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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아리랑가락을 타고 흐른다.
이홍사
-아리랑가락을 타고 흐른다?
-뭣이?
-강물이!
변기에 앉아 하릴없이 혼자 주고받은 말이다.
-쌈빡하고 감칠맛은 있네!
그 말을 다시 곱씹으며 달밤에 저 혼자서 아리랑 가락으로 흐르는 잔잔한 물결을 떠올렸다. 그것과 겹쳐 금세 맑은 강물을 타고 유유히 흐르는 달과 강물이 달을 품고 흐르는 산수화 한 폭을 떠올리며 그 산수화가 풍기는 묵향까지 맡아버린 것이다.
가만히 짚어보니 변기에 앉아서 떠올린 말로는 쓸 만한 언어이고, 눈에 펼쳐진 상상의 산수화는 내가 배설한 이물질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구린 줄 모를 정도로 상큼하고, 수려한 그림이다. 이래서 화장실을 명상의 공간, 사색의 장소라고 명명하는가? 나 홀로 다방이라고 진부한 표현 아니. 아포리즘으로 정의를 내리던 이들도 있던데......... 산만한 내 사유는 또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대한 실체를 짚어보는 엉뚱한 항에 정박했다. 내 상상은 늘 이 모양이다. 잘못 들어선 뱃머리를 돌리자.
그렇다. 강물은 아리랑가락을 타고 흐른다.
구체적으로 읊조리자면, 동강의 물살은 정선아리랑이나 강원도아리랑가락을 읊으며 자진모리장단으로 굽이치고 낙동강 물결은 경상도아리랑가락을 타고 중모리장단에 춤추며 달을 얼싸안고 흐른다. 그리고 섬진강은 어떤가? 전라도아리랑 혹은 진도아리랑가락에 맞추어 저 혼자 흥얼거리며 제 길을 간다. 그러면 영산강과 금강은 충청도아리랑가락으로 흐른다? 충청도아리랑의 가락이 진양조이던가 아니면 휘모리? 잠시 헷갈린다.
새벽부터 강변을 쏘다니다가 들어온 나는, 엉덩이를 까고 변기에 앉아서도 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모두가 사대강 살리기라는 범국가적 프로젝트 때문이다.
-이 정신 나간 여편네, 좀 보게!
새벽에 나갔다가 온 사이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내가 없는 빈집에 들어서자 바로 푸념처럼 늘어놓은 말이다. 새벽에 전화를 받고 급하게 사라진 점을 고려하여 아침을 차려놓고 식탁보로 덮어놓은 것까지는 좋은데 빨래를 삶으려고 빨래가 담긴 찜통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불을 약하게 틀어놓았지만 그 불에도 비눗물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가스 불을 아예 꺼버리고 빈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며 샤워를 마치고 알몸으로 들어왔다가 아랫배가 묵직함을 느끼고 팬티바람으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걸터앉았다. 화장실 문을 열고 놓고 볼일을 보며 강물과 아리랑의 미묘한 관계를 정립하는데, 젖은 옷을 벗으면서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준 휴대폰에서 문자메시지가 들어오는 신호음이 들린 것이다.
보나마나 스팸일 것이다. 그렇게 단언했다. 스팸이 아니면 내 휴대폰으로는 문자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누가 문자를 보내면 내가 문자로 답하지 않고 늘 전화를 하기 때문이다. 내 휴대폰은 자판이 너무 작아 문자를 보내려면 늘 오타가 나고 또 자판 글씨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으며 어쩌다 문자 두 줄을 보내려면 돋보기를 끼고 더듬거리며 오 분 이상이 소요된다. 하여 문자를 잘 이용하지 않고 문자 메시지가 오면 바로 그 번호로 전화를 때린다.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전화가 걸려오면 황당한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 문자 메시지가 주는 이미지나 뉘앙스와, 목소리로 받는 전화와는 정서가 확실히 다르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전화를 때린다. 그 버릇으로 하여 내게 문자를 보내는 특정 다수를 길들인 것이다.
볼일을 어지간히 본 듯싶은데 여전히 아랫배는 묵직하다. 샤워를 하기 전에 볼일을 보면 좋으련만 긴장을 하면 늘 불규칙하게 변을 보는 과민성대장증상을 앓은 지 오래된 터라 항상 긴장의 연속인 내 배변 습관은 늘 이렇다. 오늘도 새벽부터 잔뜩 긴장을 했었다.
