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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달빛 아래, 경주 천년 야행 수학여행하면 떠오르는 도시 경주. 까까머리에 검정 교복을 입고 불국사와 석굴암을 둘러보며 친구들과 깊은 정을 나누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빛바랜 흑백사진이 애타게 그립다면 달빛의 경주를 찾으라. 경주 천년야행은 달빛 아래 천년고도를 걸어보는 코스로 신라 천년의 속살 같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마치 1500년 전 타임머신을 타고 간 기분이 든다. 천년야행은 첨성대 야경을 감상하고 안압지로 불렸던 동궁과 월지, 신라 궁궐이 있었던 월성 그리고 교촌한옥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첨성대로 돌아오는 코스로, 3km, 도보로 2시간이 소요된다. 신라 주사위인 주령구 모양의 등을 들고 옛 고도 경주의 밤을 밝히며 산들산들 걷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 신라인의 별 관측소, 첨성대 천년야행의 시작점은 별 관측대인 첨성대다. 7세기 선덕여왕 때 조성되었으니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바닥이 정사각형, 몸통은 원형,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신라 사람들의 우주관을 말해주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지름이 점차 줄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돌 하나하나에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1미터짜리 정사각형 문을 중심으로 각각 위아래 돌이 12단씩 쌓여 있다. 이는 1년 12개월을 나타내며 위아래 24단은 24절기를 의미한다. 이곳에서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고 날씨를 예측해 농사에 적용했다고 한다. 별관측대이니만큼 밤에 봐야 그 진수를 맛 볼 수 있다. 첨성대의 자태를 바라보며 신라판 어린왕자를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첨성대에서 동궁과 월지까지는 온통 꽃천지다. 봄에는 유채,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메밀꽃이 반긴다. 한 여름 찾으면 은은한 연꽃향기가 발목을 놓아주지 않는다. 달빛에 비친 연꽃의 자태는 고귀함 그 자체다. 백련과 홍련 그리고 수련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연꽃 단지 옆으로는 부용화 단지까지 있어 함박웃음을 터트린 꽃을 보면 가슴마저 환해진다. 경주 최고의 야경, 동궁과 월지 월지는 부여 궁남지와 함께 최고의 옛 정원으로 꼽히는 곳으로,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왔다고 해서 ‘안압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달이 연못을 하얗게 비추고 있으니 ‘월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신라왕궁의 별궁이며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때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발굴 당시 낙타와 같은 외래 동물의 뼈 등이 출토되었다고 하니 그 궁금증을 더해준다. 경순왕이 고려 왕건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귀빈 접대장소로 추측된다. 곡선의 연못과 직선의 건물 그리고 빼곡한 솔숲이 조화를 이룬다. 황금빛으로 물든 노을도 아름답지만 야간에 건너편 솔숲에 서면 건물 3동이 연못에 반사되어 상하 대칭인 데칼코마니가 연출되는데 경주 최고의 야경으로 손꼽힌다. 문무왕 이야기를 담은 1인 인형극 공연은 아이들이 좋아한다. 신라의 궁궐터, 월성 월성은 신라시대 궁궐이 있었던 자리로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반월성’ 또는 ‘월성’이란 이름을 얻고 있다. 이곳은 국가를 통치하는 중심지이자 신라 천년 동안 왕이 주거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구릉에 자리 잡고 있어 경주 분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월성을 중심으로 남천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다. 동, 북, 서쪽으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인공 도랑인 해자를 파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만파식적을 보관했던 보물창고인 ‘천존고’가 있었다고 하니 그 건물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지금 발굴 작업이 한창인데 매주 금요일 2시에서 5시까지 개방하며 현장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조선시대 건물인 보물 제66호인 석빙고도 볼 수 있다. 5개의 아치형 기둥 사이에 장대석이 걸려 있으며 현존하는 석빙고 중에 가장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건물을 보기만 해도 냉기가 나오는 듯하다. 김알지의 탄생설화, 계림 월성을 빠져나오면 짙은 숲이 가로막는데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묻어 있는 계림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숲에서 닭울음소리가 나서 가보니 나무에 황금상자가 걸려 있다. 상자를 열어보니 얼굴이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금궤에서 나왔으니 성은 金 씨가 되었고 알에서 태어났으니 이름은 ‘알지’가 되어, 오늘날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닭이 울었다고 해서 숲 이름도 계림(鷄林)으로 바꾸었고 초창기 신라의 국명이 되었다.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숲으로 지금도 고목이 빼곡하다. 어떤 나무에 황금상자가 걸렸는지 한번 골라보면 어떨까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 월정교 궁궐인 월성의 서쪽 끝에 위치한 월정교는 남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남산과 왕궁을 잇는 교통로로, 왕의 드나드는 다리답게 화려하게 꾸며졌다. 이 멋진 다리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가 묻어 있다. 미친 사람 행세를 한 원효는 거리에서 외치기를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나에서 주시오.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만들겠노라.” 당시 경주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태종무열왕은 그 뜻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자루 빠진 도끼는 '과부'이자 딸인 요석공주를 말하며, 하늘을 받칠 기둥은 인재의 탄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에 태종무열왕은 묘안을 짜냈다. 관리를 시켜 원효를 불러들여 월정교 아래로 일부러 떠밀어 옷을 적시게 한 것이다. 원효는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공주가 살고 있는 요석궁으로 들어가 꿈같은 열흘을 보낸다. 10달 후 하늘을 받칠 기둥이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신라 유학의 대가이자 이두를 만든 설총이다. 경주 명문가, 최부자집 요석궁이 있었던 자리는 현재 경주 최부자집 한옥이 대신하고 있다. 400년간 12대에 걸쳐 만석꾼을 유지했고,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한 명문가다. 그러나 400년을 이어온 부는 12대 최준에 이르러 마감이 된다. 막대한 독립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보냈고 또 나라를 빼앗긴 것은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여겨 전 재산을 영남대학을 설립하는데 보탠 것이다. 고택 안에는 구멍이 뚫린 쌀통을 볼 수 있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가풍을 말해주듯 과객이 쌀을 한 줌 집어 들고 하인 집으로 가면 잠자리와 식사가 제공했다고 한다. 과객이 두 손을 넣고 쌀을 많이 움켜쥐면 손이 빠지지 않아 반드시 한 손으로 밖에 집을 수 없으니 욕심을 버리라는 고귀한 정신이 배어있었다. 달 밝은 밤에 서라벌을 노닐어보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여행팁 천년 야행 일정 : 7월~9월(20시~22시) 문의 : 경주문화원 054-743-7182 홈페이지 : http://www.gjucc.or.kr 왕의 길 코스: 첨성대-공궁과월지-월성-교촌한옥마을(2시간 소요) 내용:야경과 유적에 담긴 신라역사와 야설 등의 해설을 들으며 답사 기행 맛집 이풍녀구로쌈밥 쌈밥정식(054-749-0060 대능원), 삼릉고향칼국수 우리밀칼국수(054-745-1038 삼릉) 요석궁 한정식(054-772-3347 교동) 교리김밥 깁밥(054-772-5130 교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