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사랑/이 영 기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우중충한 오후였다. 나는 속으로 아내를 원망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탓하기도 하면서 흘러 가는 냇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집사람은 조용하게 붕어빵을 씹고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이상한 침묵이 흘렀으며 서로 쳐다 보지도 않았다.
“바지 고치는데 한 시간 안으로 됩니다.” 점원 아가씨는 미소 띈 얼굴로 다 되면 연락하겠다며 전화번호를 확인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저곳을 기웃 거리다가 냇가에서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선물 받은 내 남방 샤스가 커서 백화점에 바꾸러 갔는데, 지금은 추석 대목이 지나 삼십 퍼센트 세일 기간이었다. 남성 상표 매장을 찾아 돈을 사 만원이나 얹어 주고 다른 더 좋다는 남방 샤스로 바꾸었다. 그런데 아내가 세일 기간이니 이럴 때 온 김에 가을 바지를 사라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입을 때 옷 타령만 한다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바지를 하나 골랐던 것이다.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협조적 이었으며 화기 애애 했다.
그런데 또 오늘처럼 세일 할 때 사야 한다며 겨울 잠바 수 십만 원 짜리를 부득부득 나에게 자꾸 입혀 보더니 점원 아가씨와 흥정을 끝내고 카드를 내 미는 것이 아닌가. 나는 겨울 잠바는 나중에 사자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둘은 말이 없는 것이다. 아마 지금 쯤은 우리 마누라도 내색은 않지만 후회할지도 모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붕어빵을 자꾸 나에게 권하는 걸 보니 그런 것이다. 어제 저녁에도 생활비가 빠득 하다고 바가지를 긁었는데 자기가 무슨 뽀죽 한 수가 있겠는가.
“당신 진짜 잠바 싫은 거야? 그러면 바지 찾으러 가서 무르면 돼”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나는 이미 백화점 계산대 컴퓨터가 발행한 영수증을 받았으니 무를 수 없는 줄 알고, 잠바를 사는 순간 강력히 못 사도록 말리지 못한 걸 내내 후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붕어빵을 하나 입에 물었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속 좁은 남편이구나 자책하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어디 이일 뿐이랴. 내가 알게 모르게 나의 무지로 혹은 체면 때문에 내 자신과 가족이 겪지 않아도 될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 피해를 얼마나 많이 입었을까? 함께 살면서 나같은 고지식 쟁이를 만난 아내는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괜히 속이 상해 가슴이 울컥했다.
대화가 회복되니 냇물 소리도 들렸으며, 활짝 핀 백일홍도 눈에 띄였고 언뜻 언뜻 파아란 하늘도 보이기 시작했다.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하늘이 웬 변덕이람. 빠알간 코스모스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끝>
삶/ 이 영 기
아침밥을 먹으면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 집 사람이 집을 비울 때는 항상 소고기 국을 끓여 놓고 떠난다. 오늘도 서울에서 하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떠나면서 저녁 늦게 오니까 고기 국을 끓여 놓고는 떠나기 전에 함께 아침을 먹자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좀 이르기는 하지만 내 불편을 덜고 집 사람 말을 들어주려는 요량으로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우리 집 사람이 국 족대에 건더기를 건져서는 한 족대 더 내 국 그릇에 줄려고 하는 것이었다.그래서 나는 “아이, 됐어” 하니까 집사람은 “싫으면 말고”하면서 자기 국 그릇에 넣는 것이었다.
어제 우리 어머니는 달랐다. 보통 일주일에 한번 노모가 계시는 고향 집에 들러 인사 드리는 셈이다. 남부 시장에서 우리 집 사람이 사 주는 대로 물 명태 한 마리,파 한단, 무 한 개 사서 어머니한테 갔었다. 나는 집 청소도 하고 마당 채소 밭 공터도 일구고 하니 어머니께서 점심 식사를 하라고 하신다. 물 명태 국을 끓여 놓으셨다. 나는 홍시도 몇 개 따 먹었기 때문에 별로 입맛이 없어 점심을 적게 먹으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다 먹어가는 내 국 그릇에 또 물 명태 한 토막을 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아이 참, 엄마는.안먹는다니까” 하면서 화를 벌컥 냈던 것이다. 즉시 나는 그 명태 토막을 어머니 국 그릇에 던져 넣었다. 아뿔사! 왜 이렇게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까. 멋있게 미소를 띄면서 거절해도 되는데 말이다.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아들의 이런 못된 성질에 이미 이골이 나셨는지 “오 그래,알았다.알았다”하시며 오히려 미안해 하시는 것이었다.
지난날 수안보 온천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수안보 온천은 서울말과 경상도 말이 반반이었다.그날 나는 목욕탕에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다 닦고 탈의실 옷장으로 옷을 입으려 가는 중이었다. 내 앞에는 뚱뚱한 편인 사십 대 남자와 살이 디룩 디룩 찐 열 살 정도 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걸어 가고 있었다. 뒤에서 봐도 부자 간이라는 걸 알 정도로 닮아 있었다. 몇 발짝 가지 않아 그 남자가 그 아이의 발을 밟았다. 그러자 그 아이가 “이 새끼가”하면서 아버지라고 생각되는 그 남자를 향해 주먹을 쳐 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뒤따르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아버지가 그 아이의 따귀를 한대 갈기던지 큰 소리로 따끔하게 야단치리라 예상했었다. 왜냐하면 그걸 지켜 본 나도 그 순간 불같은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남자의 후속 행동은 더 나를 경악하게 했다. 그 남자는 그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오, 미안해, 미안해”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뒤에서 그 남자를 한참 째려본 후 내 옷장의 옷을 입었다.내 허파가 아파왔다. 저건 아이의 잘못 이라기 보다 어른의 잘못이다. 아마 애가 하나 뿐이라 애지 중지 키우다 보니 저렇게 되었으리라. 나중에 저 아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 부모님을 잘 모시기보다 오히려 부모님께 욕을 하면서 용돈이 적다고 패약 질을 부리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저렇게 길들여 지고 있으니 말이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나는 그때 그 아버지를 비웃었고 또 그 소년의 장래를 심히 걱정했으며 우리나라 장래까지 염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이 살이나 먹은 내가 그때 그 뚱보 소년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 이라더니 어른인 내가 한 건 실수고 그 어린 소년이 하면 잘못인가? 또 내가 먹을 수 있을 때 내 의사를 확인하고 주지 않는 마누라는 민주적인 사랑이고, 내가 배부를 때도 무조건 주시는 어머니는 독재적인 사랑이란 말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