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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4일
나라 전체가 국화축제로 한창이다. 서울서 조계사 국화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부산에서도 평화공원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 꽃을 보는 것도 즐거운데 사진 찍으면서 걸으니 자연히 운동이 되어서 일거양득(一擧兩得) 이다.
평화공원에서는 제23회 오륙도 평화축제(2019.10.19.(토)~20(일))와 제10회 국화전시회(2019년 10월 19일(토)~11월10일(일)를 하는데 평화축제는 끝났지만 국화전시회는 계속되고 있어 전철타고 버스타고 출동하였다.
축제 내용은 작년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고 꽃이 싱싱해서 보기 좋았다. 규모가 작아서 구경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아 30여분 동아 구경하고 촬영하고 귀가했다.
유엔의 날인데 잊어먹고 평화공원옆에있는 유엔기념공원에 못 들렸다. 방랑 시인 김삿갓
박 훈 석 지음
여인은 읍내로 들어오면서도 상금 생각이 간절한지, 이렇게 물었다 .
"당신은 글을 잘 아신다니까 , 방문을 한번 읽어 보기만 하면 상금은 틀림없이 탈 수 있갔디요 ?" "방문 내용을 읽어 보기 전에는 반드시 상금을 탈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 "그래선 안되요 ! 어떤 일이 있어도 상금만은 꼭 우리가 타야 해요 ." "자네는 돈에 환장한 사람 같네 그려 ! 돈이 뭣에 필요해 그렇게도 안달인가 ?" "그 돈을 타가지고 밭을 한 뙈기 사고 싶어서 그래요 . 노후에 자식새끼들 데리고 편하게 먹고 살려면 , 객줏집보다는 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낫거든요 ."
비록 서방질을 할 망정, 갸륵한 소리를 한다 .
"자네가 이토록 갸륵한 심정을 가지고 있으니 , 현상금은 꼭 우리가 타도록 노력해 보세 그려 . 그러나 상금을 못 타게 되더라도 너무 낙심은 하지 말게 !"
김삿갓은 내심으로는 상금을 탈 자신이 있었지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예방선을 미리 쳐놓았다 .
이윽고 읍내로 들어와 방문이 붙어 있는 남대문 바람벽 앞으로 가 보니, 그곳에는 갓을 쓴 시골 선비들이 십여 명이나 우글거리고 있었다 . 모두가 현상금을 타 먹기 위해 몰려든 선비들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
남대문 성벽에 붙어 있는 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읍내에서 쌀장사를 해먹던 전명헌 (全明憲 )이란 자가 모월 모일에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 범인은 피살자의 등골에 <方口月八三 > 이라는 글자 다섯 자를 써 놓고 사라졌다 .
누가 무슨 이유로 전명헌을 죽였는지 <方口月八三 >이라는 뜻을 꼭 알아야 하겠는데 , 아직까지는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 이에 관에서는 대금 일백 냥의 현상금을 걸고 범인이 써 놓은 글자의 뜻을 알고자 하는 터이니 , 강호 선비 제현은 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는데 적극 협조해주기 바란다 .
모 月 모 日 순천군수 류 현 진
김삿갓은 방문을 되풀이 되풀이해 읽어 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 <方口月八三 >이라는 글자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말도 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 살인 사건과 연관 지을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
(범인은 전명헌이를 죽인 뒤에 어째서 등골에 <方口月八三 >이라고 써 놓았을까 ?)
자기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런 글자를 써 놓았으리라고 짐작은 되지만, 그 글자의 뜻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방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다른 선비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로 , "방구월팔삼이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 헛참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는 걸 ..." 하고 중얼거리며, 한 사람씩 단념하고 뿔뿔이 돌아가 버린다 . 그러나 객줏집 아낙네만은 아직도 상금을 타고 싶은 욕심이 넘쳐 있었다 .
"어때요 ? 다른 사람은 몰라도 , 당신은 알 수가 있갔디요 ?"
김삿갓은 고개를 맥없이 가로저었다.
