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장. 크라운과 크립탠드(왕관모양의 분자)
1987년의 노벨화학상은 두 사람의 미국인과 한 사람의 프랑스인이 그 영예를 나누어 가졌 다. 이 세 사람은 화학에 있어서 세 가지의 다른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 찰스 페더센이 매사 추세츠공과대학(M.I.T)으로부터 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1927년이고 도날드 J. 크램이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1947년, 그리고 장 마리 렌이 스트라스부르크대학에 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1963년의 일이었다. 페더센이 1960년대에 우연히 화합물의 주성분 을 발견하였으며, 나머지 두 사람이 그 뒤에 이 일을 생물유기화학적 응용으로 발전시켰던 것이었다. 페더센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연구가 뒤퐁 사에서의 자신의 정년퇴직이 다가올 무렵에 이루어졌던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수상을 통지받고 "과학자이 생애 최 고의 연구는 35세까지에 이루어진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이 연구는 뒤퐁 사에 있었던 나의 최후의 9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그의 나 이는 63세였으며, 그 2년 후에는 퇴임했다. 페더센의 발견은 그가 실제로 사용한 화학 약품 중의 하나에 우연히 불순물이 존재했던 때 문이었다. 페더센은 예상하지도 않았던 '하얀 섬유상의 결정성 부생성물'이 나타나자 이것을 분리하고 검사해 보았으며 그것이 매우 희귀한 성질을 가진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우연을 발견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는 이 물질이 염화나트륨이나 염화칼륨과 같은 무기염과 결합 될 수 있으며, 그리고 이것이 그때까지 녹지 않았던 유기 용액에 녹게 되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었다. 처음 이 부생성물을 우연히 발견한 페더센은 그 후에는 이를 계획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되 었으며, 일렬의 유사물질은 전부 합성했다. 이들 새로운 화합물은 마취제로 잘 알려져 있는 디에틸에테르와 관계있는 환상에테르였다. 다만 1분자에 1개의 산소원자를 가지는 대신에 그것은 큰 고리(환) 속에 탄소원자 2개 이상을 사이에 둔 산소원자가 여러 개 존재하고 있 다. 이들 환상에테르가 무기염과 합쳐지면 환상에테르는 소금의 금속이온 부분 둘레를 에워 싸게 되고, 사람의 머리에 얹힌 왕관(크라운)과 같은 모양의 복합체(complex)를 만든다. 그 래서 페터센은 이 새로운 환상에테르류를 '크라운에테르'라고 이름지었다. 그림 36-1은 페더센에 의해 발견된 최초의 크라운에테르가 금속이온M(나트륨이온이나 칼 륨이온과 같은 소금 중의 정전하를 가진 부분)을 왕관화하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 속에는 산소원자와 금속이온만이 원소기호로 표시되어 있으며, 선의 각은 수소원자 1개나 또는 2개를 가진 탄소원자를 나타낸다. 이 도표는 복합체 결정의 3차원 X선 사진을 근거로 한 것이며, 그림 36-1(a)는 위에서, 그림 36-1(b)는 복합체의 전방 약간 위에서부터의 투시 화법에 의한 것이다. 후자는 이 분자가 왕관을 닮았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복합체의 안정성은 환의 크기, 금속이온의 크기, 폴리에테르 중의 산소원자의 수 등에 의해 서 결정된다. 최초의 크라운에테르의 생성은 우연이었으나 페더센은 이 우연을 큰 발견으로 이끌어가는 '준비된 마음가짐'이 있었다. 뒤퐁 사에서의 연구생활 중 페더센은 어떤 종류의 유기분자가 금속과 결합되는(chelate) 능력에 관해서 장기간 연구해 왔으며, 가솔린이나 기타 석유제품 중에서 오염물질의 소량의 금속을 제거하는 데에 이 화합물을 이용해 왔다. 금속과 유기화 합물과의 화합물에 기인하는 산화방지제, 안정제, 억제제 등을 대상으로 하는 다수의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자기가 만든 새로운 크라운에테르의 금속복합제 형성능력에 그 즉시 관심을 가지고 유사한 크라운에테르류를 합성하여 최초의 것과 비교한 것은 그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페더센이 1967년에 처음 크라운에테르에 관한 보고를 발표하자, 전 세계에서 즉각 반응이 왔으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프랑스의 장 마리 렌은 페더센의 복합체를 3차원으로 발전 시켜 산소 이외의 원자, 예를 들면 질소 등을 고리 속에 넣었다. 렌의 분자는 그 모양이 3차 원이기 때문에 보다 튼튼하며 결합할 수 있는 기질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는 자기의 복합체 의 새로운 이름을 고안하여 3차원의 복합체를 크립테이트(cryptate), 구성성분을 크립탠드 (cryptand)라고 이름지었다. 이들 이름은 희랍어로 숨는다의 뜻을 가진 크립토스(cryptos)에 서 유래하였다. U.C.L.A.대학의 도날드 J. 크램은 페더센이 하는 일을 발전시켜, 그가 '호스 트-게스트화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분야를 확립시켰다. 호스트(host)란 작용을 하는 분자 를 말하고 게스트(guest)는 작용을 받는 물질을 말한다. 