새벽에 잠이 깨기도 전에 정부미를 먹는 수도과장으로부터 일반미를 먹고 사는 나에게 전화가 왔었다. 바로 어제 낙동강을 횡단하는 상수도관로가 터진 것이다. 사고가 난 지점을 도저히 못 찾겠으니 미안하지만 좀 나와서 봐 주시면 좋겠다는, 무늬만 부탁이지 사실은 하도업체에 대한 지시였다. 감독부서인 상수도과 직원들은 밤을 꼬박 새운 것은 감으로 잡을 수 있었고 과장의 목소리도 푸석한 게 극심한 피로에 절어 있었다. 자다가 급하게 바지에 다리를 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과 두 달 전에 취수장의 가물막이가 붕괴되어 오 일간의 단수사태가 터졌었다. 그건 이번에 난 사고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 번 단수사태에 상수도과 직원 둘이 과로로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이번에는 몇이나 뻗을지 모르겠다.
새벽부터 그렇게 불려나가 송수관 사고 난 현장에서 사대강 살리기 공사로 준설한 지점까지 곤죽이 된 진흙을 밟고 아래 위로 뛰어다니며 훑어보고 비바람을 맞으며 송수관 어느 부위에 사고가 났을까 추측과 지난번 송수관 이설공사를 어느 지점까지 어떻게 했노라고, 장마에 태풍까지 겹쳐 불어난 강물 속에 들어있는 사고 지점을 짐작과 눈대중으로 찾아내고 복구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들어왔다. 새벽이라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없는 틈을 이용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기자들이 현장에 있었더라면 더 시달렸을 것이고, 이 정부나 사대강死大江 살리기 공사에 대해 해서 부정적인 견해까지 피력했을 했을 것이다. 물론 기사화 시키려면 편집이야 하겠지만, 덜 부대끼고 들어온 것이 다행이다.
땀과 비바람에 범벅이 된 옷을 몽땅 세탁기 아가리에 쑤셔 넣고 대충 샤워를 하고 팬티바람으로 느긋하게 앉아 늦은 아침을 먹을 참인데, 이 때려죽일 과민성대장증상이 돌발을 일으켜 식탁보다 화장실로 먼저 가라고, 내 동선의 순서를 정해버린 것이다.
느긋하게 화장실 볼일을 보고 나와 메시지를 확인했다.
-못 낸다!
문자 메시지를 보고 바로 뱉은 말이다.
못 낸다구? 내가 뱉은 말에 스스로 되물었다. 그리고는 무심코 뱉은 말이 경솔하지 않았나? 잠시 자기반성과 검열을 마치고 이를 악물고 결연한 한마디를 확고하게 뱉었다.
-그래, 절대 못 낸다!
팬티바람으로 방바닥에 주저앉아 그렇게 다짐했다. 메시지를 날린 이는 문인협회 이 지역지부 총무다. 년 회비를 내라는 내용이며 계좌번호까지 찍혀 있었다. 그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뱀을 밟은 듯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내 정서는 이미 훼손되었다. 벌써 망하고 없어져야할 관변단체가 아직도 관에 빌붙어 공돈이라고 여기는 지원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무장해야한다고 들었다. 그것도 장르상 문학이 첨병이 되어야한다. 각 종교단체나 진보성향을 지닌 시민단체에서는 사대강死大江 사업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있지만 정작 글로 고발해야할 이 지역의 문인협회 회원들은 돈줄이 끊길까 정부미들의 눈치를 보며 찍소리도 못하고 요미걸련搖尾乞憐! 말 그대로 간사한 개가 되어 꼬리만 살랑이고 있다. 그런 사업에 대해서 비판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거나, 글로 표현할 필력조차 겸비하지 못한 무리들이라고 폄하했다. 작가로서의 성찰과 자기반성에 지나치게 관대한 무리들! 지부장이 들으면 대뜸 소리칠 것이다. 너나 잘하세요! 라고.
-씨펄, 나는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
언젠가 쓴 소설 ‘모나리자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잘못된 정책을 외면하며 비판하지 않거나, 정의롭지 못함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고 정의를 내렸다. 지금은 출판물로 인쇄되어 내 글이 아니라 독자의 몫이 되었지만.........
그러나 애석하게도 시대는 달라졌다. 정의구현은 없다. 글쟁이에게마저도 작가정신이라는 물건이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참으로 가슴이 도려내는 듯 아프고 슬퍼다.
이렇게 혼자서 속을 끓여봤자 알아주는 이도 없고 나만 손해다. 생각을 접자.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쩌다 글쟁이까지 이렇게 관변단체로 변절되었지? 반문하다가 이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고, 자신을 다독이며 휴대폰을 던져두고 문지방을 넘어와 식탁에 앉았다.
