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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중국이 왜 그렇게 서북공정 서남공정 동북공정을 하는지 아시는지요?
중국인들이 역사를 살펴보니 자신들의 나라는 건국 후 100년을 넘은 것이 4개(한, 당, 송, 명) 밖에 안 되었던 것입니다(그나마 수-당나라도 선비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명 태조는 조선인이고 영락제의 어머니도 조선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은 자신의 왕조가 망하면 이상하게 바로 중원이 아닌 다른 민족이 지배했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진한(秦漢)시대 북방의 훈족, 진(晋)이후에 북조의 5호16국, 수-당을 세운 선비족과 그 북방의 돌궐족, 당나라 말의 5대10국, 송나라 때 북방의 요의 거란족, 금나라 여진족, 뒤의 원나라 몽골족이 지배한 후 명나라가 망하자 다시 청나라 만주족이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긴 역사 100년 후에 나라가 망하면 지금까지 그들을 지배했던 유목민족의 출신들이 그들을 지배하지 않을까라는 공포심에 빠져있습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두려움 때문에 역사왜곡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입니다. |
특히 헝가리 사람들은 자신들이 ‘훈족’의 후예라고 자부합니다. 또한 헝가리의 어원 또한 훈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헝가리=훈). 그들이 그렇게 자부하는 훈족은 누구일까요.
(진한시대 훈족의 영토. 서양으로 이동하기 전이다.)
유럽역사의 대변혁을 주도한 세력이 바로 훈족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한나라가 흉노족과 정말 얼마동안 씨름을 했다는 것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흉노는 한의 군대와 달리 조직력이 없어 진군과 퇴군을 마음대로 하고 그 기마술들은 보통이 아니었다고 기록이 나옵니다. 특히 만리장성이 만들어진 이유 또한 바로 흉노족 때문이었죠! 하여간 한나라 입장에서는 흉노가 정말 싫었고 대충은 몰아내는데 성공을 합니다. 그렇게 하여 서쪽으로 간 흉노의 한 일파가 바로 훈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서쪽으로 간 흉노의 후예 훈족의 기마술과 전투방식은 유럽인들에게는 거의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4세기 말에 흑해의 북동쪽에 살던 게르만계인 동고트족을 박살내고 그들을 지배합니다. 그 후 바로 흑해의 서쪽에 살던 서고트족을 공격했고, 서고트족은 훈족을 피해 다뉴브강(도나우강)을 건너 서로마제국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럽에는 게르만 부족이 잇따라 이동을 시작하였으며 서로마 영토 안으로 깊숙이 이주 정착하여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로마의 정통을 이은 서양의 천자국은?
훈족에 의해 벌어진 게르만족의 이동은 4세기 말에서 6세기 말까지 200년에 걸쳐 일어나게 됩니다. 일례로 현재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등지에 흩어져 살던 앵글로족과 색슨족이 로마가 물러난 브리타니아(영국)에 침공하여 켈트인을 몰아내고 잉글랜드를 세우죠. 프랑크족도 켈트족을 몰아냈고 남아있던 켈트족과 융합하여 현재의 프랑스가 됩니다.
무엇보다 게르만족의 이동 때문에 당시 지상 최고의 제국이었던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게 됩니다. 이후 동로마(비잔티움 제국. 330~1453년.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가 세워지고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천 년을 이어오게 됩니다.
로마제국은 크게 4개로 기억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로마제국, 게르만족에게 멸망하여 동쪽으로 이동한 동로마제국, 서로마의 뒤를 이어 일어난 신성로마제국, 마지막으로 러시아입니다. 신성로마제국는 샤를마뉴 대제(호칭, 프랑스: 샤를 대제 = 독일: 카를 대제 = 이탈리아: 카롤루스 대제 = 영국: 찰스 대제)가 서로마를 이어 세운 나라입니다.
샤를마뉴 대제 이후 신성로마제국은 분열되어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탈리아는 원래 로마였으니 그렇다하더라도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가 신성로마제국의 정통을 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호칭으로 보기엔 프랑스가 ‘프랑크’ 왕국의 뒤를 이은 것 같은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게 독일에게는 보이지 않는 강한 불만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독일에서는 프랑크소시지 프랑크푸르트 등의 예에서 보듯 프랑크라는 호칭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사견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의 독일 땅이 프랑크왕국의 중심지였다고 생각합니다. 히틀러의 망상도 여기서 나온 것이고, 수많은 프랑스와 독일의 싸움은 이것을 얻기 위한 쟁탈전의 연장선으로 보여 집니다.
(오스만투르크의 최대영토)
아무튼 동로마는 그리스반도를 중심으로 현재의 터어키반도와 중동지역 아프리카의 이집트영역까지 지배하며 천년 동안 유지합니다. 정말 대단하죠. 하지만 동로마 제국은 위험요소를 품고 있었습니다. 동로마제국의 멸망은 과도한 영토 확장도 한 몫 하였습니다만, 특히 여러 민족들이 (좋게 말해) 공존하는 곳이지만 곳곳에 내재된 이민족과의 갈등, 무엇보다 극단적으로 다른 종교(동로마: 그리스정교-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이슬람교)의 갈등이 멸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민족갈등으로는 발칸반도와 러시아에 살던 슬라브족과 중동의 아랍족, 그리고 동쪽에서 이주해온 동양계 투르크(돌궐)에 의해 라틴족의 유구한 로마의 문명은 마침내 종결을 맞이하게 되죠. 이는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서양에게 위협이 되는 [성경] 속의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경계심을 품게 만듭니다.
