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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엔 천주산(天柱山)과 공덕산(功德山)을 이어탔다.<☞ 월간 山 >
그 땐 찬바람 귓전에 스쳐지나가듯 그렇게 휑하니 산바람만 쐬고 왔었다.
대승사 일주문엔 사불산대승사(四佛山大乘寺)라 새겨져 있다.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일명 '사불암'이라 불리는 천강석조사불상(天降石造四佛像)에서 사불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신라 진평왕 때인 587년에 하늘에서 한 길이나 되는, 반듯한 사면체 바위가 붉은 비단에 싸여 이곳에 내려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왕이 이곳까지 찾아와
예배하고, 이 바위 옆에 대승사를 지었다고 하니 그 유래가 아득하다. <산&산>
이번엔 대승사와 그 부속암자인 묘적암(妙寂庵 )과 윤필암(閏筆庵)을 아우러는 원점회귀의 산행이다.
공덕산이 품고있는 1400년 고찰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9년(587년)에 창건되었다.
부속암자인 윤필암은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암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묘적암은 나옹선사가 출가한 사찰이다.
☞ 대승사 홈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산행코스: 대승사주차장(220m)-방광재-반야봉(720m,U턴)-방광재-공덕산-천주봉갈림길-옛고개-쌍연봉-사불암갈림길-묘봉-묘적암-윤필암-주차장(3시간30분)
진입도로는 좁은 듯 보였지만 그러거나말거나 버스는 대승사일주문을 지나 대형주차장에 닿는다.
알주문을 담기 위하여 100여 미터 떨어진 일주문 까지 쪼르르 내려간다.(사진은 주차장 입구에서 일주문을 잡았다.)
사불산일주문이다.
뒤엔 불이문이...
不貳門은 삶과 죽음,善과 惡이 하나라는 뜻.
일주문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30m지점에 돌담을 쌓아놓은 우측길이 들머리.(빨간 동그라미에 아래의 이정표가 있다.)
..
대승사 입구에 훼손된 3층석탑과 사불산대승사사적비가 있다.
새로 지어진 듯한 분위기는 화재로 인하여 극락전과 명부전 산신각을 제외한 전부가 소실되어 새로 중창되었기 때문...
백년당을 들어서서...
계단을 따라 만세루로 올라선다.
단청이 눈부시다.
대웅전엔 보물로 지정된 목각탱이 있는데,우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7호인 ☞ 노주석(露柱石)은 야간행사 때 석등의 기능을 한다고 한다.
요사채.
지팡이를 놓고 모자를 벗은 후 꽉 닫긴 대웅전 문을 두 손으로 삐그덕 열곤 합장~
보물 575호인☞ 대승사 아미타 목각탱(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목각탱은 나무로 만든 작품으로 원래 영주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에 봉안하고 있던 것을 철종 15년에 이 곳으로 옮겨 왔던 것.
그 후 부석사의 끈질긴 반환요구를 고종 13년 부석사 조사당 수리비용을 대어 주면서 말끔이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법당과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되는 대승선원은 'H'자형의 독특한 건물모습도 눈길을 끌지만 이곳은 1944년 성철스님이 3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 정진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계속한 곳으로 유명하다.
노주석과...
새로 짓는 종각.
일행들은 전부 떠나고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내려다 봤을 때 한 사람 산객이 내려가는 좌측으로 진입로가 열려있다.
금방 임도를 만나자 일행들의 꽁무니를 물었다.
임도를 우측으로 200여 미터 진행하다 다시 좌측 산길로 올라 붙는다.
이 곳에서의 이정표는 제각각이다.
따로따로 노는 이정표.
방광재에 올라섰다.방광재에 올라서니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져...ㅋㅋ
방광재에서의 이정표.(반야봉 방향으론 막대기를 걸쳐놓아...)
허용된 등로를 제외한 전지역이 사찰측에서 설립한 대승영농조합법인으로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반야봉 까진 왕복 20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아마 임산물을 관리하는 초소일 것.
