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의 SF 걸작선 시리즈 중 네 번째 작품집이다. 1권 《마이너리티 리포트》, 2권 《죽은 자가 무슨 말을》, 3권 《사기꾼 로봇>>, 4권《페이첵》, 모두 필립 K. 딕이 저술한 100여 편의 중단편 소설 가운데에서 엄선한 작품집으로 각 권당 중단편 소설이 7~8편씩 실려 있다.
이 책의 타이틀 소설인 <페이첵(Paycheck. 급료)>은 최고의 흥행감독인 오우삼이 감독하고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인 벤 애플릭과 우마 서먼이 주연을 맡아 영화화 되었다. 2003년 12월, 미국에서 개봉하자마자 첫 주말에 139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순조롭게 순위에 진입한 영화.
<페이첵>은 필립 K. 딕의 작품 가운데 7번째로 영화화 된 작품이다. 제작된 지 20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SF영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블레이드 러너>(1982년 영화화.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토탈리콜>(1990년 영화화. 원작: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라는 최고의 감독과 배우가 만나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첨단 테크놀로지 영상과 숨 막히는 파워 액션을 보여준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 영화화. 원작: 마이너리티 리포트) 외에도 <바조>, <스크리머스>, <임포스터>(원작: Imposter. '사기꾼 로봇'으로 출간예정) 역시 영화화 되어 SF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집에 담은 소설 중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외에는 모두 필립 K.딕의 청년기인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중반에 쓰인 작품이다. 1950년대 미국 SF소설 붐 속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낙관적인 미래상을 제시하며 과학 기술의 발전을 장밋빛 미래를 향한 필수요소로 볼 때, 필립 K. 딕은 '기술의 발전이 정말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때 인간과 기술의 구분은 무엇이 되겠는가?', '기술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과연 인간의 역할은 무엇이 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인류의 미래를 기술발전에 의한 낙원이 아닌 암울하고 비관적인 혼돈으로 묘사하고 그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렇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하며 거침없는 필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필립 K. 딕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수준 높은 SF작가이다. 반세기 전의 작품임에도(페이첵-1953年作), 21세기인 지금 영화화 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놀라운 그의 상상력과 깊은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작품집은 중단편 소설 8편을 담고 있다. 7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지워진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게 되는 <페이첵(Paycheck)>,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찾아 온 암울한 미래 세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핵심 기술의 발명을 저지하고 암울한 미래를 평화로운 미래로 바꾸는 과정을 그린 <존의 세계(Jone`s World)>, 어느 날 갑자기 미래 세계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된 한 가족이 만난 참담한 미래상을 통해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기술 발달의 맹목적인 환상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황혼의 아침식사(Breakfast at Twilight)>, 자신에게 냉담한 사회에서 벗어나 개인 안으로 침몰해 버린 인간의 모습을 제시한 <작은 도시(Small Town)>, 시간의 고리에 갇힌 시간비행사 세 명의 삶을 통해 영원한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A Little Something for us Tempunauts)>,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함께 제시하며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가짜 아빠(The Father-Thing)>와 <우브는 죽지 않았다(Beyond Lies The Wub)>, 안정된 생활을 위해 스스로 기계에게 결정권을 맡겨 버린 인간의 삶을 그리며 기계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 <안정성(Stability)>. 이 8편 모두 필립 K. 딕의 놀라운 상상력과 문학성이 조화된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작품들이다.
♧ 본문 소개
갑자기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날쌔게 문으로 다가갔다. "그래, 믿는 거야." 그가 손을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지."
"뭘-뭘 말입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감 말일세."
키를 갖다 대자마자 문이 활짝 열렸다. 햇빛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는 총을 앞으로 겨눈 채 문을 나섰다. 경비병 셋이 총을 보더니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정문이 바로 앞에 보였다. 그건 숲이 머지 않음을 의미했다.
"다들 비켜." 제닝스의 총이 강철로 만든 무거운 빗장을 향해 불을 뿜었다. 쇳덩이가 화염에 휩싸이며 흐물흐물 녹아 내렸다.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놈을 막아!" 그를 쫓아 통로를 뛰쳐나온 경비병들이 마구잡이로 몰려들었다.
제닝스는 연기가 자욱한 문 위로 몸을 날렸다. 부서진 쇳조각들이 살갗을 마구 스쳐갔다. 연기 속을 뚫고 달렸다. 그는 땅바닥에 고꾸라지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뒤 급히 나무 사이로 몸을 던졌다.
밖이었다. 그는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았어. 키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모르고 잠깐 실수를 했던 거야.
그는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나무 가지를 헤집으며 미친 듯이 달렸다. 공장도, 사람들 목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서류는 그의 손에 있었다. 이제 그는 자유였다.
- <페이첵> 본문 중에서
"이제 존의 환영이 이해가 갑니다." 캐스트너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아인 시간에 대해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평형감각을 갖고 있었어요. 또 다른 미래를 내다보는 감각이었을 겁니다. 타임 십이 완성되어 가면서 존의 환영도 점점 뚜렷해졌어요. 환영이 점점 사실로 변해갔다는 뜻이죠."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 앞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고의 지평이 열렸습니다. 중세 성인들의 신비스런 환영의 정체를 깨닫게 된 거죠. 어쩌면 그들의 환영은 다른 미래, 다른 시간의 흐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옥의 환영은 현재보다 나쁜 시간의 흐름, 천국의 환영은 현재보다 나은 시간의 흐름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시간은 그 중간 어디쯤이 되어야 해요.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는 세상의 환영이어야 합니다. 어쩌면 시간을 초월한 깨달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르죠. 그것도 시간 밖으로 보이는 또 다른 세상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 연속체에. 하긴 좀더 생각해 볼 문제겠지만."
우주선은 공원 가장자리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캐스트너는 창가로 달려가 바깥에 펼쳐진 나무숲을 내다보았다.
"우리 집에 예전부터 간직해온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저런 나무들 그림이 있었죠." 그의 얼굴이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이 나무들이었어요. 후추나무요. 저기 저 쪽에 있는 것은 사람들이 상록수라고 부르는 나무예요. 1년 내내 똑같은 모습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죠."
캐스트너는 서류가방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나가서 사람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도 나누고. 철학적인 대화, 좋잖아요?" 그는 라이언을 향해 씩 웃었다. "철학은 그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주제였거든요."
- <존의 세계> 본문 중에서
♧ 저자 소개
필립 K. 딕(1928~1982)
미국 시카고 태생. 푸줏간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세금검열관인 어머니 사이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1975년에는 <흘러라 내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로 존 W. 캠벨상을 수상했다.
1977년 프랑스 메츠에서 마지막 강연을 하고, 1982년 <일광 속의 부엉이>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