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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도장맹의 맹주 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마침 흑룡강파에서도 뒤이어 도착했다. 백살, 백미의 두 아가씨는 남의소녀를 가운데 세우고 셋이서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쿵! 쿵! 쿵! 앞장선 백발노인은 쇠지팡이로 쉴 새 없이 땅을 찍고 있었다. 학철두는 오만하고도 늠름한 모습으로 부채를 휘저으며 천막 안으로 똑바로 들어왔다. 그는 마치 옆의 사람이 눈에 띄지도 않는 듯 일거일동이 거만스럽기 짝이 없었다. 지신도 소대천은 웃음 띤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천하 무림의 영웅들이 모두 당도했으며, 이 빛나는 자리에 노부도 함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오.” 남의소녀가 싸늘하게 말을 받았다. “당신은 스스로 자기의 체면을 세우려 하지 마세요!” 지신도 소대천은 시원스럽게 껄껄 웃었다. “낭자는 총명한 인물로서 과연 고견을 갖고 계시는구려. 실로 나는 감탄하는 바이오. 오늘의 성회는 낭자도 물론 짐작하는 바 있을 줄 아오. 만약 낭자가 나와 합세를 하겠다면 그날 밤의 방법은 여전히 효력이 있는 것이오.” 남의소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어디 생각해 봅시다.흠! 보아하니 합세를 할 만하군.” 그녀의 말은 실로 군웅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지령보와 흑룡강이 합세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지 않는 일이었다. 군웅들은 모두 의아한 빛을 띠고 그들 양 파의 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풍검 선우철도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만약 지령보와 흑룡강이 합세하게 된다면 도장맹과 사대도는 분명 고립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대세를 돌이킬 방법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생각해 보았으나 갑자기 좋은 방책이 떠오르지 많았다. 장모도주 사살수가 흐흐거리고 웃었다. “지령보는 한 지방에서 패권을 잡고 있으므로 무림의 일익임에 틀림없는데, 남에게 굴복을 하고 안전을 구하다니 참으로 뜻밖이구려. 핫하하… 본 도주는 심히 동정을 표하는 바이오.” 남의소녀는 싸늘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원래 소인의 견해는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였거늘 당신에게 무슨 고명한 견식이 있을 수 있겠소?” 장모도주 사살수는 남의소녀가 불손한 태도로 나오는 것에 벌컥 화를 내고 호통을 쳤다. “이 계집애야! 누구 보고 함부로 소인이라고 하느냐?” 그의 말에는 분노가 충만해 있었다. 선우철은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비웃는 어조로 참견을 했다. “그것은 물론 당신을 가리켜 말한 것이오!” 남의소녀는 그를 흘낏 노려보며 냉소했다. “선우철! 당신은 이간질로써 천하에 혼란을 빚어낼 작정이군요? 아아! 그러나 아깝게도 당신의 부친이 이 자리에 없군요. 그가 이곳에 있었다면 필시 오늘의 정세를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 선우철은 냉랭히 받았다. “설사 노 장주가 계시지 않더라도 나는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소!” 지신도 소대천이 쏘아붙였다. “큰 소리 치지 마시오! 오늘 당신들 쪽에는 쓸 만한 인물이 없소이다.” 비류신도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소대천, 말조심 하시오!” 소대천은 빙그레 웃으며 응수했다. “아! 비소협도 그곳에 계셨구려? 나는 그것을 생각지 못했소.그렇다면 내가 실례했구려.” 선우철은 비류신이 그 말에 분노를 품을까봐 염려되었기 때문에 급히 반박했다. “간사한 행동은 하지 마시오! 비형은 아예 당신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오.” 소대천은 안색이 싹 변했다. 그리고 노기가 잔뜩 서린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도장맹은 정말로 지령보와 등지겠다는 결심인 모양이군.” 선우철은 미친 듯이 한바탕 웃어댔다. “옳은 말이오. 도장맹과 지령보는 수화지세(水火之勢)로 변하여 도저히 융합할 수 없소! 오직 생사의 판가름만 있을 따름이오. 핫하, 그날은 오늘이 아니면 바로 내일이오. 당신은 접견할 준비만 하면 되는 것이오.” 쌍방은 서로 날카로운 말투로 언쟁을 거듭하여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사대도와 흑룡강파는 할 일이 없는 듯 그들이 싸우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이때--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장중에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자는 바로 정체를 추측할 수 없는 아까의 그 선비였다. 그는 어느새 자리에서 달려 나와 매우 늠름한 모습으로 군웅들을 훑어보고 서 있었다. 그는 오만한 자세로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물었다. “누가 이곳의 주인이오?” 주위에 서 있던 군웅들은 모두 어리벙벙하고 말았다. 네 개의 천막 속에 앉아 있던 수뇌 급 인물들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누가 이번 성회의 주최자인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새삼스럽게 그것을 깨닫고 서로 누가 성회를 마련한 사람인지 보려고 눈길을 돌려봤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실로 천하의 수수께끼였다. 