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하늘언어
1부 하늘언어교회
본문: 살전5:18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제목: 감사의 시작
말씀들은 그 내용이 무한하고 방대해서 20분 동안의 설교에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설교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시작이라는 말은 기독교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이 무엇을 강조할 때는 이것이 완성이고 결론이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신앙에서는 인간이 무엇을 완성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은 단지 무엇을 시작하고 조금 진전되다가 세상을 떠나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감사의 시작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감사는 단순한 덕목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치입니다. 감사는 신앙인의 양식, 호흡, 인격, 존재, 삶 등 신앙인의 전체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감사가 없다면 진정한 신앙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갈수록 감사의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한번도 깊이 있고 진정성 있게 감사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감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감사에 무뎌져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회복해보려고 ‘감사’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감사에 관한 설교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들을 읽어도 가슴에 와닿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조건적인 감사를 강조하는 강압적인 명령조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기 더 싫어지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감사에 대한 접근방법도 수없이 많습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감사하는 사람들 뇌에서 경이로운 변화가 일어난다고 주장을 합니다. 심리적인 면에서 보면 스트레스 해소와 심리적 안정등 온갖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심장병, 위장병, 암 등 수많은 병들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고 상호작용을 매끄럽게 하며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하는 등 온갖 해결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학적, 성경적인 면에서 감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를 창조해주신 주님께 감사, 우리를 구속해주신 구속주에게 감사,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심에 감사... 그야말로 무한한 감사를 지향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신앙의 골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사가 놀랍다고 강조를 해도 우리의 자아는 그렇게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는 오 놀랍구나하며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정작 삶속에서는 평생 살아온 습관과 성격대로 행동하게 마련입니다. 감사해야겠다는 결단과 작심은 작심삼일 아니 작심 삼초로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다가 감사의 소중함을 영영 잊어버리고 성격대로, 기분대로 감정의 쓰레기를 쏟아내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근간이 흔들리는 현상입니다. 어쩌면 머리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감정적으로는 믿지 못하는 감정적 무신론의 발현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사정없이 무너지고 추락하는 일은 어둠이 우리를 잠식하도록 허용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어둠이 신앙을 갉아먹고 감사를 갉아먹고 기쁨을 좀먹다 보면 우리 안에 우울과 무기력과 부정적인 기운이 만연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에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경 안정제도 잠시 정신을 멍하게 만들 뿐입니다. 맛있는 음식이나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잠깐의 즐거움을 줄 뿐입니다. 온갖 복지 혜택이 주어지고 사업이 번창해서 부자가 되어도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시작하는 일뿐입니다. 무엇을? 감사를.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나 생각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자를 향한 갈망의 몸짓이고 어둠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며 스트레스와 우울에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어기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사의 의미와 효능과 실천 방법 등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미미할 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도 감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인지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도 끝이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과도히 몰두하게 되면 오히려 감사가 아니라 스트레스와 짜증이 올라오게 되겠죠? 그러니 오늘은 그저 시작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너무 오래도록 감사를 잊고 살았습니다. 너무나 오래도록 감사라는 단어와 결별한 채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다시 고향집을 찾아가듯이 감사를 다시 시작해봅시다. 오래전에 헤어진 죽마고우를 만나듯이 감사와 데이트를 해봅시다. 그래서 감사와 얼싸안고 그동안 타향살이에 지친 회포를 풀어보기도 하고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심금을 그에게 털어놓기도 해봅시다.
오늘은 이렇게 감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강론을 맺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감사를 실천할 것인지 감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정한 감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꾸준히 공부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우리의 입술과 마음과 예배와 기도와 삶에 감사가 다시 회복되고 살아나도록 최대한 감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에 대해 묵상하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감사의 찬양을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사그러 들었던 감사의 불이 되살아나도록 서서히 부채질을 해 가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소식
1. 감사와 관련된 다양한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매달 특별 예배를 드리는 날에는 별다른 설교 준비 없이 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특별 예배의 일환으로 감사와 관련된 성경 구절을 읽고 감사의 기도를 하고 감사의 내용들을 서로 나누는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에 관한 독서를 읽고 감상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각자 개인적으로는 감사일기를 써서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하시기를 권합니다.
2. 닉네임과 별명을 보내주십시오.
우리 공동체는 독자님이나 성도님
들의 참여와 교제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여의 의무화나 무관심 등 양극단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적정 거리에서 딱 좋은 만큼 참여하시기를 원합니다.
그 딱 좋은 만큼이 어느정도인가는 앞으로 계속 알아가야 하는 과제입니다.
우선은 조금이라도 참여 의사가 있는 분들은 닉네임이나 별명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닉네임으로 설교 때 언급해서 본인만 알아볼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벤트로 추첨 등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닉네임을 부르면 좀더 다정하고 친밀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실명이 가장 좋다고 느껴지는 분들은 실명으로 참여하셔도 좋습니다.
3. 각 부마다 호칭을 달리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1부 교회 시간에는 기존대로 전도사, 집사, 성도 등으로 호칭합니다.
2부 하늘언어학교 시간에는 선생님, 학생 등 학교 용어로 서로를 호칭할 것입니다.
3부 하늘언언센터 시간에는 복지사, 클라이언트, 이용자 등 복지적인 용어로 서로를 호칭할 것입니다.
2부 하늘언어학교
1. 시사용어
1) 슬로비
‘천천히 그러나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약자입니다.
2) 다운시프트
이것은 본래 ‘자동차를 운전할 때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입니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듯이 느리게 천천히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2. 수어
오늘은 신앙과 관련된 수어들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
믿음
소망
사랑
은혜
용서
구원
부활
찬양
평화 등
3부 하늘언어복지센터
오늘은 각자에게 어울리는 닉네임과 별명을 나누고 그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