식탁보를 걷어보니 아내가 퍼 놓은 된장찌개는 이미 식어 있었다. 전자밥솥의 밥을 퍼서 그 따신 밥의 기운으로 먹어야 할 참이다. 몇 숟갈 먹어보니 입안이 까칠한 게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괜히 혼자서 열 받을 일이 아니라고 자위하지만 된장찌개도 마찬가지고 감자조림도 입맛을 돋우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밥을 채 반 그릇도 비우기 전에 숟가락을 놓고 식탁을 물리고 말았다. 메시지 한 통은 내 정서뿐만이 아니라 내 입맛까지 완전히 들쑤셔놓은 셈이다.
숟가락을 놓고 버릇처럼 거실의 텔레비전을 켰다. 허나 이미 뉴스시간은 지났고 남편 출근시키고 하릴없는 주부들이 즐겨보는 아침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연속극이지만 앞에 몇 번만 보면 뒤의 내용이 뻔히 보이는 삼각관계라는 꼬리표를 단 상투적인 멜로드라마로 이 시대의 주부들이 푹 빠질 내용이다.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으면 늘 상상한다. 아니, 상상하는 게 아니라 기다린다. 드라마를 방영하는 도중 화면에 속보라는 자막이 뜨고 그 내용인즉 ‘MX 서거, 심장마비로 추증’ 그런 자막이 나오길 눈 빠지게 기다린다.
-MX? 이니셜이 좀 이상했나? 꼭 무슨 욕설 같구먼!
솔직히 이 정부가 들어서고 일 년이 지나면서부터 대선 때 그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진 나조차도 그런 내용의 속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기다림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이런 소리를 하는 것조차도 무슨 고약한 이름을 지닌 법에 걸려 지금은 무슨 부서로 이름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옛날의 중앙정보부 같은 곳에 끌려가서 뒈지도록 맞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런 속보가 뜨면 박수를 치거나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지르다가 내가 심장마비로 뻗을 수도 있겠다. 뻗어도 좋다 그런 속보가 뜬다면.
망어중죄 금일참회! 불가의 천수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쁜 소리를 한 부분에 대해서 참회한다는 뜻과 다시는 그런 말을 하겠다는 다짐이 스린 경이다. 그런 막말은 그만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자. 망어중죄 금일 참회! 중얼거리며 두 손을 모았다. 내 힘은 미약하다. 무명 소설가가 열 낸다고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마음이 백 번 다스리더라도 문인협회 회비는 절대로 낼 수가 없다. 그걸 내는 순간 나조차도 개가 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함이다. 나는 절대로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가 되지 않겠다. 최소한 글을 쓰는 이라면 엇길로 들어선 정책을 바른 길로 가는 방법을 일러주거나 비판을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문인이 지적하면 동조는 해주어야하는 게 도리다. 그러나 문인협회 이 지역의 전 지부장이라는 작자는 내가 써서 문인협회 카페와 내 카페에 올린 글에 뒤통수를 치는 댓글을 올렸다. 그 점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떠나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당장에 전화를 걸어 한바탕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고 그 댓글에 또 내가 댓글을 달았다. 작가로서의 진정성과 정체성을 지녔냐고, 뜨끔했을 것이다. 그 때 올린 글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작년 국감 때 언론을 통해 알고 분노하며 내 견해를 올린 글인데 어디에 있나 찾아보자.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팬티바람으로 등교하고 없는 아들의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카페를 들락거리며 작년에 올린 글을 찾았다. 그리고 꼼꼼히 읽어보았다. 제목은 ‘사대강 = 무뇌아 아니면 사산아’ 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자.
*****
나는 포클레인 기사 출신이다.
그리고 지금도 포클레인 사업을 하며 사대강 현장에서 일을 하고
돌이키면 고등학교 3년을 낙동강을 나룻배로 건너다니며 통학을 했다.
이 말을 서두에 올리는 것은 강에 대해서 그만큼 안다는 얘기다.
사대강 살리기! 그럼 여태 강이 죽어 있었는가?
내 소유의 중기도 사대강에서 작업을 한다.
그곳에서 일을 하며 밥을 빌어먹지만 아닌 건 아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지금이라도 하던 50%의 공정을 보이는 보는 그대로 설치하고
준설사업은 중단하고 리모델링하는 주변 농경지를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일하는 것을 보니 강도 죽이고 농지마저 죽이는 일이다
사대강의 사 자는 죽을 사 자이다
국토해양위 국감에서 야당의 공격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대강을 임산부에 비유했다.
임신 육 개월인데 낙태할 수 없단다.
미친 소리!
그 산모의 뱃속에 든 아이는 내 생각으로 사산아가 아니면 무뇌아로 보인다.
산모를 살리기 위해서 낙태를 시술해야 한다.
외채를 빌려다가 멀쩡한 강을 죽이고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한국의 외채! 중독증이란다.
심각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물려준 외채는 389조였다
지금은 얼마일까? 이 정부 2년 동안 거의 200조를 늘려서 600조에 가깝다.
