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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ea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김동석
니체에 대한 재평가 (中) |
작성자 : 슈테판 슈타인베르크(WSWS) http://www.wsws.org | ||
작성일 : 2002/10/17 04:07 | ||
조회수 : 611 | ||
"오늘날 내가 가장 싫어하는 폭도들이 누군지 아는가? 사회주의자 폭도, 찬달라(chandala : 주1)의 사도들이다. 그들은 본능, 쾌락, 변변치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한 노동자의 만족감을 부정한다. 그들은 노동자를 시기에 빠뜨리고 그에게 복수를 가르친다. 악의 원인은 결코 불평등한 권리가 아니라 "평등한" 권리에 대한 요구다." - 니체, 『반그리스도』
● 니체와 정치적 권리 생전에 니체의 저작은 독일 지식인 사회에서 대개 무시당했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는 출간된 그의 저서 한 권은 2년 동안 오직 몇 권만 팔렸다고 (자랑스럽게) 적고 있다. 그가 죽은 뒤 20세기 초엽, 독일과 유럽 전반의 정치적 긴장이 팽배해지자, 상황은 니체에게 호전됐다. 어느 저술가는, 많은 독일 병사들이 1차 세계 대전에 출전하면서 한 쪽 주머니에는 성경을, 다른 한 쪽 주머니에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넣어 갔다고 적고 있다. 이 당시 니체를 가장 열렬하게 따랐던 사람으로는 출판가 오스왈드 슈펭글러(Oswald Spengler)가 있다. 그는 사회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에 극렬 반대하는 『서구의 몰락』(The Decline of the West)의 저자다. 젊은 작가 융어(Ernest Juenger)도 전투 정신과 전쟁의 미덕을 옹호하던 니체를 숭앙했고, 오스트리아 태생의 예비 화가였던 히틀러(Adolph Hitler)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니체는 또한 20세기 초반의 가장 뛰어난 독일 철학자였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성장에도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 니체, 반유대주의 그리고 고비뉴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파탄을 겪으며 죽기 전 십 년동안 여동생 엘리자베스(Elisabeth Forster Nietzsche)가 그를 돌보는 데 전적인 책임이 있었다는 건 맞는 얘기다. 오빠의 저작권을 손에 완전히 쥐고서 그녀는 보관자의 위치를 악용하여 저술의 특정 부분들을 위조하고 왜곡했다. 일례로 그녀는 그의 마지막 저술이자 자서전인 『이 사람을 보라』의 출간을 막았다. 과대망상증적인 어조의 그 책은 니체에게 닥친 정신적 황폐함를 명확히 보여줄 뿐이다. 어쨌든지 간에 너무도 비열하고 소유욕이 강한 여자 엘리자베스는 또한 악질적인 반(反)유대주의자기도 했다. 그녀는 자료에 손을 대고 편지를 위조해 그녀의 오빠를 이상하게 만들었고, 그를 그런 관점에서, 즉 광적인 반(反)유대주의자로 묘사하였다. 엘리자베스가, 열렬히 존경하던 히틀러를 바이마르의 집(그녀는 거기서 1934년 사망한다)으로 맞이하는 유명한 사진(현재 바이마르 전시관에서 전시해놓았다)이 있다. 히틀러가 방문해 있는 동안, 그녀는 그에게 오빠가 산보할 때 쓰던 지팡이를 선물했다. 히틀러는 이미 1932년에 바이마르의 니체 문서 보관소에 들렀었다. 또 다른 사진으로 히틀러가 자신의 철학적 스승이라 생각했던 그 남자의 흉상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있다. 유대주의 문제와 관한 니체 자신의 견해는 복잡하고 종종 모순적이다. 니체가 바그너와 결별한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바그너가 극단적인 반유대주의를 완강히 옹호했다는 데 기인한다. 그리고 1887년 니체는 여동생이 지독한 반유대주의자 포스터(Bernhard Forster)와 결혼한다는 걸 애통해하는 편지를 썼다. 친구인 오버벡(Overbeck)에게 보내는 마지막 짧은 서한들에서는 그는 심지어 "반유대주의자들을 모조리 쏴 죽이고" 싶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반면, 그의 저작 전반에 걸쳐 유대주의에 대해 경멸적이라 할 수 있는 언급들이 발견된다. 특히, 기독교의 타락에 기여한 유대인들의 역할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니체의 입장을 파악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은, 『선악을 넘어』(1886)를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어떤 문장에서는 니체는 반유대주의자가 되는 것은 반프랑스주의자, 반폴란드주의자 등이 되는 것과 꼭 같이 멍청한 짓이라고 주장하다가도, 다음에는 독일로 유대인들이 이주해오는 걸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에 이미 너무 많은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뒤이어 니체는 유대인들을 유럽에서 가장 강하고 질기고 순수한 민족이라고 묘사하면서, 유럽 대륙을 지배하는 강력한 신(新) 계급을 만들기 위해 유럽에서 가장 순수한 두 민족(유대인과 독일인)이 이종 교배(Zuchtung)해야 한다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가끔씩 유대인들을 긍정적으로 지칭하기는 하지만, 진실은, 니체의 전작(全作)을 특징짓는 것이, 19세기 후반유럽에서 특히 악성 형태를 띠었던 반동적인 인종주의자적 입장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프랑스 귀족이었던, 고비뉴 백작(Arthur Gobineau, 1816∼82)의 글에서 반동적 표현의 정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19세기 인종주의 관념의 전개을 훌륭하게 논의하고 있는 책은 말릭(Kenan Malik)이 지은 『인종의 의미』(The Meaning of Race)(주2)이다. 말릭은 중요한 것을 지적한다. 