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흑성산~태조산) 종주산행 후기 산행일시:2006.4.5.(수욜)화창한 날씨 산행시간:5시간 산행인원 :나홀로 산행코스:태조산 체육공원~왕자봉~구름다리~대머리봉~태조봉 정상~아홉싸리 고개 ~흑성산 정상~독립기념관~뻐스정류장~천안역 화요일날 산행 일정을 잡았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에 산행을 취소 하고 오후에 어찌나 날씨가 화창 한지 후회 막급이다. 그래서 날이 밝기가 무섭게 구로에서 06:37분에 출발하는 전철 급행 열차를 타고 하늘 아래 제일 편한 동네 천안에 도착하여
태조산 체육 공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등로를 잡는다.
9시도 안되어 산에 오르니 기분 또한 상쾌하고 어저께 내린 비로 인하여 촉촉 한 것이 워킹하기에 아주 좋은 산이다. 팔각정을 뒤로하고 가파른 소나무숲 언덕길을 1시간 정도 올라 왕자봉(254m)을 지나서니 구름다리가 나온다 . 천안시가 1997년 12월30일에 완공한 다리로 길이 62m, 높이 18m에 달한다. 태조산의 명물로 등장했다.
좌측 으로 400m 정도 내려서니 신라 말기 풍수지리설을 처음 열었던 도선 선사가 창건한 고찰 성불사가 나타난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진달래 군락지다. 4월중순 이면 이곳은 진달래 만발한 꽃 산행이 백미일 듯 싶다. 등로가 잘조성 되어 있는 태조봉을 오른다.
천안삼거리는 옛날 박도령이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헤어졌던 능소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 흥이 겨워서 뜰 앞의 버드드나무를 바라보며 '천안삼거리 흥~ 능소야? 버들아! 흥~' 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는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있다. 천안삼거리와 능수버들에 얽힌 설화는 여러가지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의 천안삼거리 근처에 능수라는 기생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한 선비와 열렬한 사랑을 하는 사이였다. 어느 날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부득이 이별을 하게 되자 선비는 막대기를 하나 꽂으며, 이 막대기에 싹이 나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무정한 선비는 한양서 급제하여 끝내 돌아오질 않았다고 한다. 후에 막대기에 싹이 나와 자란 나무를 보고서 능수버들이라고 불렀다 하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태조산 지명은 930년(고려 태조 13년)에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이 산에 올랐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사실상 태조봉 정상은 철책이 처져 있다. 교보생명이 사유지 재산이라 하지만 이를 허락해준 천안시의 잘못된 행정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원상복구하여 본래의 태조산을 만들어 주길 바라지만, 시초에 공사를 막지 못한 것이 아쉽다.
왕건이 삼국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른 태조산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선 다음 흑성산을 가기 위해서는 도로로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야 한다. 경사진 등산 길을 30분 오르니 멀리서만 보이던 흑성산 정상이다. 흑성문 안의 성곽 취재를 요청해 보았으나 방송국 시설물 관계로 거절당해서 성축의 사진 은 멀리서만 담을 수 있을 뿐이었다. 정상 부근에는 흑성산성의 석축이 남아 있다. 흑성산의 본래 이름은 '검은 성' 이었으며 이 흑성산성(검은성)을 중심으로 류관순, 김시민, 박문수, 김좌진, 이동녕, 이범석, 조병옥 등 많은 구국열사가 배출된 곳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서린 독립기념관 자리는 원래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의 묘소가 있을 뻔했다. 그러나 어느 유명한 지관이 이곳은 2~3백년 후에는 나라에서 꼭 필요한 땅이므로 이곳에서 십리 남쪽에 쓰라고 하여 천안시 북면 은석산 은석사 뒤로 영성군 박문수의 묘소가 있다. 정상은 군사기지와 각 방송사의 안태나가 즐비하게 서 있다. 도로가 정상까지 이어진다. 하산은 흑성산성 옆구리를 따라서 40여 분 동안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독립 기념관 안으로 발길을 돌려 공짜 구경 실컨하고 버스를 천안역 으로 향한다
. 다섯 시간에 걸친 산행을 마치며 그유명한 병천 순대국밥에 소주 한 잔을 그리워하며 류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하였던 아우내 장터는 다음을 기약 하고 오늘은 이만 .
|
첫댓글 뒤 풀이가 제격인데 태조산에서 쑥캐던날이 생각나는구려 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