는 산발인 채로 잔디 위를 지나간다. 창을 들고 있다. 어느덧 나는 빙하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얼음처럼 차고 단단한 육체와 생존에 적합한 교묘한 지례로 무장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빙하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바닷속에 있다. 바닷속에서 헤엄을 친다. 무게를 잴 수도 자로 잴 수도 없는 존재, 나는 그런 존재다. 플랑크톤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바다에서, 나는 아메바처럼 기고 또 긴다. 어딘가를 향해 어떤 존재인가가 되기 위하여.
유클리드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는 하나의 평행선을 상정했었다. 우주 공간 끝까지 곧게 뻗어 있는 평행선, 영원히 변치 않을 평행선을. 그러나 존재는 비(非)유클리드적일 수도 있다. 선들은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소멸점이라는 것을 가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환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로는 함께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의 현실이 또다른 현실에 녹아들 수도 있다. 일종의 부드러운 얽힘이랄까. 교차점이 선명한 것도 아니고, 오고가는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다. 호흡처럼, 그렇다. 호흡처럼 내 안으로 스며드는 만남.
나는 이제 또 하나의 존재를 위해 움직여 나아간다. 옆으로, 아래로, 그 주변으로 움직여 나아간다. 힘차게, 힘차게 나아간다. 움직여 나아가면 차츰 차츰 힘이 보내지고 합해진다.
어디선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호흡의 안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 빙글빙글 춤이 시작된다. 그려면 창을 든 사내, 산발을 하고 있는 사내는 부드럽게 녹아든다. 천천히, 아다지오로 구르고 넘어지면서, 얼음 사내는 추락한다…… Z차원에서…… 그녀에게로.
예순일곱 번째 생일이 저물 때, 비가 멈추었다. 프란체스카는 마닐라 봉투를 뚜껑 달린 책상의 아랫서랍에 넣었다. 리처드가 죽은 후 그녀는 봉투를 은행의 금고에 보관하기로 결정했었다. 하지만, 매해 이맘때면 며칠간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카메라가 든 호두나무 상자는 뚜껑을 닫아 침실의 소장 선반 위에 놓았다.
오후가 되자 그녀는 로즈먼 다리에 다녀왔다. 이제 그녀는 현관으로 나가 수건으로 그네를 훔치고 앉았다. 날씨가 차가웠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랫듯이, 몇 분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마당문으로 나가 한참이나 거기에 서있다가 집 앞길의 입구로 나갔다. 22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녀는 늦은 오후 그가 길을 물으려고 트럭에서 내리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해리가 시골길 쪽으로 덜컹거리며 달리다가 멈추고, 로버트 킨케이드가 발판 위에 서서 길을 뒤돌아보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