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문학관 기행문>
이효석의 삶과 문학
시인 김우배
강원도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강원도의 힘’이다. 1998년에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기존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으로 당시의 사회상과 젊은이들의 삶, 그리고 감성을 솔직하게 담아내어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깊은 인상을 받았던 영화라서 강원도라는 지명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제목이 떠오른다.
또 하나, 전국의 도 단위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충북 청주에 사는 필자에게 강원도는 늘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푸른 바다와 높은 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언제나 여행지의 우선순위였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휴가 때, 끝없이 이어진 차량 행렬 속에서 몇 시간 도로에 갇혔던 적이 있었던 후 강원도는 멀고도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다.
오월의 끝자락, 소속 문학단체가 주선한 문학기행으로 강원도 평창 봉평에 있는 이효석문학관을 찾았다. 문학관으로 오르는 언덕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주변 환경이 새롭게 정비되어 있어서인지 처음 온 곳 같다. 그때는 메밀꽃이 한창이던 가을이었지만, 늦봄과 초여름의 경계에 선 지금은 메밀꽃 대신 감자꽃이 들녘을 수놓고 있다.
문학관에 들어서기 전, 봉평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이효석이 나고 자란 산과 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를 배출한 고장이라는 생각에, 그를 길러낸 산과 들 마저 경건하게 느껴진다.
이효석문학관은 2002년 9월 개관하여 올해로 개관 24주년을 맞고 있다. 약 2만5천여 평의 부지에 조성된 문학관은 여러 전시실로 꾸며져 있으며, 가산 이효석의 연보를 비롯해 삶과 문학, 등단 이후부터 타계 전까지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출판 당시의 잡지와 단행본, 육필 원고 등도 전시되어 있어 그의 문학 여정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저마다 고향에 대한 생각은 비슷하다. 고향은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의 품과 같으며, 한 사람의 품성과 심성을 키워 준 자양분의 터전이다. 더구나 작가에게 고향은 작품을 쓰는 원동력이자 상상의 발원지이며 문학의 모천(母川)이다. 고향에 이토록 훌륭한 문학관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뜻깊은 일이다.
명작은 세월을 초월한다. 『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을 한국 서정 소설의 대표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서민들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 세계만 놓고 보면, 그가 당시 최고 학부였던 경성제국대학 영문과 출신이라는 사실이 다소 의외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서 태어났다. 비록 출생지는 진부였지만 어린 시절 대부분을 봉평에서 보내며 성장하였다. 척박한 산비탈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이 널리 재배되던 봉평의 자연환경은 훗날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되었고, 그의 서정과 정서의 원천이 되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만 열세 살이 되던 해 평창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당시 지방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시기부터 타향살이하며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한 뒤 이어 법문학부 영문과에 진학하였다. 1928년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고, 초기에는 사회 현실에 관심을 둔 경향문학 계열의 작품을 주로 발표하였다. 스물네 살에는 신여성인 이경원과 결혼하여 결혼 후 한동안 취업난을 겪다가 처가가 있던 함경북도 경성의 경성농업학교 영어 교사로 부임한다.
이 시기를 전후로 그는 경향문학에서 순수문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때 유치진, 정지용 등이 참여한 구인회 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서정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 1934년 『돈』, 『수탉』 등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다.
1936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었고,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한다. 같은 해 『조선일보』에 발표한 『메밀꽃 필 무렵』은 자연과 인간의 삶을 서정적으로 잘 표현한 한국 단편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이 무렵 이효석은 예술적으로도 원숙기에 접어든다. 1938년 장편소설 『화분』을 발표하며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이국적인 정서를 세련된 감각으로 형상화하였다. 문학관 전시실 한편에 재현된 그의 서재에는 피아노와 축음기, 서양 여인의 사진 등이 놓여 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드문 서구적 감수성과 예술적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장미 병들다』『벽공무한』등을 발표하며 자연주의적 서정성을 넘어 서구적 감각과 현대적 미의식을 결합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 음악과 영화, 커피 등 서양 문화에 대한 관심 또한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내 이경원과 차남을 잇달아 잃는 커다란 비극을 겪었다. 그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실로 컸을 것이다. 이후 만주 등지를 여행하며 상처를 달래고자 했으나 건강은 점차 악화되었고 창작 활동 역시 뜸해졌다.
결국 결핵성 뇌막염으로 쓰러져 평양도립병원에 입원하였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너무도 짧은 생애였다. 그러나 1928년 등단 이후 약 14년 동안 교사와 교수 생활을 병행하면서도 25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이효석은 소설을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가두지 않았다. 시적 어휘와 음악적인 리듬,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끌어올렸다. 또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순수한 본능과 생명력을 긍정하면서도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과 예술적 감수성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는 이러한 그의 정서와 미학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렇듯 짧은 생애 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누가 뭐라 해도 그의 대표작은 『메밀꽃 필 무렵』이다.
“산 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문장만 읽어도 눈 앞에 펼쳐지는 메밀밭 풍경에 압도된다. 이것이 바로 이효석 문학의 힘일 것이다. 설명하기보다 그림으로 펼쳐 보이는 서술 방식을 통해 독자를 작품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효석만의 독보적인 개성이라 할 수 있겠다.
왜 그 시절의 천재 문인들에게는 유독 불운이 따랐을까. 김유정, 이상, 윤동주, 김소월 등 걸출한 문인들이 하나같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문학사 전체의 손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효석의 작품은 그 말을 증명하듯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비록 그는 서른다섯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문학은 세월을 넘어 여전히 우리 곁에서 향기를 피워 올린다. 이번 문학기행은 창작의 불씨를 다시 지펴 준 뜻깊은 여정이었다. 문학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고, 멈춰 선 사람마저 다시 걷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에필로그**
이효석 문학관 전체가 체계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는 점에 감동을 받았다. 전시물을 보기 위한 관람 동선이나 전시물의 체계적 관리와 주변 경관 조성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관리자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졌다. 문학관은 평창군이 운영 주체이지만, 사단법인「이효석문학선영회」가 위탁관리를 하고 있었다. 전국에는 수많은 문학관이나 기념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모범적인 운영사례로 손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문학은 좋은 공간에서 더욱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문학관을 뒤로했다.
**이효석 연보**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서 출생
1914년 평창공립보통학교 입학
1920년 평창공립보통학교 졸업
1924년 시 「봄」이 《매일신보》신춘문예에 입선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 예과 입학
1927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어영문학과 편입
1928년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 시작
1930년 경성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1931년 함경북도 경성농업학교 영어 교사로 부임
1933~1935년「돈」, 「수탉」,「산」 등 주요 작품 발표, 초기에는 도시적. 지적
감수성을 지닌 작품을 창작
1936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 발표
1937~1939년 「들」,「분녀」,「석류」 등 향토적, 서정적 작품 발표, 한국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
1939년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 취임
1940~1942 「벽공무한」등 장편과 수필 집필, 왕성한 창작활동
1942년 5월25일 평양도립병원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