백 년에 한 번도 구경하기 힘든 이런 무림의 성회에 주최하는 인물이 없다니 어찌 말이나 되겠는가? 그 선비는 지신도 소대천을 손가락질했으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소대천은 그가 아무 말 없이 떡 버티고 서서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자 몹시 불쾌한 듯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이오?” 그 선비는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이 주인이오?” 지신도 소대천은 같잖다는 듯 싸늘하게 내쏘았다. “터무니없는 소리 마시오! 내가 만일 천하의 영웅들을 초청한다면 절대로 이곳으로 정할 리 없소.” 그 선비는 다시 비웃었다. “당신의 변명은 그럴 듯하오.그러나 아깝게도 아직 기교가 부족하구려. 내 당신에게 한마디 묻겠는데, 이곳은 당신의 지령보와 얼마나 떨어져 있소?” 지신도 소대천은 갑자기 그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마 반리도 못될 것이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는 순간 그는 갑자기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와 같이 명성이 자자한 인물에게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인물이 어찌 당돌하게 질문을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사나운 눈초리로 그 선비를 노려보며 반문했다. “당신은 뭣 때문에 나에게 질문하는 거요?” 선비는 여전히 추궁하는 어조로 말했다. “지령보는 바로 코앞에 있으면서도 그래 이 금령대 주위의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소대천, 당신이 만약 사전에 이 일을 꾸민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당신 땅에서 건물을 세우도록 방치할 리 없었을 것이오.” 소대천은 얼굴에 살기를 띠었다. “당신은 나에게 어떤 볼 일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나를 찾아오시오. 나는 비록 주인은 아니지만 오늘은 대담하게 책임을 질 것이오.그러므로 임시 주인이라는 영광을 누리며 당신을 접대하겠소.” 선우철은 옆에서 이 말을 듣고 냉랭히 웃었다. “어째서 진작 시인하지 않았소?” 주위 군웅들 사이에서 연달아 비웃음과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명성을 지니고 있는 당당한 인물이 감히 자신의 행위를 중인들에게 시인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림에서 제일 수치스러운 일인 것이다. 지신도 소대천은 군웅들 앞에서 선우철에게 창피를 당하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침중한 표정으로 서서히 천막을 나섰다. 그리고 똑바로 선우철을 노려보며 사납게 호통을 쳤다. “선우철! 당신은 아마 살기가 싫어진 모양이군!” 이때 남의소녀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 “사소한 일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망치게 되는 것이오.” 지신도 소대천은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성을 되찾은 그의 얼굴은 완전히 노기가 사라지고 다시 득의만만한 안색이었다. 주위의 군웅들은 그의 돌변한 표정을 보자 어리둥절 의아하게 생각했다. 선우철은 이때 별안간 몸을 움찔 하더니 즉시 안색이 참혹하게 변했다. 마치 극심한 고통을 참고 있는 듯하였으며 이마에서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본 비류신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물었다. “선우형! 왜 그러시오?” 선우철은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대답했다. “아무 것도 아니요. 다만 갑자기 몸이 불편했을 뿐이오.” 이때 비류신은 백부가 죽기 전에 한 말이 갑자기 머리를 스쳤다. ‘소대천이 만일 어느 사람을 꼭 죽이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 그의 독수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비류신은 이 말이 뇌리에 떠오르자 암중으로 생각했다. ‘그럼 선우철이 이미 저 늙은 여우의 독수에 당한 것이란 말인가?’ 그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즉시 소대천을 향하여 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지신도 소대천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은 그에게 물어 보시오.” 이때 다시 선비가 물었다. 매우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당신의 수법은 비록 고강하나 나의 두 눈은 속이지 못하오.” 남의소녀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선비에게 말했다. “변장술은 비록 교묘하지만 그러나 아마 내 눈은 속이지 못할 것이오! 당신의 목적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단 말이오.” 그녀의 말을 듣자 정체불명의 선비는 깜짝 놀란 빛을 띠었다. 과연 남의소녀는 세상에서 보기드믄 기재였다. 그는 비로소 세상에 떠도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선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낭자, 어디 말씀해 보시오.” 