"문제가 너무 어렵군 . 내가 상금을 타 먹을 정도로 쉬운 문제였다면 , 나보다 먼저 달려온 선비들이 진작 타 먹었을 게 아닌가 . 남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나라고 어떻게 풀 수 있겠나 ?"
그러자 여인은 화를 벌컥 내며 이렇게 나무란다.
"남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라도 당신만은 풀 수 있지 않아요 ? 정력이 그렇게도 왕성하던 양반이 그런 것도 못 풉네까 ?"
여인은 간밤의 일이 무던히도 인상적이었던지, 그 일을 빙자하고 어거지를 부린다 . 정력이 왕성한 것과 지능이 높은 것은 전혀 별 개의 문제이건만 무지막지한 객줏집 여편네는 정력이 강한 남자는 뭐든지 잘해 낼 줄로 알고 있을 성싶었다 .
김삿갓은 그런 말을 누가 들을까 겁을 내며, 여인에게 이렇게 비꼬아 주었다 .
"이 사람아 ! 정력과 지능은 별개의 문제야 . 그리고 정력이 강한 것으로 말하면 , 자네가 나보다도 열 갑절은 더 했네 !"
그러자, 여인은 눈을 흘겨 보이며 , "나는 글을 모르지만 당신은 글을 잘 알고 있잖아요 ? 상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타야 합네다 !" "자네가 아무리 다그쳐 대도 모르겠는 걸 어떡하나 . 이삼 일쯤 여유를 두고 찬찬히 생각해 보면 , 혹시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지 ,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모르겠단 말씀이야 ."
여인은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는지, 눈을 커다랗게 떠 보인다 .
"뭬라고요 ? 이삼 일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겠다구요 ? 그렇다면 날래 집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레 !"
여인은 상금에 독이 올라, 김삿갓을 무작정 집으로 잡아 끄는 것이었다 . 물론 거기에는 오늘밤도 깨같은 재미를 보려는 음흉한 생각이 곁들여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 김삿갓은 못이기는 척 , 여인에게 끌려 객줏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였다 . 기왕지사 일을 저질러 버렸으니 , 남편이라는 사람이 돌아오기까지 주인 여편네와 재미를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객줏집으로 다시 돌아온 목적은 반드시 여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또가 풀지 못해 현상금까지 내걸고 있는 그 문제를 , 자기가 꼭 풀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자기가 풀지 못하면 그 문제를 누가 풀 수 있겠냐는 일종의 오기가 발동을 한 것이었다 .
김삿갓은 객줏집으로 돌아오며 여인에게 이런 농담을 하였다.
"오늘 저녁에도 자네 집에 끌고 가설랑 , 숙박료부터 내놓으라고 극성을 부릴 텐가 ?"
여인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런 걱정은 마시라요 . 이제는 돈 가지고 따질 우리 사이가 아니잖아요 ! 숙박료는 한 푼도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 그 대신 상금이나 탈 수 있도록 하시라요 !"
여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상금 생각만 꽉 차 있는 성싶었다.
이날 저녁 김삿갓은 저녁을 먹고 난 뒤에 <方口月八三 >이라는 글자를 백지에 커다랗게 써서 바람벽에 붙여 놓았다 . 자꾸만 읽어 보노라면 무슨 해답이 떠오를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아무리 읽어 보아도 신통한 생각은 떠오르지가 않았다.
"여보게 ! 죽은 사람이 뭐 하던 사람이라고 했지 ?" "죽은 사람은 읍내에서 쌀장사를 해먹던 사람이라면서요 ." "쌀장사를 해먹는 사람이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까 ? 내일은 읍내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죽게 된 이유를 알아보고 와야 하겠는 걸 ."
여인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는 빛을 보이며 말한다.
"설마 , 당신은 쌀장수 죽은 이유를 알아본다는 핑계로 도망을 가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
김삿갓은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 사람아 ! 자네는 사람을 그렇게도 못 믿는가 ? 나는 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 이 문제만큼은 내가 꼭 풀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네 . 자네가 그렇게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내일은 배낭과 삿갓까지 자네에게 맡겨 두고 나 혼자서 읍내에 다녀오도록 하겠네 ."