우리나라 국민 오천 만을 잡아도 일인당 일억 이천 만원 빚이다.
사 인 가족을 기준으로 잡으면 가구당 빚이 오 억 정도 된다.
누가 이 빚을 갚느냐?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
자살을 하거나, 캐나다나 호주 같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다.
이 정권은 권력이라는 커다란 솜뭉치로 언론의 주둥이에 재갈을 물려
사대강이나 외채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않는 게 아니라 못한다.
정론을 펼쳐야할 신문에서조차도 무상스님의 자살을 그냥 단순 자살로 보도했다
단언하건데, 빚은 국민의 빚이다. 이 정권의 빚이 아니다.
임기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조금 더 지나서
네임덕의 오리발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때가서 떠들겠지
아부성 짙은 언론들은 그 때가서 주둥이에 재갈 물린 솜뭉치를 뱉고 한숨을 쉬고
고발성 짙은 일들을 기사화시킬 것이다..
이 정부가 끝나면 사대강과 외채 문제로 청문회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대강!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포클레인을 삼십 년이 넘도록 하고 강마을에서 자라고 강에서 직접 공사를 한
내 눈에는 어떤 부작용이 도래할지 뻔히 보인다.
강은 자연이고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풍수에 해당된다.
풍수를 저렇게 인위적으로 훼손시키면 재앙이 따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생각이 같은 회원들이나 상반된 의견을 지닌 회원들께서는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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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읽어보니, 글 끝에 상반된 견해를 지닌 회원은 댓글을 달아주기 바란다고 했으니 전 지부장의 댓글도 내가 비난만 하고 욕할 일이 아니다. 그냥 골통 보수파의 무식해서 용감한 견해라고 넘기면 된다. 그러나 사대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내 예상은 적중했다.
두어 달 전에 강바닥이 마구잡이 준설로 낮아지는 바람에 취수장에 물을 끌어들이는 가물막이 (언론매체에서는 가물막이라고 그게 어떤 시설의 고유명사로 표기했지만 사실은 ‘가’ 물막이며 임시로, 가시설로 설치한 물막이라는 뜻)가 유실되어 오 일간의 단수사태가 터졌고 그 결과 각 시민단체에서 집단소송에 들어간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6월25일 그러니까 한국전 발발 61주년이 되는 날! 전쟁발발 시간인 새벽 네 시에 호국의 다리로 지정된 왜관철교가 마구잡이 준설의 원인으로 교각이 주저앉으면서 상판 두 개가 불어난 강물 속으로 내려앉았다.
그 소식을 접하며 하필이면 그 날 그 시각이야? 그리고 환갑날이야? 나는 어딘가 모르게 불길한 징조로 몸서리를 쳤다. 호국의 다리로 지정된 왜관철교는 한국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국군이 밀리면서 후퇴하여 다리를 건너고 난 뒤에 적이 건너오지 못하게 전략적으로 폭파시켜 적의 끊임없는 추격에 발을 묶은 다리다. 다리가 끊기고 적이 주춤하는 순간 강을 건넌 국군은 전투태세를 재정비하는데 시간을 벌도록 공헌한 다리다. 마구잡이 준설의 부작용은 그 뿐이 아니다. 바로 그 날 저녁에 왜관철교에서 이십 킬로미터 정도 상류, 낙동강을 횡단하는 상수도 관로가 거친 불어난 강물의 거센 물살에 밀려서 터져버린 것이다.
그 송수관은 작년에 이설 공사를 했는데 바로 내가 그 현장의 모든 중기를 투입하고 내 지시에 따라 물길을 돌리고 도면대로 공사를 했다. 물론 입찰을 받은 원청업체야 따로 있지만 실질적으로 입찰을 받은 건설사의 현장소장보다 내가 더 설치고 다니며 작업을 지휘했다. 그 공사는 사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의 준비 작업이었다. 준설로 강바닥이 낮아지면 상수관이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송수관을 강바닥에 더 깊이 묻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낙동강을 횡단하는 전 구간을 이설하지 않고 강 중간에 있는 모래섬은 도면상 이설구간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 공사를 하면서 현장소장에게 내가 누차 말했고 상신을 올려서 설계를 변경하자고 종용했었다.
내 말의 요지는, 이 모래섬은 여의도 같이 영원히 살아있을 섬이 아니다. 이 섬이 생긴 지 불과 칠팔 년밖에 되지 않는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한낱 모래더미에 불과하다. 장마가 한번 지나가면 섬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때 가서 드러난 관로를 이설하자면 공사비는 배로 들고 만약 물살에 밀리거나 관이 제 무게를 못 이기고 주저앉는 날에는 일 년 정도의 단수사태가 빚어지고 여러 놈의 모가지가 날아간다. 설계변경을 요청하자는 내용이었다.