이 초소에서 직진 오름길에 반야봉이 있지만 위험구간이고, 오른쪽으로 살며시 우회하여 뒤에서 올라가야 한다.
반야봉이다. 몇 조각의 바위덩어리로 형성된 반야봉은 표시는 없지만 사방 조망이 막힘없이 뚫려있어 꼭 들릴 것을 권하고 싶다.
[반야(般若): 모든 사물의 본래의 양상을 이해하고 불법의 진실된 모습을 파악하는 지성의 작용.]
천주산(天柱山)이 하늘을 받치고 섰다.
두루뭉실 육산의 공덕산이 중생들께 공덕을 베풀고 있다. 공덕산 좌측 뒤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황장산인가? 대미산인가?
우뚝한 천주산 아래에 민가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앉았다.
두루뭉실 공덕산과 하늘기둥 천주산은 이렇게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많은 산 마니아들은 당일로 이어타기를 한다.
두 산 사이로 보이는 헌걸찬 산줄기는 소백산인 듯.
우리가 진행할 능선 너머로 운달산도 조망된다.
운달산 왼쪽 뒤론 문경쪽 백두대간이 지나가고...
공덕산과 진행할 능선 옴푹 가라앉은 옛고개 사이로 뾰족히 보이는 건 아무래도 황장산 같은데..(?)
발 아래엔 대승사가...
내려서는 바위덩어리 반야봉. 눈요기 함 자알 했다.
반야봉을 내려서서 우회길에서 족적이 희미한 반야봉 진입길을 알기쉽게 그린다.
좌측으로 두 번째의 출입금지 푯말에서 사각침목(동그라미)이 놓여있는 지점에서 희미한 족적을 따라 지척의 능선으로 올라 붙는다.(초소에서 불과 1~2분 거리)
방광재로 되 돌아나와 진행 중에 본 이정표엔 뜬금없이 이 지점을 반야봉이라 적어 놨다.
완만한 고도를 서서히 높혀간다. 오른쪽으론 하늘(天)기둥(柱)이라는 천주산(天柱山)이 내내 붙어가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햐~ 하늘 무너질 일은 없을 터.
반야봉에 비하면 조망은 꽝이다. 저쪽 헬기장에서 왁자하게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 예의 그 오천원짜리 삼각대를 걸쳐놓으니 삐그덕하고 다리 한쪽이 내려앉고...
그러기를 십여 분...
이 한 장의 사진을 건졌다.
카메라가 오랫동안 추위에 노출이 되면서 밧데리가 약하다며 작동을 중지한다. 에고~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대행을 시킨다. (천주봉 갈림길에서 천주봉이 1.8km의 거리다.)
일행 중 두 명이 천주봉을 갔다왔는데 왕복 두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천주봉을 쳐다보니 천주봉은 나의 어깨 아래에 있다.
너른 공터에서 막 식사를 끝내는 일행들에 섞여 허겁지겁 요기를 하곤...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능선길을 내려서니,이정표가 서있는 옛고개이다.
옛고개에선 대승영농조합에서 출입을 막고 있다.
전체를 휀스를 쳐놓아 출입을 통제한다.(이를 탓할 사안은 아닐 것.산꾼들의 산길은 최대한 불편없이 열어두고 있다.)
대승봉(820봉) 갈림길.
820 대승봉에서 불과 150여 미터 지점에 쌍연봉이 있다.
이 쌍연봉 갈림길에서 나는 한동안 고민을 하였다. 사불암으로 가느냐? 묘봉과 기암이 즐비한 천혜의 능선을 걷느냐?
찌그러진 사불암 푯말이 나무에도 걸렸다.
그래, 능선을 선택하고 사불암은 카메라를 최대한 줌인으로 활용을 해보자.
