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를 새로 만드는 일은 원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됐다. 국장이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 40 루블이 아닌, 무려 60 루블이나 되는 상여금을 지급했던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 새 외투가 필요하다는 걸 국장이 미리 알아차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일이 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아무튼 그의 손에는 20 루블의 가욋돈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어서 일은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두세 달 정도 더 배를 곯고 난 결과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80 루블의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어느 때건 지극히 평온하기만 하던 그의 심장도 이번만은 거세게 뛰었다. 바로 그 날 그는 뻬뜨로비치와 함께 옷감을 사러 나갔다. 그들은 아주 좋은 나사 옷감을 살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벌써 반년 동안이나 오직 이 일만을 생각해온데다, 가격을 알아보려고 거의 매달 옷감 가게에 들르곤 했으니 말이다.
재봉을 할 뻬뜨로비치 역시 이보다 더 좋은 나사는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안감으로는 포프린을 쓰기로 했다. 뻬뜨로비치의 말을 빌리자면 포프린은 올이 가는 고급 천이어서 보기에도 좋고, 반지르르한 것이 오히려 비단보다 낫다는 것이었다. 담비 털가죽은 너무 비싸서 사지 않고, 그 대신 가게에 갓 들어온 것으로 제일 좋은 고양이 털가죽을 골랐다. 이것 역시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담비 털가죽으로 사람들이 생각할 만큼 좋은 물건이었다.
뻬뜨로비치는 외투를 만드는 데 꼬박 2 주일이나 걸렸다. 솜 넣는 데를 그렇게 꼼꼼히 누비지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느질삯으로 뻬뜨로비치는 12 루블을 받았다. 절대로 그보다 싸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뻬뜨로비치는 명주실만을 써서 촘촘하게 이중으로 외투를 꿰맸고 게다가 꿰맨 자리마다 일일이 이빨 자국을 내 가며 꼼꼼하게 줄을 세우기까지 했던 것이다.
몇 월 며칠이었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튼 뻬뜨로비치가 새로 만든 외투를 갖고 온 날은 분명히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뻬뜨로비치는 아침 일찍 외투를 들고 왔다. 마침 관청으로 출근하기 조금 전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시간을 맞춰 외투를 들고 왔는지 모르겠다. 벌써 추위가 만만찮은 날씨였지만, 앞으로는 더욱 날씨가 추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뻬뜨로비치는 마치 일류 재봉사와 같은 모습으로 외투를 싸 들고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까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기가 만든 것이 결코 시시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기껏해야 안감이나 깁고, 낡은 옷이나 수선하는 그런 재봉사와 이렇게 새로운 외투를 직접 짓는 그런 재봉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그런 표정이었던 셈이다.
그는 외투를 싸들고 온 커다란 보자기를 풀렀다. 그 보자기는 세탁소에서 방금 가져온 것이어서, 그건 다시 접어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는 끄집어낸 외투를 펼쳐들고 자못 자랑스러운 얼굴로 그것을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리곤 두 손으로 외투를 받쳐들고 익숙한 솜씨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뻬뜨로비치는 그리고 나서 등에서부터 밑으로 손으로 가볍게 매만져 옷자락을 반듯하게 당겨주었다. 그리고 앞섭이 약간 벌어지게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몸을 외투로 감쌌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그래도 약간 불안해져서 팔 소매 길이를 확인했다. 뻬뜨로비치는 소매에 팔을 끼우는 것도 도와주었다. 소매 역시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외투는 완전히, 맵시 있게 몸에 착 맞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뻬뜨로비치는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빼놓지 않았다. 자기가 뒷골목에서 간판도 걸지 않고 일을 하는 처지이고, 더욱이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와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옷을 헐값으로 만들어주었지만, 이걸 만약 넵스끼 거리에서 만들었다면 품삯만 해도 75 루블은 주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이 점에 대해 굳이 더 뻬뜨로비치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뻬뜨로비치가 버릇처럼 터무니없이 불러대는 엄청난 액수에 대해서는 말만 들어도 겁부터 났다. 그는 돈을 치르고, 고맙다는 치하를 한 후 새 외투를 입은 채 곧장 직장으로 출근했다. 뻬뜨로비치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를 뒤따라 나와 길거리에 서서 한참 동안 멀리서 외투를 지켜봤다. 그리고 일부러 골목길을 달려 큰 길거리로 빠져 나와 다시 한 번 자기가 만든 외투를 다른 방향에서, 즉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한편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더없이 흐뭇한 기분이었다. 그는 매 순간 어깨에 새 외투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 흡족해 그는 몇 번이나 혼자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두 가지 좋은 점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는 우선 따뜻하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멋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게 이미 관청에까지 와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수위실에서 외투를 벗어 외에서 아래까지 검사해본 뒤, 잘 간수해달라고 수위에게 신신당부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그 '싸개'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 외투가 생겼다는 소문이 관청에 쫙 퍼졌다. 모두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새 외투를 구경하려고 수위실로 달려왔다.
모두들 앞을 다투어 축하와 칭찬하는 말을 퍼부었다. 처음에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도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으나 나중에는 어딘지 낯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모두들 그를 둘러싸고 새 외투를 장만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잔 사야 한다느니, 사무실 동료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야 한다느니 떠들어댔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정신이 얼떨떨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무슨 구실을 붙여 적당히 거절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거의 5,6 분 동안이나 이렇게 시달린 뒤에야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간신히 이건 그리 좋은 물건이 아니다, 중고품이나 다름없는 그런 물건이라고 어린애 같은 거짓말로 곤경을 모면하려고 했다.
