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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간에 정상회담이 있었다
북녁의 백두대간이 열리기를 소망하며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걸었다.
제 37차 백두대간
1) 언제 : 2018.4.28(토)
2) 어디를 : 구룡령~갈전곡봉~바람불이 삼거리~조침령... 22.1km(백두누계 736.25km)
3) 누구와 : 나와 강쌤
4) 산행이야기 : 어제 대한민국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2018년 4월 27일(금)오전 9시30분 판문점에서 대한민국 제19대 문재인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위원장 간에 남북 정상 회담이 있었다. 어제 TV화면으로 본 역사적인 사건은 전 국민이 흥분하기 충분했고 세계적으로도 빅뉴스였으며 회담후의 뉴스도 훈훈함과 많은 변화가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평화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다.이제 이 땅에 평화가 오려나? 남북정상은 회담후 저녁무렵에 "판문점 선언"을 했고 모두가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며 환호와 기대가 넘친 하루였다.남북 관계가 잘 되어서 북녁땅 백두대간이 열리기를 바래 본다.내가 걷는 백두대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산까지이다.전체의 거리는 약1,600km이고 남한구간인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진부령까지는 도상거리로만 대략 680km이다(실제는 약1,000km 달한다는 이도 있다).북한쪽의 백두대간 거리는 지도상으로 910km이며 실제 걷는 거리는 1,200km에 달하여 남측보다 훨씬 긴 거리이다.그런데 남한쪽 백두대간을 걷고 북한쪽 백두대간을 걸어 세계최초로 남,북한 전구간의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 외국사람이다.그는 뉴질랜드 국적의 경찰출신 저널리스트인 로저 셰퍼트이다.그는 2006년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지리산의 매력에 빠져 지리산을 종주하고 남한의 백두대간을 종주하게 된다.그후 2011년 북한을 방문하여 금강산 문필봉을 오르고 나서 북한을 무려 6번이나 방문하면서 북녁의 백두대간을 종주 하였다.백두대간과 지리산을 사랑하는 그는 전남 구례군에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백두대간 남북한을 모두 종주한 유일한 사람이다.그는 "코리아 백두대간 남과 북의 산들"이란 사진집을 출간하셨다. 북한쪽 백두대간을 걷는 날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 본다.우리는 이제 진부령까지 5코스가 남았으며 다음달에는 백두대간 남한측 구간을 완주하게 된다.남북회담이 잘 되고 남북문제가 잘 풀려서 휴전선이 열리고 북한구간의 백두대간 구간도 열리기를 진심으로 소망 해 본다. 만약 북녁의 백두대간이 열린다면 기꺼이 북한구간도 걸어서 백두산까지 가고 싶다.그리고 전코스가 아니라도 단 몇코스라도 걷고 싶다.생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어느날 북녁의 백두대간이 열린다면 우리민족의 모든 문제들이 화해와 평화가 시작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오늘은 그렇게 북녁의 백두대간길이 열리기를 소망하며 걸었다.
산행기를 남긴다.
우리는 어제밤 광주에서 시외버스로 출발하여 밤 10강릉에 도착하였고
이동 수단이 없어 강릉에서 자고 출발해야 했으며 이른 아침에 택시를 이용하여
산행 들머리로 가야 했다. 아침 7시 구룡령에 도착한다.
강릉에서 홍천군 내면 구룡령까지 가는 방법을
대중차량으로 간다면 하루를 더 투자 해야 한다.
우리는 비용를 감수 하더라도 택시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강원도 산악지역 100km는 택시로도 멀고 멀었다.
강릉 터미널에서 홍천군 구룡령까지 가는 택시비가 130,000원이 나왔다.
택시기사님은 택시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며 1만원를 되돌려 주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하루를 더 머물고 더디게 가는것 보다 우리의 방법이 더 나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만 생각하면 광주에서도 20명 정도의 단체 대간팀이 꾸려지면
매회 구간당 5만원이면 산행을 할 수 있고 완주후에 산행 기념책자까지 만들 수 있다.
아니면 3~4일씩 걸으며 산에서 야영을 하면 더 경제적으로 걸을 수 있으나
두가지 방법 모두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아내가 부르조아 산행이라고 놀릴만하다.그래도 혼자가 아닌 둘이여서 다행이다.
교통비는 고비용을 감수 했지만 산에서는 초라한 산행이기도 하다.
멀리 나와서 산행 출발을 하기에 도시락 준비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고산지역 마루길에는
음식을 파는곳도 아주 드물었으며 쵸코릿이나 인스텐트 식품 그리고 물과 이온 음료만으로 걸었다.
