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은... 산행지를 다른곳으로 변경 합니다
조선 성곽 건축의 꽃, 수원화성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1796년 9월 완공된 성이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개혁군주라고 하는 정조의 지시로 다산 정약용이 설계하고 감독하며 지었다는 수원화성
성곽 건축 사상 가장 독보적인 면모를 자랑하여 유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어있는 성 입니다
수원화성을 구경하며 성곽을 따라 걸어가 볼려고 합니다 성곽길을 걷기전에 화성안에 있는 정조의 별궁인
화성행궁도 한번 구경해 보고 서민의 시장 재래시장도 구경 하려 합니다
네가 조선의 왕이 되보고 산과 다른 또 하나의 무엇을 느끼게 합니다
도보거리 : 9km
소요시간 4-5시간
코스는 대부분 평지이나 중간 중간에 계단이 조금씩 있습니다
스틱이 필요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습니다
산행회비 28,000원(김밥,물 제공)(2석 1인으로 진행)
-임원 27,000원
농협 박성권 351-0329--2202-73
-입장료는 개인부담
개인준비물 : 점심 간식과 식수,방풍의
-점심은 도보중 매식 가능
*출발지 출발시간 꼭 확인 하세요
-송내역 : 남부역 1번출구에서 경인국도변 200m 직진 씨유편의점앞 7시 출발
-중동역 : 송내우체국 앞 7시5분 출발
-부천역 : 농협(심곡동지점)앞 7시10분 출발
-소사역 : 소사역 지구대 건너편 7시15분 출발
-역곡역 : 홈플러스 앞 7시20분 출발
-오류역 : 오류역 입구 신한은행 앞 7시25분 출발
-개봉역 : 개봉삼거리에서 서울방향 200m 직진 남현교회 앞 7시30분 출발
-신도림역: 신도림역 1번 출구로 나와 푸르지오 2차 주상 아파트 횡단보도 건너
직진 푸르지오2차 상가앞(마음치유클리닉) 버스정거장에서 승차 7시40분 출발
*하차시에는 신도림 먼저 하차
*산행시 몇가지 부탁 드립니다
1.산행 참가전 자기 몸이 이상 하것나 발열시 산행을 자제 부탁 드립니다
2.차량 승차시 마스크 필수 착용 이며 차량내에서 마스크를 벗으면 절대
안됩니다
3.차내 승차시 체온을 측정 합니다
4.신규 회원 산행 신청시 실명,폰번호 010-8330-0224로 문자 주세요
5.차량내에서는 음식물 드시는 것을 금지 합니다 아침식사는 제일 가까운
휴게소나 정차 하실때 드시길 바랍니다,음료수,커피도 드실수 없습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자제 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하여 불편을 하더라도 꼭 지키어 주시길 바랍니다
*5번 내용이 불편 하시것나 지키지 못하시면 산행을 취소 하여 주시고
산행비는 환불 조치 하여 드립니다
6.산행시는 아침 김밥,물 제공하며 뒷풀이는 하지 않습니다
*좌석표
1.임원 | 2.임원 | 3.리딩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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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38 | 39 | 40 |
41 42 43 44 45
서북공심돈
보물 제1710호
1796년(정조 20) 창건
1934년 수리
서북공심돈은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墩臺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서북공심돈은 서북쪽 성벽이 꺾이는 위치에 설치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공격 기능까지 갖추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완성된 화성을 둘러보던 정조는 서북공심돈 앞에 멈춰 “
우리나라 성곽에서 처음 지은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화성에는 모두 세 곳에 공심돈을 세웠는데 서북공심돈만이 축성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 치성 :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
화서문
보물 제403호
1796년(정조 20) 창건
1848년(헌종 14) 수리
1975년 수리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이다.
‘화성의 서쪽’이란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서북쪽에 문을 두었다.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조선 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춘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격을 낮춘 형태이다.
석축의 규모도 작고, 1층 문루에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졌다.
화서문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우두머리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과 개성, 강화도에서 온 석공이 참여했는데 박상길은 축성이 끝난 후 석공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의 상을 받았다.
현판은 화성 축성의 총책임자였던 채제공이 썼으나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장안문
1794년(정조 18) 창건
한국전쟁 때 문루 파괴
1975년 문루 복원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북문이다.
정조는 장안長安의 의미를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현륭(융릉)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라고 풀이했다.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장안문은 남문인 팔달문과 더불어 화성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2층의 누각은 네 모서리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지붕 형태다.
길고 휘어진 목재를 구하기 힘든 조선 시대에 우진각 지붕은 궁궐이나 도성의 정문과 같은 건물에만 쓰였다.
문루 처마 밑에는 다포多包라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받침 목재를 짜 맞췄는데,
다포식 건물은 18세기 이후 궁궐에서도 거의 백년 동안 짓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강원도 출신의 승려 목수인 굉흡이 와서 건설을 도왔다.
서울의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조선 시대 성문을 대표하던 장안문은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1975년 다시 복원하였다. 석축에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 옹성 : 성을 지키기 위하여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
** 용마루 : 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북옹성
1795년(정조 19) 창건
1975년 수리
북옹성은 장안문 바깥에 반달 모양으로 쌓은 성으로, 성문을 이중으로 지키는 시설이다.
출입문을 옹성 한가운데 내서 출입하기 편하도록 했다.
조선 시대에 만든 여러 성곽에도 옹성이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문을 중앙에 만든 있는 사례는 장안문과 팔달문이 유일하다.
문 위에는 물을 저장하는 오성지를 설치하여 화공에 대비했다.
오성지는 화성에만 설치한 색다른 방어시설로서 정약용이 제안했으나 설계안대로 시공되지 못했다.
* 오성지: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물을 담는 통
북수문(화홍문)
1795년(정조 19) 창건
1848년(헌종 14) 홍수로 유실 후 재건
1922년 홍수로 유실
1932년 복원
북수문은 화성의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이다.
일곱 칸의 홍예문 위로 돌다리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었는데,
‘화홍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누각은 본래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쓰였다.
수문을 통해 흘러온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인 ‘화홍관창華虹觀漲’은
화성에서 꼭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손꼽힌다.
화홍문은 조선 헌종 14년(1848)에 수문과 누각을 다시 지으면서 형태가 약간 달라졌다.
1932년에는 ‘수원명소보존회’를 주축으로 수원시민이 힘을 모아 홍수로 무너진 누각을 다시 지었다.
2016년에는 화성성역의궤를 근거로 창문을 복원했다.
* 홍예문 :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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