결국 동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섰다. 그는 부과장의 지위에까지 올라간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결코 거만한 사람이 아니며, 부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그럴싸한 제의를 했다. 즉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대신 내가 오늘밤 파티를 열 테니, 오늘 저녁은 다들 우리 집으로 와서 차라도 한 잔 하는 게 어떨까? 마침 오늘이 내 세례명 축일이거든..." 하고 제안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부과장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기꺼이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적당한 구실을 붙여 거기서 빠지려고 했으나,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얘기였다. 다들 나서서 그건 실례라느니, 창피한 줄을 알라느니,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 하며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있다 생각해보니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역시 밤에 새 외투를 입고 외출할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이날 하루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는 마치 명절이나 다름없는 무척 즐거운 날이었다.
그는 극히 행복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서 외투를 벗어 조심스럽게 벽에 걸어 놓았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다시 한 번 외투의 나사와 안감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런 다음 일부러 전에 입던 그 낡은 '싸개'를 꺼내 새 옷과 비교해 보았다. 그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건 바로 이걸 말하는 거야! 그런 다음 식사를 하면서도 그는 그 싸개의 꼬락서니를 생각하면서 연신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유쾌하게 식사를 마치고 그는 평소의 버릇처럼 식후의 서류 정서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그대로 침대에 누워 딩굴며 시간을 보냈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외투를 그 위에 걸친 다음 거리로 나갔다.
유감스럽지만 이날 저녁에 사람을 초대한 그 관리가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억이 희미해져서 뻬쩨르부르그의 모든 거리와 집들이 한 데 뒤엉켜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속에서 뭔가 한 가지라도 분명한 모습으로 끄집어낸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튼 그 관리가 시내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주택가에 살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살고 있는 집에서는 무척 먼 거리에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처음에 어두컴컴하고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야 했으나, 그 관리의 집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거리에 활기가 넘치고 번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명도 한층 더 밝아졌다.
길거리를 지나 다니는 사람들도 더 많아져서 그 가운데에는 화려하게 차린 귀부인들과 수달피 깃을 단 남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삥 둘러 도금한 못을 박은, 격자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초라한 영업용 마차들은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 대신 새빨간 빌로드 모자를 쓴 멋진 옷차림의 마부들이 곰의 털가죽 무릎 덮개를 깐 고급 마차를 모는 모습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화려하게 장식한 자가용 마차들이 눈 위를 요란스럽게 달려갔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이런 모습들을 신기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벌써 몇 년 동안이나 이런 밤 거리에 나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등불이 휘황찬란한 상점 진열대 앞에 멈춰서서 그는 신기한 듯이 안에 붙여진 포스터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날씬한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낸 모습으로 구두를 벗고 있는 아리따운 미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가씨의 등뒤에서는 삼각형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사나이가 문으로 빼꼼 목을 들이밀고 쳐다보는 모습이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어째서 그렇게 히죽 웃었을까? 이런 것들은 그가 그동안 전혀 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이기에 그런 모습을 보고 자기 내면에서 뭔가 감정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역시 다른 관리들처럼 "프랑스 자식들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작자들이라니깐! 도대체 마음만 내키면 못할 짓거리가 없단 말씀이야!"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저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가 그가 생각하는 것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들춰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마침내 그는 부과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부과장은 호화스럽게 살고 있었다. 계단에는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침실은 이층이었다. 현관에 들어선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마루바닥에 여러 켤레의 고무덧신이 죽 줄지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너머 응접실에서는 싸모바르가 하얀 김을 내뿜으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벽에는 외투와 레인코트 따위가 쭉 걸려 있고, 그 가운데에는 수달피와 빌로드 가죽을 댄 것도 섞여 있었다.
바로 벽 건너편 방에서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마침 문이 열리며 하인이 빈 컵이며 크림 접시, 비스킷 등이 당긴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동료 관리들이 모인 지는 벌써 꽤 된 모양이다. 그래서 벌써 차 한 잔씩은 마신 모양이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자기 손으로 외투를 걸어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눈에는 여러 개의 촛불과 관리들, 담배 파이프, 트럼프 놀이 탁자 등이 한꺼번에 휙 들어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얘기하는 소리와 의자를 잡아당기는 소리 등이 한꺼번에 귀를 때렸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곧 그를 발견하고 환성을 올리며 환영했다.
그들은 즉시 현관으로 몰려나가 그 외투를 다시 한 번 구경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약간 낯이 간지럽기는 했지만 원래 순진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들 자기 외투를 칭찬하는 얘기를 듣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모두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나 외투 따위는 내버려두고 다시 트럼프 놀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방안의 시끄러운 소리며 떠드는 얘기, 북적거리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는 무척 이상하고도 놀라운 것처럼 여겨졌다. 자기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손발이나 몸 전체를 도대체 어디에 두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그는 놀고 있는 사람들 옆에 가 앉아서 트럼프 패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을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느 때 같으면 그로서는 침대에 들어갈 시간이 훨씬 지났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주인한테 인사를 하고 곧 돌아가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새 외투가 생긴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꼭 샴페인을 마셔야 한다고 우기며 놓아주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밤참이 나왔다. 야채 샐러드와 차거운 쇠고기, 고기만두와 파이, 거기에 샴페인이 곁들여 나왔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도 사람들의 권을 이기지 못하고 커다란 유리컵으로 두 잔이나 마셨다. 술을 마시고 나니 방안이 더욱 흥겨워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벌써 열두 시가 넘었으니 집에 돌아갈 시간이 지났다 하는 생각을 털어버릴 수 없었다. 그는 주인이 말릴까봐 아무도 몰래 살그머니 방을 빠져 나왔다.