유럽에게 있어서 동쪽에서 종교와 이민족의 방패 역할을 하던 비잔티움제국(동로마)이 멸망한 것입니다. 이때 생긴 이슬람과의 종교적인 갈등이 결국 십자군전쟁으로 이어집니다.
때마침 부동항을 찾아 쉼 없이 남하하면서 호시탐탐 세력을 키우던 러시아는 드디어 기회를 얻게 됩니다. 즉 마지막 동로마황제의 조카딸과 결혼하여 로마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그리스정교라는 종교의 정통도 계승하게 된 거죠. 본디 러시아는 대륙의 외진 구석에서 태생하였기에 상대적으로 발달한 서구유럽에 대한 문화적 인종적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제3의 로마’임을 자칭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 ->쌍두독수리: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에서 사용했다. 로마의 정통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문양인 ‘쌍두독수리’도 쓰게 됩니다. 이런 문양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상징성은 대단하여 유럽에서의 독수리 문양은 황제와 패권국임을 상징하는 징표입니다. 독일과 러시아 미국 등 모두 독수리 문양에 집착하는 나라들이죠. 로마제국의 정통이 자기들에게 있다는 강한 자부심에서 나온 겁니다.
러시아가 세계 속에 비로소 역사의 주류에 설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었고, 로마(황제)라는 주도권을 놓고 서유럽과 러시아는 명분 싸움을 하는 형국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동양으로 보면 진명천자(眞命天子)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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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은 지금의 헝가리와 루마니아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5세기에 영웅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틸라’ 훈족의 왕이었던 아틸라는 일반 흉노족 대선우와 같은 존재로 병사들과 더불어 일반 음식을 먹었으며, 그들과 같이 잠을 자며 전투에서는 항상 선두에 서서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훈족의 전성기였던 것이죠! 하지만 아틸라는 결혼한 날 허망하게 죽습니다. 부인으로 맞아들였던 게르만 여인이 자기 가족들과 부족을 죽인 아틸라에게 복수를 한 것이죠. 하여간 대부분의 기마민족의 국가가 그렇듯이 영웅이 죽고 나자 부족 연합체였던 훈족은 급속히 분열하게 됩니다(기마민족은 모이면 전투머신이 되고 흩어지면 유목민이 됩니다. 이런 경향은 후대의 돌궐족에게도 나타납니다).
(헝가리 기마궁수)
이때 훈족의 후예들은 유라시아 전체로 퍼지게 되는데 그중에서 초원과 비슷한 평야지대인 동유럽에 남은 훈족의 후예들이 바로 ‘헝가리 민족(마자르족=말갈족: 말갈->마가르->마자르. 훈족의 기원이 만주)’입니다. 훈족이 이곳에 남은 이유는 초원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헝가리는 땅의 95%가 평야입니다. 몽골초원 같은 곳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이곳에 정착을 결정한 훈족들은 당연히 이웃 유럽 국가들과 언어도 혈통도 전혀 다릅니다. 용맹성도 그들의 조상들에게 그대로 물려받아 주변국들이 함부로 못했습니다. 유목, 기마술과 궁술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지금은 슬라브, 게르만, 투르크와의 혼혈로 겉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언어는 여전히 알타이어계에 속하고 자신들은 동방에서 온 훈족의 후예라고 자처합니다(돌궐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해서 세계적으로 성공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흉노족을 악당으로 묘사)이 이곳에서는 폭망했을 정도였죠. 지금도 훈족의 동상과 유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흔적은 대륙의 동쪽 끝인 한반도의 신라까지 남아 있습니다(독일의 한 방송에서 유물과 유골로 추적한 결과 훈족의 뿌리가 신라와 맞닿아 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도 있습니다).
훈족을 구성한 용맹한 기마민족들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기마민족의 특성 상 중앙아시아와 알타이, 몽골 초원으로 다시 되돌아갔고 흩어져 지낼 뿐이었죠. 이들에게 거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농경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상상초월이겠지만 끊임없이 이동하는 그들에게는 연결된 땅과 초원은 모두 활동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대륙을 양분하였고(영국은 섬나라여서 배제) 투르크(터어키)의 유럽진출을 결정적으로 막았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조차도 유일하게 자치를 허용한 전투민족이 헝가리(오스트라아-헝가리 제국)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 기마술과 궁술대회에도 꾸준히 참석하는 유럽국가가 바로 헝가리입니다.
