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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지역을 중심으로- 타이완 여행기 (2008. 7. 26) 한밭대학교 김명녕 타이완 관광 셋째 날인 7월 26일에도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나 8시에 타이페이역(臺北驛)에 도착하여 표를 끊고, 9시에 출발하는 자강호 열차로 화롄[花蓮(화련)]지역으로 떠난다. 자강호는 우리나라 새마을호 수준에 해당하는 열차라고 한다. 객차 안에 현대정공(現代精工)이 제작한 것을 뜻하는 표시가 있어서 정감이 간다. 우리가 탄 객차는 한국에서 온 관광손님으로 일색이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분은 보이지 않고 온통 젊은이뿐인데, 웃고 떠드는 소리가 중국 사람만 탄 옆 칸보다 훨씬 더 시끄럽다. 질서 없이 마구 떠들 때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고 흔히 말하지만 앞으로는 ‘한국사람 탄 객차 같다.’고 말하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몹시 북새질친다.1) 좋게 보면 자신감 넘치는 한국 사람의 활기찬 모습이지만, 나쁘게 보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에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빚은 무질서의 극치라 할 수도 있다.
깎아지른 듯이 험준한 중앙산맥 꼭대기에 둥실 뜬 흰 구름이 걸려서 환상적인 여름풍경을 연출한다. 산을 뚫고 지나가는 수많은 터널, 바나나․파파야 등의 아열대성 과일 과수원, 고구마․땅콩 등의 농장, 검푸른 태평양 바닷가 등을 2시간 40분 동안 달린 뒤 11시 40분에 신성(新城:太魯閣)역에 도착한다. 먼저 점심을 먹고 아미(阿美: 우라이)족의 민속춤을 구경한다. 아미족은 벼농사를 주로 짓는 화련의 고산족(高山族)으로 타이완의 13개 원주민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종족이다.
종족고유의상을 차려 입은 남녀 젊은 사람들의 춤과 노래가 40분 동안 화려하게 펼쳐진다. 공연이 끝날 때쯤 춤추던 사내 한 명이 내게로 다가와서 무대로 나오라고 손짓한다. 나이에도, 사회신분에도 어울리지 않아 열없게2) 웃으며 머줍게3) 움직이니까 손목을 잡아끈다. 얼떨결에 나가 민속 모자를 쓰고, 화려한 윗도리를 입고, 리듬에 맞춰 함께 춤을 추었더니 아가씨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더니 아가씨를 업고 공연장을 돌아다니라고 몸짓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혼인풍속에 따라 혼인예복을 입고 장가를 든 셈이다. 말똥말똥 바라보는 아내 눈앞에서 장가를 들었으니 장난인 줄 알지만 어리둥절하고, 머쓱하다. 공연이 끝난 뒤 아가씨를 업은 혼인사진을 대리석 사진틀에 담아서 미화 14달러를 요구한다. 멋쩍어서 그냥 나가려니까 아내가 웃으며 선뜻 돈을 지불한다.
공연장에서 밖으로 나왔더니 푸른 하늘이 짙은 잿빛으로 바뀌고 왜바람이 휘몰아친다. 태풍 봉황(鳳凰)이 발생하여 이곳 화련지역으로 접근 중이라고 가이드가 말하면서 오늘 오후에 타이페이행 비행기 또는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태풍이 상륙하는 길목이면서도 대리석과 옥이 많이 묻혀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寶庫)다. 이곳 대리석만 팔아도 타이완 인구가 10년 동안 손가락 까딱 않고 지낼 수 있을 만큼 12㎞의 길이에 1㎞의 깊이로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가까운 대리석 공장으로 가서 크고 작은 온갖 대리석 조각(彫刻)과 옥을 구경하고, 아내 선물로 미화 75달러짜리 비취옥과 분홍빛깔의 옥으로 꽃 모양을 빚은 브로치를 산다. 흐뭇해하는 아내를 보는 순간 14달러짜리 혼인사진 때문에 짓눌린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2시 30분에 타이루꺼[太魯閣(태로각)]협곡으로 떠난다. 타이루꺼협곡은 타이완에서 네 번째로 지정된 국가공원으로 대만의 100대 준봉 중 제27위이며, 쑤아오와 화롄 사이에 형성된 대단애(大斷崖)이다. 협곡으로 들어가는 도로 옆 강바닥에 자갈이 많은 것으로 보아 비가 내릴 때 위에서 휩쓸려 내려온 것이며, 물 빛깔이 흐린 것은 석회성분이 많이 섞인 것으로 생각된다. 입구에 빨간 꽃이 핀 봉황나무 가로수가 터널처럼 빼곡히 들어선 풍경이 인상적이다. 3시쯤에 장춘사가 보이는 언덕에 닿는다.
