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간월산, 평원 신불산, 그 둘 합친 영축산
지난 4월29~30일 이틀에 걸쳐 통도사 17암자를 찾았다. 석남사를 품고 있는 가지산 옆 배내봉으로 올랐다. 등산객들 사이에서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유명한 등산길이다. 배내봉, 간월산(看月山), 신불산, 영축산이 한 줄기다. 간월산은 간월사라는 절 이름에서 나왔다. 7세기 무렵 사찰로 절터와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남아 있다.
50만평의 억새밭으로 유명한 신불평원부터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영축산에 도달했을 때는 빗줄기가 강해졌다. 사찰을 제대로 보려면 산을 올라야 한다. 간월산은 날카로운 바위가 압권인데 그 옆 신불산은 넓은 평원이다. 영축산은 그 둘이 합친듯 했다. 영축산은 아래로 뻗어 너른 들과 야트막하지만 왜소하지 않은 작은 산을 만들었다. 통도사와 17암자가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앉았다.
▲백운암 용왕각. 높은 산위의 용왕각이 이채롭다.
◇ 만공선사 오도처 백운암, 정원 같은 비로암
영축산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암자는 백운암이다. 산 정상은 안개로 덮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하산길을 못 찾고 한참을 맴돌았다. 내려가면 다시 정상이다. 겨우 찾아 백운암에 이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영축산 8부 능선 높은 곳에 자리해 통도사 17암자 중 유일하게 걸어서 찾아가야 한다. 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조일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순조 10년(1810) 침노대사가 중건했다는 정도의 기록만 전한다. 만공선사가 31세에 두 번 째 깨달은 곳이 바로 이 곳 백운암이다.
만공은 스승 경허선사를 따라 서산 부석사에서 범어사 계명암으로 갔다가 하안거를 마치고 통도사 백운암으로 왔다. 장마철이어서 보름 동안 갇혀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게 되는데, 종소리와 더불어 사방에서 광명이 쏟아지는 광경을 맞는다. 두 번째 깨닫는 순간이었다. 같은 비를 맞는데 한기(寒氣)와 허기(虛飢)만 엄습했다.
▲비 내리는 비로암 모습
백운암 아래는 비로암(毘盧庵)이다. 산길로 가면 바로 옆이다. 개울물이 힘차게 흐른다. 비로암에는 통도사 영축총림 방장(方丈)을 역임한 원명스님이 주석한다. 언제 찾아와도 정갈한 모습이다. 대웅전에는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준비하는 보살님들로 북적거렸다. 비로암은 고려 충목왕 원년 (1345) 영숙대사가 창건하고 선조 11년(1578) 태흠대사가 중건, 그리고 최근 원명스님이 중수했다. 높은 곳에 자리해 전망이 좋은데다 영축산이 가깝다. 경내는 꽃과 연못, 크지 않은 전각이 어울려 정원에 들어온 듯 편안하다.
▲극락암 극락영지의 환상적인 모습.
◇경봉스님 만나는 극락암, 불교학 산실 반야암
비로암을 나서 조금만 내려가면 극락암(極樂庵)이다.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며 지식인 기업인 정관계인사들이 존경했던 경봉스님이 주석했던 곳이다. 영남에서 ‘극락’은 한국불교의 중심이며 자부심이었다. 고려시대 창건한 고찰이다. 극락영지와 홍교 위에 드리운 연등이 빗속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극락영지는 통도사 8경 중 하나다. 봄에는 벚나무가 장식하고, 여름에는 연등이 빛나며 가을에는 단풍이 연못에 잠기는 비경이다. 홍교는 탐진치 삼독심에 물든 예토(穢土)에서 정토로 넘어가는 다리다. 경봉스님이 1962년 만들었다. 1955년 경봉스님이 33조사를 모신 삽삼전(三殿), 과거 선원 역할을 했던 정수보각, 경봉스님이 주석했던 삼소굴 등 많은 전각이 있다. 신축불사로 몇 년 사이 가람이 더 커진 듯 했다.