배가 부르면 걷기 불편하고 오후 2~3시정도면 하산을 할 수 있었고
하산후에 제대로 식사을 할 수 있어서 그렇게 간단하게 준비하여 걷곤 했다.
아침 7시 산행을 시작한다. 구룡령은 해발1,013m이고 무등산 서석대(1,100m)의 높이와 비슷하다.
구룡령 고개는 18세기말 철광석과 금강소나무등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일제 강점기에 더욱 확장되었고 1994년경에 도로가 포장 되었다고 한다.
구룡령 동식물 이동통로를 뒤로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구룡령 정상에서 홍천군 내면쪽으로 50여m 내려오면 오면
북진 들머리인 나무계단을 만날 수 있다.
들머리 산행 시작하는곳은 거친 비탈인데 나무계단이 있었고
계단은 최근에 만들어 놓은듯 하여 단단하고 깨끗하다.
그 계단은 멀거나 그리 높지 않았다.
(구룡령에서 들머리로 접어 들어)
첫번째 이정표를 만나는데 조침령까지 10시간을 가란다.
등산은 처음 30분이 힘든데 나무 계단이 높지 않았는데도 숨이 찬다.
산행시작부터 갑자기 오름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하체도 뻑뻑하다.
굳어진 신체가 아직 적응을 못하여 신체의 각부위가 놀라고
폐와 근육에 산소가 부족해서오는 통증이다.
그래서 준비운동을 충분하게 해야하는데 대충하고 올라 온 벌이다.
이곳은 북쪽이고 시작부터 1,000m이상의 숲이라서 아직 신록이 올라 오지 못했다.
저 아래 낮은곳은 이미 연초록 신록의 이파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지난 겨울 낙옆을 떨군 앙상한 가지 그대로이다.
구룡령에서 1.7km떨어진곳에 구룡령 옛길이 나온다.
저 아래 구룡령은 자동차 길로 새로 만들어진 길이며
옛날 민초들인 보부상과 소금장수가 넘었을 옛길 정상을 지난다.
이름없는 봉우리 몇개를 넘고 만나는 이정표는 거리와 시간을 짐작할 수 있으며
단단하고 자세하게 설치된 이정표가 감사하다.
산행기를 쓰려면 그곳의 기억과 그때의 느낌과 기록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산행중에 메모을 하며 걷는것은 아주 번거로운 일이며
음성까지 남기며 걷기란 여간 더욱 불편한 일이다.
우선 계속 걸어야 하고 가야 할 길은 멀고 몸은 피곤하여 모든것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디카로 사진만을 찍으며 걸었다. 다만 설명하는 현판의 글이나 정상석 돌에
새겨진 글은 읽는데 충실했다.그리고는 사진을 보고 기억을 더듬어
산행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갈전곡봉 가는길에 잎사귀가 크고 키가 작은 풀이 넓게 퍼져 자라고 있다.
스마트폰에 "모야모" 웹에 물었다."박새풀" 이란다.
백하수오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고 비듬이나 머리를 검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한약재이며 먹지는 못한다는 설명도 있었다. 뭐든 검색하는 나오는 좋은 세상이다.
이곳 이정표는 네모난 기둥에 스테인레스 파이프을 설치하고 스테인레스 파이프에
쇠사슬를 메어 달아 내리고 그 쇠사슬에 이정표를 메어 달아 놓았는는데 "갈전곡봉" 이정표가
바람에 떨어져 있다. 비용도 많이 들고 멋지게 보이는 이정표가 강한 바람에 흔들려
떨어져 버렸으니 고비용이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서쪽에서 오는 모든 바람은 백두대간 마루를 넘기 때문에
백두대간 마루는 어느곳이든지 바람의 언덕이다.
그래서 흔들거리는 이정표는 맞지 않은 시설물이였다.
구룡령에서 약 4km쯤 걸어 9시무렵 갈전곡봉(1,204m)에 도착한다.
강쌤은 참나무가지에 리본하나 메어 달아 우리가 걸었음을 알린다.
갈전곡봉(葛田谷峰)은 칡넝쿨 밭이다.
옛지명은 "치밭골봉"인것이 한문으로 갈전곡봉이 된것이란다.
북부 산림청에서 설치한 현판에 설명이 쓰였는데 갈전곡봉은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고 산자락에는 방동약수,개인약수,등등 유명 약수가 많고
왕승골,아침가리골,연가리골,조경동 계곡등 깊은 골짜기를 가지고 있단다.
키가 큰 우람한 참나무 한그루 길 옆에 당당하게 서 있다.
"여긴 내땅이야 ! 라고 하는듯 하다.
