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운월리공소
1971년 1월 1일 설립(구정리공소에서 분가)
1978년 7월 22일 공소강당 건립
관할본당: 홍성 성당
충남 홍성군 홍동면 홍장남로672번길 20-13
52. 구정리공소
1930년 설립
1971년에 운월리공소를 분가시킴.
1982년 5월 23일 공소 강당 건립
대전교구 이창덕(베드로) 신부가 구정리공소 출신 사제이다.
관할본당: 홍성 성당
충남 홍성군 홍동면 홍동길 53-13
53. 유동공소
유동 마을은 일명 ‘버들 마을’로 칭하며,
1896년 기낭 신부의 사목담당 공소로 당시 46명의 신자가 있었다.
1916년경 신인섭 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아
40여 년간 공동체를 이끌었다.
이때 공소 뒷산 6천여 평을 매입하여 교회 묘지로 사용하면서
대세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현재의 공소 건물은 1965년 신용규 요한 회장 재임시기에 건축되었다.
그 후 1998년경 지붕마감재를 교체하는 등 내외부 수리를 실시하였다.
신앙 깊은 유동공소에서 교구 사제가 두 분 탄생하였다.
관할 본당: 도고 성당
충남 아산시 도고면 도고산로 489번길 8-9 (신유리 323번지)
54. 수철리공소
대전교구 사적지
1900년대경 설립
수철리는 옛 지명이 ‘드른리’였고,
간양골 성당과 함께 박해시대 교우촌이 형성되어
내포 천주교 신앙의 터전을 일궜던 곳이다.
1866년부터 몰아닥친 병인박해로 내포 지역에서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해미, 홍주 등지로 끌려가서 순교하였고,
공주에서 순교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살던
합덕 신리 마을은 완전히 풍지박산 되었는데,
사방으로 흩어진 손씨 일족 중에서 손세당의 자손 손정호, 손영택 등이
이곳 수철리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후,
1890년 대까지 수철리 신자들은 간양골 성당(파스키에 주임 신부)으로
예절과 미사를 드리러 다녔는데,
1900년대경에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정식으로 공소가 되었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 황석두 루카 성인의 손자인 황만호가
박해를 피해충북 연풍을 떠나 간양골로 이주하여 살다가,
6ㆍ25전쟁 때 간양리 공소가 심각한 훼손을 당한 후에
수철리로 이주하여 3대에 걸쳐 순교자의 후손다운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960년에 황기완 회장과 신자들이
수철리 ‘새터’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강당을 신축하였다.
현재의 공소강당은 1960년에 신축.
관할 본당: 신례원 성당
충남 예산군 예산읍 수철길 630
55. 상리공소
1940년 설립
관할본당: 합덕성당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 291번지
56. 하흑공소
1963년 4월 설립
본래 마을 안에 있었으나
1980년대 길이 새로 나면서 현재의 자리에 재건축되었다.
하흑공소는 복자 김사집 프란치스코를 기념하고 있다.
복자 김사집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비방구지'출신이다.
복자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과
교회서적을 필사하여 나눠주는 일에 열성이었다.
그로 인해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이듬해 1월에 순교하였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하흑1길 2
57. 세거리공소
설립년: 1866년
뮈텔주교의 증언대로 신리와 함께 세거리와 거더리는
박해가 극심했던 때에도 완전한 교우촌이었다.
그러나 병인박해로 인해 신리와 마찬가지로
세거리 교우촌도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이후 다시 모여든 신자들이 새롭게 교우촌을 이루면서
합덕본당의 주요 공소가 되었다.
현재의 공소건물은 1935년에 지어진 것으로
중앙문으로 이어진 전실이 있고, 좌우에 사제와 복사방이 있다.
