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키운 메밀묵
김금자
내 유년의 기억은 낙동강 푸른 물길이 유유히 흘러가던 기름진 들판 위에 머물러 있다. 낮이면 친구들과 논둑길을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보름날 밤이 되면 들판 너머 강가에 하얗게 펼쳐진 모래사장에서 달빛을 조명 삼아 밤이 이슥하도록 지치지도 않고 놀았다. 그때의 은은한 달빛은 우리들의 가장 너른 놀이터였다. 그러나 1960년대 그 시절의 낙동강은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제방이 허술했던 탓에 여름철 폭우가 쏟아지면 강은 순식간에 무서운 괴물로 변했다. 논둑이 터져 강물에 휩쓸려 가고 누런 흙탕물이 논과 밭을 삼켜버리면 온 세상은 이내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처럼 넓어졌다. 그 거대한 물결 위로 어디선가 떠내려온 돼지들이 둥둥 떠내려가던 기이 하고도 두려운 풍경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홍수가 쓸고 간 자리는 참혹하였다. 강가에 있던 우리 작은 밭도 일부가 거센 물살에 씻겨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안 그래도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한 해 농사까지 망쳤으니, 엄마의 깊은 한숨 소리는 문틈을 타고 밤새도록 처량하게 흘러나왔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의 그 깊은 한숨을 깨끗이 지워주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를 바짝 졸랐다. “우리도 돈 많이 벌어서 좋은 땅 더 사요. 방법이 없을까요?”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손재주 좋고 음식 솜씨 뛰어난 엄마가 겨울 한 철 동안 메밀묵을 만들어 팔기로 하였다. 그렇게 우리 집의 눈물겨운 겨울 장사가 시작되었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읍내 장날 메밀을 사다 깨끗이 씻고 방앗간에서 갈아왔다. 넓적하고 큰 옹가지에 대고 치대면 하얀 거품 같은 앙금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만져보면 미끌미끌하다. 그걸 고운 채에 거르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우물물을 길어 오면 찬물에 메밀을 치대는 엄마의 손등은 금세 잘 익은 대추빛처럼 빨갛게 얼어붙었다. 손이 시려 호호 불어가며 가끔 더운물에 손을 담갔다가 이내 다시 메밀을 쥐어짜던 엄마의 거칠고 붉은 손이다. 나는 가마솥 밑에서 장작불을 지피며 매캐한 연기 속에서도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부뚜막에 걸터앉아 기다랗고 큰 나무 주걱으로 가마솥 가득 담긴 묵을 열심히 저었다. 매운 연기가 눈을 찔러 눈물이 흐르는 속에서도 주걱 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저항감으로 농도를 가늠하였다. 솥 안에서 가만히 들어 올린 주걱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묵의 형상은 마치 처마 밑에 얼어붙은 하얀 고드름 같았다. 그 실루엣을 엄숙하게 바라보며 정성으로 쑤어낸 메밀묵이 보들보들하게 굳어갈 때쯤이면 마당에는 어김없이 환한 달빛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겨울밤이 깊어지면 달빛을 앞장세운 손님들이 하나둘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형님, 묵 다 되신니껴?” “아지메요, 묵 한 사발 할까예?” 정겨운 사투리로 인사하며 줄줄이 들어선다. 이들에게는 긴긴 겨울밤 출출한 허기를 달래줄 메밀묵이 딱 안성맞춤이었다. 탱글탱글하고 구수한 메밀묵 위에 잘 익은 김장김치를 아주 잘게 썰어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치고, 바삭한 김을 고명으로 얹어낸 맛은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은 꿀맛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방 저방 가득 모여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쪽 방에서는 왁자지껄 신나게 묵 내기 윷놀이를 즐겼고, 다른 방에서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화투패를 돌리는 소리가 정겹게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이웃집에서 묵 주문이 들어오면 엄마는 머리에 따뱅이 얹고 묵 채반을 이고, 밤길 배달 간다. 달빛에 기대어 발걸음은 더 바쁘다.
손님들이 방을 다 차지하는 바람에 정작 내가 쉴 방은 없었으나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네 집으로 밤마실 가기에 딱 좋은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한바탕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 둥그렇게 뜬 겨울밤 달빛은 시린 바람 속에서도 이상하게 따스했다. 차가운 길바닥을 하얗게 비추던 달빛은 집으로 향하는 내 작은 발걸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내 어린 날 가장 다정했던 길동무였다.
그러나 달빛 아래 활기차던 묵 집의 불빛 뒤편에는 어린 내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던 또 다른 풍경이 있었다. 묵값을 꼬박꼬박 치르는 이들도 많았으나 주머니가 가벼워 그저 외상 장부에 이름 석 자만 달랑 남겨두고 겨울이 다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워낙 사람 좋고 인심 많던 아버지는 길 가던 동네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그저 따뜻한 묵 한 사발 들고 가라며 집안으로 불러 모으기 일쑤였다. 밤새 찬물에 손을 적셔가며 뼈마디가 저리도록 고되게 묵을 쑤고 나르던 엄마의 눈에 그런 아버지의 행동은 야속하기 짝이 없었을 터이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간 깊은 밤이 되면 부엌문 너머로 엄마의 날 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메밀 한 가마니라도 보태줬소? 장사랍시고 밤새 찬물에 손 부르터가며 묵 쑤었더니 죄다 거저 퍼주면 우리는 뭘 먹고 사냐고예!” 고성이 오가는 부모님의 언쟁을 들으며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돈을 많이 벌어 땅을 넓히겠다던 야무진 꿈은 간데없고, 야속한 아버지와 서러운 어머니의 달래지지 않는 시름이 겨울밤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히곤 했다.
속담에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했으나 우리 집 부엌문 너머로 밤마다 새어 나오던 소동 속에서도 메밀묵 맛만큼은 갈수록 깊고 구수해졌다. 철이 들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의 거친 항변은 가난의 굴레를 벗겨내고 자식들 건사하고 싶었던 눈물겨운 모정이었다. 아버지의 헤픈 인심은 홍수로 함께 삶의 터전을 잃고 다친 이웃들의 마음을 외면하지 못했던 투박한 정이었다.
성경 마태복음 산상설교에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라는 구절이 있다. 생각해보면 평생 성경 공부 한번 해본 적 없던 아버지는 그 깊은 진리를 이미 당신의 가슴과 손끝으로 묵묵히 실천한 셈이다. 시린 겨울밤 환한 보름달이 뜨면 낙동강의 푸른 기억이 메밀묵의 구수한 냄새 타고 피어오른다. 밤마다 마당을 비추던 은은한 달빛은 실은 두 분이 온몸으로 뿜어내던 따스한 인간미의 다른 이름이었다. 철없던 소녀를 포근히 감싸주던 유년의 달빛은 이제 반세기의 세월을 넘어 내 남은 생의 길을 비추는 영원한 길동무가 되었다.
(20260519)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