배낭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카메라를 끄집어 내어 셔터를 눌러보니 찰칵...그래,됐다. 이제 사불암을 당겨 볼 수 있을 것이다.ㅎㅎ
능선을 걸으며 산맥이 너울거리는 주위를 둘러본다.
돌아보니 공덕산이 둥그스럼히 보이고...
..
묘봉 푯말이 선 전망대. (산꾼화가 조규한님이 푯말을 달았네.)
묘봉에서의 조망
묘봉에서 바라보니 좌측 능선이 사불암 능선이고(사불암이 보이는 듯...) 우측 능선이 내가 내려갈 능선.
그러고 보니 복판의 봉긋한 작은 둔덕이 아주 명당자리 같다.(여성의 자궁에 해당)
성주의 선석산 영암산의 세종대왕 자태실의 명당자리와 여러모로 닮았다. -반풍수-ㅋㅋ
진행 능선 우측으로 산맥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운달산이다. 운달산 뒤로 빼꼼히 문경의 내로라하는 산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첩첩(疊疊)의 산.
방향만 보고 대강의 산세를 짚어가는 재미도 있다.
부부바위를 만난다. 한평생 이렇게 마주보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진행방향 왼쪽 지능에 관심이 온통 집중된다. 사불암을 보기 위해서다. 햐~보인다. 빨간 ▽표가 사불암.
살짝 당겨보니 나하고 점심을 같이 먹은 정욱씨와 경자씨 일행들이 사불암에서 탑돌이라도 하나보다.
나옹화상이 앉아 놀던 안장바위. 안장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나옹은 날마다 하릴없이 안장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고된 농사일을 하던 산 아래 마을 농부들이 이 바위에서 놀고만 지내는 나옹이 보기 싫어 안장바위를 깨뜨려버렸다. 그러자 그로부터 수년간 가뭄과 흉년이 계속됐다. 농부들은 나옹이 범상치 않은 것을 알고 안장바위를 다시 이어놓고서야 가뭄과 흉년이 끝났다고 한다.>
밧줄구간을 올라 선 회장님.
다시 왼쪽 지능에서사불암을 찾아본다.(빨간 ▽표)
살짝 당겨본다.
조금 더 당겨보니 금방까지 머물고 있던 정욱씨 일행들은 가고 없다.
저렇게 저 자세로 바위는 부처로 변한 채 천년을 넘게 이어오지 않았던가? 합장~
<빌린 사진> 공식 명칭은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이다. 사면에 부처를 새긴 바위로 한 면은 모습이 남아 있지만 나머지는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분간하기 어렵다고...
<자료>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등로 좌측 아래에 마치 고택같은 분위기의 묘적암이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밧줄을 쳐놓아 출입을 막고 있다.(뒤로 들어오지 말고 앞으로 들어오시라는 의미일 것.)
묘적암은 나옹화상(懶翁 1320~1376)이 21세 때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이며, 조선 후기까지 불교의 성지로 부각되었다.
그는 고려 말의 高僧으로 普愚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운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묘적암엔 문경시 시도유형문화재 제408호로 지정된 ☞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이 있다.
묘적암으로 올라가는 세멘트 포장도로에 내려섰다.(좌측 등산로 표시가 우리가 내려온 길이고,우측 바위에 '현위치 묘적암 입구'라는 표지목이...)
표지목.
아까는 산이 하늘을 받치고 섰더니 이젠 또 나무들이 하늘을 받치고 섰다..
하산지점에서 불과 50여 미터 아래에 왼쪽으로 돌계단이 층층으로 나있었지만 그저 능선으로 붙는 산길이려니 하였다.
이 계단 30미터 위에 마애불이 있다는 사실.(우리는 예사로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
이제 윤필암으로 올라간다.
좌로 사불전이 보이고...
겨울채비를 서두르는 스님 뒤로 우리 일행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대승사사적'에 따르면 윤필암은 1380년(우왕 6) 각관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또한 청담 스님의 따님이신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장으로 있는 묘엄 스님의 출가지로도 유명하다.
