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신입회원 추천작품 -1,-2＞

[최상대]

<영남수필문학회 신입회원 추천 작품-1>

                                   산수유

                                                                                                                               김 남 희

돌담으로 둘러싸인 골목길로 접어든다. 회색 돌담을 병풍 삼아 산수유의 붉은 빛이 도드라져 보인다. 찬 서리 겨울바람에도 빨갛게 매달려 있다.

시어머니는 군불을 지핀 사랑방에서 산수유를 말리곤 했다. 철 지난 달력을 펼쳐놓고는 씨를 뺀 핏물 같은 산수유를 매만졌다. 달력 한쪽에는 반쯤 건조된 산수유가, 다른 한쪽에는 씨를 막 도려낸 산수유들이 누워 있었다. 붉은 옷을 벗은 갈색 씨들은 거친 파도에도 끄떡없는 절벽처럼 단단했다. 몇십 년이 흘러야 흙으로 돌아갈까. 썩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픈 부위를 도려내는 능숙한 의사처럼 어머니의 손은 재바르고 날렵했다. 풀이 죽은 산수유 열매에서 씨와 피부를 갈라내는 일은 어머니에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손은 이미 산수유의 흔적들로 뒤덮여 있었다. 저녁노을처럼 붉게 퍼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짙어지는 어둠처럼 어머니의 손도 노을빛에서 짙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굵게 파인 굳은살 사이로 산수유물이 거세게 스며들어 있었다.

삐거덕거리는 대문 소리가 나자 어머니는 바람 소리인지 며느리가 오는 기척 소리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산수유물이 든 검은 손으로 흰 창호지 빗살무늬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기며, 서울에서 내려오는 며느리를 반갑게 맞았다. 달력 위에 누워 제집처럼 차지하고 있는 산수유를 밀어내고 구들목으로 며느리를 당겨 앉혔다.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며느리는 시댁을 자주 오지 못했다. 직장까지 겸하고 있어서 주말이나 되어야 군위 한밤마을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것도 지하철, 기차, 시내버스, 시외버스 등 바퀴 달린 모든 것들을 총동원하여 저녁나절이나 되어서야 시댁 문을 열었다. 그런 수고로움을 알기에 어머니는 산수유를 까며 이제나저제나 며느리를 기다리다가 구들목을 차지한 산수유를 단박에 밀어내고 며느리를 끌어 앉힌 것이다.

시집온 첫해에 며느리는 산수유를 몰랐다. 빨갛게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가 그리 고울 수가 없어 그림을 감상하듯 마당 옆 담벼락 사이로 산수유를 올려다보곤 했다. 한 겨울, 잎 하나 없는 가지에 열매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참 신비로운 것이라 여겼다. 어머니는 산수유를 말린 차를 온갖 약나무와 함께 끓여 물 대접에 내어왔다. 감기에 든 며느리를 위해 꿀까지 얹어 내어온 것이다.

며느리는 산수유와 약나무를 끓인 물 대접을 받아들며 이상하고 시큼한 그 맛에 미간을 찌푸렸다. 물 대접에 어머니의 모든 정성이 녹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서울에서 시골까지 내려오며 걸린 시간만큼 물 대접에 공을 들였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어머니가 마당으로 나가 산수유를 딸 때는 며느리도 따라나서 거드는 시늉을 했다.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를 쳐다보며 산수유를 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고개도 아프고 어깨도 저려 왔다. 어머니는 장갑을 벗어 던지며 능숙하게 산수유를 따 모았다. 장갑을 벗은 어머니의 손은 삽시간에 발갛게 물들었다. 가시에 찔린 핏물인지 산수유 물인지 모를 붉은 색들이 어머니의 언 손 위에 흘러내렸다. 며느리의 손도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게 변한 손을 보고 며느리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어머니는 슬며시 비누와 수건을 내어 주었다.

