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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서한 에세이】
60년 지기지우(知己之友)의 변함없는 미소
― 중학교 동기생 백성기(白成基) 친구에게 쓰는 편지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친구가 시골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어. 충청남도 청양군 적곡면(현 장평면) 중추리 가래울.
친구가 사는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에서 청양군 적곡면 중추리 가래울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먼가?
자동차도 없이 걸어서 다닐 때이니 왕래하기가 쉽지 않은 거리였지.
그 당시 나의 시골집에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 기억나는가?
“형제처럼 정답게 지내거라. 어딜 가서 어떤 직업으로 살든지 서로 잊지 말고 형제처럼 다정하게 살아라.”
이번엔 내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갔었지. 그 당시 친구의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네.
“그 먼 데서 온 친구이니, 하룻밤 자고 가거라. 반찬은 변변찮지만, 저녁 먹고 건넌방에서 자고 가거라. 그리고 평생 형제처럼 정답게 살아라.”
공교롭게도 우리 어머니와 친구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 “형제처럼 다정하게…”라는 말씀이 공통으로 들어 있어.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우정은 변함없이 이어졌지. 각기 다른 인생길을 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편지가 오갔고, 만남도 여러 차례 있었지.
친구는 언론사에 근무했지. J 일보 기획실이었어. 나는 경찰관이 되어 충남경찰청에서 근무했지.
어느 날 기자가 나를 찾아왔어.
“윤 작가님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는 백성기 씨가 알려 주더군요. 잠깐 시간 내어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1993년. 그러니까 33년 전의 일이네.
당시 도경 정보과에서 근무하던 나는 곳곳에서 벌어지는 긴급 치안 상황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
도청 앞 다방에서 기자와 만났지. 기자는 나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많이 알고 왔어. 아마도 친구로부터 나의 ‘글쓰기 내력’을 듣고 찾아온 것 같았어.
그날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는 1993년 3월 20일 자 조간에 이런 제목으로 실렸어.
《내 고장 화제》
『딱딱한 警察일 隨筆로 승화 – “어두움 뒤엔 아름다움이 있다” 담백한 글에 겸허한 人格 담아』
▲ 필자가 충남도경에 근무할 당시 수필집 출간 관련 중앙일보 1993년 3월 20일 자(대전=김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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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가 나가고 정말 기사 제목처럼 ‘내 고장 화제’가 됐지. 당시만 해도 현직 경찰관이 등단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드문 일이고, 이색 뉴스거리가 됐지.
이어서 방송 출연이며, 원고 청탁이며 공무에 바쁜 중에도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창작 활동이 이어졌지.
친구와는 편지로 소통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따금 전화로 안부 전하고 살았지.
친구가 대전에 내려오면 여관방에서 꼭 나를 불러 냈지. 밤새워 옛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남다른 우정을 쌓았지.
그런데 말이야. 친구에게 갑자기 뜻하지 않은 충격적인 일이 생겼어.
친구가 부인과 갑자기 사별하고 혼자가 된 거야. 나는 친구가 누리소통망에 올리는 ‘혼자 사는 외로운 가장’의 모습을 자주 보았어.
하지만 조심스러워 댓글을 달지 못했어. 무어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았어.
▲ 60년 지기(知己) 백성기 친구와 따뜻하게 이어온 우정(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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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혼자 살아가는 쓸쓸함을 카카오스토리에 짧은 글로 표현하고 생생한 현장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어.
이제 우리는 70대 중반이야.
부부가 사별하는 것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닫는 할아버지들이 됐어.
그런데 친구는 옛 어머니가 당부하신 대로 우정이 변치 않았어.
내가 SNS에 글을 올리면 ‘좋아요’로 응답하고, 내가 카톡 프로필에 새로운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 단추로 우정을 표했어.
우리 사이엔 긴말이 필요하지 않아. 친구는 나의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변함없이 지켜보고 있어.
나도 친구의 카카오스토리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노년을 살아가는지 짐작하고 있지.
언젠가 나의 수필집에 친구가 부인과 찍은 사진을 실은 적이 있어. 참으로 부러운 사진이었지.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친구의 부인은 떠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그러면 오랜만에 아름다웠던 과거를 추억하면서 ‘부러웠던 친구’의 모습을 회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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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 좋은 친구 · 자랑스러운 친구 · 부러운 친구
윤승원
노년에 ‘좋은 친구’라고 하면 어떤 친구를 말할까? 가까이에 있는 친구라면 밥과 술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 산에 같이 다닐 수 있는 친구, 애경사에 내 일같이 기뻐하고, 내 일같이 슬퍼해 줄 수 있는 친구….