소장도 내 의견에 공감을 하고 본사에 보고를 하고 공사감독부서에 여러 차례 얘기를 했지만 그런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어느 놈의 지시인지 그 섬을 시멘트로 보강하여 철새 도래지로 그냥 살린다는 친환경적 설계라고 한마디로 묵살했다.
-지랄하네! 친환경적? 친환경적이라면 강을 그대로 두어야지 왜 이 꼬라지로 만들어? 씨발! 죽어봐야지 저승 맛을 알지........ 도면대로 합시다.
소장에게 그렇게 말하고 도면에 그려진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사를 마치고 손을 털었다. 헌데 일 년도 안 되어 예상은 적중했다. 시멘트로 섬을 보강하기도 전에 섬 아니, 섬이라 불리는 모래더미 반쪽이 물살에 쓸려 내려갔다. 현장에 나와서 토질이나 강물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서 도면을 그렸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치다. 현장을 밟고 다니는 실무자가 그렇게 설계변경을 요청할 적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거늘, 토목분야에 기술사 자격증을 가진 놈들은 하극상이라고 괘씸죄를 적용하여 우리가 이렇게 하자면 더 엇길로 가는 고집을 피운다는 기분이 들어 입맛이 씁쓸했다.
두고 보라지. 설계를 한 놈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우리가 시공하지 않은 부분의 송수관이 장마나 태풍으로 집중호우가 내리면 강물 속에서 제 몸체를 드러내고 물살에 견디다 못해 끝내 휘어지거나 주저앉는 꼴을 면치 못한다. 어느 놈 모가지가 날아가는지 구경이나 하자고 이를 악물었다.
우리의 독설과 예측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보란 듯이 일 년이 안 되어 두 건의 사고가 거듭 터진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고나니 관리나 감독관들은 미꾸라지에 소금 뿌린 것처럼 어쩔 줄 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강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매스컴에서는 어느 놈이 지껄였는지 원인을 파악하는데 이틀이 걸린다고 했지만 벌써 나는 사고원인과 어느 지점이 말썽을 부리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되었다. 새벽에 수도과장에게 일러준 그 지점이 틀림없다. 오늘쯤에는 사고원인과 위치를 찾았다고 떠들겠지.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은 자연 그대로 아리랑가락을 타고 흘러야 한다. 그 가락을 훼손하면 강은 분노한다. 지금 강은 잔뜩 분노가 치밀어 성깔을 부리고 있다. 오늘 새벽에 나가 본 강에서는 아리랑가락을 들을 수가 없었다. 강물은 제 가락을 잃고 난폭한 황톳물로 소용돌이치며 분노에 치밀어 형언할 수 없는 괴성을 내며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쓴 글을 읽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좀 자는 게 좋을 것 같다. 새벽잠을 설쳤고 해장부터 비바람을 맞으며 강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들으며, 젖은 억새밭을 헤집고 다니며 특정소수를 향한 무언의 욕설을 지껄이고 다녔으니 컨디션이 하한가를 치고 있다.
따뜻한 물로 샤워는 했지만, 아리랑가락을 타고 흐르는 게 아니라 분노로 울부짖는 물소리를 들으며 심신을 혹사시켰고 또 강의 울부짖음과 연관관계가 있는 단체에서 지극히 유쾌하지 못한 문자 메시지를 받아 정서가 훼손되었으니 몸이 먼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몸살이 오려는지 으슬으슬 추운 게 자꾸 눕고 싶어진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이 시간대에는 사무실에서 전날 쓴 글을 퇴고를 하거나 새로운 글을 구상하며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할 시간이다. 자칭 작가라고 주장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내게 숟가락을 쥘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중장비들이 모두 현장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경리부장인 여동생이 출근하기 전, 하루 중에서 가장 고귀한 시간대다. 나는 이런 시간에 글을 쓴다. 그 나머지 시간은 일을 하거나 현장을 나가서 둘러보며 작품을 구상하고 짬이 나면 책을 읽는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잠으로 허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눕고 싶지만 서랍장을 뒤져 아스피린 두 알을 찾아 먹고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던 의관을 정재하고 사무실로 내려왔다. 이해를 돕자면 삼층이 집이고 이층이 사무실이다. 사무실에 내려온 나는 내 책상 앞에 앉았다. 사무실은 그냥 여동생과 함께 쓰지 않고 철제 캐비닛과 책장으로 칸막이를 설치하여 나만의 방을 따로 만들어두었다. 그 자리가 나의 집무실이요 집필실이며 독서실이며 소설을 구상하는 공간이다.