현관에서 외투를 찾으니 그 외투는 마루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걸 보고 약간 기분이 언짢았다. 그는 외투를 흔들어 먼지를 잘 털어 내고는 어깨에 걸쳐 입고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갔다.
길거리는 여전히 밝았다. 귀족의 하인들과 그 밖의 온갖 하층민들이 함께 모여드는 길거리 구멍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덧문을 닫아 건 상점들도 문틈으로 아직 불빛이 길다랗게 새어나오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안의 단골손님들은 아직 돌아갈 생각을 않고 있는 모양이다.
그 안에는 근처의 하녀들과 하인들이 모여들어 집에서 자기를 찾고 있을 주인 생각 따위는 까맣게 잊고 온갖 잡담을 나누느라 정신이 팔려 있으리라...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전에 없이 들뜬 기분으로 거리를 걸었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귀부인의 뒤를 쫓아 달려가려는 생각까지 했다. 그 귀부인은 번개처럼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온몸에 율동에 넘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곧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가 왜 그녀를 쫓아 달려가려고 했는지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그는 다시 인적이 드문 텅 빈 거리에 이르렀다. 이 근방은 낮에도 별로 기분이 좋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저녁이면 한층 더 심했다.
게다가 지금은 더욱 호젓하고, 더욱 음산하고, 불이 켜 있는 가로등도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 가로등의 기름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목조건물과 울타리가 앞으로 쭉 이어지지만 어디를 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길 위에 깔린 눈만이 하얗게 반짝일 뿐, 지붕이 납작한 거리의 집들은 모두 덧문까지 걸어 잠그고 거무튀튀하게 서글픈 빛을 띠고 잠들어 있었다. 이윽고 그는 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여기서 끝나고 건너편 집들은 보일 듯 말 듯 아득하게 멀다. 광장은 마치 무서운 사막처럼 보였다.
경찰 초소의 등불이 멀리서 깜박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아득하게 먼 곳, 마치 지평선 저 끝에쯤 서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 오니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흥겨웠던 기분도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그는 뭔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뒤를 돌아보고, 다시 좌우를 둘러보았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다.
'아니, 차라리 아무 것도 보지 않는 것이 낳겠어...' 그는 속으로 생각하고 눈을 감은 채 걸었다. 이제 거의 광장을 다 지났겠지 하고 눈을 뜬 순간, 그는 눈앞에, 그것도 바로 코앞에, 수염을 기른 사내들이 버티고 선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인지 분간할 틈조차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속이 방망이 치듯 두근거렸다.
"야, 이건 내 외투잖아!" 그 가운데 한 놈이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마치 장독 깨지는 것 같은 소리를 질렀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사람 살려!" 하고 소리치려 하자 다른 한 놈이 마치 관리의 머리통만큼이나 큰 주먹을 그의 입에 들이대며 "소리치면 알지?" 하며 으르렁댔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외투를 벗기우고 무릎을 차인 것까지는 알았으나 그 뒤에는 눈 위에 나동그라진 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몇 분이 지나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러나 이미 사람의 그림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광장이 몹시 춥다는 것, 자기의 외투가 사라졌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리고 그는 뒤늦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광장 저 끝까지 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광장을 가로질러 경찰 초소로 달려갔다.
초소 앞에는 경찰관 한 명이 장총에 몸을 기대고 서서, 도대체 어떤 자식이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나 하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경찰관 앞으로 달려가서 숨을 헐떡이며 경찰이 감시는 하지 않고 졸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강도들이 날뛰고 있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경찰은 광장 한가운데서 사내 둘이서 그를 불러세우는 것은 보았지만 그의 친구들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대꾸했다. 경찰관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한테 공연히 욕만 퍼부을 것이 아니라, 내일 파출소장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하면 아마 외투를 찾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관자놀이와 뒤통수에 조금 남아 있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다. 옆구리와 가슴팍, 바지에 온통 눈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숙집 주인 할망구는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한 짝만 걸치고 문을 열어주러 나왔다. 한 손으로 잠옷 앞섶을 누른 모습이었다.
할망구는 문을 열고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그런 꼬락서니를 보고 기겁을 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그녀는 몹시 놀라면서 그렇다면 직접 본서의 서장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파출소장 따위는 말로만 약속을 할뿐이지, 뒤에서는 딴 짓을 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러니 직접 본서의 서장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다행히 자기는 본서의 서장과 잘 아는 사이라고 해도 좋은 처지다. 왜냐하면 전에 자기 집 하녀로 있던 핀란드 여자 안나가 현재 서장 댁의 유모로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도 서장이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여러 번 본 일이 있다. 또 서장은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교회에 나오는데, 거기서도 누구에게나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런 여러 가지로 봤을 때 틀림없이 마음씨가 좋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는 얘기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슬픔에 잠겨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을 그가 어떻게 지새웠는가 하는 얘기는, 다소나마 다른 사람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다.