(->헝가리 기마궁술)
한무제의 훈족 정벌 후에 왕족(휴도왕) 일부는 한나라에 항복하게 됩니다. 이들은 한나라에서 성공리에 정착하여 최고의 자리까지 차지 하지만 왕망의 반역 사건을 계기로 도피하게 됩니다. 그때 도피한 곳이 한반도의 동남부였고 신라와 가야의 왕족인 김 씨의 뿌리가 비로소 시작됩니다. 김 씨와 신라의 뿌리가 훈족이라는 건데 여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훈족의 뒤를 이어 알타이산맥에서 일어난 족속이 돌궐입니다. 돌궐은 훈족이 사라진 몽골 땅에 세워진 ‘유연제국’을 격파하고 동방으로 진출합니다. 중국의 수나라 때는 수문제의 이간책에 말려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뉘게 되고 동돌궐은 고구려와 일시적으로 연합한 인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돌궐조차도 당나라에게 패하여 신라를 침범한 당군에 포함되어 우리나라(통일신라=후신라)와 싸우기도 합니다. 이후 동돌궐은 결국 당나라에게 의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전에 분열한 서돌궐과 합세하여 중앙아시아와 중동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맨 왼쪽의 병사가 투르크 용병)
이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남하하여 타국의 용병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이란을 지배하고 지금의 터어키(셀주크투르크)를 건설하게 됩니다. 셀주크투르크(뒤에는 오스만투르크)는 아랍세계를 제패하였고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발칸반도로 진출하게 됩니다. 이전 과정에서 예루살렘을 지배하였고,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만들고자한 로마교황의 책략에 의해 예루살렘을 두고 유럽과 아시아의 종교전쟁(이슬람과 카톨릭)인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물론 터어키(투르크=돌궐)의 승리로 끝나고 말지만요. 돌궐은 기마민족답게 대단한 전투능력과 근성을 지닌 민족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실제 유럽에서 가장 키가 큰 발칸반도의 인종(남슬라브족. 이 중에서 크로아티아인의 평균키가 무려 186cm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라로는 네덜란드인데 182의 평균키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족속으로 놓고 보자면 크로아티아인은 무려 4cm가 더 크다)을 무자비하게 다스려 악명도 높았습니다.
터어키도 중동과 유럽으로 진출하면 헝가리처럼 인종색이 바뀌었지만 물려받은 전투능력은 계승되었습니다. 흑해와 카스피해 아랄해 주변을 전부 지배한 민족이 투르크계입니다. 심지어 시베리아를 순식간에 점령하여 러시아에게 세계최대의 영토를 선물한 선봉대(카자흐족)조차도 투르크계이니까요.
( ->터어키 전통씨름 우승자)
* 참고: 지금 투르크족을 보면 아시아와 유럽인의 혼혈로 보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몽골계통의 아시아인 위에 중동 유럽인종이 섞인 것이죠. 아시아인의 외모는 열성이라서 피가 섞이면 서양식 외모로 변했지만 기질과 혈통의 주류는 몽골계입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의 국가를 보면 국가별로 편차가 크지만 얼굴이 넓고 키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다부지고 굻은 뼈대를 지닌 사람들의 동양계인종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원래의 돌궐족의 후예인 것이다.
터어키인도 자세히 보면 동양인의 치아구조와 두개골 및 얼굴이 여전히 남아있고 특히 잘 변하지 않는 전통문화를 보면 몽골씨름과 기마술이 몽골과 거의 비슷하게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치아구조가 가장 비슷한 국가로 (일본 제외) 터어키가 거론된 적도 있었고, 언어도 당연히 알타이어계통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터어키어의 단어들이 몽골과 비슷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터어키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에 위치한 국가인 키르키즈스탄으로 여기고 있으며 지금의 중국의 서북부 자치주인 ‘신강 위구르족(회족)’을 자신들의 형제로 봅니다. 신강 위구르족이 청나라로부터 잠시 독립했을 때의 국가 명칭이 ‘동투르키스탄’이었죠. 요즘에도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신강 위구르족들의 분리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중국의 강력한 진압을 반대하는 나라가 터어키입니다. |
가장 중요한 흑해
자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여기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곳은 흑해입니다. 왜냐하면 중앙아시아 국가와 러시아가 바다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흑해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륙 내부에 갇혀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러사아의 입장에서는 부동항이 필수이죠. 나가려는 러시아와 지켜야만 하는 터어키의 공방전이 피터지게 이루어집니다. 러시아와 투르크는 역사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흑해와 크림반도의 쟁탈을 두고 말이죠. 사실 이곳이 러시아의 운세를 보는 결정적인 자리입니다. 이번에 우크라이나령 크림공화국을 단숨에 합병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흑해는 아주 오래전부터 러시아와 유목민족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었지만, 본격적으로 이들의 갈등이 일어난 이유와 과정을 살펴보아야만, 오늘날의 흑해 속의 크림반도 사태를 감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령의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이번에 미국과 유럽의 반대에도) 전격전을 감행하면서 점령한 것은 러시아의 오랜 숙명과 과거의 업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그랬듯이 흑해발 세계대전과 종교전쟁의 전운이 또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아주 커 보입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흑해의 크림반도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꿈에도 그리던 부동항인데다가 군사적 경제적 지리적 전략요충지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곳이 막히면 러시아가 지중해와 유럽 중동과 아프리카로 나아갈 뱃길이 막혀 버리기 때문이죠. 이게 핵심입니다. 흑해와 크림반도는 그 누가 뭐라 해도 러시아에게는 숨구멍입니다. 더욱이 이곳은 전략적 가치 외에도 종교와 각 지방(지역, 국가)과 여러 족속(민족)들의 가치가 한꺼번에 만나는 그야말로 지구 최대의 화약고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현대에 와서는 자원과 에너지라는 큰 경제적 이익이 덧붙어 있습니다.