날씨와 기온은 화창하고 온화한데 4월의 미세먼지가 많아 가야 할 산이 희미하게 보여
조망이 어렵다.어찌보면 서해를 건너 한반도로 온 미세먼지는 백두대간 바람의 언덕에
미세먼지를 내려 놓는 상황이다.그래서 백두대간은 더 중요한것이다.
미세먼지를 걸르고 정화하는 역활를 백두대간이 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허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백두대간의 숲은 보호 되어야 하고 숲을 더 늘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매년 봄철이면 강원도 백두대간 주변에서 산불이 나곤하여 산불 뉴스를
접할때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모두가 조심하고 아껴야 할 산하이다.
아이고야! 몇개의 산을 넘었는지 셀수가 없다.
높이가 낮아 쉬운것 같지만 수 없이 오르고 내리기을 반복하였다.
인적이 드문 깊은 숲이고 마을이나 도로가 보이지 않아 조망이 없고 어찌보면
재미없는 마루길이다. 오늘의 산행 코스는 1,000m고지에서 1,250m고지까지
오르다가 750m고지까지 내려가는 다소 편한 길이다.
그러나 잔잔한 봉우리가 수 없이 많은 길이기도 하고 숲은 깊었으며 숲은 조용하고 대간하는
사람을 위한 간단한 휴식터가 많아 좋았다.
조침령까지는 아직도 7시간을 족히 가야 한다.
나는 이 코스의 산행기를 쓴 어떤분이 30여개의 봉우리을 넘은것 같다. 라고 하는
산행기를 본적이 있다. 갈전곡봉에서 3km정도 걸어 왕승골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곳은 안부가 상당히 넓고 주변에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조경동 마을이고 동쪽으로는 왕승골로 내려가는 네거리 고개마루이다.
조경동(朝耕洞)마을은 아침에 밭을 간다는 마을이다.
산이 깊어 낮에 해가 머물러 있을 시간이 짧으니 그만큼 빨리 밭갈이을 해야 하는 곳이니
얼마나 두메산골 인지 알만하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이런 마을들이 살기좋은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세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덜한곳이 크게 인정 받고 화려했던곳이
쇠락하는 일도 있으니 세상은 공평하게 돌아 가고 있음이다.
왕승골 삼거리에는 백두대간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설치되어 있어 세삼 세심하게 읽었다.
조침령까지는 13km 5~6시간을 걸어야 할 거리이다.
(백두대간 지도)
한반도 지도위에 남과 북의 백두대간 길을 간결하게 그린 현판을 본다
북녁의 백두산에서 두류산과 마패산 그리고 금강산을 지나 설악으로 내려 오는
한반도의 백두대간길이다. 우리는 지금 설악산 아래에 있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망중한을 즐기다가 다시 출발하여 산죽밭으로 들어 간다.
이곳에는 드문드문 산죽밭이 있으며 다음 목적지인 연가리골 샘터까지는
제법 큰 3개의 산을 넘어 지루한 능선을 걸어야 했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 있으며 안부에 접어드니 바람은 온데 없고
지열은 올라 오고 떠오른 햇살에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바람이라도 맞으러 마룻길에 빨리 올라야 했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데 조금의 고통은 참을 줄 모르고 금방 아우성이다.
내가 그랬다.조금의 불편함에 신경쓰였고 조금 벅차면 어려워 했으며
나는 아직도 덜 익은 사람이였고 부끄러웠다.
이 숲의 저 큰 참나무와 소나무는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한자리에 버티고 있었다.저 인내는 우리네 인간이 배워야 할 일이다.
시간은 10시 30분을 지난다.
오늘 산행에 딱 절반지점이고 이제 온 만큼 더 걸어야 한다.
어찌보면 심심한 능선임에 틀림 없으나 본래의 숲속에 머물고 있다 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큰 나무아래 작은 나무들은 파란 잎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키큰 참나무 아래에서 빽빽하게 조릿대가 모여 살고 떨어진 낙엽의 아래는
토착 미생물이 낙엽을 분해 할 것이다.그리고 그 미생물은 조릿대가 생명을 유지하는 먹이가 되고
조릿대가 머금은 수분은 참나무을 키우리라, 그 참나무와 숲은 인간과 공존하는 것이니
이숲의 생명은 모두가 소중한것이다
저 아래 골짜기가 살짝 보인다. 보이는 저 골짝이 반가웠고 그 만큼 이 숲은 외로웠다.
연가리골 샘터을 지나 오늘의 마지막 오름이고 큰산인 1,080m봉에 오른다.
봄은 땅바닥의 이름모를 풀들에서부터 오고 있었고
따스한 햇살 받고 지열을 받아 아우성 거리며 솟아 오르고 있는 듯하다.
