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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번째 금강경 32장
須菩提야 若有人이
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로 持用布施라도
若有善男子善女人이 發菩提心者- 持於此經호대
乃至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며 爲人演說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云何爲人演說고
不取於相하야 如如不動이니 何以故오 應無所住而生其心
一切有爲法이 如夢幻泡影하며 平常心-요란함이 없건마는
如露亦如電하니 應作如是觀이니라
佛이 說是經已하시니
長老須菩提와 及諸比丘比丘尼와 優婆塞優婆夷와
一切世間天人阿修羅-聞佛所說하고
皆大歡喜하야 信受奉行하니라
* 낱자 공부
滿찰 만, 夢꿈 몽, 幻허깨비 환, 泡거품 포, 影그림자 영, 露이슬 로, 電번개 전
演멀리흐를 연, 優넉넉할 우, 婆할미 파, 塞막힐 색, 夷오랑캐 이, 평온할 이
* 단어공부
·수사(數詞)
한문 : 십·백·천·만·억·조·경(京)·해(垓)·자(秭)·양(穰)
·구(溝)·간(澗)·정(正)·재(載)·극(極)’ 불전(佛典)에서는 이 위에 불교: 항하사(恒何沙)·아승기(阿曾祗)·나유타·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대수(無量大數)’의 단위를 쓰고 있다.
분(分), 리(釐), 모(毛), 사(絲), 홀(忽), 미(微), 섬(纖), 사(沙), 진(塵), 애(埃),
묘(渺), 막(漠), 모호(模糊), 준순(逡巡), 수유(須臾), 순식(瞬息), 탄지(彈指),
찰나(刹那), 육덕(六德), 허공(虛空), 청정(淸淨)
·사부대중[四部大衆]
출가한 남녀 수행승인 비구·비구니와 재가(在家)의 남녀 신도인
우바새(優婆塞:거사)·우바이(優婆夷:보살)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비구는 ‘걸식하는 자’라는 뜻으로, 불교 초기에는 모든 종교의 탁발하는
수행자를 비구라고 불렀으나 후대에 불교의 계율체계가 확립되면서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승려를 비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비구니는 출가하여 계(戒)를 받아 교단의 일원이 된 여자 승려를 일컫는다.
(성인이 안 된 남자 출가승인 사미(沙彌)와 여자 출가승 사미니(沙彌尼))
우바새 (優婆塞) → 부처 + 믿다 + 남자 = 선남자
·相 (서로 상, 볼 상, 도울 상, 모습 상, 모양 상, 재상 상)
① 모습, 형태, 모양, 특징, 특성, 성질.
② 생각하는 것, 생각ㆍ관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법상, 비법상
·육도
영혼을 머물수 있는 곳으로
삼악도(三惡道)는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이며
삼선도(三善道)는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여기에 삼계인 욕계, 색계, 무색계가 더하여 삼계육도라고 부른다.
·信受奉行 ~
‘信受奉行하라!’믿는 것을 잘 받아들이고 받들어 섬기듯 행하라는 말.
'신수봉행'(信受奉行), 즉 믿고 받아서 받들어 행한다는 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설법을 잘 듣기는 하지만,
이를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꾸준히 성실하게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적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
* 해설
우리에게는 정신 육신 물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중에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정신이고
다음이 육신이고 그리고 물질입니다.
그리하여 물질적인 것이 아무리 많다 해도
정신적인 것만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육신도 소중합니다. 육신이 병들면 정신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육신 관리도 잘 하여야 합니다.
물론 물질도 소중합니다. 물질이 없으면 육신도 편리하지 못합니다.
가장 근본이 되는 정신(마음)을 어떻게 할 것이냐
가치관의 정립을 하여야 합니다.
원기 109년 9월 3일
제목 : 엄마의 투정
평소 두통으로 힘들어하시는 엄마가 지난달부터 더 심해진 두통을 호소하셨다. 이곳저곳 병원에 다녀도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약을 먹어도 더 아프다고 하신다. 당신도 답답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들은 더 답답하다.