이리하여 김삿갓은 무참히 살해된 쌀장수 전명헌의 주변을 염탐하기 위해, 다음날 혼자서 읍내로 들어갔다 . 방문이 붙어있는 남대문 앞으로 찾아가 보니 , 이날도 많은 선비들이 방문을 열심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 김삿갓은 방문을 두 번 세 번 자세히 읽어 보고 나서 , 옆에 있는 선비에게 물어보았다 .
"방문을 보면 , 피살자의 등골에 <방구팔월삼 >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다고 하는데 , 혹시 잘못 쓴 글자가 아닐까요 ? "
선비가 대답한다.
"내가 보아도 <방구월팔삼 >이라는 글자는 암만해도 말이 되지 않아요 . 나도 노형과 같은 의심이 들어 , 시체를 직접 검사해 보았다오 . 그런데 확실한 것은 <방구월팔삼 >이라는 글씨가 씌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오 . "노형은 시체를 직접 보셨던가요 ? 그렇다면 피살자의 시체는 어디 있습니까 ?" "보고 싶거든 대문 안에 들어가 보시구려 . 시체가 그늘진 곳에 거적으로 덮여 있을 것이오 ."
김삿갓이 문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시체는 그늘진 곳에 거적으로 덮여 있고 , 그 옆에는 피살자를 때려죽인 몽둥이까지 놓여 있었다 .
거적을 들어 보니, 시체의 등골에는 <方口月八三 >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 그리고 그 옆에는 <方口月八三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이 몽둥이를 이용해 풀어 보시오 > 라고 쓴 종이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
"뭐 ...? 이 몽둥이를 이용해 풀어 보라고 ...?"
김삿갓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길이 없었던 김삿갓은 피살자가 운영하던 쌀가게를 찾아가 동리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
쌀가게는 빈민촌 한복판에 있었다.
"전명헌이라는 사람이 평소에 누구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는가요 ?" "글쎄요 . 우리가 그런 것까지야 알 수 있나요 ." "원수진 사람이 없다면 사람을 함부로 죽였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 "누가 무슨 생각에서 죽였는지 우리들은 알 수가 없지요 ." "죽은 사람은 평소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을 받아왔습니까 ?" "겉으로는 무척 양순한 사람이었지요 . 그러나 장사에 있어서 만은 너무 야박하다는 비난은 자주 들었지요 ." "장사에 야박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똑같은 한 말을 사와도 다른 가게에서 사오면 됫박이 넉넉한데 , 전명헌네 가게에서 사오면 언제나 되가 부족했다는 말이지요 ." "그런 줄 알면 다른 쌀가게에서 사왔으면 될 게 아니오 ?" "다른 가게에서는 외상을 주지 않지만 전명헌네 가게에서는 얼마든지 외상을 잘 주었거든요 .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가난하기 때문에 전명헌네 가게는 되가 부족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없이 그 집에서 외상 쌀을 가져다 먹었다오 . 그게 바로 가난한 사람들의 비애가 아니겠소 ?"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명헌이라는 쌀장수가 살해된 원인은 바로 그런 점에 있지 않았는가 싶었던 것이다 .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런 말도 하였다
"쌀을 외상으로 사거나 현금으로 사거나 수량은 똑같아야 하는데 , 전명헌이네 가게에서 외상으로 사온 쌀은 이상하게도 한 말을 사와도 집에 가져와 보면 아홉 되 밖에 되지 않는 거에요 . 게다가 쌀값에 대해서는 호되게 비싼 이자까지 꼬박꼬박 받아먹었단 말이예요 . 죽은 사람에게 이런 말은 안 됐지만 ,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온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구요 ."