1945년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대승사에 계실 때 속가의 아버지를 면회 온 청담스님의 딸을 성철스님이 몇날 며칠을 두고 설득시켜 그해 단오 날 이 암자에서 성철 스님
손수 가위를 들고 삭발시켰다고 전해오고 있다.
윤필암
관음전
적묵당. -적묵(寂默): 선수행에 있어 고요한 마음 자세로 내면의 세계로 돌아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
윤필암의 사불전은 따로 부처를 모시지 않고 사불산 정상의 바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유리로 창을 마련해놓았다.
(이러한 사찰을 적멸보궁(寂滅寶宮)사찰이라 부르는데,이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어서이지만...)
사적기에는 대웅전 서쪽 승당을 1604년과 1689년에 중창했다고 하니 근 400년에 가까운 유서를 지니고 있다.
<사불전(四佛殿)의 편액은 하촌(夏村) 유인석(柳寅植) 선생 글씨>
붉은 동그라미는 이번에 경상북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삼층이형석탑'으로 사불산 중턱에 위치한 사불암을 마주보게 하려고 이 위치에 건립했을 것 같다.
위의 사진을 확대한 모습. <문경 대승사 윤필암 삼층석탑 (聞慶 大乘寺 潤筆庵 三層石塔)>
이 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확립된 양식에 고려시대 석탑의 창작성과 예술적 특성이 가미된 3층 석탑으로 제작당시 석탑의 양식과 구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됐다.
나는 개념없이 털레털레 걸어 내려오다 후다닥 암자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찾아볼 곳이 있어서이다.
"스님,탑이 어디 있습니까?"
마침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계시던 스님은 턱으로 사불전을 가리키며 "저 위에요. 그런데 올라갈 순 없어요."하신다.
그러한 전후사정이 짐작되는지라 "예,알겠습니다."하고 물러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0호인 대승사윤필암목조아미타여래좌상및지감 (大乘寺潤筆庵木造阿彌陀如來坐像및紙龕)과 삼층석탑.
아미타여래좌상은 볼 수 없었고 삼층석탑은 자료사진을 올린다.
사불전과 삼층석탑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제 우(牛)부도를 찾아나선다. 화장실 앞의 대승사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150여 미터정도(4분) 올라가면...
(조금 올라가다 만난 이정표.)
외딴곳에 외롭게 선 부도 하나. 안내판이 없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지만 내가 찾는 우부도(牛浮屠)가 맞능갑다.
절을 지을 당시 어디선가 큰 황소가 나타나 나무와 기와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공사가 끝나자 황소는 숨을 거뒀는데 이를 가상히 여긴 사람들이 소 무덤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이 지금 남아 있는 우부도다. <미지정 문화재>
다시 내려서서 이제 막 정신이 든 사람처럼 급히 마애불을 찾아 나선다.
윤필암과 묘적암 갈림길에서 묘적암 쪽으로 150여 미터 올라가면 아까 내려오면서 본 계단길이 마애불이 있는 위치.
<에고~ 헉헉~ 숨 가파라.>
뿔 달린 마애부처님이 날 기다리고 계신당. 합장~
천 년 가까이 버티고 선 마애불.
안내판.
이제 귀환을 한다.
주차장엔 우리 버스가 보이고...
안내판을 일별한 후...
한참 뒷풀이가 진행 중인 우리 버스를 보고...
(안내판 좌측이 윤필암과 묘적암 방향이고 버스 우측으로 올라가면 대승사.)
몇 잔의 술과 오뎅떡국으로 찬 속을 달래고 예상보다 일찌기 출발이다.
귀가하는 귓가에 평소 가슴 짠하게 들어왔던 싯귀가 맴돈다.
그리고 나는 소리없이 웅얼거린다.
바로 무학대사의 스승이며 우리가 스쳐왔던 묘적암에 출가하여 온갖 신통력을 발휘한 나옹선사의 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