이튿날 아침 일찍 그는 서장을 찾아갔다. 서장이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는 열 시쯤 다시 가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무십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열 한 시에 다시 갔더니 이번에는 "서장님은 출타하셨습니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점심 시간에 다시 찾아가 보니, 이번에는 서장 부속실에 있는 비서가 그를 얼른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로, 무슨 필요가 있어서 왔느냐는 둥, 도대체 무슨 사건이냐는 둥 귀찮게 캐묻는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도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서장을 직접 만나야 할 필요가 있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나서서 나를 들어가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나는 관청에서 공무 때문에 찾아온 사람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나를 못 들어가게 한다면 그때는 상부에 보고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알아서 해라고 한바탕 을러댔던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가 뭔가 만만찮은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었다. 그가 이렇게 나오자 비서들도 아무 소리 못하고 그 중 하나가 서장에게 보고하러 들어갔다. 서장은 외투를 강도 당했다는 얘기를 아주 이상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건의 요점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늦게야 집으로 돌아갔느냐는 둥, 어디 점잖지 못한 곳에 가서 자빠져 있었던 게 아니냐는 둥 엉뚱한 질문만 해댔던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그만 헷갈려서 자기의 방문이 외투를 되찾는 데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 또는 효과가 전혀 없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냥 물러 나오고 말았다.
그는 그날 하루종일 관청에 나가지 않았다(이런 일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단 한번밖에 없었다). 이튿날 그는 전보다 훨씬 더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그 헌 '싸개'를 걸치고 핼쓱한 얼굴로 출근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를 조롱하려 드는 친구들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외투를 강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동료들은 그 자리에서 그를 돕기 위한 성금을 모으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모인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관리들은 여기저기 뜯기는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장의 초상화를 사 주는가 하면, 과장의 친구라는 사람이 쓴 책을 신청하라는 과장의 권유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를 동정하고 그를 돕고 싶어서 그에게 친절하게 돕는 말을 해주었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 서장 따위를 찾아가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가령 서장이 상부에 잘 보이려고 어떤 방법을 쓰던지 해서 외투를 다시 찾아낸다 하더라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외투가 자기 것이라는 법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결국 외투는 경찰서에 보관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즉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위 관리에게 부탁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그 고위 관리가 경찰서의 사건 담당자에게 편지를 보내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특별히 다른 좋은 방법도 없었으므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동료가 말해준 그 고관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고관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참고로 말해둘 것은 그가 그 지위에 오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며, 그 전까지는 그야말로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금의 지위라는 것도 다른 중요한 지위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대단치 않은 지위라도 스스로는 아주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그런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더욱이 그 고위 관리는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높여 보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이를테면 자기가 출근할 때 부하 직원들이 모두 현관에까지 마중을 나오게 한 것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그는 어떤 사람도 자기 방에 직접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관련된 업무를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과 순서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는 등 내부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십사등관은 십이등관에게, 십이등관은 구등관이나 그밖에 적당한 관등의 인물에게 보고하는 등 모든 일이 그렇게 엄격하게 순서를 밟아 모든 안건이 자신에게 올라오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의 신성한 나라 러시아는 모든 것이 주로 흉내내기에 의해 이뤄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상관이 하는 일을 그대로 흉내내게끔 되어 있다.
심지어 이런 얘기도 전해진다. 즉 어떤 구등관이 조그만 독립 관청의 책임자로 임명되자 당장 사무실 한 쪽을 막아 자기 방으로 정하고 '집무실'이란 간판을 내건 다음 붉은 깃에 금테를 두른 수위를 문 앞에 세워놓고 사람이 올 때마다 일일이 문을 여닫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무실이란 것이 보통 책상 하나를 겨우 들여놓을 크기였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앞서 말한 이 고관의 태도나 습관 역시 어마어마하고 위엄이 가득찬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복잡했던 것은 아니고, 다만 그가 일하는 체계의 기본은 한마디로 말해 엄격성이었다. '엄격하게, 더욱 엄격하게, 모든 것을 엄격하게!'라는 것이 그의 입버릇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렇게 뇌까리면서 잔뜩 거드름을 피운 얼굴로 노려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관청의 행정 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몇십 명의 관료들은 그렇잖아도 항상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멀리서 그 고위 관료가 나타나기만 해도 벌떡 일어나 부동 자세로 서서 그가 사무실을 지나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서 있을 정도였다.
그와 부하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사용하는 말은 단 세 마디로 엄격하게 한정되어 있었다. 즉 '자네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는가?'와 '자네는 지금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자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건가, 모르고 있는 건가?' 이 세 마디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본심은 무척 착한 인간이었다. 친구도 잘 사귀었고 남의 일도 잘 보살펴주는 편이었다. 오직 칙임관(勅任官)이라는 벼슬자리가 그의 머리를 그렇게 돌게 만들었던 것 뿐이다. 칙임관에 임명되자 그는 이성을 잃고 흥분했다. 그래서 자기가 도대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헷갈렸던 것뿐이다.