더불어 혼자 있지를 못하고 누군가가 당신 옆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엄마의 바람이 자식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경계로 다가온다. 아프고 답답하니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고 나의 힘듦을 알아달라는 간절함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수용이 안 된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는 것에 매몰되어 투정을 부리는 엄마를 보면서 일원상 진리를 공부하는 불제자로서 좀 더 의연하게 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에서 원망심도 나온다.
그런 엄마와 3일째 함께 지내고 있다. 엄마 안에는 관심을 끌려는 어린아이의 행동심리와 예전에 당당했던 엄마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작은 서운함에도 역정을 내고 반면에 나의 강한 반박에 금방 꼬리를 내리는 상황들이 나타난다. 그렇게 엄마와 투덕거리며 지내다 보니 이제야 그동안 답답한 마음이 정리된다.
그동안 나에게 너무 의지하려는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엄마가 너무 나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니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자꾸만 가르치려고 하였다. 결국은 그동안 모든 경계를 당하여 원래 마음으로 취사하지 못함은 바로 내 안에 “내”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어서였음이 알아진다.
엄마의 마음을 공감해주지 못한 자식이 많이 서운하셨겠다. 지금부터라도 엄마를 그냥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더욱 마음 챙기며 남은 여생 서운하지 않게 해드려야겠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나는 내 마음의 주인공으로 살지 못했다. 경계는 분명히 알아차리겠는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가 안 된다. 일어난 내 마음도 보고 상대도 헤아려보지만, 인정이 안 된다. 그러니 불쑥불쑥 ‘내’가 나오고 ‘상대’에 대한 원망심이 나온다. 답답함으로 보낸 한 달이었다.
교무의 의견
어머니가 편찮으시네요. 아프면 모든 게 귀찮아지고 불평이 많아지게 되지요. 이해심도 덜하고 아픔을 호소하기도 하지요. 젊으셨을 때는 모두를 감싸주시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던 어머니신데 연세가 드시고 편찮으시니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혼자서 하실 수 있는 일도 못하시게 되니 도와 드릴 수 밖에 없지요.
혹 어머니께서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너희들은 그렇게 하느냐고 원망을 하실 때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특히 내 몸이 괴로울 때면 달아나고 싶은 생각도 들지요.
교당에 다니면서 생사라 하는 것은 전셋집 이사하는 것과 같다고 배웠으니 어머니도 부처님처럼 의연한 모습으로 생사에 초연하고 아파도 편안하시면 좋으련만 아프면 앓게 되고 목소리에도 아픔이 묻어나면 싫은 생각이 들지요.
내 어머니는 언제나 젊으셨으면 좋겠고 안 아프시면 좋겠고 항상 우리를 보살펴주는 분으로 남아 계시면 좋겠지요. 그러나 성주괴공 생로병사는 법신불(대령)의 작용으로 누구나 거역할 수 없지요. 누구나 나이가 들면 육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게 되지요
사람은 영과 육신이 결합하여 살아갑니다. 몸이 노쇠하면 영도 여려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자동차와 사람의 관계처럼 차량이 노후되면 운전수가 아무리 조심해도 소리가 나고 자주 고장이 나고 신속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육신이 노쇠하면 영도 자신이 없어지고 포기하는 일도 많아지고 옛날과 같지 못함을 한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나와 연관짓지 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객관적으로 보면 노인이 되면 아픈 것은 당연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며 요구사항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알면 그것에 미움이나 원망은 사라지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런 처지에 이른 어머니까 안타깝게 생각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어드리고 공감하는 것은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시비를 논하기 보다는 경청과 공감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게 되고 나이가 들면 육신이 불편해지고 그러다가 헌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구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치를 탓할 수 없고 이치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합니다.
원기 109년 9월 3일
제목 : 아들의 모습
내가 왜 이렇게 아플까? 생각을 해 보았다. 난 마음공부 하면서 마음을 많이 잘 보고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부했다. 그런데 내 몸을 보니 아니었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힘들어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했지만, 기도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고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나도 많이 불안해하고 마음을 끓이고 있었나 보다.
