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다녀온 날
최명애
문우들이 영덕으로 야외수업을 떠났다. 00 님 차를 함께 타고 출발했다. 소풍 기분을 느끼며 즐겁게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바다가 보였다.
오랜만에 온 영덕은 주변이 한산하였다. 바다를 보며 일어나는 감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지그시 바다를 바라보며 갔다. 바닷가의 펜션들도 산뜻한 느낌이 없었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까. 가는 길에 언덕 위에 ‘귀신 나오는 집’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오래 전의 이야긴데 아직 그 집이 그대로 있다니 놀랍다. 요즘 시대에 귀신이 나온다는 것도 떠도는 소문이리라. 집주인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냥 놔두는 것은 지역 관광 상품에 포함하고자 하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강구에 도착했는데 조용하였다. 수산시장에 도착하니 예쁜 아가씨가 반갑게 웃으며 우리를 반긴다. 교수님 단골 가게란다. 인원수에 맞게 대게와 홍게를 섞어 무게를 달았다. 서비스로 가리비도 넉넉히 얹어주었다. 역시 단골을 대하는 인심이 넉넉하였다. 우리 일행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을 받아 들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나는 집에 가지고 갈 대게를 따로 주문하였다. 알이 꽉 차 있고 크기도 꽤 큰 놈들을 골라 무게 달았다. 교수님 찬스로 싱싱한 것으로 싸게 살 수 있었다.
대게를 찌는 동안 생선회를 장만하러 난전 시장에 갔다. 아주머니는 바구니 가득 생선을 담아 무게를 달아 즉석에서 회를 떠 주었다. 생선회 뜨는 기계가 빠르게 작업하여 순식간에 한 바구니의 먹음직스러운 회를 가득 담아내었다. 바쁜 세상에서 기계의 자동화가 많은 일을 빠르게 해나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식당으로 올라가서 싱싱한 회를 맛있게 먹고 나니 먹기 좋게 손질된 대게를 한 접시 가득 담아왔다. 이미 배는 불렀지만, 대게를 보는 순간 군침이 돌았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대게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특별식으로 충분했다. 시간 내어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우들은 맛있는 음식을 마주하며 멋진 시간을 가졌다. 수북하던 접시도 다 비워졌다.
남편과 어머니를 위해 회를 뜨고 대게도 주문했다. 어머니는 대게를 좋아하신다. 예전에 내가 친구들과 영덕 가서 대게를 먹고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 병간호로 병원에 계셨다. 저녁에 병원에 잠깐 들렀을 때 영덕 갔다 온 것을 숨겼었다. 혼자 놀러 간 것이 미안해서…. 좀 사 올걸. 계속 미안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대구 도착하여 대게를 가지고 엄마 집에 갔다. 비싼 걸 왜 사 왔냐고 하시면서도 표정은 좋아 보였다. 나는 대게를 잘 발라서 접시에 담아드렸다. 어머니는 나보고 먹으라며 젓가락을 잘 안 가지고 갔다. 많이 먹고 와서 배부르다고 하니 그제야 맛있게 드셨다. 생선회는 남편과 이틀 동안 먹을 만큼 양이 많았다. 다음에도 영덕에 가게 되면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든든한 교수님의 명함이 있으니 걱정 없다.
그날 저녁부터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의성에서 난 산불이 불똥이 튀어 영덕 바닷가 마을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불길이 덮쳐 마을이 불에 타고, 대피 중에도 인명 피해가 일어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청송·영양까지 산불이 번졌다는 속보도 나왔다. 영덕 따개비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로 피하여 배를 타고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하나 살던 터전을 갑자기 잃어버렸다. 빠른 속도로 마을을 덮쳐 피해가 컸다고 하니 안타까웠다.
온 산에 봄꽃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는데, 잿빛으로 변해버린 산과 마을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푸른 잎이 돋아나던 나무들도 앙상하게 검은 가지들만 남았다. 갑작스러운 화재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의성에서 난 산불이 영덕까지 올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침체하고 우울한 날이 지속될 텐데 모두 건강하게 잘 견디길 바라는 마음이다. 화려하게 핀 봄꽃이 이재민들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불이 나기 하루 전날 영덕에 도착했을 때, 도로변의 집과 건물들이 어딘가 모르게 우중충한 모습이었다. 바닷가 마을 주변 집들이 대체로 낡은 상태였고 활발한 모습도 아니었다. ‘세상이 하 수상하여 마음이 을씨년스러워 그렇게 보인 것이리라.’ 영덕에 도착한 날 산불이 일어났다면 대피 행렬 속에 있었을 수도 있고, 하루만 늦게 일정을 잡았더라도 계획은 무산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 오늘도 내일도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인생무상을 가끔 느낍니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늘 변하고 새로워집니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이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합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했지만, 하룻밤에 안동에서 영덕까지 달려가는 산불을 보면서 인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문우들과의 여행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자리인것 같아요. 여행은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요^^
오자 마자 야외수업에 참석할 수 있어서 서먹한 분위기를 느끼지 않고 오래전부터 만난거 같아 참으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