그래도 그가 자기와 대등한 지위의 사람을 상대할 때는 지극히 의젓한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다. 또 여러 가지 점에서 제법 총명한 구석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보다 단 한 계급이라도 낮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의 태도는 당장 어색해지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속으로 이 사람들과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현재 상태는 더욱 가엾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도 가끔 무엇이든 재미있는 대화나 놀이에 끼어들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곤, 그런 마음을 눈에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스스로 지금 내 입장에서 너무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아랫사람에게 허물없이 구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국 자기의 위신이 깎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그는 결국 어디서나 꿀 먹은 벙어리 시늉이었다. 어쩌다가 가끔 입을 연다 해도 야릇한 외마디 소리를 외칠 뿐이어서 마침내는 주변 사람들 모두 그를 따분하기 짝이 없는 괴상한 친구라는 딱지를 붙이고 말았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찾아간 고관은 바로 이런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하필 가장 좋지 않은 때 그 고관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 가장 좋지 않은 때였다는 의미일뿐, 그 고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관에게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마침 때맞춰 찾아와 준 셈이었다.
그 고관은 마침 자기 서재에 앉아 몇 년만에 서울에 올라온 어릴 적 친구를 맞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참이었다. 하필이면 바로 이런 때에 바쉬마치낀이라는 작자가 자기를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었다. "도대체 그 작자는 뭐하는 친구야?" 그는 퉁명스럽게 비서에게 물었다.
"어느 관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고 하더군요." 비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내가 지금 바쁘니 조금 기다리라고 그래." 고관은 말했다. 하지만 그 고관의 이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와 그의 어릴 적 친구는 이미 진작에 할 말은 거의 다 해버리고, 이제는 지루한 침묵 가운데서 이따금씩 서로의 무릎을 두드리면 "글세 말일세, 이반 아브라모비치!"라거나, "그게 그렇게 됐단 말인가, 스쩨빤 바를라모비치!" 하는 식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관이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찾아온 관리를 기다리게 한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공직에서 물러나 시골집에 틀어박힌 자기 친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즉 자기를 찾아온 관리들이 대기실에서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이야기 거리도 다 떨어지고 등받이가 달린 푹신한 소파에 푹 기대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에는 기나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이 때 고위 관리는 문득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보고 서류를 들고 문 옆에 서 있는 비서에게 말했다.
"아 참, 무슨 관리라든가 하는 친구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그랬지? 이제 들어와도 좋다고 그래주게."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온순한 생김새와 낡아빠진 제복을 보고 고관은 갑자기 그에게로 몸을 돌리며 딱딱 끊어지는 것 같은 차가운 말투로 대뜸 물었다.
"용건이 뭐요?"
이것은 그 고위 관리가 칙임관이라는 관등을 수여받고, 현재의 자리에 부임하기 일 주일 전부터 혼자서 자기 방에 틀어박혀 거울 앞에서 일부러 연습한 그런 말투였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방에 들어오기 진작 전부터 겁을 집어먹고 있어서 이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억지로 움직여 말을 끄집어냈다.
"실은, 저 그게 그러니까..."
이런 말을 연신 끄집어내면서 그는 자기가 새로 맞춰입은 외투를 얼마 전에 야만적인 강도들에게 빼앗겼다는 것, 그래서 자기를 위해 경찰국장이나 기타 그밖의 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몇 자라도 적어 주시면 외투를 찾는 데 무척 힘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무척 어렵게 끄집어냈다. 그러나 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 고관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말하는 것이 무척 예의에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뭐라고?"
고관은 예의 그 딱딱 부러지는 말투로 말했다.
"자네는 일의 순서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나? 지금 어딜 찾아온 거야? 관청의 사무라는 게 어떤 순서를 밟아서 진행되는 것인지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이런 문제라면 우선 관련 창구를 찾아 탄원서를 제출하는 게 우선이지! 그렇게 하면 서류가 계장, 과장을 거쳐 비서한테 넘겨지겠지. 그 다음에 비로소 비서관이 내게 그 문제를 가져오게 되어 있단 말이야!"
"하지만, 각하!"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온몸에 진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마지막 남은 기력을 있는대로 다 쥐어짜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렇게, 감히 외람되게... 각하께 직접 부탁을 드리는 것은... 저 다름이 아니옵고, 실은 저 비서관들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어서..."
"뭐, 뭐라고?" 그 고관은 소리쳤다.
"도대체 어디서 그따위 생각을 머리 속에 집어넣은 거야? 어디서 그따위 사상을 배워왔느냐 말이야?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웃어른과 상관에 대해 지극히 불손하게 대하는 그런 사상이 만연되어 있어 정말 큰일이라니까!"
아마 그 고관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이미 쉰 고개를 넘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설혹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를 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해도 그건 70 먹은 노인에게나 통하는 얘기일 텐데도 말이다.
"자네는 지금 누구를 상대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나 알고 있나? 지금 자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나 알고 있느냐 말이야, 응? 알고 있어, 모르고 있어?" 그는 이제 아주 발까지 구르며, 설혹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목소리를 높여 고함을 쳤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거의 넋을 잃고 비틀비틀 두어 걸음 물러섰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 더 이상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수위가 재빨리 방에 달려 들어와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거의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밖으로 끌려나갔다. 고관은 자기의 태도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둔 데 만족했다.
