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의 조건?]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읽고
오래간만에 진짜 재밌는 책을 찾아 읽은 것 같다.
요 네스뵈. 이 작가의 책은 거의 모두가 스릴러 주제에 뭐 그리 할 말이 차고 넘치는지 다들 600페이지는 가뿐히 넘겨버린다. 덕분에 책꽂이에 책 대신 베개를 박아넣은 듯한 비주얼을 자아낸다 (실제로 잘 때 베고자면 차갑고도 푹신한 것이 기분이 묘하다).
다들 내가 '두꺼운책성애자'로 알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나도 저렇게 두껍고 무거운 걸 일주일 동안이나 끼고 다니는 건 피곤하다 (혹시나 싶어 무게도 재 봤는데 거의 2킬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전 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나 팔리고 요 네스뵈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로 올린 작품이라 하니, 이 작자 참 무섭다 싶었다. 만 팔천원짜리 베개를 천만 개 넘게 팔아먹었다니, 돈은 얼마나 벌었을까. 이번 연말에 마틴 스콜세지 제작, 마이클 패스밴더 (액스맨 퍼스트 클래스 시리즈의 매그니토, 에일리언 시리즈의 데이빗,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 배우) 주연의 영화로 개봉도 된다 하니, 책 내용이 더욱이나 궁금해졌다.
일단 책 내용은, 진짜 장난아니게 재밌다. 와 정말 거짓말 안하고 야자시간 2시간 내내 집중해서 읽은 책은 작년에 읽은 「파운데이션」 이후론 처음이었다 (그놈의 미친듯한 두께 때문에 그렇게 하면서도 2주정도 걸렸지만).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은 읽은 경험이 많이 없어서 꽤나 진입장벽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딴 생각 다 개밥으로 갈아넣어 던져주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때리는 건 기본이다. 요즘 스릴러들은 거의 다 하는 짓거리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은 반전이 나오면 안심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헛다리를 짚었다는 느낌을 계속 심어주기 때문에 반전이라 할 만한 게 나와도 숨 돌리긴 개뿔, 더 불안해서 미치게 만든다. 보통 스릴러물도 다 이렇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굉장히 천재적이라 생각했다.
또 배경도 한몫했다. 작가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출신이라 작중에 나오는 거의 모든 배경이 오슬로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작은 나라의 작은 도시이다 보니까, 북유럽엔 익숙하지 않은 영미권, 동양권 독자들에겐 굉장히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이름부터 굉장히 간지나게 특이하다. 주인공인 해리 홀레(Harri Holé)나, 아르베 스퇴프 (Arbé Støp), 뮐레르 하겐(Müller Hagén) 등… (작가이름은 Jo Nesbø다). 뉴욕이나 남미, 멀어봤자 러시아 등이 주 무대였던 대부분의 스릴러들과는 분위기부터 다르기 때문에 끌리는 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단연코 등장인물이다. 주인공 해리 홀레는 오슬로 실종사건부서 형사반장이다. 대다수 스릴러물의 주인공들은 다들 경찰에서 반장자리 하나씩은 꽤차고 있잖는가. 하지만 해리는 북유럽 사람들의 평균 키보다 까마득히 높은 192센티의 키와 미묘하게 못생긴 얼굴, 피부와 뼈 사이엔 근육만 있는 깡마른 남자이고, 무엇보다도 알코올중독자다. 40도짜리 술 한 병이 주방에 있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 사건에 임할때는 한없이 거칠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더없이 자상하고, 전 여자친구 라켈 앞에서는 더없이 순정남이 되어 버리고 만다. 즉슨, 인물이 굉장히 입체적이다. '실존할 것만 같다' 정도는 아니지만 매 장면에서 보이는 그의 부족한 모습, 다정한 모습, 거친 모습이 허구의 인물임에도 불구하도 살아있는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숱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왔던 '형사반장 주인공'들보다 해리가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아니, 진짜로 멋있다. 작가는 냉철한 형사 해리를 보여줄 때는 짧고 간결하게, 라켈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해리를 보여줄 때는 시적이고 감미롭게, 알코올 금단증상에 시달릴 때는 강렬하고 급박한 문체를 사용함으로 아주그냥 페이지를 달려나간다. 독자들은 해리의 다양한 모습에 웃고 울고 달리면서 그에게 푹 빠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각자 뒷배경을 가지고 있고 개성도 있어서 해리에게만 집중된 듯한 이야기 속에 적절히 끼워들어가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빼어난 스토리텔링과 이국적인 분위기, 시크하고 간결한 문체로 페이지를 휙휙 넘어가게 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이 혁혁한 공을 세운 것 같다. 독자들이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음과 동시에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며 탄성을 자아내는 인물들. 독자들은 그렇게 주인공에게, 해리 홀레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나도 어느새 해리 홀레의 팬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 「스노우맨」은 현재 9권까지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시험이 한 달 남짓 남았지만 빠져버려 어떡하나. 이거 큰일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