판공 때가 되면 본당 신부가 머물먼서 성사를 베풀고,
신자와 비신자 할 것 없이 보례떡과 푸짐한 음식을 나누며
흥겨운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해나무길 18
58. 예산 양촌공소
충청도 최초 성당지
대전교구 유적지
양촌공소는 합덕 본당의 전신으로 내포 지역 최초의 성당이었다.
내포 지역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가장 활발한 포교지 가운데 하나였는데,
긴 박해기 동안 큰 피해를 입었다.
한불조약 이후로 천주교를 믿는 것이 허락되자
천주교 당국은 내포 교회의 재건을 목적으로
고종 27년(1890년)에 양촌 성당을 설립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파견된 퀴클리에 신부는
이곳에 한옥식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했다.
한편, 고종 32년(1895년) 서양인에게 적대적인
지역민 일부가 성당을 파손하고 약탈하였으나
덕산 현감의 지시로 파손된 성당은 복구되었고, 약탈된 집기도 배상받았다.
이후 퀴클리에 신부는 성당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고종 36년(1899년)에 본당을 합덕으로 옮겼다.
그로부터 본당의 명칭이 ‘합덕 본당’으로 바뀌고,
양촌은 ‘공소’로 남계 되었다.
현재의 공소 건물은 합덕 본당 7대 주임 페랭 신부가 조성하였는데, 1
949년 성당을 철거하고 그 부재로 새 공소를 건축한 것이다.
공소는 전통적인 목구조에 초가를 얹었고,
내부는 마룻바닥에 남녀의 공간을 나누기 위한 칸막이가 있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강당 제단부 벽이 사각의 돌출형 앱스*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한옥의 전통 건축 방식이 천주교 예식에 적합하도록 변형된 형태이다.
강당은 1960년대 말 칸막이와 기둥을 제거하고,
실내 바닥을 콘크리트로 교체하거나
초가지붕을 함석지붕으로 교체하는 등의 공사를 했다.
그러다가 2016년 붕괴 위험에 이르자,
기둥, 사제 및 복사의 방, 에프스를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2017년에는 순례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공소 관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부속 건물을 신축하고 조경 공사를 하였다.
*앱스(apse): 하나의 건물이나 방에 부속된
반원 또는 반원에 가까운 다각형 모양의 내부공간.
관할본당: 합덕 성당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궁2길 12 (상궁리 715-24번지)
지금의 미사 때에는 제대를 사이에 두고 신부와 신자간에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옛날에는 앱스 제단을 사용함으로써
신부와 신자가 재대를 같은 방향으로 보게되어
신자들은 신부의 등을 보고 미사참례를 했다고 한다.
59. 거더리공소
대전교구 사적지
1920년 설립
거더리와 신리는 1780년대 후반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에 의해 천주교 신앙이 전해진 이후
내포 지역에서 가장 큰 신자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한국 천주교 박해기에 거더리공소는 순교자 손 니꼴라오 회장의 집이었다.
조선의 제5대 교구장 성 다블뤼(Daveluy) 안주교께서 자주 머무시던 집이다.
안주교는 1866년 병인년 3월 11일에 이곳에서 체포되었다.
다음날 3월 12일 인근에서 은거하던 성 위엥(Huin) 민 신부와 오매트로(Aumaitre) 오 신부가
거더리공소에서 안주교를 따라 스스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안주교의 복자인 성 황석두 루까가 성직자들의 순교 대열에 자진하여 동참하였다.
그들은 3월 30일에 보령의 갈매못에서 참수를 치명하였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 99-9
60. 신당리공소
1926년 설립
신당리공소는 1926년 합덕본당의 공소로 시작되어
당시 165명의 신자가 있었다.
옹기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교가 이루어졌고
2개의 가마굴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첫 공소 건물은 1945년경 흙별돌조 초가형태였다.
현재의 공소는 폐허가 된 구 공소를 철거하고 1999년에 건축하였다.
2022년 현재 51세대 중 44명이 신평성당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관할본당: 신평 성당
충남 당진시 신평면 원신당로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