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8일은 충무공 탄생 476주년 되는 날이다. 조선왕조 518년 사직을 돌아보면 세종과 이순신이 선두에 있다.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약관 21세에 왕위에 올라 훈민정음을 비롯한 문물 정비로 조선의 기틀을 놓은 이도(李祹) 세종. 조선 초기 정비되지 않은 국가의 기틀을 다져 후세 왕들의 모범이 된 인물 이도. 그는 당 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늦깎이로 과거에 급제한 이순신은 몇몇 난관을 뚫고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거북선을 건조한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이후 전공을 세운 그는 1593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 총사령관에 오른다. 그 후 이순신의 행적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백의종군하던 그는 전함 12척으로 적선 133척과 맞붙어 승리하는 ‘명량대첩’을 진두지휘한다.
2014년 7월 30일 개봉된 <명량>은 1,762만의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게 한다. 왜 <명량>에 수많은 관객이 몰렸을까, 하는 의문은 같은 해 4월 16일 온 국민을 낙담과 절망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가 대답한다. 안산 단원고교 250명 학생을 포함한 305명의 귀한 생명을 수장(水葬)시킨 씻을 수 없는 ‘국가범죄’가 21세기 첨단정보통신 국가에서 발발한 것이다.
실시간 중계된 ‘세월호 대참사’는 우리에게 국가의 부재와 권력자의 실종이라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빤히 보이는 배에, 서서히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죽음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치를 떨어야 했다. 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권력이란 또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도록 만들었던 해양 참사가 우리를 바닥 모를 추락으로 인도했다.
<명량>에서 이순신은 ‘충’에 관해 맏아들 ‘회’와 나누는 대화에서 결연히 말한다.
“충(忠)은 의리(義理)다. 의리는 왕이 아니라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누란지위의 백성을 지켜낸 이순신의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것이었다. 이순신의 생각과 실천이 임진왜란의 극복으로 나타났다면,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충이 없는 대통령의 권력 유희였다. 현대국가 존립의 첫 번째 근거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국가로 불리지 못한다.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의 권력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 있다.
국가의 이름으로 국난극복의 선두에 섰으되, 파직과 고문을 겪어야 했던 이순신. 모친상도 치르지 못한 채 백의종군에 임해야 했던 이순신.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끌어낸 이순신. 그런 지도자를 염원했던 사람들이 <명량>에 환호했다. 충무공의 탄신을 맞이하여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는 난관의 중심에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자리해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떠올리는 것이다.
<경북매일신문>, 2021년 4월 28일자 칼럼 ‘파안재에서’
첫댓글 12척으로 133척, 규모 말고 배의 질은 어떠했을까요,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런 불필요한 질문도 해봅니다. 하늘로 머리둔 사람이라면 23전 23승을 이해할 수 없을 겝니다. 교과서는 이를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면서 도무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입니다. 기적 아니면 불멸의 이순신 이라는 개념으로 가르쳐도 될까요. 정통 역사에 기록되는 모든 것은
인간정신의 승리, 그 인간정신이란 집단지성을 이룰 수 있는 정신을 지칭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이름을 주어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렇게 기록되어야 역사이고 무엇보다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3전23승, 명량대첨을 그 때 그 곳, 온 마을과 온자연물과 온개성과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과 애민이 만들어낸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도 마찬가지이고예. 그래야 지금 우리가 처한 난관을 풀어가는데도 희망을 가지고 고민하는 자세가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명량의 승리는 이순신 개인의 성취가 아닙니다. 명량대첩은 노를 젓는 격군과 전투병사, 휘하의 장수와 인근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이룬 일대사변입니다. 우리는 자칫 뛰어난 개인을 숭배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위대한 성취 뒤에는 반드시 조력자와 동시대인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동행합니다. 물론 영웅의 놀라운 지성과 성실성 그리고 헌신성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점에서 토마스 칼라일은 <영웅의 역사>에서 영웅의 조건을 '진실성'과 '성실성' 두 가지로 못 박습니다. 그는 인간의 역사를 영웅의 역사로 규정하고, 나머지는 그저 각론 정도로 치부하는 '영웅사관'의 맹신자이기는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영웅론에는 살펴볼 대목이 있는 것이지요. 여하튼 충무공의 놀라운 활약과 의병활동 그리고 명나라 구원군, 이 세 가지가 엮어져 임진왜란은 조선의 승리로 결말납니다. 제가 들여다보고자 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충'이 지향하는 궁극의 지향점입니다. 그것은 국왕이나 대통령 같은 권력자가 아니라, 백성과 국민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 실현된다면, 필시 지금처럼 혼란하고 이익에 함몰되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