시골 사람들은 인심이 순박해서 어지간해서는 남을 비난하지 않건만, 전명헌이가 살해된 데 대해서는 누구도 동정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
"그러면 전명헌이라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외상 쌀을 주어 가며 고리대금까지 겸해 오다가 누구에겐가 원한을 사서 죽게 된 모양이군요 ." "그 거야 우린들 알 수 없는 일이지요 . 이러나저러나 그 사람은 돈에 얼마나 이골이 났는지 , 쌀장사를 해먹는 데도 됫박 밑바닥을 이중으로 만들었다는 소문도 떠돌았지요 ."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 전명헌이 피살된 원인은 됫박을 속인 데 있다는 심증이 굳어진 것이다 .
그러나 심증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죽은 자의 등골에 씌여 있는 <方口月八三 >이라는 글자의 뜻을 분명히 알아내기 전에는 , 여전히 수수께끼가 아니던가 .
김삿갓은 이날 읍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염탐을 계속해 오다가, 저녁 무렵에 헛물을 켜고 객줏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
"어떻습네까 ? 상금은 우리가 탈 수 있겠습네까 ?"
주인 아낙네는 김삿갓의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다그쳐 물었다.
"글쎄 ! ... 아직까지는 알 수 없지만 , 좀 더 알아보면 되지 않겠나 ? ..."
김삿갓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바람벽에 써 붙인 <方口月八三 >이라는 다섯 글자를 자꾸만 바라보고 있었다 . 피살된 전명헌이라는 사람이 쌀장사를 해먹었다는 사실과 , 범인이 피살자의 등골에 써놓은 <方口月八三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연관성이 있겠는데 , 그 연관성이 어떻게 얽혀 있는 것인지 암만해도 알 수가 없었다 .
더구나 <몽둥이를 이용하면 알아낼 수 있으리라 >는 종이 쪽지가 시체 옆에 있었는데 , 그것 역시 몽둥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
저녁을 먹은 뒤에 주인 아낙네가 밥상을 들어내느라고 등잔불을 옆으로 옮겨 놓는다. 그 순간 , 김삿갓은 자리를 옮겨 앉아 , 바람벽에 붙여 놓은 <方口月八三 >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 옮겨 놓던 등잔걸이의 그림자가 <方口月八三 >이라고 쓴 글자를 산적 꼬치처럼 위에서 아래로 꿰어 놓은 듯이 보였다 .
그 순간 김삿갓은 검은 그림자에 꿰어 있는 다섯 글자를 유심히 보았다.
"앗 ! 이제야 알았다 !"
김삿갓은 무릎을 탁 치며 호들갑스러운 소리를 질러 댔다.
"뭬야요 ! 알아 내셨시요 ?"
밥상을 들어내던 주인 아낙네는 별안간 소리를 지른 김삿갓을 바라보며 묻는다.
"기래 , 기래 ! 이제야 알아냈구먼 ...!"
김삿갓, 너무도 기쁜 나머지 어설픈 평안도 사투리로 대답했다 .
"도대체 비밀이 뭔지 날래 말해주시라요 !"
주인 아낙네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김삿갓에게 채근했다.
그러자 김삿갓은 글을 모르는 주인 아낙이었지만 너무도 기쁜 나머지, 훈장이 학동에게 가르치듯 , <方口月八三 >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
"등잔걸이 그림자가 바람벽에 붙여 놓은 다섯 글자의 한복판에 산적 꼬치 꿰 듯 비치면서 , <方 >자는 <市 >자로 보이고 <口 >자는 <中 >자로 보이고 , <月 >자는 <用 >자로 보이고 , <八 >자는 <小 >자로 보이고 , <三 >자는 <斗 >자로 보인 것이네 , 따라서 <市中用小斗 >란 글자가 드러나 보였고 , 이것은 쌀장사가 쌀을 팔아먹을 때 , 올바른 됫박을 쓰지 않고 쌀이 적게 들어가는 작은 됫박을 써왔다는 뜻이 되는 것이네 !" "내레 글자는 모르겠지만 , 쌀장사를 하다가 죽은 놈이 작은 됫박으로 사람들을 쇡여 먹은 비밀이 탄로났다면 누군가 죽일만도 했구만요 ! ..."