책상 앞에 앉으니 비로소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변기에 앉아서 떠올린, 강물은 아리랑가락을 타고 흐른다는 말이었다. 이걸 문장으로 만들어 단편소설 하나를 써도 되고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접목시키면 내가 구상하지 못한 더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켰다.
새벽이면 매일 내려와 이 자리에 앉아 제일 먼저 좋은 하루를 열기위한 기도를 한다. 그 다음 내 전용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검색한다. 여기서 내 전용 노트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무실 업무로 분류된 견적서나 청구서, 작업일정과 작업과정 지출과 수입현황 등 업무에 관련된 것들은 여동생인 경리부장이 쓰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들어있고 내 노트북에는 심지어 그 흔한 엑셀조차도 깔려있지 않다. 오로지 글을 쓰고 은행의 업무만 인터넷뱅킹으로 결재하는 내 전용노트북이다. 노트북을 켜면 먼저 메일을 읽는다. 광고성 메일은 스팸으로 처리하고 읽어도 그만, 버려도 그만인 메일은 과감히 휴지통으로 버리고 어쩌다 들어오는 원고청탁이나 문우들로부터 온 메일을 있나 확인하고, 카페에 들어가 지난날 밤에 올라온 글들을 대충 훑어본다. 그 다음에 즐겨찾기에서 금강경이나 천수경을 클릭하여 틀어놓고 독경을 들으며 글을 쓴다. 그게 습관화된 하루 일과의 순서다. 어쩌다 전날 밤 접대성 과음으로 늦잠을 자거나 다른 일로 글을 쓰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인한 자괴감으로 종일 마음이 가뿐하지 못하다.
하지만 오늘은 역순이다. 떠올린 문장이 머리에서 사라지기 전에 빨리 그 강물에 대한 글을 메모를 하고 그 다음에 인터넷으로 들어가 메일을 훑어보겠다는 생각에 먼저 내 문서를 클릭하여 ‘강물은 아리랑가락을 타고 흐른다.’ 고 자판을 두드려 문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쳐놓고 모니터를 보며 문장의 의미를 곰곰이 씹어보니 이 대목이 소설의 제목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강이 풍기는 뉘앙스와 아리랑이 주는, 민족의 애환이나 한! 그 이미지를 지금 신음하는 사대강 프로젝트에 접목시켜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소설을 쓰면 사회 고발에 대한 작가정신이 내포된 깔끔한 작품이 될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첫 문장은 신이 내린다고 했는데 마치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문장처럼 마음에 들었다.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구상하며 담배를 한 대 빼물었다. 나는 이렇게 구상하고 쓰는 시간에 담배를 가장 많이 피운다.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자판에 담뱃재가 툭 떨어질 때가 있다.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문 것이다. 어느 틈에 담배가 내 입술에 물려 있는지 나도 모른다. 글을 좀 썼다 싶으면 재떨이에 꽁초가 가득하다. 강과 아리랑의 연결고리를 찾다가 인터넷을 클릭하고 들어가 메일을 확인했다. 대여섯 통의 메일이 들어와 있다. 제목만 보고 스팸은 휴지통으로 날렸다. 그리고 늘 들어오는 진보성향 단체의 사설로 들어오는 메일도 제목만 훑어보고는 삭제를 클릭했다. 굳이 읽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잡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메일은 몽골에서 K이사가 보낸 메일이다. 회사가 돌아가는 현황을 보고하거나 애로사항이 아니면 무슨 중기의 어떤 부품을 사서 급히 보내라는 지원요청을 메일로 보내온다.
나는 몽골에도 회사가 있다. 내 회사가 아니라 지분이 전체의 25%에 불과한 이사 직함으로 어쩌다가 발을 담그고 말았다. 과정을 얘기하자면 길다. 하여간, 나를 포함해서 한국인 세 명이 꾸려가는, 몽골 정부로부터 건축, 토목, 도로포장까지 종합건설 면허를 받은 회사다. 하여 나는 일 년에 대여섯 차례 몽골에 나가 회사가 돌아가는 동향을 살핀다. 전체 지분의 40%를 가진 대표이사나 K이사는 몽골 현지인과 결혼하여 일 년에 한 번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몽골사람이 다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상주하면서 투자자로서 감사의 직무로 몽골을 들락거린다. K이사가 메일을 보낼 때는 내가 결재해야할 사항이 있거나 한국에서 급히 보내야할 부품이나 물건이 있을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해 내용을 읽어보니 의외로 업무와는 무관한 메일이다.