며느리는 다시 산수유 씨를 발라내는 일을 돕겠다며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씨와 껍질을 가르는 일도 나무에서 산수유를 따 모으는 일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산수유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은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는 것과도 흡사했다. 씨에 붙은 단단한 먼지들을 털어내고 깨끗한 마음들을 모아 새롭게 굳히는 작업 같았다. 내가 마신 물 대접에 반도 못 채운 며느리는 삭신이 쑤셔왔다. 며느리에게는 더 할 수 없는 힘든 노동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겨우내 산수유를 따고 말리는 노동을 견뎌 내었다. 삶의 무게를 받아내듯 묵묵히 겨울을 산수유와 함께 보낸 것이다. 어머니는 손톱만큼 단단해진 산수유 육질을 시골 장에 내다 팔았다. 서울 가는 며느리 가방 속에도 잘 말린 육질을 쟁여 넣고 그 속에 꼬깃꼬깃 접은 돈을 차비라도 하라며 묻어 두었다. 겨우내 산수유를 팔아 번 돈이었다.

딸로 산 세월보다 며느리로 산 세월이 더 많은 지금, 며느리가 시댁을 찾는다. 회색빛 돌담 이끼마저 마른 골목을 돌아 어머니가 없는 빈집에 들어선다. 마당 옆 오래된 산수유나무만이 열매를 매단 채 우두커니 빈집을 지키고 있다.

며느리는 뒤뜰에서 사다리를 가져와 나무 위에 걸쳐 놓는다. 혼자 집을 지키며 열매를 맺은 산수유를 바가지에 따 담는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 붉은빛 열매가 박바가지에 그득하다.

며느리는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산수유차를 만들 생각이다. 꽃처럼 피어나 씨앗처럼 단단한 삶을 살아 온 어머니를 위해 온갖 약나무와 산수유를 넣어 어머니가 그랬듯 오랜 시간 달여 보리라. 어머니의 그릇, 물 대접에 담아 따뜻한 차 한 잔 데워 드리리라.

잠깐 사이 며느리의 손에 붉은 물이 흐른다. 가시에 찔린 핏물인지 붉은 산수유물인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빈집에 훈기가 돈다.

<영남수필문학회 신입회원 추천 작품-2>

                                 상여소리

                                                                                                    김 남 희

어허 어허 너하 넘차 어하

어허 어허 너하 넘차 어하

북망산천이 머다 더니

내 집 앞이 북망 일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 주오

어허 어허 너하 넘차 어하

~

   상여소리다. 산자를 위로하고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노래, 이승과 저승을 잇는 마지막 의식의 노래다. 아버지의 꽃상여를 앞세우며 산으로 향한다. 상주들의 곡소리에 상두꾼들의 상여소리가 더해 하늘과 땅 사이로 울려 퍼진다. 푸른 하늘도 차가운 엄동설한이다. 상복을 입은 채 아버지의 관을 뒤따른다. 상여소리에 울음을 삼키며 선소리꾼을 바라본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선소리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꽃상여 속의 아버지와 북을 잡은 선소리꾼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마침내 꽃상여가 곡소리와 함께 일어선다.

   아버지는 선소리꾼이었다. 신을 부르는 북을 치며 상여가 나갈 때 상두꾼을 이끄는 선소리꾼. 아버지의 구슬픈 목소리가 메기는소리를 하면 상두꾼들은 받는소리를 했다. 아버지와 상두꾼들은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호흡이 척척 맞았다. 상여가 나가는 날이면 온 마을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아버지는 모내기를 위해 놉을 맞춰 놓은 날도,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도 상여가 나가는 날이면 뒤로 미뤘다. 심지어 몸이 아파 몸져누운 날도 상여가 나가는 날이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동네에 초상이 나면 제일 먼저 상주들은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가 없는 날이면 아주 난처해했다. 먼 이웃 동네에서 선소리꾼을 데려오거나 그것도 여의찮으면 장례 날짜를 아버지가 있는 날로 하루나 이틀 정도 연기하는 듯했다. 죽은 자를 저승으로 데려다주는 길잡이가 아버지밖에 없는 듯 사람들은 초상만 나면 아버지를 찾았다.