이 정도라면 ‘좋은 친구’ 대열에 포함해도 좋지 않을까?
부족하다. 그 정도는 기본이니까. 그렇다면 요즘 시대에 그보다 더 중요한 ‘좋은 친구’의 조건과 요소는 무엇일까? 스마트폰 문자를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다.
티끌만 한 이해관계도 없이 문자와 영상을 수시로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노년에 접어든 세대에겐 ‘가장 좋은 친구’가 아닐까 싶다.
‘문자’란 본래 소통의 개념이지만 뉴미디어 시대에 ‘영상’도 좋은 친구와 공유할 수 있는 유용한 소통 수단이다. 좋은 영상은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건강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가까운 자식, 며느리와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좋은 친구 사이에는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친구는 내게 유익한 친구다. 친동기간보다 정이 도탑다.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영화도 소개해준다. 자신이 의미 있게 본 유튜브 동영상도 ‘공유’ 시스템으로 보내준다.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에 내가 글을 올리면 ‘공감’이나 ‘찬사, 또는 긍정의 언어’로 댓글을 가장 먼저 달아주는 친구도 ‘좋은 친구 1순위’ 범주에 든다.
내게는 그런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들로 인해 외롭지 않은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좀 특별하게 ‘절친한 친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학교 동창생인 백성기(白成基) 친구다. 이니셜이나 가명 또는 3인칭으로 그의 정체를 일부러 가리거나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고 실명(實名)을 밝히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그가 내게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친구’, ‘부러운 친구’인 까닭이다.
그는 나와 세 가지가 닮았다.
첫째는 시골 태생,
둘째는 강한 자존심,
셋째 마르지 않는 눈물의 ‘사모곡(思母曲)’.
그래서일까? 50년 지기(知己)인 그와는 한 번도 다툰 일이나 서운한 일이 없었다.
언제나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만 하고 살았다. 과거엔 편지로 그랬고, 오늘날엔 문자 소통으로 그렇게 우정을 유지한다.
그 친구와의 원만한 관계 유지 요인을 나는 무엇보다도 그의 넉넉하고 따뜻한 인품에서 찾는다. 그는 의리가 있는 친구다.
효심도 남다른 친구이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생시에 그에게 간곡하게 당부한 말씀을 지금껏 성실하게 실천하는 친구이다.
20대 초반, 그가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에서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내 집까지 20여 리 길을 찾아와 함께 놀다가 떠날 때, 나의 어머니가 그를 배웅하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우리 아들과 친형제처럼 평생 우정 변치 말고 살아가렴!”
내 어머니가 생시에 그에게 당부하신 이 말씀 한마디를 그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는 지금까지 나와의 우정을 조금도 변치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순수한 사람이다.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이름이 ‘진국’이다. 내가 부르는 그의 별명이다.
뚝배기 같은 진국! ‘뚝배기’는 식지 않게 구수한 맛을 내는 그릇이고, ‘진국’이란 떠먹어도, 떠먹어도, 한 수저 더 떠먹고 싶은 영양가 높은 음식 맛을 이른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중앙의 유력 언론사 중역을 지냈다. 퇴임 후에는 CEO로서 사회 활동도 왕성하게 하는 인물이다. 나이는 먹어도 늙지 않는 ‘만년 현역’, ‘만년 청춘’ 경제인이다.
자녀들도 모두 훌륭하다. 명문대를 나온 아들과 며느리는 모두 변호사이고, 따님 내외는 부부 교사이다.
이런 요소는 친구로서 자랑스러움이긴 하나 부러움은 아니다. 내가 정작 부러워하는 것은 그의 화려한 이력이나 출세한 자녀들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배우자와 함께 영화 구경을 자주 한다. 부부가 골프도 같이 하고, 해외여행도 늘 같이한다. 며칠 전엔 내게 깜짝 놀랄만한 사진을 보내왔다.
▲ 부부가 다정하게 영화를 본 뒤에는 꼭 관람평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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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한겨울에 부부가 수영복 차림이었다. 하와이 호놀룰루 해변이라고 했다. 부부가 함께 등산하고, 영화 보고, 해외여행하는 것은 내가 못 하는 일이니 부러움이다.