일종의 망향가나 향수병의 신음이었다. K이사가 이런 내용의 메일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아마도 술을 한 잔하고 쓴 메일이 틀림없다. 횡설수설, 가끔 철자가 틀린 메일을 요약하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고향이 그립다. 그리고 이젠 몽골이 싫다. 몽골사람들은 더 싫다. 빨리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달밤이면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가슴을 짓누르는 이름 모를 무엇을 꺼내놓고 그것을 안주삼아 술이라도 한잔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K이사는 몽골에 들어간 지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그곳 한인회에서도 알아주는 고참이다. 처음에는 운송전문회사의 직원으로 파견근무를 나갔다가 눌러앉아 우여곡절 끝에 우리 회사의 이사가 된 인물이다. 몽골현지인 바기와 결혼하여 병철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이름을 둔 사내아이 하나를 두고 있다. 그 아이가 지금 아홉 살 쯤 되었다. 운송회사 직원과 건설회사 이사! 업무차원에서 보면 극과 극이지만 그렇게 된 사연도 얘기하자면 길다. 누군들 살아온 궤적을 읊으면 소설 한 권 안 되는 사람이 있으랴. 메일을 거듭 읽어보니 몰골 현지 매니저와 트러블이 생겼거나 아내 바기와 다툰 흔적이 묻어있다. 갑자기 이런 내용의 메일을 보낸 것은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며 바로 답장쓰기를 클릭하여 답장을 썼다.
답장은 단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마음을 다스리라는 짧은 답장이었다.
그렇게 써놓고 보내기를 클릭하려다 다시 보니 너무 무성의 한 것 같아 조목조목 들어오지 말라는 내용을 적어나갔다.
한국은 곪을 만큼 곪았다. 이젠 곪은 것이 부풀어 터지는 일만 남았다. 우리 세대를 생각하지 말고 병철이 세대를 생각하면 몽골에 눌러앉는 것이 백번 낫다. 한국을 건강한 나라로 치유하기에는 너무 깊은 병이 들어 있고 무지개의 나라로 되살리기에는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몽골에서는 한국을 솔롱고스,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무늬만 그렇고 석양의 갈무리가 무지개로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달 몽골에 나갔을 때 초이르에서 자밍우드까지 가는, 우리 회사가 수주한 도로공사 현장이 멀찍이 보이는 사막에 한가운데서 K이사와 짚을 세워놓고 드물게 난 풀밭에 앉아 둘이서 보드카에 육포를 씹으며 했던 말에 조금 보태서 구체적으로 옮겨 적었다.
먼저 심각한 고학력문제가 있다. 학력구조가 단지형 구조면 사회가 가장 안정적인데 반해 한국은 역삼각형이다. 역삼각형은 세울 수가 없다 어디론가 기울어진다. 최종학력이 중 고등학교 학력을 지닌 이는 없다. 지금은 모두가 다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역삼각형이다. 심지어 서울역에 노숙자 중에서 서울 유명대학원 출신의 석사학위 소유자가 끼어 있다면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잡힐 것이다. 모두 대학을 나왔으니 3D업종에는 종사할 사람이 없다. 일례로 어느 도시에서 공채가 있었다. 청소부, 아무리 미화시켜도 환경미화원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직종의 공채인데 응시자의 80%가 대학출신이라면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만하고, 심지어 서울대 출신이 취업이 안 되어 자살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앞날이 보이지 않고 아마득해서, 비관이나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청소년과 중장년의 비율이 세계최고의 기록을 세우고. 그 여파로 인한 이혼율이 세계 삼위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렇게 되니 결손 가정이 많아지고 출산율이 떨어진다. 지금 출산율이 한 가정의 평균치가 1.2명이다. 이것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도래할 것이다. 향후 이삼십 년 후에는 고령화로 노인들만 우글거리고 경제활동을 할 인구가 줄어 경제활동인구 한 명이 노인 다섯 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가전제품은 이미 오래 전에 물 건너갔고 반도체나 휴대폰 등 첨단기술도 중국으로 서서히 기술이 이양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돌아가는 회사는 연중행사로 노조의 파업이다. 17년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파업을 했던 회사도 있다. 우리가 먹고 살만했던 시기는 지난 삼십 년!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외채에 의존하고 있다. 외채가 600조가 넘어섰다.
600조라면 우리 국민 오천만을 잡고 일 인당 일억 이천만 원이다. 한국의 일 년 예산이 300조 쯤 된다. 600조의 빚을 청산하자면 우리국민은 2년간 물만 마시고 숨만 쉬고 있어야 한다. 600조! 무서운 금액이다. 국채보상운동을 하다가 나라를 빼앗긴 지 불과 백 년이 되지 않은 나라에서 과거의 치욕을 상실한 심각한 외채 중독증이다. 그러면서 날마다 지자체에서는 갖가지 이름을 끌어다 붙여 축제를 벌인다. 나라살림을 모르는 국민들은 축제를 즐긴다. 누구 돈으로, 어느 나라에서 빌린 핏방울 같은 빚으로 잔치를 벌이는지 모른다. 선진국도 아니면서 그런 나라들이 지닌 나쁜 병폐는 종합적으로 모두 다 지닌 나라다.