또, 아들이 들어와 살면서 아들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음속에 아들의 말과 행동에 저건 아닌데, 왜 저렇게 말하지~~, 언제 철들지~~ 그리고 나처럼 살고 있지 않은 아들이 많이 불편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아 그렇구나~~, 내가 내 마음 안에 꼭꼭 숨겨둔 불안과 걱정과 그리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내 몸이 늘 긴장하고 쌓아둔 크기만큼의 걱정 때문에 여기저기 아픈 게로구나. 좌선의 요지를 읽으면서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놓지 못하고 꼭 붙들어 매면서 전전긍긍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다 놓지는 못하겠지! 숨겨두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숨기지 말고, 보고 또 봐서 나를 찾아내서 자유롭게 살아가 보려 한다. 주말에 아들이 술 마시고 토한다. 그 모습에 화가 난다. 이모부와 술 마실 때 천천히 조금씩 마시라고 해도 원샷을 내리 하더니, 그 마음 안에는 술을 적당하게 먹지 않은 아들이 미운 것이고, 술을 원샷하는 걸 보면서 허세가 가득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보니, 내 생각이 이렇게 부정적이니 좋은 말보다는 질책이 먼저 나갔겠구나!!
"아들, 오늘 술 마시는 걸 보니, 너무 급하게 먹더라, 그리고 한잔을 세 번 정도 나누어 마시는 습관을 들여보는 게 어떠니~~, 네가 힘들어하면 엄마는 건강도 걱정되고 그 걱정이 화가 나기도 하단다.
"알겠어요~~"한다.
술병이 났는지 이젠 월요일 출근도 못 했다. 밤새 설사를 하느라 잠도 못 잤다. 아파서 출근도 못 한 아들을 바라보면서 또 화가 난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가 살아오는 삶의 방식과 맞지 않은 아들의 행동이 못마땅해하고 있다. 아휴~~, 또 나와 다른 모습을 불편해하고 있구나!!!, 그 속내는 그러면 안 돼가 있다. "이번 기회에 술 마시는 습관을 제대로 고쳐보라고 그러나 보다.
어서 병원 다녀와~~"
어제 죽을 도시락으로 싸 간다는 아들의 부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죽을 끓이면서 아들을 깨운다.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회사 못가겠다면서 대리님께 전화한다고 한다. 나는 어제 병가 낸 것도 아니고 월차 썼으니 오늘은 아침에 출근해서 얼굴 보고 힘들어서 조퇴한다고 하고 반차 쓰고 오라 했더니 그냥 전화한다고 한다. 그러더니 짜증 내면서 대리님이 회사에 일단 출근하라고 했단다. 그렇게 다녀온 아들은 당장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한다.
내 마음은 복작거린다. 아들의 섣부른 행동과 거친 말투가 걸리니 복작거릴 수밖에,,, 그 마음을 보고 나서, "아들~~, 네가 힘들어하는 건 알곘어, 네 몸이 힘든데 그걸 안 믿어주고 대리님이 그렇게 대하니 화가 나지 나 같아도 아픈데 거짓말인 것처럼 믿어주지 않고 면박을 주면 화가 나고 짜증 날 거야~~ 네가 회사를 옮기고 싶으면 잘 알아봐서 옮기렴,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네가 사회인으로서 조금씩 겪어가야 할 일이고 배워가야 할 일이거든 이렇게 아플 때는 연차가 아니라 병가를 내서 회사에 병원 친료내역서를 내면 서로 의심되는 바가 없을 텐데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렴, 이렇게 하나씩 배워나가는 거란다.
내 말에도 아들은 진정하지 못하고 대리 욕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화 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 한순간에 모든 걸 알아갈 수 없겠지~~, 이렇게 사회를 배워 나가는 거겠지 아들의 행동도 그냥 인정이 되어진다.
