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올린 '200년전에 풍수는 끝났다'는 글에 대한 답글에서
시대에 걸맞는 '풍수'에 대한 인식을 실학자들은 지적하였다.
자료를 검색하다 이와 관련한 유익한 논문이 있어 내용을 그대로 연재를 해봅니다.
우리 풍수인 스스로 현재 풍수가 왜 학문으로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풍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을 듯합니다.
이 논문은 동방문화와 사상 제1집(123-151쪽)에 실린 권선정님의 『차이 나는 지리: 풍수와 Geography 』입니다.
풍수와 지리(Geography)
Ⅰ. 서 론
공간은 인간 삶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실재로서 그것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생존과 지속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지표상의 차이나는 자연환경과 인간 간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공유되고 축적되어 온 다양한 지리적 지혜나 심지어 고도로 구조화된 지식체계로서 지리학이 유지되어 왔던 이유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차이나는 지리 또는 지리학’의 구성이라는 대전제이다. 지표상에서 인간이 관계 맺는 자연환경이라는 것이 동일하지 않다는 소박한 사실 외에 인간의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사회, 문화, 제도 등 인간생활과 관련된 제 영역의 다양함과 변화를 고려할 때 지리(또는 지리학, 이하 지리로 통일)의 차이와 변화는 너무도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지리, 지리학, 지리학자 등 지리와 관련된 단어를 접하게 될 때 무엇이 떠오르는지 생각해보자. 먼저 지리를 잘 안다면 지도나 지명 이정표를 이용해 길을 잘 찾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또 기후, 지형, 태백산맥, 4대강, 환경결정론, 사회과, 암기과목 등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상 접한 사회 또는 지리 과목과 관련된 수업내용이나 학습 이미지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지리학이나 지리교육을 전공한 교사나 교수, 연구자를 지리학자나 지리전문가라고 구분한다. 말하자면 교육과정을 통해 접한 교과목으로서 지리와 관련해 지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리라는 표현처럼 특정 언어를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하나의 의미체계로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지점에서 언어와 관련된 의미를 물적, 사회적 구성물로 보아 언어가 사용되는 인간집단 간의 관계(사회적 관계, 권력관계) 속에서 동일한 언표에 대한 의미가 다르게 구성될 수 있음을 분석하는 담론연구(‘의미의 정치학’)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령 18세기 전후 영국 국교회와 비국교회 간의 관계 속에서 ‘구원’이라는 언표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는 영생 또는 절대군주의 통치로 부터 벗어나는 자유와 같이 아주 상이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 언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견지하는 입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특히 자연환경이라는 물적 조건의 차이 그리고 관점을 달리하는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지리 또는 지리적 지식의
내용과 관련된 언표 등은 더더욱 이러한 담론 분석의 입장에서 볼 때 상이한 의미체계로 접근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본 연구는 현재 한국사회에 서로 대비되는 두 종류의 지리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근대 이전 오랫동안 지리의 위상을 유지해왔던 한국의 전통지리로서 ‘풍수’와 현재 지리 하면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지리로서 ‘Geography’가 그것인데, 이들 두 지리 간의 차이나는 지점이 무엇인지 드러내 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 이다.
이를 위해 먼저 근대 이전 오랫동안 정상적인 지리로 공유돼 왔던 풍수의 위상, 다음으로 풍수와 Geography 간의 인식론적 특징과 그러한 인식의 재현(representation) 상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풍수의 위상 그리고 두 지리 간의 인식론 및 재현 양식에서의 차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지리라는 것이 앞서 말했듯이 구체적인 물리적 환경과의 관계, 인간의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의 특징적 측면, 그리고 그것의 언어적 표현인 개념이나 지도상 재현의 차이 등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기때문이다.
* 여기서 Geography는 19세기 이후 하나의 분과 학문 체계로 자리 잡게 된 서
구의 근⋅현대 지리를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