그는 19세기 후반이 진보적인 계몽주의의 인종관으로부터 극단적으로 급격한 이탈을 보인 것은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확장의 결과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럽 선진 국가들 내부에서 증가하던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 적대의 반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말릭은 다음과 같이 쓴다 : "유럽 엘리트 계급이 비유럽 사회에 대해 품고 있던 인종적 우월감은 국내 일반 대중에게 부과된 열등감을 빼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 … 실로,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종주의 담론은 유럽 사회 내부에서 감지된 차이들로부터 발생했고 그 이후에서야 피부색깔의 차이에 조직적으로 적용됐다고 주장하고 싶다."(p.82) 이 말은 니체와 관련해 중요한 지적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첫 글에서 이미 다뤘다시피, 니체는 항상, 민주주의 형태의 사회에서 광범위한 노동자 계층에 대해 양보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들이라고 그가 간주하던 것들을 몹시 민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가 고비뉴의 『인종의 불평등에 관한 논문』(1853∼55)을 처음 읽었을 때 너무도 열광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말릭은 고비뉴의 그 저서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모든 사회 체제는,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세 종류의 기본 계급에 기초한다는 인식이 이미 자리잡혔다. 귀족, 이들은 지배 종족을 다소간 정확하게 반영한다. 부르주아 계급, 이들은 제 1종족에 근접한 각양각색의 혈통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평민들, 이들은 주인을 섬기거나 최소한 매우 궁핍한 처지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열등한 인종에 속하는데, 남반구에서는 니그로와, 북반구에서는 핀 족과의 잡혼으로 출현했다." 사실상, 니체의 최초 저작에서부터 생물학적 인종주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얘기했는지를 이미 살펴본 바 있다. 「소크라테스의 문제」라는 보충 글에서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못생겼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이러한 특성이 "인종적 이종교배"의 결과가 아닐까 라는 물음을 던진다 : "소크라테스가 정말 그리스인이었을까? 못생김은 종종 이종 교배에 의해 어긋나는 진화에 대한 충분한 표현이 된다." 고비뉴의 영향은, 아마도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On the Genealogy of Morals, 1887)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계보학적 방법이 정확한 방법이라는 주장으로 시작하면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라틴어로 'malus'는 범인(凡人)을 검은 사람, 특히 검은 머리카락의 사람, 이탈리아 땅의 아리안 이전 주민을 가리킬 수 있었다. 그들은 색깔에서 그들의 주인이 된 금발인들, 즉 지배 인종인 아리아인들과 가장 잘 구별됐다." 고비뉴의 태도 안에서, 니체는 사회주의와 코뮌(가장 원시적 사회 형태)에 대한 투쟁을 인종주의에 기반한 역사발전에 대한 조야한 서술과 짜 맞춘다: "근대 민주주의, 아니 근대 무정부주의 그리고 특히 유럽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장 원시적인 사회 형태인 "코뮌"에 대한 경도가 무엇보다 끔찍한 역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또 지배 인종인 아리아인들이 생리학적으로 굴복하고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니체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가장 굴욕적인 본능과 복수(復讐) 희구 본능의 이 전달자들, 유럽과 비유럽 모든 노예들의, 특히 아리아 이전 인민들의 후손들인 그들은 인간의 퇴보!를 의미한다." 니체는 마지막으로 "금발의 독일 야수"에 대한 찬사(讚辭)로서 결론을 내리길, "이 탁월한 인종들의 본령에서 우리는 약탈물과 승리를 갈망하는 맹금과 금발의 야수를 발견하지 못할 리 없다. 독일인들이 권좌에 오를 때, 심지어 지금조차도, 불러오는 저 깊고 차가운 불신은, 유럽이 금발의 독일 야수의 맹위를 수백 년간 바라보던 때의 그 지워지지 않는 격분의 메아리다." 위 구절에서 니체가 말하고 있는 바를 아주 분명하게 밝혀보자. 그의 명제에 따르면, 사회주의자들, 민주주의자들 그리고 광범위한 사회 대중은 아리아 이전 사회의 가장 원시적 형태의 산물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아리아 지배 종족의 순수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에서 니체는 이미 초인의 보존이야말로 최선(最善)이며, "최악"을 정당화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니체를 변호하는 자들은 그를 나찌의 정책과 활동에서 떨어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니체의 위치가 이러한 점에서, NSDAP 내부 비망록에서 "맑스주의를 해치우려는 가장 단호하고 냉엄한 결단력"을 호소했던 히틀러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니체가 단순한 정치적 이데올로그가 아니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히틀러가 철학자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히틀러가,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는 철저히 퇴행적인 니체의 기획과, 사회주의 및 사회 평등 관념에 대한 니체의 증오 및 군국주의 및 전쟁에 대한 니체의 옹호를, 국가 사회주의라는 강령을 구성하는 잡다한 개념 상자 속으로 별 어려움 없이 매끈하게 조합하였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니체에 대한 재평가 (下)로 이어짐 - ○ 미 주 2. 키넌 말릭, 『인종의 의미』(The Meaning of Race), 1996, Macmillan 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