이제 쇠나드리골을 향한다. "쇠나드리 고개"
"쇠"는 소의 옛말, 소가 나드리 간다는 이쁜 말이다.
이곳의 바람은 "황소가 날라 갈 정도로 세게 분다"는 뜻의 고개인것이다.
다시 이름 없는 작은 봉을 몇개 넘는다.
산죽밭 사이에 등로를 인도하는 밧줄이 잘 설치 되고 밧줄따라 길을 내려 갔다.
그리고 조침령 가까운 언덕 조망터에 키 작은 편백나무 한그루와
작고 검은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조침령 언덕위 작은 추모석)
검은 돌을 다듬어 만든 비석에는 "영원한 산꾼의 이복록님을 그리며"라는 제목과
"백두대간 종주를 갈망하며 장장 3년을 걸어 오다 남은 3구간을 남겨두고
생을 마감하신 님을 그리며 여기에 나무 한그루 심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비석의 주인 가족과 산 친구들이 나무 한그루를 심고 세운 비석이였다.
산을 사랑하며 백두대간 종주를 꿈꾸고 장장 3년을 걷다가 3구간코스를 남겨두고
생을 마감하신분이다.안타까운 사연 앞에 나는 잠시 묵념을 올렸다.
그분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분이셨다.
이제 다 온 듯하다. 좌우로 골짜기 보이고 자동차 길이 내려다 보였다.
우린 20km을 넘게 걷고 있었고 사실 나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산을 넘고 넘어 9시간째 20km를 걸었는데 누군들 힘들지 않겠는가?
다만 아직 무릎에 통증이 있다거나 발에 쥐가 난다거나 절뚝 거리지 않아 다행이다.
(조침령에 내려서며)
조침령 나무데크 길을 만나자 강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띤다.
드디어 다 왔구나 하는 안도의 미소 일것이다.
조침령(鳥寢嶺877m)에 도착하여 인재군 현리 택시를 콜하고 진동리 마을로 내려 간다.
쇠나드리 고개는 소가 날아 갈 정도로 바람이 세개 불던 언덕이고
조침령은 "새도 쉬어 자고 넘는다"는 고개이다.
바람이 그만치 "바람이 세개 불어서 나는 새도 단번에 넘지 못하고 쉬어 자고 넘는 고개인것이다"
뜻은 생각 할 수록 재미있는 이름이다.
이제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임도(林道)를 따라 1.8km쯤 가야 한다.
(곰배령 안내판 앞에서)
조침령 아래 2차선 도로 옆 곰배령 현판 아래에서 하산 기념 사진 한장 찍었다.
곰배령은 인제군 진동리에서 점봉산(1,426m)으로 가는 능선 마루길에 있는곳이다
설피마을로 유명한 곳이며 야생화가 무궁무진한 "천상화원"이란다.
갑자기 곰배령에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나이들어 내가 하는 일을 마치고
한가로와 질때 그간 걸으면서 스쳐 지나간 곳들을 다시 한번 찾아 보고 싶어졌다.
잠시후에 현리택시를 만나 이곳 지리를 잘 아시는 택시 기사님과 내일의 산행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대화하고 의논한 끝에 내일은 한계령에서 남진(南進) 하기로 결정한다.
한계령의 초입 공원초소를 통과 하는 시간을 감안하고 내일 산행을 빨리 끝내고
강릉을 거쳐 광주로 가는 버스시간을 단축 해 보자는 생각이였다.
그리고 산행을 위해 한계령 오색으로 가서 숙박을 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우리는 일단 양양시내로 나갔다.
산이 좋아 산을 헤메이듯 걸었지만 탁트인 푸른바다도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장 택시로 이동하여 양양 낙산사 해변 횟집식탁에 앉아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았다.
동해의 식감 좋은 회 한점에 소맥 한잔을 건배하여 마시니
오늘의 피곤이 한방에 날라가 버린다.
인생 이런맛에 사는거여!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동해바다 해변에서)
동해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해변을 걷는데 지나 온 내 삶의 기억이 스치고
힘들게 산을 행군하던 오늘의 기억들이 모두 해풍에 날아가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다는 환희가 몰려 온다.
이제 식당옆 가까운 여관을 예약하는데 허름하기 짝이 없는 오래된 건물이다.
우리는 간단히 씻고 서너시간 자고 나올 일이니 그냥 들어 갔다.
내일의 산행은 이곳에서 12시 일어나 출발하기로 한다.
친구야 수고 했다 잘 자라!
2018년 4월 28일 걷고 5월 8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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