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한 음악을 철로 위로 깔며 관객을 과거 속으로 몰아넣는 영화. 나는 ‘박하사탕’을 몇 번이나 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내 이해 상자는 감독이 드러내고자 했던 주제를 끌어들이지 못한 채 텅 빈 느낌이다. 소설가 출신의 이창동 감독의 어떤 난해한 소설처럼 주제찾기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7,80년대의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 그런 시대적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 평범한 청년이 뜻하지 않게 시대의 희양생이 되어 겪는 내면의 갈등을 찬찬히 그린 영화다.
애인 순임으로부터 온 편지에 한 알씩 동봉된 박하사탕. 시위 진압을 위해 야간 비상출동이 걸린 어수선한 내무반. 군장을 꾸리다 관물대에서 튀어나온 박하사탕 무더기가 고참의 군화에 무참히 짓밟히고. 미처 챙길 겨를도 없이 내무반을 뛰쳐나가는 이등병 영호의 바쁜 눈빛. 산산조각난 박하사탕은 지순하기만 했던 그들 사랑의 아픈 균열을 예고한다.
하필이면 비상이 걸린 날 면회온 순임을 출동하는 트럭 안에서 우연히 목격하고 멀어지는 그녀를 애타는 눈으로 쳐다보는 영호. 시위대를 쫓던 동료의 오발로 발목에 총상을 입는다. 어둑한 밤, 기차 기지창 구석에 퍼질고 앉아 군화를 거꾸로 쳐들고 피를 쏟는 영호. 그 극도의 불안과 당황 속에 어이없게도 한 여고생을 죽이게 된다. 이 또한 오발이었다. 기지창 모서리에 서 있던 그 소녀가, 집으로 귀가중이던 그 소녀가 하필 그 때, 피범벅이 된 군화를 들고 당황과 불안에 떨던 영호의 눈에 순임의 환영으로 비쳤던 것이다.
죽은 소녀를 무릎에 뉘고 이리처럼 울부짖는 영호의 영혼은 그 때부터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총알은 소녀의 머리뿐 아니라 영호의 가슴에도 또렷이 박힌 것이다. 치유하지 못할 상흔으로, 삶의 멍에로 가슴 깊이 얼룩져 버렸다. 이를 계기로 영호는 순임을 가슴에서 지우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음산한 음악은 또 한 번 우리를 과거 속으로 몰아넣는다.
보안과 형사가 된 영호는 한 시국사범의 고문을 떠맡는다. 그가 군대 가기 전 나이 또래의 젊은이다. 그 청년에게서 영호의 구로공단 직공 시절의 순수를 발견한다. 혐의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안다. 그러나 허위자백을 받아 내기 위해 고문을 해야만 하는 영호. 거짓을 불어라고 다그치던 영호는 급기야 이성을 잃고, 고문 받던 청년은 누런 똥을 바지에 싸고 만다. 자신의 구로공단 야학 시절과 별반 다른 것 없는 청년의 모습. 빨리 자백해야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연민과 동정에서 비롯된 과격한 고문행위였다.
가학성은 마조히즘적 자기 학대에서 나오기도 한다. 슬퍼 펑펑 울고 나면 되레 기분의 상쾌함을 맛보듯, 자신을 고통 속으로 참담하게 몰아넣다 보면 그 반작용으로 타인을 가해하고 싶은 힘이 생긴다. 영호는 이 힘에 의지하여 고문했다. 인권은 남의 나라 얘기인 듯, 사상의 자유가 설 땅이 없는 암울한 시대. 그 희생양은 비단 청년뿐 아니다. 이유 없이 고문해야 하는 영호도 엄연한 피해자다. 군대의 상흔으로 한껏 피폐해진 영호의 가슴에 그나마 형해만 남은 순수를 시대와 국가가 합작으로 잠식하고 갉아먹은 셈이다. 오랜 시간 후 우연히 식당에서 그 청년을 만난 영호는, 엉뚱하게도 “삶은 아름답다”며 계면쩍어 한다.
순임은 오래 전 비상출동하던 날 선물로 갖고 갔던 카메라를 들고 영호를 찾아온다. 군 입대 후 형사가 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영호를 찾아온 것이다. 함께 들풀을 찍으며 소원해진 둘 사이를 이어 보려는 작은 몸짓이다. 야생화 촬영은 군대 가기 전 영호가 절실히 해보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영호는 엉뚱하게도 식당 처녀 홍자의 엉덩이를 치근대며 순임을 외면한다. 쓸쓸히 돌아서는 순임. 오랜만에 이뤄진 둘의 만남은 사실상 이것이 마지막이다. 순임을 사랑하지만 돌려보내는 이 거부는 영호가 홍자의 순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부와 궤를 같이 한다. 이 두 거부는 결국 자기연민이요, 영호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부정에 귀착한다.