극락암을 나서 농가로 난 밭길을 따라가면 반야암(般若庵)이다. 5분 가량 걸리는 지척이다. 반야암은 대강백 지안스님이 1999년 창건했다. 매월 첫째주 일요일 거사림법회가 열린다. 퇴임한 교수 기업가 학자 등 부산 창원 등지의 나이 지긋한 남성불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노학자들이 대강백의 법문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 기울여 듣는 광경은 아름답다. 스님은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을 만들고 반야학술상을 제정해 해마다 불교학 진흥에 공이 큰 학자를 선정해 상금을 전달한다.
◇ 경전 향 가득한 서축암, 물 좋은 금수암
비가 갈수록 더 거칠어졌다.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날은 자장암 일원부터 순례했다. 암자 대부분이 그 주변에 몰려있다. 먼저 들른 곳은 서축암(西鷲庵)이다. 영축총림 초대 방장이며 종정을 역임한 월하스님이 1996년 창건했다. 절 입구를 들어서는데 대강백 종범스님이 2011년 10월부터 매월 한 차례 25회에 걸쳐 서축암에서 했던 대중법회 법문을 엮은 설법집 <오직 한 생각> 소개가 눈길을 끈다. 경내는 깨끗하고 정갈했다. 다보탑이 영축산을 등지고 서 있고 경내는 경전 어구를 적은 안내문이 줄지어 서있다.
▲영축산에서 발원한 샘이 솟아나는 금수암.
서축암을 나와 위로 가면 금수암(金水庵)이다. 환경 전문가이며 부부불자인 이병인 이영경 교수가 최근 펴낸 <통도사 사찰약수>에 의하면 금수(金水)는 영축산의 두 신비로운 샘물 중 하나라고 한다. 영축산 백운암을 사이에 두고 금샘과 은샘이 있는데 각기 금수탕과 은수탕으로 계곡 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 중 금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금수암으로 흘러들어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10년 창건했으니 이제 100년이다.
영축산 중심에 위치하여 큰 기가 모인 터여서 샘도 맑고 시원하다는 것이 두 교수의 평가다.
▲자장암 마애불, 개화파 선각자 김홍조가 화주해 조성했다.
◇‘금와보살’ 사는 통도사 모태, 자장암
금수암 들어오는 숲 입구는 자장암으로 가는 옛길이다. 배내골에서 통도사 앞 신평장을 오갈 때 이용하던 장터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금수암에서 나와 숲길을 따라 걷다 계곡을 지나면 자장암이다. 통도사 17곳 암자 중 가장 특별한 지위를 갖는 암자다.
마침 도량을 둘러보던 현문스님(전 통도사 주지)을 만나 그 특별한 역사를 들었다. 스님 말씀에 의하면 자장암은 통도사 모태(母胎)다. 자장율사가 중국으로 유학가기 전 머물며 수도하던 곳이다. 금개구리(金蛙)도 자장율사와 관련이 있다.
▲번뇌를 끊게 하는 자장암 108 계단.
자장율사가 움막을 짓고 공부할 때다. 계곡에서 공양미를 씻는데 개구리 한 쌍이 늘 물을 흐려 귀찮게 했다. 개구리를 죽일 수 없어 저 멀리 갖다 놓으면 어느새 또 찾아와 자장스님은 예사 개구리가 아님을 알고 특별하게 대했다. 입가에 금테가 두른 것을 보고 이름을 금와라 짓고 ‘세세생생 자장암을 지키며 살아라’는 수기를 주었다.
금와를 둘러싼 신기한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6·25 때 통도사는 전국 각지에서 피난 온 스님들이 모여 살았다. 금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서 바루에 넣어 통도사 보광전에 왔는데 바루 안에 들어있어야 할 개구리가 없었다. 다음날 자장암에 갔더니 그대로 있었다. 40여년 전 자장암에 온 현문스님은 큰스님들로부터 금와에 관한 여러 이적(異蹟)을 들었지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남에게 확신에 찬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몇 가지 실험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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