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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의 믿음과 사랑(몬 1:1-7)
할렐루야!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일본 지역에, 엄청난 태풍이 불어닥쳤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도 발생했다고 합니다. 큰 어려움을 당한 그들을 보면서, 마냥 좋아하고, 기뻐할 일만은 아닌 듯 합니다.
언제, 그런 재난이 우리에게 닥쳐 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이 성숙한 마음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행함으로 비난 받고, 책망 받는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들을 비난하고, 욕하기보다는 나에게도 그와 같은 잘못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어쩌면, 더욱더 성숙한 마음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비난보다는 용서와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네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입니다.
이 네 권의 책을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 썼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네 권 가운데,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는 바울이 교회를 향해 쓴 편지입니다만,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고자 하는 빌레몬서는 골로새 교회의 기둥이었던 빌레몬이라고 하는 신실한 기독교인을 향한 바울의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빌레몬서에 대해, “기독교의 진수가 담긴 책”이라고 말했고, ‘존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꽃처럼 피어있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빌레몬서는 한 장, 스물다섯 절 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책이지만, 기독교인의 진수인 믿음과 사랑과 용서가 담겨 있는 귀중한 책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인의 최고의 덕목이자, 재산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기독교인 중에 믿음이 좋은 사람은 많지만, 믿음도 좋고, 사랑도 많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믿음도 좋고, 사랑도 풍부한 사람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이고, 사랑은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빌레몬은 하나님과의 수평적 관계와 사람들과의 수직적 관계가 모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고, 성도들에게는 기쁨을 주었고, 사도들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빌레몬처럼, 믿음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위안을 주는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아멘.
바울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고 소개했습니다.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내 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내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누구나, 어려운 일들을 만날 수 있는데,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런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랑할 일이 아니라, 그것은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세간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들 중에, 어떤 이름은 부끄러운 이름이고, 또 어떤 이름은 자랑스러운 이름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어도, 예수님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어야 합니다.
내 죄와 욕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하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을 포기하고,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나는 죽고, 내 속에 예수님이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고 말했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실 때, 우리의 이름은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여러분! 빌레몬과 압비아는 부부관계요, 아킵보는 그들의 아들입니다.
주님 앞에 사랑 받는 주님의 일꾼이었던 남편 빌레몬! 그의 아내 압비아는 주 안에서 거듭난 신실한 성도이며, 든든한 믿음의 내조자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병사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빌레몬의 집은 주님의 몸된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빌레몬의 집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빌레몬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그의 집을 교회로 내어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빌레몬에게는 이와 같은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골로새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었습니다.
얼마나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입니까?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의 헌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 당시, 예루살렘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흉년인지라, 기근으로, 배고파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로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데,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위하여, 그들의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구제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바울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기대한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먼저 자신들을 주님께 바치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그들의 물질을 바쳤습니다.
부자여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해도, 힘들어도, 그렇게 헌신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의 헌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자랑할 정도였습니다.
마게도냐 교회와 성도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 당시, 교회를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행 2:33-47)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본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칭찬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마음 교회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칭찬받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4-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아멘.
여러분! 내 곁에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감사가 떠오릅니까? 아니면, 미움이 떠오릅니까?
그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끼치고,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라면, 미움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나에게 선을 행하고, 나의 마음을 항상 기쁘게 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사가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감사를 떠올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어떤 방법이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삶이 아니라, 선행과 유익을 끼치는 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저주와 비난을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미움을 받는 삶이 아니라, 존경과 칭찬을 받는 사람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 그리했을까요?
바울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빌레몬에게는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바울도 빌레몬에게,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고 말했습니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빌레몬은 하나님을 잘 믿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그때, 주 예수를 향한 큰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칭찬 받을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들과 더불어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안락한 삶을 누리던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것이나, 일시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꾸며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믿음과 사랑으로, 골로새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갔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기쁨과 위로를 받으며, 평안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골로새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빌레몬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집을 복음을 위하여, 내놓았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집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그곳을 복음의 전초 기지로 삼아, 열심히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만일 빌레몬이 없었다면, 어떻게 골로새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까?”
“만일 빌레몬의 집이 없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을까?”
빌레몬은 바울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없을 때에도, 한결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도 빌레몬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요한삼서를 보면,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향하여,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1절)고 말하면서,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3-4절)라고 말했습니다.
가이오는 나그네 된 자들에게 신실하게 행하였습니다. 사랑으로 대하였습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진리 안에서 행하는 가이오는 사도 요한의 기쁨이요 자랑이었습니다.
6절을 보면,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빌레몬아! 너의 그 믿음의 교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선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너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단다.”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바울 자신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빌레몬은 하고 있었습니다.
빌레몬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갔습니다.
그런 빌레몬을 보면서,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위로 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누군가에게, 아픔과 근심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빌레몬에게 왜 개인적인 편지를 썼습니까?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하여,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 감옥 안에서, 오네시모를 만났습니다.
오네시모는 원래, 골로새에 살고 있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는데, 어느 날, 주인의 귀중한 것을 훔쳐, 로마까지, 야반도주했습니다. 그는 흥청망청 살았습니다. 어느 날, 또 남의 것을 훔치다가, 잡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바울이 빌레몬의 집에 있을 때, 그때 만난 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건, 그는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그에게 복음을 증거한 바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정성껏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형기를 마치고, 감옥을 나가게 되었지만, 그는 바울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바울을 돌보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고 하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오네시모는 감옥 안에서 낳은 믿음의 아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곁에 계속 두고 싶었습니다.
오네시모만큼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정성껏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성 다하여 뒷바라지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말하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바울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종”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법적으로 말하면, 엄연히, 주인과 종 관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상태였습니다. 큰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의 소유물이라고 하는 것은 종의 생사권이 주인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법적인 관계는 바울이라고 해서,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오네시모를 골로새의 원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부탁을 하고자,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는 “갇힌 중에서 낳은 믿음의 아들”(10절)이라고 말했습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내 심복이라”(12절)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13-14절)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16-18절)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말했습니다.
오네시모는 예수님을 믿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무익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믿고난 후에는 누구에게나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주인을 버리고 도망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끝까지 바울을 곁에서 섬기고자 했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요, 심복이 되었습니다.
불성실하고, 불충성하고, 손해를 끼쳤던 옛날의 오네시모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로, 심복으로 삼을만큼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보내면서, 그를 맞이할 때, 종으로 맞이하지 말고, 바울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영접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바울은 빌로몬에게, 오네시모를 전과 같이 종으로 대하지 말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대하라고 말했습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를 사랑 받는 형제로 받아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내가 대신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변화된 오네시모는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빌레몬에게 부탁한 모든 것들을 따라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순종할 것을 확신했습니다.(21절) 뿐만 아니라, 바울이 부탁하지 않는 것까지도, 더 행할 줄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20절)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빌레몬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를 사랑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빌레몬은 용서와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빌레몬은 그에게 손해를 끼친 오네시모를 용서하였고, 종이었던 그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과 오네시모와 같은 믿음과 사랑의 사람들을 통하여, 든든히 세워져 갔습니다.
우리 한마음 교회도 믿음과 사랑의 사람들이 많아짐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거짓 믿음과 거짓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빌레몬과 같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은혜를 끼치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그런 믿음과 사랑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빌레몬과 같이 평안함을 주는 믿음과 사랑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의 주님!
주님 앞에 나와, 은혜를 기다리오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오니, 우리에게 큰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하옵소서.
오직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