내가 숨겨둔 걸 찾아내서 보고 나니, 아들의 행동에 화를 먼저 내고, 가르치려는 마음보다는 일어나는 내 마음을 감추지 않고 보았다. 그 마음도 나임을 토닥여주고 알아주니, 그냥 그 순간의 일만 보고 이야기해진다. 내가 그동안 붙잡아두었던 나의 연민과 불안과 걱정이 왜 이리 많았던지, 이제부터 정말 나를 알아가는 것 같다. 나의 밑바닥까지 다 보아야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겠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교무의 의견
아들이 집에 들어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네요. 떨어져 있을 땐 몰랐었는데 가까이 있으니 모든 면이 보이게 되고 나의 생각과 다를 때는 아쉽게 느껴지지요.
나의 경험으로 비춰보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행동이 바르고 성실히 일하는 사람 그리고 인간관계가 좋고 인내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우리 아들이 모범적이고 성공하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속상하지요.
아들이 나의 이상적인 바람과는 달리 조금 아프면 회사에 출근을 안 하려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하고 세상을 알지 못하는 아들이 못마땅하지요.
평상시 생활도 부지런하여 청소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뭔가 공부를 하는 아들이었으면 좋으련만 술을 마셔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마시고 늦게 일어나고 출근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의 아들과 비교가 되고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지요. 속상한 마음을 아들에게 그대로 전하면 아들이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화를 낸다든지 건성으로 들으면 또 속상하지요.
우리는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 말로는 자성을 떠나지 않고 그 마음을 쓰는 것이며 분별성과 주착심 없이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화가 나는 것은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며 나에게 이익이 안 되면 섭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이되면 나와 관련이 없는 것과 같아서 나의 감정이 움직이기 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젊은 사람은 술을 마실 수도 있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낼 수도 있어. 화가 나면 술에 취하고 싶을 수도 있어. 술에 취하면 아침에 못 일어날 수도 있어.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있어.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되면 화가 나기보다는 상황을 알게 되어 공감하게 되고 공감하면 우군이 되어 서로 의논이 가능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감정이 난 상태에서는 바른 길이 보이지 않으나 감정이 가라앉고 객관이 되면 이성이 살아나 좀 더 나은 길이 보일 것 같습니다.
목적 반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적지를 비춰 보라는 말입니다. 나의 지금 향하고 있는 길이 어디로 가느냐를 비춰보라는 말입니다. 그 목적지가 낙원이면 권장할 일이고 고해이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아들의 적군이 되지말고 우군이 되어 서로 의논하는 관계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논하는 관계는 내가 더 높다거나 내가 더 잘 안다거나 충고나 지시가 아니라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의견을 내놓는 것입니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9월 3일
제목 : 9월을 맞으며
노경만
9월이다♡ 가을인가? 달력 한 장 넘겼을 뿐인데 가족들이 그토록 껴안고 살던 에어컨과 선풍기 모두 치우고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야 하는 선선한 가을이 왔나 보다. 자연의 힘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어쩜 하루 만에 이렇게 변한다고?
9월이 오면 얼굴의 웃음 뒤에 가슴속은 눈물이 고인다. 내색하지 않고 참으려 해도 아직은 아닌가 보다. 18년이면 제법 긴 세월인데? 그래도 5년 전엔 운전 중 어느 건물 간판 조명에 September란 글자가 켜지는 순간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와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싶은데도 9월을 맞으면 가슴이 먹먹해 지면서 고마웠던 그 시절 추억으로 조금 心身이 아프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약 먹으며 가족들 몰래 앓고는 있는데 더욱 참아야 하는 이유는 아들이 임플란트로 너무 아파서 진통제로 다스리며 괴로워하고 손주는 열이 39°로 고열에 시달리며 병원치료에 코로나 검사까지 받고 이 또한 나의 몫이기에 엄마는 안 아픈 척 강한 척 해야 한다.
그래도 병원치료 후 학교 수업 한 시간 남았다고 가야 한다는 모습에 이뻐서 함께 동동거리는 하나하나가 모두 이젠 슬픈 감상에 젖지 말고 강해지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월이 약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많고 많은 기쁨 슬픔을 머릿속에 담아두지 말고 비워낼 줄도 아는 내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