   북을 들고 상여의 선두에 선 아버지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앞에 선 사람이 아버지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는 단걸음에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상여 앞에 선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오기를 떼를 쓰며 졸랐다. 상여는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이 지나가는 자리, 맨 앞에 서 있는 아버지를 보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어머니도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았으나 내색하지 않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상여가 나가는 날이면 나는 담벼락 사이로 상여와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가까이 가기엔 너무 무서웠으나 멀리서 보기엔 색색의 꽃상여가 서럽도록 아름다웠다. 거기다 아버지의 소리는 신의 소리처럼 신비롭기까지 했다.

   둥둥거리는 북을 치며 아버지는 상여를 이끌었다. 이마엔 겨울이라도 땀방울이 맺혔다. 아버지의 소리는 북소리와 어울려 하늘 높이 빨려들었다가 붉은색 만장을 휘감으며 사방으로 퍼졌다. 상주들은 아버지의 소리가 울음을 부르는 무슨 주술이라도 되는 듯 흐느끼며 슬픔의 격정 속에 빠져들었다. 돌다리를 건널 때는 조심스러운 북소리를 냈으며 가파른 산기슭을 오를 때 있는 힘껏 북소리를 울렸다. 평지를 걸을 때는 텅 빈 가슴을 후벼 파듯 망자의 삶을 노래했다. 망자의 한을 달래고 산자를 위로하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3일 만에 장례를 치른다. 발인일이 다가오자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선소리꾼 아버지가 없는데 장례가 가능할까? 상여의 길잡이는 누가 하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슬픔 그 이상에 빠진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할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잘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선소리꾼이 없으면 장례를 못 치르니 아버지를 오래 집에 두고 볼 수 있어 좋다고 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소리를 하러 다시 살아나실지도 모를 일이다. 손님들이 와서 곡을 할 때도 문득문득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북을 잡은 선소리꾼은 분명 아버지가 아니었다. 상여를 뚫고 관 속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와 소리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또 다른 선소리꾼을 보자 허망하게 무너졌다. 비로소 절망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부재를 눈물이 알아차린 것이다.

   죽음은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지만, 누구나 피하지 못하는 인생의 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은 시작된다. 끈을 붙잡고 살다가 주어진 만큼의 길이에 도달하면 누구나 그것을 놓아 버린다. 북망산천이 바로 내 집 앞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아버지는 그것을 알기에 혼신의 힘으로 망자를 이끈 것은 아닐까. 만사를 제쳐놓고 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는지도 모른다. 상여를 화려하게 치장하여 노래를 불러 죽음의 두려움을 벗어나게 하려는 것은 망자도 산자도 함께 바라는 일일 테다.

   백 년 집을 이별하고 만년 집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꽃상여가 장지에 닿았다. 아버지라면 자신의 상여 행렬에 어떤 소리를 할까를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원통해할까. 육 남매 자식들을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먼저 떠나 미안해할까. 열심히 살았노라 후회 없이 살았노라 노래를 부를까. 한평생 남을 위해 살았으니 천국 간다 자랑할까. 망자들의 길을 열어 줬으니 친구가 많다 할까.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느라 늦게 염한 아버지의 관을 땅에다 누인다. 극락왕생을 빈다. 저승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기를. 달구질하는 노랫소리에 맞춰 흙을 다진다. 새끼줄에 걸린 노잣돈이 바람에 펄럭인다.

닭아 닭아 우진 마라 오오오오 달구요오

니가 울면 날이 샌다 오오오오 달구여오

날이 새면 나죽는다 오오오오 달구여오

애지중지 나를 길러 오오오오 달구여오

~

날이 저문다.

------------약력-----------------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에세이아카데 미 회원, 수필집 <푸른 별 지구>

[이미영]

김남희선생님의 이야기에는 좋은 사람의 지문이 콕 찍혀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수필을 쓸 수있는 정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김미옥]

김남희 선생님의 좋은 수필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을 먼 발치서 뵈었는데 말 한마디를 못 건넸네요. 영남수필에서 함께 하게 되어 더욱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