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누구를 위해선가. 절대적 존재를 추구하면서 불상사를 논한다는 것은 반의적이다. 그러나 살상행위(殺傷行爲)는 수시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예를 들자면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닌가. 어쨌든 한 순간 아비규환 속에서 생사가 갈라진다. 거기서 고인들이야 잠들어 말이 없지만 천운으로 버텨낸 생존자의 적나라한 심금은 돌이켜 볼 수 있는 것이다. 곧 죽음의 긴 터널 속에서 허우적이던 그들은 어떤 절박한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겼을까? 그리고 그들은 한 절대자를 쫓아 무엇을 갈구하였을까.
하기야 누구든 그와 흡사한 체험을 했다면 그 시각의 사고현장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그랬다. 어느 날 밤 그 역시 해난을 당하자 수 없는 인명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던 그 막다른 운명 속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그때껏 절대자를 잘 모르던 그는 다분히 심리적인 다음과 같은 환각적 심층을 더듬어 보았다.
‘신? 흐흐……. 자네 지금 천국에 간다면 가겠는가?’
‘아닙니다. 신이여…….’
그 신은 대번에 물어 제쳤다.
‘그럼 무엇을 원한다는 건가?’
‘다만…….’
다음 말은 그가 쉬이 이을 수 없다. 홀연 애정 어린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 어머니는 어쩌면 가난한 조국의 형상화처럼 엇비슷 닮은 모습이었다.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세요. 오, 신이여……. 그 다음 감히 영혼이 있으면 그것마저 죽여주세요.’
함부로 절대자를 불러 망동을 삼가 하지 않은 그가 혹 곁에서 누가 그런 허튼 수작을 들었을까? 하고 선체 위 주변을 휘두르며 가슴을 짓눌렸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란 거의 없는 그에게 그런 간절한 구원(救援)은 목숨을 구걸하는 열망이었을 뿐 그 동안 존엄(尊嚴)한 대상을 너무 몰랐다는 게 변명 아닌 사실, 그대로였다. 마치 변덕 잦은 상대의 인성변화처럼 어째 절대자를 향한 믿음은 기상변화에 따라서 파도타기를 하듯 평생토록 두려움을 겪는 해상생활을 했던 터였다. 그러나 그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존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닐까. 이를테면 그 절대자는 그가 믿는 둥 마는 둥 하는 하나님이 될 수 있고 부처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듯 그런 존재는 결코 반신 아닌 잠재의식적 가냘픈 믿음의 이유야 없지 않았다.
그러니까 불가피한 참상 속에서 너 나 없이 거의 모든 생존자들은 아무리 순간적이든 간에 아주 짧은 구원의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기도를 했을까. 물론 그에게 그 막연한 대상 가운데 한 절대자는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그 분은 눈두덩 위로 홀연히 나타났다. 먹구름의 흑암을 가른 하늘에서 빛을 받고 우아한 천사들의 찬미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광의 빛살을 타고 하강하는 절대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경탄해 마지않는 그 순간, 그는 차례대로 사라져 가는 선원들의 죽음을 얼핏 떠올리며 진실로 어떤 기도를 올려야 좋을지 몰랐다. 갈급한 자기 자신의 뜻을 나름대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은 생전 처음 해 보는 그의 기도였다.
화기애애한 환각은 계속 되었다.
“오,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이름을 그는 속으로 뇌였다. 그리고는 쫑긋이 더욱 귀를 세우고 혹 당신의 육성이 흐를 입술을 지켜보았다. 곧 어떤 계시가 저 허공에서 이곳 암초에 충돌된 선체 위로 스쳐대는 바람결을 타고 반향 돼 올 것 같았다. 그러나 꾹 다물어진 당신의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오, 하나님!”
내내 침묵만을 머금는 당신의 입술은 설핏 쓴웃음을 띄웠다. 그 웃음은 갑자기 외면하는 듯 너무 싸늘해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은 당혹스런 의혹이 펀뜻 자신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그랬던가 싶은 당신은 그러니까 그 쓴 미소로써 갖은 잔인한 살인·살육의 여러 현장을 태연자약하게 지켰을 그리고 또한 줄곧 지키고 있을 정작 모진 형벌만을 주고 있는, 요컨대 여기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는 생존자의 머리 위에서 대처하고 있었다.