남의소녀는 서슴지 않고 말했다. “아마 정(情)이라는 글자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선비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이고 나직이 말했다. “낭자는 과연 혜안을 지니고 있구려. 나는… …” 남의소녀가 그의 말을 받았다. “사랑으로 인하여 한이 생기는 것은 본시 인간의 상정이오. 비단 당신만 그런 고비를 뚫고 나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나 역시도 그런 고비를 뚫기 어려운 것이오.” 남의소녀는 말을 끊고 선비를 바라보더니 다시 계속했다. “자아, 당신과 나는 처음 만났으나 어쩐지 옛 친구와 같은 정이 우러나니 존명이나 말씀해 주시오.” 선비는 즉시 대답했다. “나는 부심이라 하오.” “좋은 이름이군요. 박애정(博愛情)이라는 이름은 부심인(負心人)과 글씨는 다르지만 부르기는 같구려.” 그 선비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남의소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곁에 앉았다. 백살과 백미 두 여인은 그것을 보자 눈썹을 찌푸렸다. 학철두는 그들이 나란히 앉은 것을 보자 몹시 질투를 느끼고 원한이 서린 눈으로 선비를 쏘아보았다. 남의소녀는 고의로 섬섬옥수를 선비의 무릎에 살짝 올려놓았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비류신은 몸을 솟구쳐 나가며 고함을 쳤다. “소대천! 당신에게 만약 아무런 처리 방책이 없다면 나는 우선 당신부터 제거해 버리겠소!” 말과 함께 즉시 맹렬하게 주먹을 뻗쳤다. 얼핏 보기에는 몹시 가벼운 공세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비할 데 없이 날카롭고 비범한 초식이었다. 이때 도장맹의 고수들도 비류신의 뒤를 따라 일제히 천막에서 뛰쳐나갔다. 지신도 소대천은 매우 간사한 인물이었다. 그는 지금 크게 충돌하여 자기편 세력을 감소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공세를 피하며 남의소녀에게 소리쳤다. “낭자! 낭자는 나와 이해를 같이 누리기로 했거늘 어째서 나를 돕지 않는 것이오?” 학철두는 마음속에 가득 쌓인 질투와 울분을 폭발시킬 곳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비류신이 뛰쳐나온 것을 보자 그는 득의한 듯 일언반구도 없이 장중으로 덮쳐갔다. 남의소녀가 앙칼진 음성으로 소리쳤다. “썩 돌아오시오!” 학철두는 흠칫하더니 공중에서 재빨리 몸을 돌려 다시 돌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울분과 불만이 가득 서려 있었다. 남의소녀는 소대천을 향해 방긋 웃었다. “그것은 우리가 완전히 합의한 것이 아니니, 당신 혼자서 해결하도록 하시오!” 사대도의 영주들은 학철두가 뛰쳐나갈 때 모두 마땅치 않게 생각했었다. 그들은 도장맹과 우정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지령보와 흑룡강이 연합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 만약 그들이 연합한다면 그 세력은 사대도에도 막대한 위협을 끼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만일 도장맹이 격파당한다면 사대도는 아예 상대방과 겨룰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대도는 오직 도장맹과 합세함으로써 어쩌면 상대방 두 세력과 맞설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어간도주인 일월도사 장죽림이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들 흑룡강 파가 저들의 싸움에 끼게 된다면 사대도는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오.” 학철두가 냉랭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당신에게 무슨 능력이 있소?” 일월도사 장죽림은 즉시 대꾸했다. “능력이 있고 없고는 잠시 후면 알게 될 것일세.” 이때-- 펑하는 소리가 장중에 울려 퍼졌다. 비류신과 소대천의 맹렬한 장력이 맞닥뜨려 울리는 소리였다. 비류신은 상대방과 일장을 맞닥뜨린 후, 그 자리에 떡 버티고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별안간 옷소매를 떨쳤다. 그러자 한 줄기 막강한 경력이 하늘로 뻗쳐 올라갔다. 이때 지령보의 살음귀 쌍수벽이 느닷없이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그는 소대천과 비류신이 팽팽하게 맞섰을 때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비류신에게 암습을 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류신의 신속한 방어로 막강한 경력에 맞아 땅에 떨어졌다. 그는 암습에 실패하자 수치가 분노로 변하여 미친 듯이 소리치며 또 다시 비류신에게 달려들었다. 지신도 소대천은 살음귀 쌍수벽이 자기 대신 나선 것을 보자 급히 자기 천막으로 돌아왔다. 그는 괴이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분명 그는 실수하여 비류신에게 격파당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때였다. 날카로운 부르짖음이 멀리서 들려 왔다. 그 소리는 순식간에 다가와 장중 가까운 곳에 당도했다. 선우철은 그 부르짖음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장맹의 고수들도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반가워했다. 청풍검 선우철은 마치 고통이 가신 듯 즉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비류신을 향해 소리쳤다. “비형! 손을 멈추시오. 가부께서 당도하셨소.” 비류신은 맹렬한 기세로 살수를 뻗치려다가 그 말을 들었다. 그는 급히 기세를 줄이고 머뭇거렸다. 살음귀 쌍수벽도 나타난 자가 선우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비류신의 날카로운 공세가 주춤하는 것을 보자 그 틈을 타서 재빨리 천막으로 돌아갔다. 