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5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루가 11:37 ~ 54
숨 이병창
마하트마 간디가 가장 사랑한 인물은 그리스도 예수였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고자 했고 그리스도의 진리가 전해주는 빛을 사랑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이 되지 않은 이유는 주변의 기독교인들을 통해 나타나는 현실이 ‘예수의 진리에 대한 증거인가?’ 하는 의문에 봉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를 닮고자 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 그 이상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즉 하나님을 ‘나’라고 하는 존재의 가장 위 자리에 모시는 내적인 혁명이 전혀 없이 인간적인 것이 모든 것을 선점해 버린 교회 현실을 마주치게 된 것이다.
간디의 크리스챤 친구들은 ‘네가 예수를 믿는다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간디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모든 기독교도가 인정하는 그리스도성이라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내 죄의 결과로부터의 구원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 죄 자체로부터의 구원을 원한다.… 내가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나는 쉬지 못해도 좋다.… 단순히 기독교인이 된다고 천국에 가거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 (Louis Fischer, The Essential Gandhi)
@ 나는 불을 지르러 왔다
돌아보면 간디가 보았던 진실과 그의 고민은 나의 지난 세월을 관통하는 삶의 주제였다. 특히 목회를 하면서 끊임없는 화두 역시 이 주제였다. 열일곱 살에 만났던 나의 예수 역시 이 고민을 하면서 성장하셨다. 예수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 종교는 인간의 영혼을 깨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종교가 아니라 율법의 사슬로 인간을 칭칭 동여매는 종교였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세뇌하는 종교였다. 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망치는 종교였다. 예수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했다. 이는 구원은 예수에게서 찾아야지 종교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통찰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예수는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불을 뿜었다.
“너희 율법 교사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렸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루가 11:52)
예수는 스스로 폭탄이 되어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었고 환전상의 탁자를 둘러 엎었다. 예수는 당시의 현실을 눈뜨고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당시의 종교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오늘 한국 땅에 오신다면 오늘의 교회 현실을 어떻게 보실까? 광화문의 태극기 부대. 구원파. 신천지 집단만 문제일까? 예수만 믿으면, 우리 교회에만 출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죽은 뒤에 천국에 가게 될 거라는 구호에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실까.
간디는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샘물에서 길어 올린 사랑의 힘으로 인도를 해방시켰고 세계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우리가 그를 존경하는 것은 그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했고 진리를 따라 살려고 했고 악마적인 정치의 뱀과 싸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1947년 6월 30일 판 타임지 표지에 간디의 어록이 소개되고 있다.
“내가 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정치가 우리를 뱀의 또아리 처럼 휘감고 있어 거기서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뱀과 싸우고자 한다. 나는 정치에 종교를 도입하고자 한다.”
간디는 자신의 생명을 예수에게 배운 일체 악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의 제단에 바쳤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배워야 한다.
@ 배움과 실천
배움의 문을 활짝 열지 않은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진리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공허하다. 우리는 민들레와 진달래로부터도 배워야 하고 나비와 개미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배우려 하지 않는 교만한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요한은 예수의 백성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요한1:10-11) 오히려 예수를 핍박하고 죽였다고 고발하고 있다. 기존의 익숙한 관념과 전통적 교리와 제도 속에 젖어 있어 예수의 음성에 귀를 막은 채 대들었던 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더 열심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파고 들어가야 하고 보다 실천적인 삶의 변혁이 필요하다. 이현필 선생은 제자들에게 ‘파라, 파라, 깊이 파라’는 말씀을 주신 바 있다. 결국 우리 각자가 얼마나 깊이 파느냐에 신앙의 성패가 달려 있다. 우리는 어떤 다른 누구보다 우월한 사람이 되려는 목표를 세울 필요가 없다. 오직 겸손히 노력할 뿐이다.
@ 불재의 새로운 봄을 맞이하며
이제 새해가 되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졌다. 불재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3년 동안 불재에서의 생활은 내 인생에 마침표를 확신 있게 찍을 수 있도록 해준 은혜로운 공간이었다. 나는 열심히 찾았고, 일했고, 사색했다. 천정의 서까래 하나하나마다 나의 손때가 묻어있다. 불재의 공간은 여러분과 나에게 피차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공간을 새롭게 맞이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올해의 봄에는 진달래가 새롭게 변화와 도약이 있기를 바란다. 진달래의 미래는 어떤 미래이어야 하는가를 창조적으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이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으면서 꿈을 꾸어 보기를 제안한다. 금년은 토끼해라고 한다. 토끼는 위기에 처할 때 위로 도망간다. 그것은 앞다리가 짧기 때문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위험해진다. 어려울 때 도전하는 자세로 위를 바라볼 때 살길이 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