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와가(Wagah) 국경, 라호르(Lahore), 탁실라(Taxila)
파키스탄 전통 복장을 한 군인. 인도 군인들과 모양은 같으나 색깔이 다르다
국기 하강식 편집 동영상
와가(Wagah)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에서 매일 오후 한 차례식 열리는 국기하강식 행사는 과장된 양국 군인들의 코믹한 동작으로 유명해 자국민은 물론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최근 11월2일 파키스탄의 라호르 인근 와가(Wagah) 국경에서 국기하강식 직후 자폭 테러가 일어나 170여명의 사상자가 난 곳이다. 한달 반쯤 전 9월 15일 갔다온 곳에서 그런일이 일어 났다니 믿어 지지가 않는다.
라호르(Lahore)
파키스탄 펀자브주의 주도이고 카라치 다음으로 큰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이다. 라호르는 무굴 제국의 요충지로 무굴제국이 최초로 인도를 점령한 곳이다
16-17세기에는 무굴제국의 수도로 331년간(1582~1857) 번창했고 시내 유적 대부분이 무굴제국 때 세워진 것들이다.
라호르 성 입구
라호르성은 11세기 초까지는 힌두교도, 13세기 중반에는 몽골족이 머물렀고, 14세기 후반에는 티무르의 습격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무굴제국 3대 황제 악바르가 벽돌과 사암으로 성벽을 쌓았고 나중의 황제들은 성벽에 12개의 망루를 건설하였다.
악바르 대제 때 건축한 라호르 성, 샤 자한이 1641년에 조성한 샬리마르 정원, 아우랑제브 황제가 지은 바드샤히 모스크,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왕이 이곳 라호르 성에서 기도 하기 위해 바드샤히 모스크를 오갈 때 코끼리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계단은 코끼리가 다닐 수 있도록 폭이 넓게 설계되었다.
라호르 성벽 에서 바라본 건너편의 바드샤히 모스크(왕의 모스크)
지붕의 모양은 왕비의 모자를 형상화 했다고 한다.
벽과 천장에 수많은 거울조각을 붙여 장식한 샤 자한 왕비의 거실 쉬시마할(거울 궁전)
유리와 금박, 준보석과 대리석 칸막이로 반짝이는 쉬시마할은 1631년~1632년에 지어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샤 자한은 하늘의 별을 가지고 싶다는 왕비의 간청에 굴절율이 다른 수많은 유리 조각으로 어둠 속에서 조그만 불빛 하나로 반짝이는 별들을 만들어 주었다.
바드샤히 모스크(Badshahi Mosque)
건물외부의 붉은 사암은 인도 자이푸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며 내부에 만명, 광장에 9만명을 수용하는 가장 큰 모스크 중 하나이다.
라호르 박물관
1864년 영국 통치기간에 세워젔으며 뛰어난 종교 예술품울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간다라 불교 예술품중 "석가모니 고행상"(단식하는 부처상)이 유명하다.
간다라 미술(Gandhara Art)
파키스탄 북부, 대략 지금의 페샤와르에 해당하는 과거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BC 2세기∼AD 5세기에 번영했던 조각 위주의 불교미술이다. 동서 문화의 교류에 의해 생겨난 서방요소가 짙은 미술이다. 간다라 미술은 처음으로 불상을 만들어 정형화시켰는데, 이로 인해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의 불상 중심 불교미술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미술이다.