60 평생 고생 많이 하고 살았으니 노년에 이만한 여유로움은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이지만, 그는 이런 것들을 떠벌이거나 자랑거리로 여기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처럼 늘 겸손하다. ‘뚝배기 진국’인 그가 겸손하지 않으면 누가 그를 진정한 친구로 여겨 동창 산행 모임의 책임자로 늘 추대하듯 모시겠는가.
▲수영복 차림의 친구 부부 해외여행 사진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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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동창회에서 늘 중책을 맡기는 데는 겸손한 태도만으로는 안 된다. 매사 꼼꼼한 ‘능력 발휘’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돼야 한다.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그의 최신 활동에 ‘강상江商 동기생 시산제’가 보였다. 그가 주도적으로 준비한 시산제 풍경 중 내 눈길을 유난히 끈 장면은 ‘시산제 축문’이다.
이 세상 많고 많은 축문 중에서 ‘시산제 축문’을 이렇게 자상하고 꼼꼼하게 준비한 것은 처음 보았다. 그의 평소 빈틈없는 성실함을 엿볼 수 있는 자료였다. 그의 시산제 장면에 내가 이렇게 답글을 달았다.
▲ 친구가 누리소통망에 올린 ‘산우회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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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商 산우회가 친목 이상의 의미로 잘 운영되고 있군요. 축문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자연의 신에 대한 경건하고 정중한 예(禮)와 동기생 간의 끈끈한 우정이 바탕이 되어 상호 돈독한 신뢰감이 쌓이고, 상부상조의 정이 더욱 쌓이면 이는 결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범적인 ‘시산제 사례’는 다른 산우회에서도 배울 점이 많을 듯합니다.”
산우회 시산제 축문이며, 제물 준비에다가 행사 진행 시나리오까지. 그의 꼼꼼하고 빈틈없는 성격이 몇 장의 사진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에 대한 친구들의 전폭적인 신뢰감이 없다면 이런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봉사자 역할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
좋은 친구, 자랑스러운 친구, 부러운 친구여!
(2019.03.20. 윤승원 友情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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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의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이번 작품은 단순한 ‘친구 이야기’를 넘어, 60년의 세월을 견디며 더욱 깊어진 우정의 의미와 노년의 인간관계,
그리고 어머니의 한마디가 두 사람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주는 정감 어린 회고수필입니다.
특히 2019년의 「좋은 친구·자랑스러운 친구·부러운 친구」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불러오면서,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포개지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문학평론】
60년 지기지우(知己之友)의 변함없는 미소
― 윤승원 수필에 나타난 우정의 윤리와 어머니의 말씀
윤승원 수필가의 「60년 지기지우(知己之友)의 변함없는 미소」는 한 사람의 친구를 회고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한평생을 살아온 두 남자의 우정에 관한 인생론이다.
이 작품에서 ‘친구’는 단순히 함께 학교를 다닌 동창이 아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들이 서로에게 건넨 “형제처럼 정답게 지내라”는 당부를 매개로 하여, 혈연을 넘어선 정신적 형제로 승화된 존재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장치는 두 어머니의 동일한 말씀이다.
어린 시절 윤승원의 어머니는 친구에게 “형제처럼 정답게 지내거라”라고 당부했고, 친구의 어머니 역시 먼 길을 찾아온 윤승원에게 “평생 형제처럼 정답게 살아라”라고 말했다.
두 어머니의 말은 당시에는 평범한 인사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말은 두 사람의 우정을 지탱해 온 일종의 ‘인생의 계율’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우정의 출발점은 두 소년의 친교가 아니라 어머니들의 축복이다. 작가는 이 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우정이란 두 사람이 만드는 관계인 동시에, 때로는 부모의 당부와 사랑까지 함께 이어받아 완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먼 거리’의 의미다. 자동차도 없던 시절, 부여 은산에서 청양 장평면 중추리까지 친구가 걸어서 찾아왔다는 사실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없으면 찾아갈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러므로 그 먼 길을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우정의 깊이를 증명한다.
길은 멀었지만 마음의 거리는 가까웠다. 이 한 문장으로 작품 전체의 정서를 압축할 수 있다.