이번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를 기억해보십시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유엔 그리고 유럽이 왜 말로만 협박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까요? 오바마가 유약해서? 천연가스 때문에?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는 유럽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수 있는 요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았습니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지상 최대의 화약고에 휘발유를 끼얹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세계대전에 대한 트라우마와 뒷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강경파들은 오바마의 외교가 너무 물렁하다고 비판하지만, 오바마와 유럽의 지도자들 그리고 푸틴의 러시아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자가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건데, 동서양이 만나는 '크림반도'와 중동의 '이스라엘' 그리고 동북아의 '한반도'는 지구의 삼대 화약고라고 생각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은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서쪽- 중간- 동쪽이 모두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한반도입니다. 세계 최강의 4대강국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있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곳이니까요. 한반도에 그어진 '태극선(휴전선)'을 보면 이런 상징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판을 뒤흔드는 선구적 역할을 일본이 시작하고 중국이 이 판에 호응하는 모양새로 흘러가는 거죠. 물론 이 판에 성냥을 던지는 인물이 있으니 북조선의 김정은입니다. 그리고 남조선(대한민국)에서 만국이 사는 계책이 나오게 됩니다(萬國活計南朝鮮). 이런 상황들과 형세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외교의 향방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정세에 관한 내용은 차후에 계속하게 될 것임)
터어키를 주목하라!
곁가지로 너무 나갔네요. 다시 돌아와서... 예전에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에서 ‘북방왕과 남방왕이 싸운다’는 내용을 두고 북방왕은 러시아이고 남방왕은 이집트인데 이 둘이 싸우면 지구종말전쟁(아마겟돈)이 시작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주장은 억지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역사를 통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참고하시면 좋다는 말입니다. 원래 북방왕과 남방왕은 성경의 [다니엘서]에 제일 먼저 나옵니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북방왕이 러시아라는 것은 어느 정도 동감하지만 이집트가 남방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을 보류합니다. 이집트가 물론 아랍권에 가깝고 이슬람교를 공유하는 나라이며 과거에 유대인을 지배한 족속이기에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정국불안 때문에 테러도 많이 일어나지만, 역사전개를 보면 아프리카에 위치한 이집트 보다는 터어키가 아랍권의 운명을 쥔 남방왕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덧붙여 중동에는 종파의 갈등문제가 있습니다. 이슬람은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는데 이란과 시리아는 시아파, 터어키와 대다수의 아랍 국가들은 수니파입니다. 그리고 현재 시리아는 내전상태인데요, 같은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시리아를 러시아가 지원하고 있는 형태이고, 터어키는 시리아반군들이 수니파이기 때문에 시리아정부군에게 강경한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
투르크와의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러시아는 본의 아니게 투르크의 강한 억압에 짖눌려 비참하게 살아가던 발칸반도의 사는 같은 슬라브 민족(옛 유교연방국과 주변국 등)들을 해방시키는 역할도 수행하게 됩니다. 수백 년 간 투르크에게 핍박받던 소수민족을 해방시킨 러시아의 공로는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러시아와 투르크는 오래된 앙숙의 관계 속에서 쌓여온 묵은 감정이 많은 나라입니다. 이게 하루아침에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에 러시아 연표를 올렸습니다. 특히 터어키와의 갈등 그리고 기마민족의 흑해진출도 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흑해지역은 게르만, 라틴, 투르크와 슬라브족의 충돌, 동양과 서양 문명의 충돌, 기독교 유대교 그리스정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충돌이 교집합처럼 만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 중이라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후천개벽기에 세계적인 전쟁이 발생한다면 이곳과 중동의 전지역은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아마겟돈이 이걸 두고 하는 예언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에는 수많은 족속이 공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은 다인종이 융합된 도가니라면, 러시아는 인종의 모자이크 같은 거죠. 이게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썼던 글을 참고 하세요. (클릭=> 각 지방신과 족속들의 갈등) 그리고 아래의 글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제 나름대로 정리한 글입니다. 내용이 길더라도 읽어주시길.. 조금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대세를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러시아 연표
러시아가 우리 나라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러-청 북경조약(露淸北京條約, 1860)'으로 약 40만 평방 마일이나 되는 연해주지역을 획득함으로써 국경을 서로 맞대면서부터이다. 그리고 이 무렵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우리 나라 영내에서 해군함대를 위한 부동항(不凍港)을 얻는 데 있었다.