어느 경제전문가는 예측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향후 삼십 년 후 외채가 조 단위로는 모자라고 경이라는 단위에 달할 수 있다고. 그 때는 이미 국토고, 주권이고, 민주는 없다. 우리나라가 재기하기에는 악재란 악재는 모두 껴안고 있다. 공무원을 하는 내 친구 중에 한 명은 정년하면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아야할지 아니면 연금으로 받아야할지 고민하는 인불이 있다. 과연 한국정부가 향후 이십 년 후에 연금을 지불한 능력이 될지 그게 의심스럽다고 했다. 내가 K이사라면 병철이를 절대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도록 하겠다. 지금 몽골과 한국, 이중국적을 가진 그 아이가 열일곱이 되면 어느 한 쪽 나라의 국적을 선택해야 되는데 내 심정으로는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말리고 싶다. 백의민족, 단일민족, 사실 국수주의를 고집한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퇴행적 사고다.
이 나이에는 늦었지만 내가 이삼십 대의 젊은이라면 몽골로 이민을 가고 싶다. 이 나라 국민으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견디기 힘들다. 솔직히 몽골국적을 취득하면 좋겠다. 그런 상상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향후 삼십 년을 기준으로 한국과 몽골을 비교하면 몽골이 한참 윗자리다. 그것도 조목조목 짚어보자.
몽골은 일단 외채가 단 일 원도 없다. 도로망이나 산업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지만 선진국의 원조사업으로 외채 없이 서서히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원조를 받으면서도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에게까지 기초 생활비를 정부에서 지급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나 미성년자는 매 월 삼만 투그럭, 노인들은 팔만 투그럭씩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지하자원의 이윤에서 나오는 돈이다. 영국의 광산회사나 프랑스의 광업회사들이 광산개발에 육십 년 임대 계약을 했지만 그 기술은 몽골에서 이미 터득하고 있다. 이제 몽골은 그 지하자원이 돈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 이상 풀을 찾아 게르를 메고 다니는 유목민이 아니다. 구소련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모스크바대학 출신의 고위관료들이 무작위로 팔아먹은 그 불합리한 계약을 파기하려고, 그 외국회사들을 내보내려고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바로 몽골국민이 눈을 떴다는 얘기다. 그 사실을 바로 K이사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어떤 법적 잣대를 동원하더라도 이길 수밖에 없다. 그 넓은 땅에 지하자원을 무궁무진하게 묻어두고 있다. 금 수출 세계 일위이고, 구리, 유연탄, 철광석, 우라늄,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나보다 K이사가 그 종류나 매장량에 대해서는 더 잘 아시겠지, 그 지하자원은 몇 백 년을 채취해도 고갈되지 않을 량이다. 향후 삼십 년 후에는, 그러니까 병철이가 삼십대 중후반부터는 중동의 산유국처럼 몽골 국민은 앉아서 먹고 살 수가 있는 나라다. 그 때는 우리나라 기술자들이 몽골로 해외근로를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냉철히 판단하고 들어올 생각을 접어라.
답장의 요지는 그것이었다.
물론 K이사가 더 잘 알겠지만 나는 그러한 내용들을 낱낱이 적고 다시 편지를 훑어보았다. 틀린 말은 없다. 답장 보내기를 클릭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몽골과 한국을 단순 비교한 내 가슴에 씁쓸한 무엇이 치밀었다. 괜한 비교를 했나? 오늘은 종일 마음이 편치 못 하겠네! 일체유심조라 했거늘 마음을 다스릴 사람은 K이사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생각하며 물고 있던 담배를 끄고 마음을 다스리고자 잠시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묻었다.
명상이랍시고 눈을 감은지 채 오 분이 안 되어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아침에 전화를 했던 수도과장이었다. 그 공사는 시청 상수도과 소관이 아니라 수자원공사의 책임이지만 수도과장이 더 난리다. 전화 요지는 사고가 난 지점까지, 물살은 많이 약해졌지만 모래로 막으니 자꾸 유실된다. 물살을 이길 수 있는 큰 돌이나 바위를 구할 수 없냐는 것이다.
나는 다시 나가 보겠다고 했다. 앉아서 전화로 할 일이 아니라 현장에 나가서 물살을 보고 채석장에 부탁을 해야 할 것이다. 나가면 그들에게 대뜸 소리칠 것이다. 강물은 아리랑가락을 타고 흘러야 한다고, 정부미로 뼈가 굵은 그들이 그 서정이 짙은 소리를 알아듣기나 할까? 씨펄! 또 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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