장중에 사람의 그림자가 번뜩이더니 즉시 깡마른 노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머리는 비록 백발이었으나 두 눈에서 중인을 위압하는 형형한 광채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자는 바로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도장맹의 맹주 선우휘였다. 그는 장중을 한 차례 쓰윽 훑어보았다. 그리고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나보다 일찍들 오셨구려.” 그의 음성은 너무나 차가워 듣는 이로 하여금 음산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지신도 소대천은 선우휘를 보는 순간 안색이 약간 하얘졌다. 그러나 곧 태연히 그에게 웃음을 보냈다. 선우철은 즉시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저는… …” 도장맹주 선우휘는 사랑하는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자 대뜸 고개를 돌리고 고함을 쳤다. “누가 독수를 펼쳤소?” 비류신은 이때 천천히 도장맹의 천막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처 천막에 당도하기 전에 등 뒤에서 경풍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찰나, 왼쪽 어깨를 깡마른 손아귀에 잡히고 말았다. “자네의 짓이지?” 비류신은 선우휘의 호통에 흠칫 놀랐다. 그는 재빨리 어깨를 틀어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급히 말했다. “노 선배님, 오해하셨습니다.” 선우휘는 깜짝 놀랐다. 상대가 자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놀라움에 싸인 채 즉시 일 장을 뻗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비류신은 일장이나 멀리 날아갔다. 그 일장을 맞은 비류신은 가슴이 울렁거리고 귀가 아프게 울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품고 있던 존경심이 싹 가셨다. “흥! 흑백도 가리지 않고 손을 뻗치다니… 어디 당신도 내 일격을 받아보시오!” 쌍장을 들어 상하교정(上下交征)의 초식을 펼쳤다. 그러자 수십 줄기 장영이 선우휘의 치명적인 일곱 개 대혈을 노리고 번개같이 뻗쳐갔다. 그는 분노가 극점에 달해 있었으므로 일시적으로 상대방이 무섭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선우휘는 냉랭히 웃으면서 마치 검과 같은 날카로운 손가락을 쫙 펴고 비류신의 명문(名門), 기해(氣海), 곡지(曲池) 등 삼대 요혈을 찔렀다. 뜻밖의 사태에 놀란 선우철이 급히 소리쳤다. “아버님! 그에게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미 비류신의 몸에는 두 군데나 상처가 생겼다. 만약 선우철이 조금만 늦게 소리쳤더라면 그의 상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류신은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혁혁한 명성을 지니고 있는 선우휘가 실은 사리를 분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구려. 내 미처 생각지 못했소.” 선우휘는 냉소를 날리며 선우철의 천막으로 걸어갔다. 이때 남의소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사형! 어서 가서 저 늙은이를 쇠지팡이로 세 대 갈기세요. 정확하게 때려야 하며 사정을 봐줘선 안돼요.” 그녀의 말은 군웅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그들은 모두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우휘는 대뜸 걸음을 멈추고 장내를 둘러보고 외쳤다. “누가 그런 미친 소릴 하는가?”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백발노인은 쇠지팡이로 땅을 힘껏 짚었다. 그러자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며 쿵 하는 육중한 소리가 났다. 분명 그의 팔심은 놀랄 만큼 강대했다. 그 노인은 남의소녀의 말대로 선우휘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굵직한 쇠지팡이를 높이 치켜들고 천천히 말했다. “선우휘! 당신이 중원의 제일 고수라고 하니 어디 당신의 공력을 시험해 봅시다.” 선우휘는 냉소를 치며 말했다. “나는 당신의 삼장을 기꺼이 맞아주겠소! 설마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할 수야 있겠소?” 그의 이처럼 거만한 말투에 장중의 군웅들은 모두 압도됐다. 백발노인의 공력은 그들이 이미 목격한 바 있으므로 그의 무공이 일반 고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장맹의 맹주 선우휘는 비록 무림의 절정 고수임에 틀림없었으나 맨주먹으로 쇠지팡이에 대항한다는 것은 몹시 어리석은 행동 같았다. 지신도 소대천은 장내의 상황을 보자 대뜸 빈정거렸다. “선우휘! 건방진 수작은 삼가시오. 흑룡강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단 말이외다!” 이때 선우철이 비틀거리며 천막에서 나왔다. 그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버님, 괜찮습니까?” 안심할 수 없다는 어투였다. 비류신은 그가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것을 보자 급히 다가가서 그를 부축해 주었다. 선우철은 몹시 감격한 듯 비류신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 4권으로 이어집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