1854년에는 일본과 개항교섭업무를 맡았던 푸티아틴(Putiatin,E.) 제독이 거의 한달 가량 동해상에 머물면서 두만강 입구를 측량하고 영흥만도 답사하여 그 내만(內灣)인 송전만(松田灣)을 포트 라자레프(Port Lazarev)라고 명명한 일이 있다. 이어 1857년에는 영토문제 해결을 위하여 청나라로 가던 도중 거문도에 정박한 사실이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의 부동항에 대한 관심표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부동항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 것은, 러시아가 연해주라는 광대한 지역을 얻기는 하였지만 중심지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육로로 이 지역과 통교하기 위해서는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대지가 황폐하여 식량도 자급자족할 수 없을 뿐더러 강마저도 연평균 173일이나 얼어붙어서 하천교통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로서는 아시아 영토와의 왕래 및 교역업무는 해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즉, 러시아는 연해주의 유지와 나아가 아시아 침략을 위해서도 해군력을 증강해야 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함대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항만이 필요하였다. 물론, 1860년에 건설한 블라디보스토크항이 있기는 하였지만 연간 4개월(12∼3월)이나 얼어붙어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크게 부족하였다.
(현재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쿠릴열도)
러시아는 부동항 대상지를 일본령으로 정하고, 1855년 러시아 영토가 된 쿠릴열도(Kuril列島, 千島列島)와 일본령인 남부 사할린과의 교환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1861년에는 대마도(對馬島)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영국과 일본의 견제로 좌절되었으며, 진출방향도 한반도로 바뀌게 되었다. 1864년 5명의 러시아인이 경흥으로 찾아와 통상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1866년에는 러시아군함이 원산만에 들이닥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철수하였는데 이는 영국과 청의 견제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후 러시아는 영국을 비롯한 열강의 의혹을 사게 될까 염려하여 한반도침투에 신중을 기하게 됨으로써 그 기선을 일본과 미국에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로 하여금 경계심까지 가지게 해버렸다. 러시아의 신중한 태도와 청나라의 사주에 의한 우리 나라의 경계심은 두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나서도 20년간이나 수교를 막았던 중대한 요인이었다.
갈등지역 알아보기
먼 옛날에 기마민족과 러시아인이 흑해를 두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그리고 유럽(게르만계: 노르만 게르만족)과의 관계도 있다. 특히 동방의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족 훈족 돌궐족(투르크) 몽골족과의 관계는 더욱 흥미롭다. 그리고 러시아가 이들의 지배를 물리치고 도리어 동방으로 진출하여 지금의 러시아가 된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면 찬찬히 읽어보시길. 특히 투르크인은 초원의 기마민족답게 칭기즈칸보다 먼저 유라시아 대륙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흑해 [Black Sea, 黑海]와 크림반도
지정학적 위치
유럽 지중해(海)의 에게해와는 보스포루스 해협·마르마라해·다르다넬스 해협으로 이어져 있다. 북쪽은 케르치 해협에서 아조프해에, 남서쪽은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마르마라해에 이어지고 다시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지중해로 연결된다.
남쪽은 터키, 서쪽은 유럽의 터키·불가리아·루마니아, 북쪽과 동쪽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연방·조지아에 둘러싸여 있다. 예로부터 수상교통 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해외로 통하는 바다로서 몇 개 안 되는 부동항이 있기 때문에 제정 러시아 시대에는 남방 진출의 기지가 되었다. 러시아·루마니아·불가리아·우크라이나 등도 무역에서 흑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흑해의 역사
BC 1세기에는 폼페이우스의 동방 진출로 남서안이 로마령(領)이 되었고 이어 BC 2세기 초에는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하여 연안의 대부분이 로마 제국에 편입, 로마의 내해가 되어 비잔틴 제국에 계승되었다. 슬라브인(人)이 북서안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6∼7세기이며, 9∼12세기의 키예프 루스 시대에는 '루스의 바다'라고도 불렀다.
13세기에는 몽골인(人)의 유럽 침입에 의해서 슬라브의 세력이 한때 후퇴하였고, 이어서 15∼16세기에 오스만투르크가 연안지역을 정복하고 투르크의 바다가 되었을때 비로소 '흑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는 광막한 바다에서 이따금 때아닌 폭풍이나 짙은 안개로 위험에 휩싸이게 되는 데서 유래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투르크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러시아의 남진이 재개되어(17세기 말), 표트르 대제(大帝)의 아조프 점령에 이어 수차의 러시아-투르크전쟁에서 러시아는 차차 흑해의 지배권을 장악하였고(18∼19세기), 이윽고 지중해로 진출할 태세를 갖추었다. 여기에 열강(특히 영국·프랑스)의 이해가 충돌, 결국 크림 전쟁(1853∼1856)을 초래하였다.