“‘오, 예수 그리스도여! 여기 가련한 선원들은 모두 속절없는 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량없는 사랑으로써 저 길 잃은 어린 양들에게 이제는 믿음을 주시고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러고 그는 눈꺼풀을 보다 부드럽게 내려 감았다. 당신은 이내 저편 공간 속에 머물러 다시 은은한 서기를 뿌렸다. 역시 서기는 당신의 하얀 옷자락에서 암흑을 한결 벗기듯 퍼져 생존자들을 어슴푸레 비춘다. 거기에서 그들은 모두가 천진무구한 양들처럼 당신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의 자세를 취하여 고요히 참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기도를 더 계속해야 좋을지 몰랐다. 생각건대, 똑 같은 희구의 기도문을 자꾸만 암송한다는 것은 자신이 괜히 무식하기도 하고 그저 비굴할 것 같아서 반복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내내 지루한 침묵만을 지키고 있을 뿐인 당신으로부터 그는 이제 꿈결 같은 환각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그 와중이었다. 당신의 그 은은한 서기가 벼락 치듯이 싸느랗게 변환되자 급기야 그의 피부에 부딪쳤다. 몸서리쳐지는 냉기였다. 그런 냉기는 뼛속까지 스며들자 그예 그는 눈꺼풀을 활짝 열어젖히고 말았다.
황량한 칠흑 빛 속이었다. 아무 형체도 그 속엔 비치지 않았다. 휘돌아 치는 그 진한 칠흑의 어둠만이 쏜살같이 몰려 멍한 가슴에 덩어리째 붙박이자 거기서 펑, 구멍을 뚫어내고 온몸에 침투하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세찬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세포조직 속까지 뻗혀 모든 생명체의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는 듯 귓전에서 울어댔다. 거센 그 회오리 하늘바람은 그렇게 어디서든지 불어제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더없이 허탈한 후유증이 그랬던가, 싶은 갖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휘감듯 지났다. 거저 황당하고 참 스산한 느낌뿐이었다. 더 뭐라 형용해야 좋을지 모를 전율적인 환각현상이 그랬다.
어쨌든 그는 목숨을 이었다. 그리고 그 후 무의식 가운데서도 결코 절대자를 지울 수 없는 그로서는 마치 격심한 뇌졸중에 걸린 듯한 삶을 계속해 왔다. 그 모든 계기가 그로 하여금 그러니까 어느 날 어떤 교회로 인도, 진실로 교화시키려는 건지 그는 지금도 잘 모르는 것이었다.
가끔 그는 성경을 읽었고 절대자에 대한 은혜로움을 구하면서 때로는 한번씩 ‘3X 믿음’이란 대명을 혼자서 유추해 본다. 자신의 모든 사유(思惟)가 ‘믿고 믿으며 믿겠나이다.’란 실천의지로 변환되리라는 희망사항이 그것이다. 게다가 그런 3X의 한갓 의도가 유일한 존재를 사랑하며 기다리며 그리워하듯 엇비슷 추구되고 있었다고나 할까. 때문에 곧잘 그가 잊을 수 없이 떠올리는 성구는 이사야(Isaiah) 44장 24절이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그것은 곧 부정적인 하나의 견해가 긍정적인 믿음으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진리가 아닐까, 싶어서이다. 이를테면 놓지 않은 자신의 의지가 마치 그는 금세 뇌졸중에서 깨어난 듯이 어둔 주변을 훤히 밝히듯 그제야 새로운 사물을 내다볼 수 있는 느낌이 드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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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 정인덕(본명 : 경수) 경북 경주 출생
경주고등학교 졸업 한국해양대학교(14기 기관과) 졸업
94년 삶터문학에 중편소설 [겨울바다의 덫]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 데뷔
삶터문학 정회원, 시와 문학 정회원, 한국문학 도서관 정회원, 한울문학 전임 영남지역 회장, 낙동강 문학 상임고문
첫댓글 허구와 비허구,...그러나 허구의 세계에서 소설이 세상사 한발 앞서간다는 걸 믄득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윗글은 시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