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문예회관에서 올드마린보이를 2천원에상영한다고 문자가 왔다.
전날 행정실장 송별회에서 늦게까지 마신 술이 몸을 무겁게 해 잠을 부르지만
그 영화를 찾아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만든 진모영이라는 이가 감독 등이다.
가는 길에 배추도 주울 겸 영화를 보기로 한다.
강의나 강연을 찾아다니고 공연을 함께 보면서 문화생활을 한다고 한다.
두 시간 내외의 강연이나 영화 관람이 나를 살찌우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남의 도움?을 빌어 문화를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고전 한 구를 베끼며 외워 익히는 것이 내가 더 쉽게 할 일 아닌가?
물론 강연자의 경륜이나 그 상황과 분위기 등이 갖는 특성을 모르고 하는 무식한 말이지만.
남이 하는 걸 따라하는 그래서 인문이라는 것도 적당한 치장으로 소비되는 이 시대 군상들과
나는 뭐가 다른가?
읍에서 국밥이나 콩나물 국밥을 먹을까 하다가 남은 국과 반찬이 많아
저녁밥을 뎁힌다.
6시가 다 되어 차를 끌고 나오니 사위는 어느 새 어두워졌다.
동지가 지났다지만 해는 아직 길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 배추밭은 보이지만
차를 세우고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
군청 앞 길 가에 차를 세우고 현금을 2천원 주고 표를 산다.
4층 도서관에 올라 녹색평론을 한 편 다 못 읽고 내려온다.
영화는 탈북자로 동해 휴전선에 가장 가까운 대진항에서
머구리를 하는 50살 남자의 이야기다.
납덩이를 발과 가슴 앞 뒤로 달고 우주인이 쓰는 헬멧을 덮어쓰면
자기 몸무게 만큼의 무게가 더해진다. 배에서 압축해 보내주는 공기를
호스를 통해 숨쉬며 30m 바다 바닥에서 작업을 한다.
커다란 문어와 싸움을 하고, 초보자는 성게에 쐬기도 한단다.
자칫 줄이 잘못 꼬이기라도 하면 물 위로 떠 오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저승에서 돈벌어 이승에서 쓴다느니,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왔다갔다 한다느니 한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남자의 몸부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탈북민들이 겪는 아픔도 이해가 된다.
이 미제 앞잡이 자본주의 경쟁 극한의 남한 사회는 탈북민을 노동력 제공자로 보다가
힘들게 돈을 벌어 살만하면 제어하려고 한댄다.
배의 이름이 청진호인데 북의 고향이다. 횟집 이름을 지을 때도 그들의 고민이 보이는데
나중 붙인 이름은 청진호횟집이다.
횟집에 손님이 없을 때 형제 친척도 없고 학연 지연도 없는 설움이 느껴지기도 한단다.
탈북민 단합대회에서 '아, 대한민국'을 부르는 이는 정말 우리 남한을 자기의 조국이라고 여길까?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조국이 되어주는가?
북에서 20년 군생활을 해서인지 몸이 탄탄하다.
바닷속에 들어가기 위해 틈나는대로 운동을 한다. 물 속에서는 아프지 않은데
물 밖으로 나오면 아프다고 한다.
아들 둘의 이야기도 좋다. 큰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배를 몰고
엄마를 닮은 작은 아들은 대학원 공부 등을 더하겠다고 하며, 호주로 어학연수를 간다.
작별식사에서 '브리즈번을 위하여' 건배를 할 때엔 나의 둘째도 잘 지내는지
마음 속으로 건배에 동참한다.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고 같이 일하고 또 속상하고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의 삶이 아닐까?
남에도 북에도 발견되면 안되는 배를 타고 오던 날의 이야기를 할 때엔
김종삼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죽음의 공포를 난 언제 어떻게 겪었던가?
박명호 그가 아들 철준과 머구리를 건강하게 더 오래까지
할 수 있기를 빈다.
어느 때 동해 북방 대진항에 가면 청진호횟집을 찾아봐야겠다.
집에 돌아와 진모영을 찾아보니 70년생에 해남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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