러시아는 패배하여 기득권(특히 함대 보유권과 연안 요새 구축권)을 상실하고 흑해의 중립화가 확립되었다. 러시아는 그후에도 집요하게 지배권의 회복을 도모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로잔 회의(1922∼1923)와 몽트뢰 회의(1936)를 거쳐 현재 흑해는 모든 나라의 상선(商船)에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군함에 대해서만은 연안에 영토가 없는 나라는 제한(4만 5,000t 이상은 집결할 수 없음)을 받는다. 출입구인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의 군함 통항권도 끊임없이 국제문제가 되고 있다. 터키는 전시에 한해 이 해협을 모든 나라의 군함에 대해서 폐쇄할 수 있다. |
BC 8세기 - 기마민족의 선조격인 이란계 스키타이인, 흑해 북안 초원지대에 진출
BC 3세기- 이란계 사르마트인, 흑해 북안 진출
AD 1세기- 훈(흉노) 족, 볼가 강 · 우랄 강 유역에 정착(흑해 근접)
3세기- 게르만계 고트 족 남하, 흑해 초원에 출현
5세기 - 슬라브인은 동(러시아), 서(벨라루스), 남(우크라이나)로 분화 시작
6세기- 흑해 초원에 투르크계 아바르인 진출(하자르국 성립)
9세기- 노르만(북유럽 게르만인. 바이킹족)이 '루시(러시아의 어원)의 나라'의 지도자로 추대됨(키예프 러시아. 러시아 역사의 시작).
10세기초- 투르크계 페체네크인 흑해 초원에 진출
10세기중- 정복군주 스뱌토슬라프 러시아의 터를 닦음.
불가리아 및 동유럽 진출. 비잔틴제국과 충돌. 투르크계 페체네크인에게 암살당함.
10세기후- 막내아들이자 러시아를 만든 실질적인 군주 블라디미르 즉위(푸틴과 이름이 같다) 즉위. 기독교를 국교화(그리스 정교)
11세기- 투르크계 폴로베츠인, 흑해 초원 진출
몽골의 시작 |
몽골의 전성기 |
1237년- 칭기즈칸의 큰아들 바투의 몽골군 침입. 블라디미르 대공국 괴멸. ‘타타르의 멍에’ 시작(약 300년 동안 몽골에 의해 지배됨)
1243년- 몽골인, 킵차크 한국 세움
1380년- 디미트리 휘하의 러시아 군이 몽골군 격파
1437년- 킵차크 한국 분열, 카잔 한국 성립
1533년- 이반 4세 즉위, '차르'를 공식칭호로 채택. 러시아의 터를 닦음.
1552년- 카잔 한국 병합(몽골을 완전히 몰아냄). 시베리아로 가는 길을 열다.
1610년- 폴란드 군, 모스크바 점령.
1654년- 러시아-폴란드 전쟁
1689년- 표트르 1세, 실권 장악. 중국과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서유럽 '대사절단' 파견. '표트르의 개혁' 시작(현대의 러시아가 탄생하는 시작)
1721년-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승리. 표트르, '황제' 칭호 사용, 러시아 제국 성립.
1762년- 예카테리나 여제 즉위
1783년-예카테리나 여제, 크림반도 합병. 흑해함대 창설
러시아-투르크 전쟁 [Russo-Turkish Wars]
* 요약: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흑해에서 발칸반도, 캅카스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동방정책이 일으킨 투르크와의 6차례의 전쟁. 러-투는 역사적인 라이벌.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유럽 중동이 충돌하는 곳이기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곳이 흑해임. 제5차 전쟁에서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독일) 샤르데나(이탈리아)의 도움을 받아 투르크가 이긴 것 빼고는 모두 러시아의 승리. 러시아가 서양의 선진기술을 빠르게 도입했고, 반면에 이슬람국인 터어키는 전투능력으로만 싸우려 했으므로 당연한 결과.
서유럽은 거대한 땅을 가진 러시아의 동방과 남방진출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음(예: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영국의 크림전쟁 참전). 마찬가지로 러시아는 유럽을 동경하였지만 서구에 대한 열등감에 매우 강해 폐쇄적이고 똘똘 뭉치는 민족성을 가지게 됨.
당시 유럽대륙을 동서로 양분하던 나라는 프랑스와 동쪽의 합스부르크왕가(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였음(영국의 섬이기에 제외). 발칸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세르비아에서 죽임을 당하여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남. 하지만 이 사건의 뿌리도 결국 러시아-투르크의 흑해전쟁의 갈등과 터어키로부터 독립을 원하던 발칸반도의 슬라브 민족의 염원이 발단이 된 것임. 즉 흑해와 슬라브족 해방이 1,2차 세계대전에 러시아가 참전하게 된 핵심. 독일의 게르만민족도 흑해에 대한 진출이 예전부터 있었음. 터어키가 독일편에 선 것은 러시아 때문임.
- 보통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에 걸쳐 벌어진 6회의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흑해로 나가는 출구의 아조프해를 둘러싸고 양국은 여러 차례 전쟁(17회)을 벌여, 1637년에는 돈코사크에 의한 일시적인 아조프의 점령, 표트르 1세의 ‘아조프 원정’(1695∼1696)이 있었다. ‘북방전쟁’ 중에 투르크는 아조프를 탈환(1710)하였으나, 곧이어 ‘폴란드 계승전쟁’과 관련해서 일어난 양국의 전쟁(1736∼1739)에서 러시아는 최종적으로 아조프를 확보하게 되었다.