파키스탄의 전기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 관람 중에 정전으로 1시간 여를 기다렸으나 전기는 들어오지 않아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석가모니 고행상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길
파이살 모스크(Faisal Mosque)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Faisal의 기부로 1985년에 건축되었다. 10만명을 수용한다는 이 모스크는 모스크의 기본 구조는 지켜지고 있지만 현대적 면모는 매우 독특하다. 현대의 모스크 중 가장 큰 모스크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모스크 내부에는 중국이 기증했다는 둥근 모양의 거대한 샹들리에가 중앙 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기둥이 없이 만들어진 40m 높이의 천장이 인상적인데 이는 예배공간의 통일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탁실라로 가는 길
탁실라 (Taxila)
불교미술의 발상지인 간다라 지방의 중심지로 라왈핀디 북서쪽 35km 지점에 있다. BC 6세기∼AD 6세기까지 고대 서북 인도의 정치·경제·학술·교통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도시이다. BC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입을 받고 BC 3세기 중반 마우리아왕조의 통치 아래 들어 갔는데, 마우리아왕조 때는 아소카왕의 왕자 쿠나라가 통치하였다고도 한다. 1912∼1934년까지 영국 고고학자 J. 마셜이 지휘한 인도 고고국(考古局)이 이곳에서 도성터·절터 등 많은 유적을 발굴하였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
마케도니아의왕(BC356~BC323), 재위(BC336~BC323)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정복지에 다수의 도시를 건설하여 동서 교통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고,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다.
탁실라의 줄리안 유적
파키스탄 펀자브주(州) 탁실라에 있는 쿠샨왕조 시대의 사원으로 정문을 들어서면 안뜰이 있고, 가운데에 스투파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스투파가 있는 경내에는 지난날 승려들이 사용하던 식당이며, 주방, 강당 등의 유적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승려들이 머물던 승원 구역으로 한 칸에 한 사람씩 들어가 수행을 했던 곳이라 한다.
배꼽의 위치에 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기도하면 질병이 치유된다는 "치유의 붓다".
석가모니 고행상을 닮은 불상.
진흙으로 만들어진 탑.
거의 모든 조각의 머리 부분이 파괴 되어 있다.
파괴되지 않은 불상은 눈에 띄지않은 구석에 있던 것으로 진본은 탁실라 박물관에 있다.
탁실라의 시르캅(Sirkap)
파키스탄 펀자브주(州) 탁실라에 있는 제2의 고대 도시유적으로 높이 9m의 성벽이 5.5km에 걸쳐 축조되어 있는데, BC 2세기~AD 2세기에 번영했던 그리스 왕조와 쿠샨 왕조의 도시 유적이다.
성문으로 들어서면 너비 약 6m의 넓은 거리가 500m 가량이나 이어지고, 양쪽으로는 당시에 일반주택과 상점들이 그 위에 축조 되었을 석축토대가 늘어서 있다. 거리에는 돔 모양의 스투파의 유적도 있고 왕궁 유적도 남아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문화들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시르캅의 남북을 관통하는 주요 도로 양편의 건축물 유적지.
원형 스투파(Round Stupa)로 A.D..1세기에서 2세기에 만들어진 인도에서 온 불교나 자이나교의 탑이라고 한다.
시르캅의 대표 유적. 쌍두독수리탑 ( Double headed eagle stupa). 두개의 머리를 가진 쌍두독수리 조각이 있고 처마와 기둥의 모양은 그리스 의 영향을 받은 핼레니즘의 양식이다.
쌍두독수리탑과 비슷한 모양이나 규모가 적다. 사각 기단위에 원형 스투파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BC 1세기의 유적.
석가모니의 진산 사리가 묻혀 있다는 탑. 이 답을 7번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무더위 속에서도 열심히 돌고 있는 우리 일행들이 있다.
탁실라 박물관은 점심시간 이라서 문을 닫았다고 하며 입장불허라고 해서 아쉽다.
아보타가드(Abbottabod)란 곳을 지나서 과일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아보타가드는 2011년 5월2일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 씰에 의해 사살된 곳이라고 하여 슬그머니 치안이 걱정된다.
파키스탄의 베샴으로 가는 길에 잠시 주차중인데 동네 꼬마들이 몰려들어 이방인을 구경하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한 자동차들. 카라코람 하이웨이(KKH)로 중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화물차가 많다.
첫댓글 접하지 못했던 세계사 공부, 생소한 지명과 인명 등 많은 불교의 영향과 관계가 깊은 유적지와
석가모니의 고행 상, 치유의 붓다와 석가모니의 진산 사리 탑을 돌고 돌아 온 친구 내외 소원 성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