가파른 녹색 절벽 앞에 세운 장춘사는 한 폭의 그림이다. 붉은 지붕과 하얀 벽이 산의 녹색과 잘 어울리고, 앞에 하얀 물빛을 뿜어내는 폭포가 흐르고, 바로 밑에 벌판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이 있어서 경치가 아름답다. 그러나 물빛깔이 개흙처럼 흐리고, 강 언저리에는 풀 한포기가 없어서 매우 황량하다. 깊은 산속이지만 식물조차 살 수 없는 흙이니, 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실속이 없으므로 ‘빛 좋은 개살구’ 바로 그것이다. 장춘사에는 중부횡단도로(中橫公路)를 건설하다가 숨진 212명의 영령을 모신 사당이 있다고 한다. 장춘교(長春橋)를 건너 장춘사로 들어가는 관광 손님도 많지만 우리 일행은 멀리서 바라보다가 타이루꺼협곡을 따라간다.
타이루꺼협곡은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깎여서 생긴 좁은 골짜기다. 대리석기둥이므로 아내와 함께 가본 이태리의 카프리섬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오랜 기간 조금도 무너지지 않고 끄떡없이 있다. 아내와 몇몇 일행은 절벽 꼭대기 숲에서 타이완 원숭이가 나무를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지만 순간포착이 느린 나는 그 광경을 못 보고 지나친다. 절벽에 뽕뽕 뚫린 굴이 연자구(燕子口: 제비가 많이 사는 굴)라고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쳐다보니 하늘에서 절벽을 늘어뜨린 듯 까마득하다. 그런 곳에 굴을 뚫고 새끼 치는 제비가 놀랍고, 원숭이 뇌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믿고 가파른 절벽에 길을 내고 사냥을 다닌 원주민의 체력과 담력도 보기보다 애바르다.4) 평탄한 길과 꼬불꼬불한 터널을 걸으면서 19㎞의 타이루꺼협곡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구경한다. 낙석(落石)조심의 표지판이 보이는 터널을 지날 때 강풍이 휘몰아치면 가슴이 섬뜩하고 모골이 송연해져서 나도 모르게 아내를 안전한 곳으로 잡아당긴다. 걷는 내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산 사이에 난 좁은 길, 수 백 미터 아래로 흐르는 강, 군데군데 시원한 폭포의 물줄기 등이 만고천하에 장관(壯觀)을 연출한다.
4시 40분에 심연(芯蓮)비행장에 도착하여 80석 규모의 경비행기를 탄다. 아내와 시베리아를 관광하려고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탔던 비행기와 크기가 비슷하다. 비행기는 5시 05분에 이륙하여 흰 구름 목걸이를 두르고 인사하는 산봉우리들을 가볍게 넘어서 35분 후에 타이페이 공항에 도착한다. 잔뜩 흐린 타이루꺼협곡의 하늘과 달리 타이페이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만 두둥실 떠다닌다.
이튿날인 7월 27일 아침, 퍼붓는 빗속에서 호텔을 떠나 공자의 위패를 모신 보안궁으로 간다. 마침 비가 그쳐서 의학의 신인 보생대제(保生大帝) 앞에서 참배하는 수많은 사람과 용 기둥 등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구경하고, 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는 보안궁 공원을 둘러본다. 날씨도 후텁지근하고 첫날 용산사를 자세히 구경했으므로 시들해서 면세점에 들러 기념품 몇 개를 산 뒤에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간다.
태풍의 영향으로 날씨는 사납지만 예정시각에 타이페이 공항을 떠나 인천으로 돌아온다. 3박 4일 동안 여행한 타이완은 고온다습해서 에어컨 시설 없이는 여름을 나기 힘든 기후지만, 천연자원이 풍부해서 국가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타이완은 나날이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실에 알맞도록 일찌감치 스쿠터문화가 대중적으로 뿌리를 잘 내렸다. 타이페이를 흐르는 강물은 흐리고 더럽지만, 서울 한강물은 맑고 깨끗하다. 타이완의 타이루꺼협곡은 심심유곡임에도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석회수가 흐르지만, 우리나라는 골짜기마다 맑은 생명수가 흐른다. 타이완의 연평균강우량은 2,580㎜로 1,200㎜ 정도인 우리나라보다 두 배 이상 많은데다 태풍의 피해가 심각하고, 일본처럼 강력한 지진도 잦아 피해를 크게 입는 편이다. 장단점을 비교해볼수록 우리나라가 타이완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기후와 흙임을 느낀다. 분에 넘치도록 복 받은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우리나라가 한결 더 발전해서 넉넉하게 사는 앞날을 꿈꾸면서 포근한 마음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선다. 1) 북새질치다: 야단스럽게 북새놓다. 북새치르다. 2) 열없다: 조금 부끄럽다. 3) 머줍다: 몸놀림이 느리다. 굼뜨다. 4) 애바르다: 이익을 좇아 덤벼드는데 발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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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982년에 아미족과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건강히 다녀오셔서 다행이구요.
일찌감치 다녀 오셨군요. 원주민이 험준한 산에서 주로 생활해야 할 만큼 바닷가의 자외선은 몹시 뜨겁고 날씨는 무덥기 짝이 없었습니다.
프랭크 밀스의 아름다운곡 '시인과 나'를 배경음악으로 깔려있는 좋은글 앞에서 이른 새벽을 맞습니다. 행복한 여행, 좋은글이 마음을 맑게 해주는 새벽입니다. 인다교수님의 더 아름답고 행복한 나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소란님에게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점철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