- ‘제1차전쟁’(1768∼1774)은 러시아 세력의 폴란드 진출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가 투르크를 사주하여 일으킨 전쟁이었으나, 이에 패배한 투르크는 굴욕적인 조약을 강요당하여 크림한국(汗國)의 독립(후에 러시아에 병합)을 승인하고, 흑해의 북동지방을 러시아에 양도.
- ‘제2차전쟁’(1787∼1791)을 투르크가 일으켰으나, 러시아군에게 또다시 고배를 마시고, 다시 흑해 좌안(左岸)의 땅을 러시아에 할양했다. 이와 같은 러시아의 잇따른 승리는 유럽 열강의 중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소위 ‘동방문제’를 발생시키게 되었으나, 열강이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전쟁에 휘말려 있었기 때문에 정세는 러시아에 유리하였다.
- ‘제3차전쟁’(1806∼1812)은 나폴레옹의 지지를 얻은 투르크가 러시아와의 협정을 위반하고 일어났다. 전투는 도나우 지방과 캅카스에서 벌어지고, 러시아가 제안한 조정(調停) 요청을 나폴레옹이 거부했기 때문에 전쟁이 오래 계속되었다. 러시아는 대승을 거둔 후 베사라비아를 손에 넣었다. 이때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원정을 개시하기 1개월 전이었다.
- ‘제4차전쟁’(1828∼1829)은 그리스독립전쟁에 이어서 일어났으며 러시아가 승리. 러시아는 도나우강(흑해를 이루는 강) 하류, 흑해 동쪽과 ‘해협’의 자유항행권을 획득. 그리스 트루크로부터 독립, 트루크의 지배지역이던 몰다비아 ·발라키아 ·세르비아의 자치(自治)를 인정하게 하고 러시아가 발칸반도에서 슬라브계 민족운동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러시아 동방정책의 정점. 서양열강과 러시아의 대립이 날카로워짐.
- ‘제5차 전쟁’(1853)은 투르크의 분할을 꾀하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가 내정에 간섭하여 일으킴. 영국 ·프랑스 ·독일 ·사르데냐(이탈리아) 등이 투르크와 연합하여 이른바 ‘크림전쟁’(1853∼1856)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또 ‘제1차 동방전쟁’이라고도 하는데, 패배한 러시아는 투르크에 대한 이제까지의 많은 특권을 상실하여 그들의 동방정책은 크게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187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부 러시아가 새로운 경제적 중심이 되어 흑해무역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러시아의 동방정책도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 ‘제6차 전쟁’(1877∼1878)은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를 국책의 도구로 이용하여 투르크에 대한 발칸의 민족운동을 선동하여 일어남. 이것은 ‘제2차 동방전쟁’이라고도 하는데, 전쟁의 원인은 1875년부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 반란으로 이때에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도 참가하였다. 러시아는 동유럽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립을 확약 받은 다음 곧 투르크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고전 끝에 러시아의 승리. 러시아는 캅카스를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의 자치,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승인시켜 발칸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현저하게 강화하였다. 이러한 러시아세력의 팽창에 위협을 느낀 열강이 이 조약의 개정을 러시아에 강요한 결과 베를린회의(1878)에서 러시아의 특권은 다시 제한을 받게 되었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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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러시아-투르크(터어키) 전쟁(이미 1768년부터 4차 전쟁이 있었음)
-1853년 러시아-오스만투르크 전쟁(3년간 흑해와 크림반도를 놓고 전쟁. 5차 전쟁)
-1860년 북경조약(연해주 획득: 조선과 국경을 맞댐)
-1865년 중앙아시아 진출 개시(시베리아로 확장)
-1877년 러시아- 투르크 전쟁(6차 전쟁)
-1894년 청-일전쟁(7월. 일본 승리)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이 요동과 대만을 할양받음.
-1895년 러-독-프의 삼국간섭으로 중국에서 일본을 몰아냄(신흥열강에 끼어들어 보려던 일본은 열 받음)
-1900년 러시아 만주점령(러시아는 이중전술로 야금야금 중국과 만주에 마수를 뻗침. 대륙으로 가고 싶었던 일본은 발끈. 러시아를 물리치지 않으면 조선도 넘겨줄 판)
-1902년 영-일동맹(이것에 힘입어 일본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걸게 된 것)
-1904년 러-일전쟁 발발.(12월 여순에서 일본에게 패배)
-1905년 1월 차르체제를 흔드는 혁명적인 '피의 일요일' 사건 발생. 6월 크림반도의 흑해전함 포탬킨 호 반란(군인들도 차르에 반대함).
-1905년 2월 만주심양에서 일본에게 또 패배.
-1905년 5월 대한해협에서 발틱함대 전멸. 이 패배로 동북아에서 물러남. 하지만 자국민심을 잃은 러시아의 황제는 급속히 붕괴하고 사회주의가 세력을 확장함.