김삿갓은 주인 아낙네의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쓴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김삿갓이 쓴웃음을 지은 이유는, 법화경 (法華經 )에 이르기를 ,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如是因 如是緣 如是果 如是報 )라는 말이 있는데 , 이러한 원인으로 , 이러한 인연이 생겨 , 이러한 결과를 낳음으로써 , 이러한 보복을 받게 된다는 뜻으로 , 됫박을 속여 쌀을 팔아오다 비명 횡사한 전명헌은 그가 생전에 저지른 죄악에 대한 당연한 천벌이라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남들이 풀지 못하는 상금이 걸린 문제도 풀었고 , 이제는 우리 문제를 풀어야지요 !"
밥상을 들어낸 객줏집 여인은 설거지도 미뤄 놓고 이불부터 편다.
"어 , 어 ...!"
김삿갓은 졸지에 객줏집 여인 손에 이끌려 이불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오늘은 내레 특별히 봉사를 해드리갔시오 !"
객줏집 여인은 음흉스런 웃음을 웃으며 김삿갓의 사타구니를 더듬는다.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如是因 如是緣 如是過 如是報 )
(자네 남편에게 짓는 나의 죄는 내 탓이 아니라 순전히 자네 탓이네 ....)
김삿갓은 여인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속으로 법화경 경전을 자꾸 중얼거렸다 .
女是因 女是緣 女是過 女是報... (여시인 여시연 , 여시과 여시보 ...) (여자 (口 ) 때문에 짓는 죄는 , 여자가 갚아야 한다 )
다음날 아침, 김삿갓은 상금을 타기 위해 객줏집 아낙네와 함께 읍내로 들어갔다 . 그리고 주인 아낙네는 동헌 바깥마당에 기다리게 하고 , 자신은 선화당 (宣化堂 )으로 사또를 만나기 위해 찾아 들어가려고 하였다 .
그러나 문지기들은 김삿갓의 앞을 가로 막으며, 밖으로 쫒아 내려고 한다 . 김삿갓은 화가 동해 문지기를 향해 호통을 질렀다 .
"이 사람들아 ! 나는 사또께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상금을 걸고 널리 해답을 구하신다기에 , 찾아온 사람일쎄 . 그러한 나를 우격다짐으로 쫓아 내면 중대한 살인 사건을 무슨 수로 해결하겠다는 말인가 ?"
문전에서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듣고 사또가 몸소 마당으로 나오며 소리를 지른다.
"무슨 일로 소란을 떠느냐 ?"
사또는 나이는 오십 가량 되었을까, 키는 육척장신인데다가 , 몸집이 돼지처럼 비대한 것이 첫눈에 보아도 우둔하고 거만스러워 보였다 .
김삿갓은 사또 앞으로 걸어 나와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시생은 남문 밖에 써 붙인 방문을 보고 , 사또전에 해답을 알려 드리고자 찾아 왔사옵니다 ."
사또는 그 문제로 어지간히 골머리를 앓고 있던지 기뻐하는 빛을 보이며, "그래 ! 그거 참 기쁜 소식일세 그려 ." 그리고 김삿갓의 옷차림을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다시 말한다.
"방문을 내붙인 지 십여 일이 지나도록 찾아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 자네는 <方口月八三 >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는 말인가 ?" "물론입니다 .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기에 사또를 만나 뵈러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
사또는 의심스러운 빛을 보이며, "그러면 묻겠는데 , <方口月八三 >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 "대답을 드리기 전에 , 사또께 먼저 말씀드려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사옵니다 ."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 그게 무슨 말인가 ?" "첫째는 죽은 사람의 쌀가게에서 그가 쓰던 됫박을 증거품으로 미리 갖다 놓는 일이옵고 , 둘째는 사또께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직접 검증해 주시는 일이옵니다 ."
결말을 쉽게 내려면 사또에게 모든 증거품을 직접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런 제안을 하였다.
사또는 시체를 보기가 끔찍스러운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설명만 들었으면 그만이지 , 끔찍스러운 시체를 내가 직접 봐야 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 "아니옵니다 . 누가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는지 , 확실한 증거를 보여 드리기 위해서는 사또께서 꼭 현장까지 왕림해 주셔야 합니다 ."