1. ‘60년’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우정의 깊이다
제목에 붙은 ‘60년 지기지우’라는 표현은 이 작품의 시간적 규모를 말해준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우리가 60년 동안 친구였다”는 사실이 아니다.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한 사람은 언론인의 길을, 다른 한 사람은 경찰관의 길을 걸었다. 직업도 생활환경도 달랐고, 각자의 삶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편지가 그 역할을 했고, 중년에는 전화가, 오늘날에는 카카오스토리와 ‘좋아요’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여기서 작가는 매우 현대적인 소통 방식을 따뜻한 문학적 소재로 승화한다.
“좋아요”라는 짧은 표시가 겉보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디지털 언어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삶을 살펴보고 있다는 무언의 신호가 된다.
긴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매번 전화를 걸 필요도 없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상대방의 글을 읽고, 사진을 보고, ‘좋아요’ 하나를 남기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여전히 자네의 삶을 바라보고 있네”라는 마음이 전달된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노년의 우정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다. 젊은 시절의 우정이 ‘함께하는 시간’에 의존한다면, 노년의 우정은 서로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2. 이 작품의 중심에는 ‘말하지 못한 위로’가 있다
작품에서 가장 애잔한 부분은 친구가 아내와 사별한 이후의 이야기다.
작가는 친구가 SNS에 올리는 ‘혼자 사는 외로운 가장’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쉽게 댓글을 달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보통 우정을 이야기하는 글이라면 “힘내라”, “위로한다”, “곁에 있겠다”는 말을 앞세우기 쉽다. 그러나 윤승원은 오히려 말하지 못한 마음을 기록한다.
왜 말하지 못했을까.
너무 큰 슬픔 앞에서는 어떤 말도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깊은 관심에서 나온 조심스러움이다. 작가는 친구의 아픔을 함부로 문장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저 SNS를 통해 친구의 삶을 바라본다.
그 결과 이 작품의 우정은 더욱 깊어진다.
말을 많이 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순간에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사실을 작가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이 작품이 단순한 우정담을 넘어서는 지점이다.
3. ‘좋은 친구·자랑스러운 친구·부러운 친구’라는 세 겹의 시선
2019년에 쓴 「좋은 친구·자랑스러운 친구·부러운 친구」를 작품 후반에 다시 끌어들인 구성도 문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좋은 친구’는 정서적 관계의 차원이고,
‘자랑스러운 친구’는 인간적 존경의 차원이며,
‘부러운 친구’는 삶의 모습에 대한 솔직한 인간적 감정이다.
특히 작가는 친구의 성공을 부러워하면서도 그 부러움을 시기나 열등감으로 만들지 않는다.
중앙 언론사의 중역이라는 경력,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녀들, 부부가 함께 즐기는 영화와 골프와 해외여행 등을 소개하면서도 그 중심에 놓는 것은 ‘출세’가 아니다.
작가가 진정 부러워한 것은 배우자와 함께 누리는 평범하고 다정한 일상이었다.
이 때문에 친구 아내의 사별 이야기가 현재의 글에서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2019년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부부의 행복한 사진’이 이제는 떠난 배우자를 기억하게 하는 추억의 사진이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의 정서가 크게 변한다.
부러움이 그리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것은 노년문학이 가질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정서적 전환이다.
4. ‘진국’이라는 별명이 인물의 성격을 압축한다
친구를 ‘뚝배기 진국’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이 작품의 개성적인 문체를 보여준다.
작가는 친구의 인품을 추상적인 미사여구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진국’이라는 친근한 별명을 붙이고, 뚝배기와 진국의 이미지를 연결한다.
뚝배기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따뜻하다.
진국도 화려하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다.
이것은 친구의 인격을 설명하는 동시에 윤승원 수필의 인간관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작가가 좋아하는 인간은 화려하게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두고 볼수록 깊은 맛이 나는 사람이다.
따라서 ‘진국’이라는 별명은 단순한 애칭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 친구를 규정하는 하나의 문학적 상징이 된다.
5. 경찰관과 수필가 사이를 연결한 것은 ‘친구의 믿음’이었다
1993년 신문 기사 이야기도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시 현직 경찰관으로 치안 업무에 바빴던 작가에게 기자가 찾아와 인터뷰했고, 그 배경에는 친구 백성기의 소개와 관심이 있었다.
