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에세이 『쓰기의 말들』(유유, 2016)을 읽고
그물을 끌어 올리 듯 또 다른 책을 불러오는 책을 만났다. 글을 잘 쓰고, 글쓰기 선생으로도 유명한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은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 제목과 부재에 ‘쓰기’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 만큼, 쓰기에 방점이 찍혔다. 은유 작가가 고른 명문장이 왼쪽 페이지에, 은유 작가의 사유가 적힌 글이 오른쪽 페이지에 적혀 있다. 읽고 쓰는 것을 강조한 책이다.
얼마큼 책을 읽으면 이렇게 많은 명문장을 골라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책에서 진액만 뽑아낸 문장들은 나를 흔들었다. 한 문장도 빠짐없이 중요한 문구이고 빛나는 글이라서 밑줄을 긋고 접어가며 읽었다. 작가가 골라낸 문장을 풀어낸 글에서 은유 작가의 빛나는 문장에도 밑줄과 별표를 반복했다. 이 책을 읽으며 글쓰기를 위한 마음을 다져가는 시간이었다.
밑줄과 별표로 반짝이는 인용구들이 너무 좋아서 104권의 책을 모두 읽고 싶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덥고, 리베카 솔닛, 나탈리 골드버그, 황현산, 신영복 님의 책을 찾아 읽었다. 앞으로 읽고 싶은 책 100권이 남았다.
글쓰기를 연마하려 애쓰던 시간이 떠오른다. 잘 쓰고 싶은데, 생활이 늘 바빴다. 16년 동안 아픈 시어머니 돌봐야 했고, 29년 동안 두 아들을 키워야 했고, 25년 동안 혼자 공부를 해 왔다. 하루는 너무 짧아서 글 쓸 시간이 없었다.
솔직히, 글 쓸 시간만 있으면 그럴듯하게 글을 잘 써낼 어설픈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 시간이 쌓여 갈수록 마음속엔 슬픔인지 무기력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차올랐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줄여서 피를 토하듯 글을 써 보면, 너무 부끄러워 곁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보여주기에 민망했다.
에세이를 쓸 때면 망설여졌다. 내 사생활을 어디까지 보여줘도 되는가가 벽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책에서 작가는 말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라고. 그 문장들이 쓸 용기로 다가왔다.
“벌거벗은 자신을 쓰라. 추방된 상태의, 피투성이인.” - 데니스 존슨(p106)“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 리베카 솔닛(p220)“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 은유(p75)
『쓰기의 말들』은 삶이 어려울수록 글쓰기가 내 삶을 지탱해 주는 또 하나의 축이 될 것이라고 채찍질하고 있었다. 내 삶을 마치 깨를 털 듯 탈탈 털어 내어 쓰고 잘 다듬으면, 내 글에도 누군가 밑줄을 그어 줄까? 이런 고민과 기대를 하며 나는 읽고 쓰고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나는 책에 적힌 오채영롱한 미끼들이 탐나서 덥석 베어 문 한 마리 물고기였다. 서툴지만 더듬더듬 글쓰기의 바다를 배우면서 헤쳐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