김삿갓은 사또에게 명확한 인식을 시켜 주기 위해 자기 고집을 끝까지 우겨 대었다. 사또는 김삿갓의 고집을 꺾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었는지 , 통인 (通人 )을 시켜 전명헌 네 쌀가게에서 쓰던 됫박을 즉시 현장으로 가져오게 하는 동시에 , 자기 자신도 김삿갓과 함께 피살자의 시체가 있는 현장으로 직접 가게 되었다 .
김삿갓이 거적을 들어 올리니, 등골에 <方口月八三 >이라는 글씨가 써 있는 시체가 나온다 . 김삿갓은 시체 옆에 놓여 있는 몽둥이와 종이쪽지를 사또에게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
"이 몽둥이는 범인이 전명헌을 때려죽일 때 사용한 몽둥이인가 봅니다 . 그리고 <方口月八三 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으면 이 몽둥이를 이용해 풀어 보라 >고 하였습니다 . "이 사람아 ! 쓸데없는 설명은 그만 하고 , <方口月八三 >이 무슨 뜻인지 , 그것만 빨리 말해 주게 ."
사또는 썩어가는 시체를 보기가 끔찍스러운지, 고개를 돌려 외면한 채 해답만 재촉했다 . 그러나 김삿갓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 그리하여 문제의 몽둥이를 다섯 글자 위에 길게 올려 놓으며 , "만약 이 몽둥이도 자획 (子劃 )의 하나라고 본다면 , 사또께서는 이 다섯 글자를 뭐라고 읽으시겠습니까 ? " 하고 물었다 .
사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글자와 몽둥이를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별안간 놀라운 얼굴이 되면서 , "몽둥이도 자획으로 친다면 <方口月八三 >은 <市中用小斗 >라는 글자로 변해버리네 그려 !"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 "그렇습니다 . 범인은 시체의 등골에 <方口月八三 > 이라는 글자를 써 놓으면서 , 이 글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거든 이 몽둥이를 이용해 풀어 보라고 했습니다 . 그래서 이 몽둥이를 이용해 보니 , 사또께서 보신 바와 같이 <方口月八三 > 은 틀림없는 <市中用小斗 >가 되었습니다 ."
사또는 대번에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미심쩍은 데가 있는지 , "시중용소두라 ... 그것은 무얼 뜻하는가 ?" 하고 묻는 것이었다. 김삿갓이 대답한다 .
"시중용소두란 , 전명헌이라는 자가 쌀장사를 해먹으면서 법규에 합당하지 않은 작은 됫박을 써왔다는 뜻이 되는 것이옵니다 ." "심증만 가지고 그렇게 판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오판을 꺼리는 사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문제의 해답이 기상천외 (奇想天外 )한 것이어서 그런 줄도 모른다 .
"사또께서 제 말씀에 의심을 품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인 줄로 아옵니다 . 제 말씀을 믿기 어려우시다면 , 확실한 증거품을 하나 보아 주시옵소서 !"
사또는 확실한 증거품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적이 놀라는 빛을 보였다.
"확실한 증거품이 있다고 ? 도대체 그 증거품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
김삿갓은 시체 옆에 놓여 있는 말(斗 )을 가리키며 말했다 .
"또 하나의 증거품은 바로 이 말이옵니다 . 이 됫박은 전명헌이가 쌀가게에서 쓰던 됫박입니다 . 이 됫박은 밑바닥이 이중으로 되어있어서 , 정규 됫박보다 쌀이 훨씬 적게 들어가게 되어 있을 것이옵니다 ." "바닥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니 ? 그게 무슨 소린가 ?" "제 말씀을 믿지 못하시겠거든 , 이 자리에서 저 됫박을 해체해 보십시오 . 저 됫박은 반드시 쌀이 적게 들어가는 장치로 되어 있을 것이옵니다 ."
