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도둑
이 홍사
견물생심이었다 훔치고자 마음을 도사리고 있었던 게 절대 아니었다 옆집 담 너머로 잘 익은 달빛이 도벽의 충동을 자극했다 형곡동에서 문 씨와 두꺼비를 마시고 적당하게 취해서 들어오던 길이었다 주위를 살펴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싱싱한 달빛을 손바닥만큼 북 찢었다 그리곤 툴툴 털어서 생으로 꾹꾹 씹어 먹었다 달빛은 호떡처럼 두툼했으며 따끈했다 또 한 웅큼 찢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허벅지가 뜨끈했다
그게 도둑이 되는 줄 몰랐다
가을 달빛이라 잘 여물었고 맛이 제대로 들었다 하늘에선 송사리가 파닥거리던 달밤이었다 그런데 걸렸다 옆집 이 층에서 창을 열어놓고 달빛에 흥분되어 수음하던 고등학생 두꺼비가 신고하는 바람에 급히 출동한 잎사귀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칡넝쿨로 된 수갑은 채우지 않았지만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닭장차에는 참깨를 훔친 도둑도 있었다 그는 참깨가 참깨 맛이었다고 했다
진술서를 꾸미던 늙은 경찰의 머리숱이 적은 정수리에도 달이 떠 있었다. 그는 달빛에 향기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달빛에 물씬 밴 향기까지 훔쳤다면 가중처벌을 받을 거라고 했다 독수리타법으로 꾸민 은행잎에 지장을 찍으라 했다 그의 이마에 일수 도장을 찍는 기분으로 인주를 눌렀다 지문이 선명하도록 누르며 도토리의 정수리에 뜬 달도 훔치고 싶었다 정수리에 달 문신이 선명한 도토리는 취기에 저지른 사건이라 정상참작을 한 것이라고 했다 현행범은 바로 구속인데 충동범죄였기에 특별히 보호자가 보증을 서면 풀려날 수가 있다고 했다 보증설 사람 초저녁잠이 많은 아내를 불렀다 달빛을 잔뜩 뒤집어쓰고 아내가 급하게 형사과 문을 밀고 들어왔다 아내의 손에는 단풍잎이 몇 장 둘려 있었다
나 도벽증이 있는 거 같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해
그런 소리말아요 모든 게 토실토실한 가을 달빛 탓이지
아내는 달빛을 툴툴 털면서 말했다
다음날 아내는 두꺼비 엄마에게 달빛 값 대신에 우리 마당에 널린 별빛을 조금 찢어 주고 합의서를 받아 다람쥐 쳇바퀴에 밀어넣었다 옆집 두꺼비가 나를 보고 엉큼한 아저씨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나는 달빛 도둑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달무늬가 새겨진 이불을 덮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이 갔다 그날 내 이마에는 별 하나가 빛났다
그날 이후로 달은 뜨지 않았다 달은 바로 내가 하수구 맨홀에 처넣고 쇠로 만든 뚜껑을 덮었다 완전범죄였다 옆집 두꺼비가 달빛이 없는데 어떻게 수음을 하는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