그는 자기의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을 기절까지 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친구가 이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곁눈으로 힐끔힐끔 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친구 역시 얼이 빠진 듯 그 어떤 공포감마저 느끼는 눈치였다. 고관은 이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척 흡족했다.
어떻게 계단을 내려와 어떻게 한길로 나왔는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팔이나 다리에도 전혀 감각이 없었다. 여태까지 자기 윗사람한테, 그것도 다른 부처의 높은 사람한테 그렇게 호되게 꾸중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입을 딱 벌린 채 자꾸만 인도 밖으로 발걸음이 빗나가면서 길거리의 소용돌이치는 눈보라 속을 걸어갔다.
뻬쩨르부르그의 날씨는 원래 그렇지만 이날도 바람은 사방팔방에서, 골목길이란 골목길로부터 빠짐없이 그에게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는 대번에 편도선이 부어 올라 집으로 간신히 돌아왔을 때쯤에는 말 한 마디 할 힘조차 없었다. 그는 곧장 잠자리로 기어 들어갔다. 상관의 별 것 아닌 꾸지람 한 마디가 이렇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튿날 그가 엄청나게 높은 열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뻬쩨르부르그의 날씨가 아낌없이 도와준 덕분에 그의 병세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됐다. 의사가 진맥을 하러 왔을 때에는 맥을 한 번 짚어보았을 뿐, 이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저 병자가 아무 의술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이라도 듣지 않도록, 찜질이라도 해주라는 말뿐이었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기껏 하루나 하루 반나절 밖에 더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더니, 하숙집 주인 할망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뭐 더 기다려보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지금 곧 소나무 관이라도 하나 주문하세요. 이런 사람한테는 참나무 관은 과분할 테니까 말입니다."
자기에게 치명적인 내용의 이런 말들이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귀에도 들렸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설사 들었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얼마나 그에게 충격을 주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 그가 자기의 비참한 일생을 과연 슬퍼했는지 어쩐지 하는 것도 전혀 알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 동안에도 줄곧 혼수 상태에 빠져 헛소리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에는 끊임없이 괴이한 환상이 나타났다. 재봉사 뻬뜨로비치가 나타난 것을 보고는, 침대 밑에 도둑놈이 숨어 있는 것 같으니, 그 놈을 체포하기 위해 올가미가 달린 외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이불 속에서 도둑놈을 끌어내 달라고 하숙집 할망구를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새 외투가 있는데 왜 저 낡아빠진 '싸개'가 저기 걸려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이번에는 자기가 칙임관 앞에서 꾸지람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죄송합니다, 각하!" 하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무서운 욕설을 마구 퍼부어댔다. 아직까지 그렇게 무서운 욕을 들어보지 못한 주인 할망구는 그 바람에 십자를 긋기까지 했다. 더욱이 그런 욕설이 '각하'라는 말 뒤에 잇달아 튀어나왔으니 할망구로서는 겁을 먹는 것이 당연했다.
나중에 가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전혀 의미도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두서없는 말이며 생각이 계속해서, 언제까지나 외투라는 하나의 물건을 중심으로 맴돌고 있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가엾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방이나 소지품을 봉인하지는 않았다. 우선 첫째 유산 상속인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는 유산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거위 깃으로 만든 펜이 한 묶음, 관청에서 쓰는 백지 한 권, 양말 세 켤레, 바지에서 떨어져 나온 단추 세 개, 그리고 독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그 '싸개' 뿐이었다. 이런 물건들이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솔직히 말해 필자 자신도 그런 데에는 흥미가 없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시체는 묘지로 실려나가 매장됐다. 그리고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없어져도 뻬쩨르부르그는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였다. 마치 그런 인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리하여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했던 - 흔해빠진 파리조차도 핀으로 꽂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박물학자의 주의조차 끌지 못한 존재 - 관청에서 온갖 비웃음을 순순히 참아내면서 이렇다 할 업적 하나 이루지 못한 채 무덤으로 간 그 존재는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역시 비록 생애가 끝나기 직전이기는 했지만 외투라는 기쁜 손님이 환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초라한 인생에 잠시나마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그리고는 곧 이 세상의 힘센 존재들에게도 예외 없이 닥쳐오는, 피할 수 없는 불행이 그에게 닥쳐오고야 만 것이다.
그가 죽은 지 3,4일 뒤에 관청의 수위가 즉각 출두하라는 국장의 명령을 전하러 그의 하숙집을 찾아왔다. 그러나 수위는 그대로 돌아가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출근할 수 없게 되었다는 보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라는 질문에 수위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째서구 뭐구 없습죠. 그 작자는 죽어버렸습니다. 벌써 사흘 전에 장사를 치렀더군요." 이렇게 해서 관청에서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튿날에는 벌써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후임이 새 관리가 와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키도 훨씬 더 크고, 그다지 반듯한 필체가 아닌,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어진 그런 필체로 글씨를 쓰는 사나이였다.
그런데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완전히 끝나버린 것이 아니다. 아무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한 인생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그는 죽은 뒤 며칠 동안이나 요란한 소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가 죽은 뒤에 이런 식으로 이상한 생존을 계속할 운명이었다는 것은 도대체 아무도 상상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현실에서 발생, 이 서글픈 이야기는 뜻밖에도 환상적인 결말을 맺게 된다.
