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 풍경
사무실 앞에는 화단이 양쪽으로 단아하게 꾸며져 있다. 작은 땅이지만 봄이면 온갖 꽃들이 경쟁하듯 피어나고, 겨울에는 눈꽃까지 피어내는 예쁜 화단이다. 지나가는 길손들은 이따금 화단 경계석 꽃그늘에 앉아 예쁜 이파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 화단에는 특히 참새들이 많이 찾아든다. 온통 시멘트로 도배된 도시에서 그나마 흙냄새를 풍겨주고 꽃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즐겨 찾아오는 걸까? 참새들은 문이 열리면 사무실 안에까지 날아들었고, 직원들은 그것들을 내어 쫓기보다는 품어주었다. 그런데 그 참새들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직원들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점심을 배달된 음식으로 해결하는데, 음식 찌꺼기가 남겨진 중국음식 접시를 이 화단 뒤편에 내어 놓곤 했다. 배달꾼이 접시를 가져가기 전까지 남은 음식들은 당연히 참새들의 모이가 되었던 것 같다. 새들로서는 음식찌꺼기야말로 화단에 피어난 또 다른 접시꽃이었을 것이다. 참새들이 꾀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참새들은 왜 자취를 감추었을까?
이 동네에는 제법 잘 생긴 성견 두 마리가 배회하곤 했다.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그 개들이 화단에 차려진 성찬을 외면할 리 없었다. 접시에 핀 꽃들을 깔끔하게 해치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가 남긴 음식은 처음 새들의 차지였는데 이젠 개들이 그것을 빼앗은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최근에는 그 개들마저 눈에 띄지 않았다.
새로 채용된 여직원이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밖에 내어놓은 중국음식 남은 것을 어떤 남자가 먹고 있다고. 여직원은 충격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더 황당한 것은 나이가 삼십대 중반으로 보인다는 말이었다. 삼십대 중반 나이에 노숙자라니! 그런데 그 여직원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노숙자는 벌써 두 해 째 화단에서 끼니를 때우러 오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지금부터 음식을 더 정갈하게 해서 남기라고 당부했다. 같이 음식을 나누지는 못할망정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좀 제대로 남겨주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그것은 노숙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사람을 평생 노숙자 신세로 만드는 일이니 그냥 냉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처음에는 숨어서 먹더니 이젠 얼굴 내놓고 천연덕스레 먹는다고 하니 대항할 말이 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로 말하면 스스로를 휴머니스트라고 응당 생각했는데, 이런 경우에는 돕는 것이 돕는 것인지 돕지 않는 것이 돕는 것인지 헷갈렸다. 하루에 상상도 못하는 량의 음식물을 남겨서 쓰레기로 버리는 현실, 이런 음식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버려진 군만두 하나로 한 끼를 때워야 하는 노숙자의 모습은 또 다른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경우에 그냥 군만두 하나라도 더 보태 주는 것이 노숙자 대책인지, 스스로 자생의지를 갖도록 철저하게 냉대하는 것이 상책인지는 알 수 없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정치여야 하는데 정치하는 사람들만 배불리는 정치는 언제나 끝날까. 나는 결국 젊은이들의 처리방식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노숙자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면 생각이 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방을 여행하다가 반찬 잘나온다는 식당에 들렸다. 식탁에 가득 찬 반찬을 헤아려보았다. 서울의 식당보다 세 곱은 더 많아 보였다. 내친김에 하나하나 원가계산을 해 보니 내 산술로는 아무래도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식사가 끝났을 때 음식들은 60% 가까이 남겨졌다. 나는 주인에게 반찬의 가짓수는 그대로 두더라도 접시마다 놓인 찬의 량을 반으로 줄여보라고 권했다. 이렇게 남겨진 음식은 결국 재사용되어 다른 손님에게 또 오를 것이 뻔 했고, 손님들도 그것쯤은 알 것이라고. 그러나 주인의 생각은 확고했다. 반찬 풍성한 것이 자기네 식당의 메리트이며, 그것 때문에 TV에 까지 소개되었는데 내 말을 따르면 손님들 발길이 끊긴다는 논리였다.
TV에 소개된 대로 그 식당은 많은 반찬을 소담스레 내놓을 것이다. 또 손님들은 그 푸짐한 량에 흡족해하면서 음식물을 남기고, 식당 주인은 그 남은 것들을 잘 추슬러 다시 손님상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손님들은 단돈 오천 원으로 삼만 원짜리 정식을 먹었다고 든든해하면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식당을 추천할 것이다. 혹, 지방의 그 식당이 손님들을 노숙자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자못 궁금해진다.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는 노숙자나, 버려야 할 음식이 다시 그릇에 담긴 것을 만나게 먹는 손님이나 무엇이 다를까?
화단에서는 꽃이 피고 벌나비가 날아들면 그만이다. 이제부터라도 참새나 개들이 찾아들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더구나 노숙자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