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법등사설오스님TV(YouTube) 작성자 : 변함없는 즐거움
여러분이 점찰윤상을 던질 때는, 여러분이 점찰윤상을 던질 때에 신구의 삼업이 전부 순전히 선업만 나오면 조금도 결점이 없으면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상도 역시 좋으면, 그러면 바로 신구의 삼업이 청정한 좋은 상을 얻은 것입니다. 다른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따라오는가 하면 밤중에 광명이 두루 가득 비춥니다. 참회실 안이 전부 광명으로 가득합니다. 밤중에는 본래 깜깜한 것입니다. 그러나 참회실 안이 전부 광명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이 한 가지입니다. 그리고 또 특별한 향내가 납니다. 인간 세상에서 피우는 그런 전단향의 향내가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향내가 납니다. 동시에 자신의 신체도 아주 행복하고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 행복감은 일반적으로 흔히 느껴지는 그런 기쁨이 아닙니다. 이것을 좋은 상(善相선상)이라고 합니다. 혹은 꿈속에서 불보살님과 함께 합니다. 혹은 꿈속에서 어느 부처님 설법을 듣거나 어느 보살님들과 함께 있습니다. 혹은 부처님께서 오셔서 증명을 해주십니다.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청정해졌느니라.“ 손으로 머리를 만져주십니다. “선재, 선재라” 하시면서 찬탄하십니다. “그대가 이미 청정해졌느니라. 내가 그대를 증명해 주겠노라.” 하십니다. 혹은 보살님이 와서 증명해 주는 것을 봅니다. 혹은 꿈속에서 불상이 방광하는 것을 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수행자들은 모두 만난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생사를 요달한 것인가 하면 다만 일시적인 것입니다. 선상(善相)이 생사를 요달한 것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계속해서 수행해야 합니다. 만약 날마다 이런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결정적입니다. 혹은 점찰참법기도를 할 때에 어떤 때는 아주 상응이 잘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있다가 며칠 지나가면 또 없어집니다. 업에 따라 드러나서 아직 결정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직 입주(入住)가 안된 것입니다. 신심이 아직 원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허상이 자주 나타나면 신심이 이미 원만해진 증명입니다. 삼업이 청정해진 것입니다. 신구의 삼업이 청정해진 것입니다. 이때에 수행을 해서 선정과 지혜를 닦으면 그대로 성취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법화경>을 염송하거나 혹은 <화엄경>을 염송하면, <능엄경>을 염송하거나 내지는 <4아함경>을 염송하면, 평소에는 경전을 염송해도 그 뜻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윤상에서 청정상을 나타난 이후에는 그 뜻을 전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지혜가 열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신구의 삼업이 상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먼저 다른 사람들 말을 듣고 자신이 상을 얻었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허망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짓입니다. 허황되어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은 절대로 善相(선상)이 아닙니다. 이 단락의 경문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여러분이 참법기도를 할 때에, 여러분들에게 어떤 경계상들이 일어납니다. 신구의 세 가지 상과 삼업이 아직 청정하지 않을 때에는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거짓이고 허망한 것입니다. 반드시 윤상과 상응해야 합니다.
왜 윤상이 있고 점찰하는 윤상이 있는가 하면, 윤상과 상응하고 나서 꿈속에서 혹은 이러한 경계상을 보게 되면 이것을 진실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참회실에서 향내가 나는 것을 맡게 되거나 참회실에서 방광하는 것을 본다거나 좋은 꿈을 꾸었다거나, 그러나 윤상이 청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구니 경계라는 증명입니다. 마구니가 와서 방해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점찰해서 윤상이 청정해지고 나서 이러한 좋은 일들을 만나면 이것을 수승한 경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점찰참법을 배우거나 혹은 자운(慈雲)참법을 배우거나 혹은 관음참법을 배우거나 어떤 참법을 배우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아직 청정해 지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경계상이 꿈속에 이러한 경계들을 만나도 모두 허황된 것입니다. 진실이 아닙니다. 절대로 마구니 경계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기뻐하지 마십시오. 너무 일찍 기뻐하면 쉽게 마구니 경계에 들게 됩니다. 왜 우리가 점찰참법을 의지해서 참회기도를 하는가 하면 여기에서는 지장보살님게서 우리를 가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마구니 경계에 들지 않습니다. 법에 의지해서 구하고 법에 의거해서 드러나면 절대로 청정해집니다. 허황되거나 오류가 생기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타 다른 참법을 수행하면 기타 다른 대승경전을 독송하면 혹은 꿈속에서 수승한 경계상을 보게 된다면 환희심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그 진실을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점찰참법을 의지하면 점찰참법대로 기도하면 윤상이 진실을 증명해 줍니다.
왜냐하면 마구니의 업을 자주 만나게 되기 때문에 불보살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고 이러한 현상들이 있으면 수행을 성취했다고 생각하고 기뻐하면 마구니가 들게 됩니다. 마구니가 지장보살을 화현하지는 않는가 하면 화현합니다. 자신이 지장보살 관법을 수행하지도 않았고 수행도 정성스럽게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지장보살이 현신했다면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천태산 국청사에 뒷산에 수행자가 있는데 혼자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몇 번 전화가 왔습니다. 이런 상 저런 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내가 점찰윤상으로 점찰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말씀하실 것입니다. 후에 그가 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것이 마구니이고 진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병이 나서 절을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어왔습니다. 내가 평소처럼 정상적으로 절을 하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절하는 의례대로 절을 하라 했습니다. 그렇게 절을 하다 보면 마구니도 사라질 것이라 했습니다. 마구니에 의해 놀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여러분이 점찰참법을 기도를 할 때에 기도를 하자마자 많은 경계상이 나타납니다. 경계상이 나타나면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지장보살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법과 상응해야 합니다.
자신의 윤상이 아직 삼업이 청정함을 얻지 못했는데 갑자기 좋은 경계상이 나타나서 여러분의 수행을 방해하면 혹은 향내를 맡는다거나 방안에서 방광을 하다거나 혹은 창문에서 광명이 비친다거나, 여전히 참회절만 하고 상관하지 마십시오. 다만 윤상에서 청정한 상이 나타나면 이것이 진짜입니다. 왜 우리가 점찰참법 기도를 하고 왜 보살의 증명을 구해야 하는가 하면 허망한 상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쉽게 마구니의 경계에 들어갑니다. 보살의 가르침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구니의 경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욕의 마가 있는데 재색명식수(財色名食睡)가 모두 마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구니와 정법을 반드시 분명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수행하는 몸을 망가뜨립니다.
『 만약 어떤 사람이 출세간의 선근의 기초가 있어서 마음을 섭수함이 맹렬하게 예리한 사람은 내가 이때에 마땅히 제도할 몸을 나투어 현신하리니 대자비의 광명을 놓아 그를 편안하게 하고 모든 의심과 공포를 여의게 하리라. 혹은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어서 혹은 다시 자신이 경험한 선과 악과 과거에 숙명을 기억하게 하리라. 혹은 그가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그를 위해 여러 가지 심오하고 중요한 법을 설하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Jof_ZSaclLs&list=PL5MPltq86t10Hv7-_IggRNjTlFkp0uH8o&index=41
설오스님 한국어 통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