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마음 제10차 백일릴레이명상 제 42일 (1114 월)
계란찜의 시간
오늘은 계란찜으로 아침상을 차렸습니다. 계란찜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인데, 아이는 외할머니가 만든 계란찜을 최고로 칩니다. 연두부처럼 보드랍고 탱글탱글하며 간이 딱 맞는 외할머니표 계란찜은 아기 때부터 길들여진 맛이지요. 계란찜은 불조절이 중요한데, 강한 불이 오래되면 질감이 퍽퍽하고 구멍이 숭숭 뚫리기 일수입니다.
아침상을 후다닥 차리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평소 성격 급한 제가 만든 계란찜으로 아이에게 합격점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서, “어때, 오늘은 계란찜이 아주 예쁘게 되었는데” 하면서 아이의 평가를 기다렸지요. 숟가락으로 한쪽 부분을 뜨더니, “여기처럼 매끈해야 하는데, 여기는 거칠잖아. 이러면 아닌 거지” 합니다. 냉정하고 매몰찬 음식 평론자지요.
계란찜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머리로는 잘 압니다. 달걀을 깨트린 후, 젓가락으로 세심하게 잘 섞이도록 오래 저어줍니다. 저는 일단 여기서 막힙니다. 충분히 잘 저어주지 못하고 재빨리 휘저으면서 이미 손은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물을 섞고 나서 간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다진 파, 새우젓 국물, 국간장, 소금, 맛술, 참기름, 깨소금 중 어느 하나를 빠뜨리기도 합니다. 모르고 빠뜨리는 경우도 있지만, 알면서도 귀찮아서 건너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다음은 불 조절. 강한 불에서 중간 불로, 그 다음은 불을 끄고 뜸을 들입니다. 올려 놓은 계란찜 냄비 앞에만 가만히 서 있지 못하기에, 상을 차리면서 불을 조절하는 적기의 타이밍을 쉽게 놓치지요. 뒤돌아서면 불이 너무 강해서 이미 너무 많이 부풀어져 있는 계란찜을 바라보며 한숨 짓습니다.
뭐가 그리 급하고 바쁜 걸까요? 계란찜 하나에 집중하기 어려운 제 마음에 물어봅니다. 돌아보니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 하나를 정성껏 세심하게 다루는 데 마음을 내어주지 못하고,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물이 끓고 계란물이 익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조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충분히 뜸이 들기도 전에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행동이 음식이 알맞게 익어가는 과정을 방해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손이 갑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 먹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인가? 주어진 시간 내에 결과물을 내기 위해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건가? 대충해도 얼추 비슷하게만 나오면 된다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타협을 하기 때문인가? 어찌해도 아주 망하지는 않을 거라 자신하는 건가? 제 자신에게 되물어봅니다. 뭐가 그리 급한 건데? 왜 그러는데?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위에 물은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합해져서 그런 건지도요. 분명한 건, 그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르는 행동을 바꾸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는 겁니다. 머리 속에서 계속 재촉하는 목소리를 잠시 꺼 두고, 조용히 차분히 하나 하나의 과정에 마음을 실어 보고 싶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전체 과정을 명상하듯 마음을 모아 집중하며, 파를 썰 때는 파를 써는 것에만, 계란을 저을 때는 손의 감각에만 집중하고, 불 앞에서는 냄비 끓는 소리와 시간과 냄새에만 집중해, 그때 그 순간에 온전히 마음을 모으고 싶습니다. 미리 앞서 가지 않고,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오로지 지금 현재에만 거하는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본다면, 일부러 시간과 장소를 내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명상을 수행하는 경지에 이를 것도 같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시간과 다투지 말고, 시간을 탐하고 시간에 굶주리지 않고, 시간을 소중히 여기되 소유하려 들지 않은 채, 시간 속에서 시간과 더불어 유유히 흘러가고 싶습니다.
다음 번 계란찜을 만들 때는, 적어도 계란찜을 만들기 시작해서 끝내는 절차까지의 시간만큼은 명상하듯 수행하듯 임해보자 합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거친 결의 계란찜이 차분하고 탱글하게 바뀌어 갈 즈음, 제 일상에도 지금 여기의 현재의 경험을 더 자주 알아차리는 명상의 습관이 차차 깃들어 가겠지요. 그리고 조바심이 날 때마다, 성마르고 조급해질 때마다, 계란찜의 시간을 떠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