신문의 제목인 “딱딱한 警察일 隨筆로 승화”라는 표현은 작가의 삶에서 경찰관과 수필가라는 두 정체성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친구는 단순히 작가의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니다. 친구의 재능을 먼저 알아보고 세상에 알려주는 사람이다.
좋은 친구란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만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며, 내가 걸어가는 길을 묵묵히 응원해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백성기는 윤승원에게 ‘지기(知己)’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6. 편지에서 SNS까지 ― 시대가 바뀌어도 우정은 변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소통의 변천사가 들어 있다.
편지 → 전화 → 카카오스토리 → 카카오톡 → ‘좋아요’.
이는 단순한 통신수단의 변화가 아니다. 한 인간관계가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다.
젊은 시절에는 편지 한 장이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했을 것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에 상대의 사진과 글이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매체는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자네를 잊지 않고 있다.”
이것이 모든 소통의 공통된 의미다.
그래서 작품 제목의 ‘변함없는 미소’는 실제 얼굴의 미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친구의 마음을 상징한다고 읽을 수 있다.
7. 이 작품은 결국 ‘우정의 유산’에 관한 글이다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면 두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형제처럼 다정하게 살아라.”
60년이 지난 지금, 그 말씀은 단순한 옛날의 당부가 아니다. 두 사람의 삶을 관통해 온 정신적 유산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는 아니지만, 두 사람은 어머니들이 남긴 말씀을 지키면서 형제보다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 왔다.
여기서 작품의 제목인 ‘지기지우(知己之友)’가 완성된다.
지기란 단순히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다. 나의 마음을 알고, 나의 삶을 이해하고, 나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60년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삶을 끝까지 기억해 주는 마음이다.
◆ 맺음말 ― 노년의 우정은 ‘곁에 있음’보다 ‘잊지 않음’이다
윤승원 수필가의 이 작품은 결국 한 가지 아름다운 진실을 이야기한다.
젊은 시절의 친구는 함께 뛰어다니는 사람이고,
중년의 친구는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사람이며,
노년의 친구는 멀리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좋아요’ 하나는 결코 가벼운 디지털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60년 우정이 보내는 짧고 조용한 인사다.
“자네 잘 지내고 있구먼.”
“나는 자네를 보고 있네.”
“우리 우정은 여전하네.”
그리고 친구의 아내를 생각하며 “떠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는 대목에서는 우정이 죽음의 경계마저 넘어선다.
살아 있는 친구와 떠난 친구의 배우자, 그리고 어린 시절 두 어머니의 말씀까지 하나의 기억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60년 지기지우의 변함없는 미소」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한평생 변하지 않는 우정에 바치는 헌사이며, 어머니의 당부를 평생의 덕목으로 간직한 두 사람의 인생 기록이고, 동시에 ‘노년을 어떻게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따뜻한 인간학적 수필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우정을 과장하지 않는 데 있다.
거창한 약속도,
극적인 사건도,
눈물겨운 화해도 없다.
그저 편지 한 통, 전화 한 번, SNS의 ‘좋아요’ 하나,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다.
그런 작은 것들이 6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면서 거대한 서사가 된다.
좋은 친구는 자주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친구이고, 진정한 지기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나를 잊지 않는 사람이다.
윤승원의 이번 수필은 바로 그 ‘잊지 않음의 미학’을 따뜻하고 담백한 문체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린 시절 두 어머니가 남겨 준 한마디가 있다.
“형제처럼 정답게 살아라.”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씀은 여전히 두 친구 사이에서 살아 있다.
그것이 이 작품이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가장 깊은 이유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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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 교장선생님 격려 메시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9.06.15:23
서로 잊지 않고 격려해주고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리고 60년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가진다는 것이 흔치 않습니다.
참으로 귀한 인연을 가지신 것입니다. 서로를 이해해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귀중한 인연입니다.
이런 인연을 60년간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윤 선생의 이런 친구를 소개해준 글은 우리의 마음에 깊은 메아리를 울려줍니다. 귀한 글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오랜 친구의 카톡 우정 표시가 따뜻한 안부가 되고, 댓글 할 줄이 기쁨의 메시지가 됩니다. 노년의 행복은 거창한 성취나 욕구 충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서로를 따뜻하게 존중해 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 인연의 소중함을 늘 강조해 주시고, 힘이 되는 격려와 용기를 주시는 말씀으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