나는 이 부정에 의미를 두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또 하나의 자신을 키우며 산다. 태고의 아담 때부터 자리잡은 ‘양’ 외에, 언제부턴가 눈을 번뜩이며 그 양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리' 한 마리를 가슴 한켠에 키우고 산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양과 이리. 우리는 사람의 이런 가슴을 다중적 인격, 가변적 인간상 또는 가식, 거짓이라 허울좋게 부른다. 너나없이 이런 이중성을 생활에서 천연덕스럽게 행하고 있다. 하지만 영호는 그러지 않았다. 순수를 잃은 피폐한 정신과 삐뚤어진 성격 그리고 어느덧 변질된 자신, 이미 내면 깊숙이 다른 모습으로 똬리를 튼 그 ‘또 하나의 영호’가 겉으로 내비친 자신을 마냥 좋아하는 단발머리 처녀의 순정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고, 또한 순임에게 그렇게 쓸쓸히 등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거부의 시작과 끝에는 자신에 대한 부정이 있었고 이는 곧 양심이다. 난 영호의 이런 벌거벗은 양심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다.
음산한 음악은 또 한 번 관객을 과거 속으로 데리고 간다.
식당 앞 넓은 공터에서 자전거로 맴돌던 영호가 갑자기 식당 안으로 돌진하며 군대의 악몽을 떠올리는 장면은 오히려 처연하다. 식당에서 새어 나온 노랫소리가 영호를 자극한 것이다. 사내 몇이 젓가락 장단에 맞춰 부른 노래는 군대 가기 전 순수하기만 했던 청년 영호가 자주 불렀던 노래다. 군대에서의 상흔 그리고 노동자와 대학생에 대한 죄책감 없는 고문. 너무나 변해버린, 어느 순간 전혀 엉뚱한 사람이 돼 있는 자신을 보는 자괴감이 그를 미치도록 괴롭힌 것이다. 영호는 닥치는 대로 기물을 파손하고 식당 손님을 대걸레로 때리며 자학한다. 그렇게 난동을 부리면 자신의 과거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것처럼. 식당에서 대걸레를 든 채 허공을 바라보며, “열중쉬어, 중대차려, 뒤로돌아” 외치던 영호의 눈빛은 어느 곳에 닿아 있었을까? 시대와 국가(군대, 경찰)에 의해 오염되기 전의, 다리 밑 강가에서 순임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시절의 영호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날 밤 영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홍자를 품에 안는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어느 날 밤, 군산의 한 시국사범을 체포하기 위해 잠복중이던 영호는 틈을 내어 허름한 바(bar)를 찾는다. 군산은 순임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 밤비, 고적함, 어두침침하고 고풍스런 바, 술, 젊은 여주인, 군산. 이들이 함께 연출해 낸 것일까. 영호는 첫사랑 순임이 생각나 몸부림친다. 어느덧 순임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황폐해진 자신을 느끼고 그녀에게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던 영호. 그 안타까움을 알몸으로 부딪치며 연민으로 끌어안으려는 술집여자.
“아저씨, 오늘 밤 제가 아저씨의 첫사랑이 돼 줄게요.”
그녀는 그날 밤 순임이 된다. 그녀가 순임이 되어 영호를 품에 안은들 숯검댕처럼 새까맣게 탄 속을 어루만져 줄 순 없었다.
“순임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베갯잇을 적신 한 웅큼의 눈물은 순임에 대한 진득하고 안타까운 사랑이라기보다, 동심 같은 순수, 즉 오염된 자신의 가슴을 박하사탕처럼 하얗게 씻고 싶은 갈망을 나타낸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긴 시간의 터널을 뚫고 나온 기차는 이제 더 이상 과거 속으로 달리지 않는다. 어떤 야유회에 참석한 영호는 중년의 모습으로 철길 위에 서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철교 난간 위에 서 있는 영호. 기차가 철컹철컹 그의 앞으로 다가올 때 포효하듯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는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처음의 장소 그러니까 군인이 되고 경찰이 되기 전, 국가의 힘에 의해 오염되기 전의 순수로, 그 깨끗한 영혼으로, 그래서 순임을 만날 수 있고, 카메라로 들풀을 찍을 수 있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아니 어쩌면 영호의 그 외침은, 꿈과 야망, 사랑과 젊음을 잃어버린 오늘의 중년들이 그것들을 모두 갖춘 청년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댓글 박하사탕은 저도 참 많은 것을 느끼며 보았는데, 무엇 보다도 설경구의 연기에 몸서리를 쳤던 기억..초록 물고기가 이창동 감독 작품(글)이던가요? 좋은 영화는 역시 많은 것(좋은 작품, 좋은 감독, 좋은 배우)들이 모여야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무척 정확하게 꿰뚫어 낸 평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건필을^^*
나두 님처럼 늘 긍정적인 맘을 가질 수 없을까..^^*
모르겐님은 참 부지런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겁니다. 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그 나태하지 않음을 반석으로 하는 마음의 열정이 때로는 질투가 납니다. ^^ 비가 오는군요...
기네비아님, 올해의 신조가 "열심히, 부지런히 살자"입니다..글로 인해 님이 느끼는 것과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걸 부끄럽게 말씀드립니다..우쨌든 좋게 봐줘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