김삿갓은 문제의 됫박을 직접 본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장담을 할 수 있는 것은 , 마을 사람들이 들려준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사또가 사람을 시켜 됫박을 분해해 보니 , 과연 그 됫박은 밑바닥은 쉽게 눈에 띄지도 않을 뿐 만 아니라 . 알기 어렵도록 두꺼운 나무로 덮혀 있었다 .
"자네 말대로 이 됫박은 밑바닥이 이중으로 되어 있네 그려 . 원 , 이럴 수가 있나 !"
사또는 놀라기만 할 뿐 크게 격노하진 않았다. 이것을 지켜본 김삿갓은 목민관 (牧民官 )이 이럴 수가 있나 , 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말했다 .
"이자는 가난한 백성을 이런 방식으로 두고두고 속여 먹었으니 , 이런 악독한 놈은 백 번 죽어 마땅한 것 같사옵니다 ."
그러나 김삿갓의 말을 들은 사또의 태도는 의외였다.
"이 사람아 ! 장사꾼이란 워낙 사람을 속여 먹는 것이 본업이 아닌가 . 남을 속여먹는 것을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 장사꾼들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
사또는 뇌물을 얼마나 많이 받아먹었는지 전명헌이라는 자를 두둔하는 태도로 나왔다. 김삿갓은 세상에 이런 악질 사또도 있는가 싶어 비위가 크게 거슬렸다 . 그래서 얼른 이렇게 말했다 .
"이 문제는 일단 해결된 셈이니 , 이제는 시생에게 상금을 내려 주시옵소서 ." "주지 ! 주구말구 . 상금을 줄 테니 나와 선화당으로 가세 ."
그리고 동헌으로 오면서 말한다.
"자네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비상한 머리가 있는 모양일세 그려 . 이왕이면 다른 문제도 하나 더 해결해 주게나 ." "사또께서 해결해야 할 사건이 또 있다는 말씀입니까 ? " "쌀장사 전명헌이가 왜 죽게 되었는지 , 그 원인은 자네의 말을 듣고 잘 알았네 . 그러나 그자를 죽인 범인도 이 기회에 꼭 잡아야 할 게 아닌가 . 그 범인도 자네가 잡아 주었으면 좋겠네 ."
그러나 김삿갓은 그 범인까지 잡아 줄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쌀장사에게 빈민들이 착취를 얼마나 심하게 당해 왔으면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겠느냐 싶었기 때문이었다 .
"그 범인도 꼭 잡아야 하는 것이옵니까 ?" "사람 하나쯤 죽인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겠나 . 그러나 이번 범인은 내가 꼭 잡아내야만 내 체면이 서겠네 ." "범인을 꼭 잡아야 사또의 체면이 서겠다는 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 "이왕 말이 났으니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해 줌세 . 전명헌이라는 자는 평소에 쌀장사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나를 많이 돕던 사람일쎄 . 그런 사람이 살해되었으니 유가족에게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서도 그 범인만은 꼭 잡아내야 할 게 아닌가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사또란 자가 범죄 사건을 공평하게 다룰 생각은 안하고 , 평소에 뇌물을 많이 갖다 준 악랄한 쌀장수의 원수나 갚아 줄 생각만 하고 있으니 , 도대체 백성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 상금을 내걸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
김삿갓은 범인을 잡는 일에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 두 사람은 동헌에 당도하였다 .
사또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그 사이에 깨끗하게 잊어버렸는지, 김삿갓에게 상금 백 냥을 건네며 이런 말을 한다 .
"내가 보니 , 자네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인 것 같아 말하는데 , 따로 부탁할 일이 하나 있네 ." "특별한 부탁은 무슨 일이옵니까 ?"
김삿갓은 사또의 허실부실한 태도가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러자 사또는 큰기침을 한 번 하고 나더니 , 수염을 새삼스레 쓸어내리며 이렇게 말을 한다 .
"자네는 한양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 내 가문은 한양 명문대가인 간동 대감댁 집안이라네 . 간동 대감은 바로 나의 할아버님 되시는 어른이란 말일세 . 자네는 <간동 대감 >의 명성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