렌과 크렘이 연구하는 접근 방식은 달랐으나 그들 두 사람의 사고방식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들은 둘다 어떤 원하는 물질 을 수용하는 데 알맞는 크기나 형태의 빈 공간이 있으면서 충분히 튼튼한 유기분자를 합성 하려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이 계획한 것은(생물학적 효소의 거대분자에 비하면) 비 교적 간단한 촉매를 만들어 단백질분자를 성분아미노산으로 쪼개는 것 같은, 세포 중에서 효소가 하고 있는 기능을 흉내내게 하려는 것이었다. 호스트-게스트의 화학은 3차원 분자의 형태나 유연성 그리고 견고성에 의한 것이기 때문 에 크램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분자모형을 십분 활용했다. 이들 사진은 그림 36-1의 구조식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모형은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플라스틱의 구로 되어있으며 구의 상대적인 크기나 그 것들이 서로 조합될 때의 각도는 알려져있는 실제의 원자 크기나 결합 각도를 제법 정확하 게 나타낸다. 약 90개의 호스트-게스트 복합체를 합성한 크램과 그의 공동연구자들은 X선 회절에 의해 결정된 그것들의 구조가 대개의 경우 거의 모형으로 예상했던 대로라는 것을 발견했다. 유기화학에 있어서 분자인식이라는 분야는 현재 기초와 응용의 양면에서 발전해 나아가고 있다. 인간의 세포 중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학반응에 관하여 중요한 식견을 거기에서 얻을 수 있었으며 급속하게 발전한 생물의학 분야의 기초도 이에 의해서 구축되었다. 1987년 봄,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있었던 미국화학회 국내회의에서 분자인식을 테마로한 심포지엄이 개 최되어 몇몇 대학과 제약회사의 화학자들이 자기의 최신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나 이것들은 모두 크림이나 렌의 연구를 거쳐 페더센의 발견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1987년 11월, 페더센이 크렘과 렌하고 노벨상을 나누어 수상할 때 그는 이미 83세로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스톡홀름에서의 노벨상 수요식에 출석한 후 귀국한 그는 'Industial Chemist'지의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그 인터뷰에 인용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1900년경, 노르웨이의 한 기술자가 세계를 절반 돌 아서 한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금광에서 일을 한다. 이번엔 일본에서 경제적으로 실패한 일 본인 한 가족이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한국으로 건너 갔다. 일본인의 아들은 금광 근처에서 장사를 시작하었고, 딸은 젊은 노르웨이인과 만나서 결혼 을 한다. 세월이 흘러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 그는 화 학자가 되어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것을 소설과 같은 줄거리지요" 찰스 페더센은 소리 높혀 말했다. 자신의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 스톡홀름에서는 이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 역사적은 크라운에테르의 발견 에 이르는 자세한 방법론에 대하여 그는 "그 발견은 마침 좋은 때에 마침 놓은 일을 한 결 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어떻게 해서 내가 그것을 해냈는가는 지금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이라고 말했다. 장기간에 걸쳐서 페더센은 두 가지 진리의 산 증인이었다. 그 첫째는 박사학위가 없더라도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 둘째로는 최고의 연구를 하는 때는 젊은시절이 아니라는 것 이다. 크라운에테르의 연구를 시작했을 때 60대였던 것을 마음 속에 생각하면서 그는 말한 다. "늙은이라 하더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시켜야 합니다." 허먼 슈레이더가 뒤퐁 사의 동료로서 찰스 페더센을 만난 것은 페더센이 수상하기 48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그들은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다. 페더센의 크라운에테르 화합물 발견 20주년을 기념하여 그를 표 창하는 기념식이 일본에서 개최되었을 때 슈레이더는 병환 중인 수상자의 대리로서 그의 친구의 업적을 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강연을 했다. "크라운에테르의 발견에 관 하여 제대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찰리(페더센)는 배위화학의 정평이 있는 전문가 였습니다 ...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 발견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발견에 딱 마주쳤다기 보다는 오히려 구 화합물이 자신의 앞으로 걸어 오는 것을 잽싸게 붙들었던 것 입니다. 예민하고 융통성 있으며 또한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한 발견에 관해서 이 책에서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 온 또 하나의 예증인 것이 다. 우연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 우연이 마침 알맞은 인물을 만난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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