뻬쩨르부르그에는 갑자기 다음과 같은 소문이 쫙 퍼졌다. 즉 깔린긴 다리와 그 근처 여기저기서 관리 옷차림을 한 유령이 매일 밤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 유령은 자기가 외투를 도둑맞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령은 관등이나 신분 따위는 가리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의 외투를 자기 것이라고 우기면서 뺏어간다는 것이다.
고양이 가죽이나 담비 가죽, 깃이 달린 외투, 솜을 누빈 외투, 여우나 너구리, 곰 가죽으로 만든 외투,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이 자기 몸을 감싸는 물건이라면 가죽이건 털이건 뭐든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벗겨간다는 소문이었다.
어느 관리 한 사람은 자기 눈으로 직접 그 유령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첫눈에 그 유령이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라는 것을 알아봤지만 소름이 끼치고 겁이 나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유령이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자기를 위협하는 시늉을 한 것만은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외투 강도 사건이 너무 자주 발생하는 바람에 구등관은 말할 것도 없고, 칠등관들까지도 어깨와 잔등이 추위에 얼어붙을 지경이라는 호소가 여기저기서 잇달아 들어왔다. 이렇게 되니 경찰에서도 더 이상 문제를 두고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이건, 또는 죽은 것이건 그 유령이라는 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체포하여 극형에 처하도록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사실 이 명령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어느 경찰이 끼류쉬낀 골목에서 그 유령의 범행 현장을 덮친 것이다. 마침 그 유령은 한 때 플륫을 연주하던 전직 악사의 외투를 빼앗는 중이었다. 경찰은 그 유령의 멱살을 틀어쥐고 자기 동료 두 사람을 소리쳐 불러 유령을 붙잡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자기는 장화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코담배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동안 무려 여섯 번이나 동상에 걸렸던 코를 잠시나마 담배 냄새로 위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담배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유령조차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경찰관이 오른쪽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왼쪽 콧구멍으로 담배를 들이마시는 순간 유령이 너무 세게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유령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관 세 사람의 눈에 담배 가루가 들어가고 말았다. 그들이 손으로 눈을 비비는 사이에 유령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경찰관들은 그래서 자기들이 정말 유령을 잡았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그때부터 경찰관들은 그 유령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살아 있는 사람조차 붙잡을 생각을 못하고, 그저 멀리서 고함만 질러댈 뿐이었다. "이봐, 뭘 꾸물거리는 거야? 빨리 갈 길이나 가라구!"
덕분에 그 관리 옷차림을 한 유령은 깔리긴 다리 너머에까지 쏘다니게 되었다. 이제 어지간히 대담한 사람이 아니고는 그 근처를 함부로 다니기를 꺼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얘기했던 그 고관에 대해서는 그 동안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고관이야말로 이 거짓 없는 실화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띠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공정을 기한다는 의미에서, 이 고관이 느낀 심정을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이 고관은 가엾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자기에게서 혼이 나고 물러간 다음 어떤 연민 비슷한 심정을 느낀 것이 사실이었다. 그 역시 원래부터 동정심과 인연이 먼 그런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의 마음은 선량한 감정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너그러운 상태였다. 다만 스스로의 직위 때문에 그런 것을 표면에 나타내지 못할 따름이었다.
그때 시골에서 왔던 친구가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그는 곧 불쌍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그 후 거의 날마다, 그리 대단치 않은 꾸중조차 견뎌내지 못하던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창백한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불쌍한 관리를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괴롭고 불안했다.
그래서 일 주일 후 그는 부하 직원을 보내서 그 관리가 어떤 인간이며 그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등을 알아보고 오도록 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갑자기 열병으로 죽고 말았다는 보고를 받자 그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날 온종일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울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고, 불쾌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잊어버리려고 어느 날 밤 친구가 연 파티에 참석했다. 거기에는 점잖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특히 다행인 것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와 같은 관등에 있는 사람들이어서 이것저것 전혀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의 정신 상태에 놀랄 만한 효과를 나타냈다.
그는 마음이 완전히 풀려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즐겁고 상냥한 기분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그 날 하룻저녁을 무척 즐겁게 보낸 것이다. 밤참이 나왔을 때는 샴페인도 두 잔이나 마셨다.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것은 마음을 흥겹게 하는 데에는 상당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샴페인을 마시고 나니 그는 좀 더 과감한 행동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다름이 아니라,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부터 가까이 지내고 있던 까롤리나 이바노브나라는 여자에게 들르기로 한 것이다. 독일 출신으로 보이는 이 여성에 대해 그는 문자 그대로 친근한 심정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말해둘 것은, 이 고관이 이미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였다는 점이다. 가정에서도 충실한 남편인 동시에 훌륭한 아버지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두 아들 가운데 하나는 벌써 관청에 근무하고 있었고, 좀 들창코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귀여워 보이는 예쁘장한 딸 역시 올해 열 여섯 살이었다.
이 자식들은 날마다 그에게 'Bon jour Papa!(아빠, 안녕!)' 하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직도 생기가 넘치는, 그다지 밉상이 아닌 그의 아내는 남편더러 자기 손에 키스를 하도록 시킨 다음, 그 손을 그대로 뒤집어 자기도 남편의 손에 키스를 하곤 했다.
