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그랑주 2점
박남희
아무래도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좀 더 길어질 것 같아
내가 믿는 신을 태양이라고 하고
너를 달이라고 하면 나는 당연히 지구
그 사이에 중력이
같아지는 곳이 존재한다는 게 참 신기해
어쩌면 L2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각지대인지도 몰라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한 순간에 지워버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지점
그런데 신을 지워버린다는 건
지극히 송구스러운 일
이럴 땐 잠시
망각이 다녀갔다고 말하는 게 더 낫지
태양이 지구를 놓아줄 수 없듯이
나는 너를 놓아줄 수 없어서 오래 괴로웠지
서로 궤도가 다른 것들이
서로를 놓아줄 수 없을 때
중력은 생겨나지
중력과 중력이 만나서
원심력과 구심력을 만들고
몇 해 동안 서로를 이끄는 구심의 품안이 좋아
구심 속에서 까무룩히 저물다가
아득히 먼 곳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문득
바깥의 힘을 깨닫게 되지
눈부시고 뜨거운 줄로만 알았던 태양이
때가되면 저녁 너머로 슬그머니
제 모습을 감추었던 그 속내를 비로소 알게 되지
그제야 지구는 자신의 몸속에 있던 중력에
태양과 달의 지분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하지만 너를 떠나보내고도 한참 동안 난
내가 머물던 이곳을 L2로 기억했었지
내 몸이 빛을 가려서
네 몸이 캄캄해지던 바로 그 지점
많이 그리울 거야
그 땐 그림자도 뜨거웠지
*라그랑주 점(Lagrangian point): 칭동점(秤動點)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공전하는 두 세 개의 천체 사이에서 중력과 원심력이 상쇄되어 실질적으
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 평형점을 말한다. 이 점은 여러 개인데
위치에 따라 L1, L2, L3, L4, L5로 불린다.
계간 『문학청춘』 2023년 겨울호 발표
출처: 시작은모임(young570519) 원문보기 글쓴이: 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