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지전(高地戰)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진행되던 당시 방첩대 장교인 강은표 (신하균 분) 중위가 상부로부터 적과 내통하는 반역자를 색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애록고지로 발령나면서 시작됩니다(현재의 백마고지)
장장 30여 개월간 그러니까 휴전협정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전개된 이곳의 전투는 하루에도 3~4번 그 주인이 바뀌고 양 군의 시체가 온 능선을 뒤덮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된 곳입니다.
애록고지에 주둔중인 '악어중대'로 발령난 강은표 중위가 사병시절 의정부에서 헤어진 동료 김수혁 중위와 재회하면서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강 중위가 합류하고나서 처음으로 탈환한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자그마한 술판을 목격한 강 중위는 적과 내통한 '반역자'가 자신의 동료 김수혁 중위임을 알게되고 자신조차 감당할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에 동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장기전투에 참여하게되는데요 큰 틀에서 보자면 악어중대의 전우애와 서서히 동화되어가는 강은표 중위를, 좀 더 세심하게는 방첩대 소속 장교로서 완수할 임무가 있는 강은표와 둘도없는 친구 김수혁과 끈끈한 전우애로 무장한 그의 동료들을 아끼는 강은표 사이에서 쉼없이 갈등하는 그를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발효시기까지의 마지막 12시간. 그시간 동안 누군가는 차지해야할 고지를 두고 어느 누구도 원치않는 마지막 전투를 치르기전 양군이 서로를 위해서 불러주는 '전선야곡'으로 그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게 됩니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부대원을 독려하기 위해 중대장(이제훈 분)이 중대원들에게 던진 대사가 심금을 울렸습니다.
'우리 중대의 이름은 악어중대다, 왜 악어중대인지 아는가? 악어는 한번에 대략 5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하지만 그 중 절반 이상이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남은 절반이 부화하지만 그중 한두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도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하지만 그 역경을 견디고 살아남은 한두마리의 악어가 늪을 지배한다. 이 전쟁은 우리가 지배하는 것이며 우리가 주인공이다. 우리가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빨리 끝내고...... 집에가자'
휴전협정이 발효되기 바로 직전까지 그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자신의 친구와 동료와 가족들 그리고 국가를 위해 싸우고 이름도 없이 죽어간 그리고 잊혀진 고국영령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 고지전이었습니다.
6.25가 무언지도 모르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6.25와, 들꽃처럼 사라져간 같은 나이 또래의 병사들을 기억하며, 깊이, 깊이 나라를 생각해봤으면...
진심으로 6.25 전쟁으로 희생되신 영령들과 참전용사들께 깊은 애도와 감사로 고개를 숙입니다.
전선야곡에 얽힌 사연
남선악기사를 확대 개편해, 1947년 설립한 오리엔트레코드사는 6·25 피란 시절 한국가요의 산실이자 피란 연예인들의 사랑방이었다. 당시 이병주옹은 문예부장으로 있던 박시춘과 강사랑, 작곡가 이재호와 의기투합해 명앨범을 제작했다.
1947년 오리엔트는 회심의 일작을 만들기 위해 진주 출신의 '술고래 작곡가' 이재호(1919∼60)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서울 출신의 손노원, 1946년 중국 톈진 에서 귀국선을 타고 온 가수 이인권(1919∼73·함경도 청진 출신)을 대구로 불렀다.그렇게 해서 광복 직후 국민의 노래가 돼버린 <귀국선>이 오리엔트에 의해 탄생한다.그런데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진다. 이인권이 취입한 <귀국선>원판에 문제가 생겨 시판을 못하게 됐다.
요즘 같으면 녹음기가 있어 쉽게 재취입할 수 있는데, 그때만 해도 가수를 다시 불러 원판을 다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수소문해봐도 이인권을 찾을 수 없었다. 이옹은 부득이 오리엔트 전속1호 가수 신세영을 불러 재취입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음반에 담긴 목소리 주인공은 이인권이 아니고,신세영이었다. 오리엔트 측에서는 가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앨범을 출시한 것이다.
영남고를 졸업한 신세영은 야심이 대단했다. 북성로에서 기계상을 하고 있던 사촌형의 부탁으로 남선악기점에서 이옹을 만나 탱고 리듬의 <로맨스 항로>(1947)를 받아 가수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당시 한 동네(남산동)에 살고 있었던 박시춘이 남인수를 위해 <전선야곡>을 작곡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는 즉시 이옹에게 특별한 부탁을 한다."제발 <전선야곡>은 제가 부를 수 있도록 스승님께서 힘을 써주이소.” 전속 가수 1호인 그의 부탁을 박절하게 거절하지 못한 이옹이 박시춘을 만난다.
“박 부장, 후배를 키운다는 차원에서 신세영에게 그 곡을 줍시다.” 박시춘도 흔쾌히 허락을 했다.
<전선야곡> 한 곡으로 신세영은 단번에 참전 용사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가수로 급부상하게 됐다.
-2003.6.19 영남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