이 고관은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갖고 있고, 또 스스로도 그 생활에 지극히 만족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내의 다른 지역에 여자 친구를 두고 사귀는 것을 무척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저 교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자 친구라고는 해도 그의 아내보다 별로 젊거나 아름답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야 세상에 워낙 흔해빠진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가 굳이 이러니저러니 따지고 들 일은 아닌 셈이다.
어쨌든 이 고관은 친구네 집 계단을 내려와 마차에 올라타자 마부에게 곧장 말했다.
"까롤리나 이바노브나에게 가자!"
그는 마차 안에서 따뜻한 외투에 몸을 감싸고, 러시아 사람 특유의 지극히 즐거운 기분에 빠져들었다. 즉 일부러 무얼 생각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끊임없이 달콤한 상념이 떠올라, 그저 기분좋고 편안한 그런 상태 말이다. 그는 더없이 기분이 흡족했고, 방금 떠나온 파티에서의 즐겁고 재미있었던 일들이 머리 속에 계속 떠올랐다.
그는 자기가 익살을 부려 친구들이 배를 붙잡고 웃게 만들었던 일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익살을 혼자 입 속으로 되풀이해 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역시 그 익살은 재치 있고, 사람을 웃길 수밖에 없었어... 그는 자기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큰 소리로 웃어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따금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찬바람이 그의 달콤한 기분을 방해했다. 무엇 때문인지 바람은 갑자기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없게 불어닥쳐 차디찬 눈가루를 흩뿌려놓았다. 그리고 외투 깃을 마치 돛처럼 펄럭이게 만들고,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이었다.
문득 고관은 누군가 뒤에서 자기의 외투 깃을 무서운 힘으로 움켜잡는 것을 느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다 떨어진 낡은 제복을 입은 작달막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고관은 그 사나이가 바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관리의 얼굴은 눈처럼 창백해서 겉으로 당장 보기에도 죽은 사람, 즉 유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령은 입을 일그러뜨리며 송장 냄새를 내뿜으며 말했다.
"음, 이제야 네놈을 만났구나! 이제야 네놈의 목덜미를 잡았어! 난 네놈의 외투가 필요하다!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나에게 호통을 쳤었지! 자, 이젠 네놈이 외투를 내놓을 차례야!"
고관은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딱하게도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그는 평소 관청의 부하들 앞에서는 언제나 늠름하고 위엄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자 애를 썼다. 또 그의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거 참, 위풍당당한 사람이로군!" 하고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 호걸다운 풍모를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경향이 있지만 -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당장 발작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허겁지겁 자기 손으로 외투를 벗어 던지고 마부에게 큰 소리로 명령했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자! 전속력으로 달려!"
마부는 주인의 이 목소리를 듣자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러 쏜살같이 말을 몰았다. 그리고 마부는 만일의 경우에 두 어깨 사이에 목을 잔뜩 움츠린 자세를 갖췄다. 왜냐 하면 주인의 이런 목소리는 뭔가 어떤 긴급한 순간에 나오기 일쑤인데다, 대개의 경우 목소리보다 훨씬 효과가 높은 어떤 행동이 뒤따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었다.
기껏 6분 정도 지났을까, 고관은 벌서 자기 집 현관 앞에 도착했다. 외투를 잃고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진 그는 까롤리나 이바노브나를 찾아가는 대신 자기 집으로 곧장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그 날 하룻밤을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에 잠겨 꼬박 샜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차를 마실 때 딸로부터 "아빠, 오늘은 아주 안색이 좋지 않아요"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제 저녁에 어디를 갔었는지,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 그리고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는 것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 사건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제 부하 관리들에게 "자네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자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나 아나?" 하는 말을 전보다 훨씬 덜 사용하게 되었다. 설사 그런 말을 하는 경우라 해도 우선 상대방의 사정부터 들어보고 나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날 밤 이후로 그 관리 옷차림을 한 유령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그 고관의 외투가 유령에게 딱 맞았던 모양이다. 하여튼 이제 어디서 누군가가 외투를 빼앗겼다는 소문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하긴 소심하고 지나치게 성격이 꼼꼼한 친구들은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아직도 시의 변두리에서는 그 관리 옷차림의 유령이 등장한다고 수군대고 있었다. 사실 꼴로멘스꼬에의 어떤 경찰관 한 사람은 어느 집 모퉁이에서 그 유령이 나타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일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찰관은 원래가 형편없는 약골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절반 정도 자란 돼지새끼 한 마리가 민가에서 달려나오며 그의 다리를 들이받는 바람에 그 자리에 벌렁 나자빠져 근처에 있던 영업마차 마부들이 배를 움켜쥐고 웃어댄 일조차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마부들이 자기를 모욕했다며 한 사람당 1 코페이카씩 강제로 거둬들인 일까지 있었다.
이렇게 약골인 친구여서 그는 유령을 보고도 차마 직접 불러 세울 용기가 없어 그대로 어둠 속을 뒤따라갔다. 그러나 유령은 얼마쯤 걷다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뒤를 돌아보고 그 경찰관에게 "넌 도대체 뭐야?" 하고 물었다. 유령은 그러면서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주먹을 경찰관에게 불쑥 내밀었다.
그 바람에 경찰관은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얼른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유령은 키도 훨씬 더 크고, 콧수염까지 큼직하게 기르고 있었다. 그 유령은 오브호프 다리 쪽으로 걸어가는 것 같더니, 이윽고 밤의 어두움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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