-1905년 8월 포츠머스조약 체결(러시아의 굴욕적인 전쟁 중단 선언. 이유는 차르가 외국 대신 자국 반란세력과 전쟁을 하기 위함)
-1905년 10월 노동자 총파업(전문직 중심으로 200만명 규모, 역사상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파업으로 기록됨)
-1905년 10월 14일 '노동자 대표들의 소비에트'를 발족시킴.
-1905년 10월 17일에 국민의 기본권과 시민적 자유 및 선거에 의한 전국적 제헌 의회의 창설을 약속하는 '10월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사태를 무마하려 함.(이 선언이 먹혀서 반란세력들이 분열함)
-1906년 3월 두마(하원의원의 입법활동)개원. 악몽이 가라앉고 호전됨. 경제 군사력 급신장. 명목상 차르가 없어지는 1917년 까지 이어짐. 하지만..
-1912년 볼셰비키당 결성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1915년 러시아군 대퇴각
-1916년 중앙아시아 민족 반란, 러시아 황실을 좌우했던 악명높은 라스푸틴(->차르의 오른팔. 점쟁이) 피살.
-1917년 차르체제붕괴(제정타도). 10월 볼셰비키혁명에 의해 사회주의 국가가 됨(레닌이 수장).
-1922년 스탈린 서기장 취임. 소비에트 연방 수립
-1932년 우크라이나 대기근 발생(천만 명 이상 사망) <---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악감정을 품은 계기.
-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소련군, 폴란드 진주. 소련-핀란드 전쟁
-1941년 독-소 전쟁. 독일군, 레닌그라드 봉쇄, 모스크바 공격. 독-소간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서 공방전.
-1943년 스탈린그라드,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 괴멸
-1943년 11월 카이로선언(미-중-영: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독립하게 할 것)
-1944년 소련군, 전 영토 수복 후 동유럽 진공 개시
-1945년 2월 크림반도에서 얄타 회담(미-영-러). 5월 독일 항복. 7월 포츠담 회담. 8월9일 대일 참전. 8월 15일 일본항복 제2차 세계대전 종결)
-1946년 동서냉전 개시
-1950년 중 · 소 우호동맹조약 체결. 한국전쟁에서 북한 지원
-1953년 수소폭탄보유
-1954년 흐루초프(후루시초프: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인)때 크림반도를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우크라이나에게 줌(지금의 크림반도 사태의 원인)
-1960년 중국 소련 국경선 대립 표면화
-1969년 우수리 강에서 중국-소련 국경 전쟁
-1979년 소련군, 아프가니스탄 진주
-1985년 고르바초프 서기장 취임. 개혁 개방 강조. 제네바 미-소 정상회담
-1987년 크림반도 내 타타르인 자치요구 시위 <-- 이것도 크림반도의 문제(러시아가 타타르인을 억압. 몽골의 원이 지배하던 시대의 유산임)
-1989년 아프가니스탄 철병 완료. 고르바초프 중국방문, 중-소 화해. 냉전종식선언
- 1990년 아제르바이잔 사태 격화. 공산당의 권력 독점 폐지 및 다당제 도입, 사유재산 인정 및 시장경제 도입. 독-소 정상회담과 독일통일의 무조건 지지 천명. 발트 3국 독립 선언. 고르바초프 대통령 취임. 한-소 정상회담 및 수교. 고르바초프, 노벨 평화상 수상.
-1991년 소련군, 리투아니아 유혈점령. 대규모 반정부 시위.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 보수파의 쿠데타와 실패. 공산당 해산. 발트 3국 완전 독립. 독립국가공동체(CIS) 발족. 고르바초프 사임, 소련 소멸.
-1993년 러시아 공산당 재건. 러시아 통화개혁. 그루지야(현 조지아), CIS 가입. 가즈프롬 민영화 등 사유화 정책 가속(러시아의 최대무기는 자원임. 가즈프롬이 현 세계를 주무르는 가스회사이고 이를 통해 동유럽과 서유럽을 이용하는 지렛대로 사용함)
-1994년 김일성 사망
-1995년 '조선-러시아 상호원조 및 우호협력조약' 폐지
-1999년 체첸 분리독립운동 점화.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
-2000년 푸틴, 체첸 강경진압. 푸틴, 대통령 당선 후 '위대한 러시아' '강력한 러시아 국가' 재건이라는 국가주의적 슬로건 아래 경제사회적 안정화 추구. 신흥재벌 숙청. 루블화 평가절하.
-2004년 푸틴, 대통령 재선. 가즈프롬 등 에너지산업의 재국유화
-2005년 우크라이나 가스 공급 중단. 러시아,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부상. 가즈프롬, 영국과 프랑스의 가스 공급업체 인수
-2008년 푸틴의 꼭두각시 메데베데프 대통령 당선. 푸틴을 총리로 임명.
-2012년 푸틴의 재당선.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사태 다시 터짐. 크림반도 합병.
-2014년 이후는????
첫댓글 햐~~ 이글 쓴다고 일주일 걸렸습니다 ㅜ.ㅜ;;
잘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