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4년 8월 1일 목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이력서
오은
밥을 먹고 쓰는 것
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
한 줄씩 쓸 때마다 한숨 나는 것
나는 잘났고
나는 둥글둥글하고
나는 예의 바르다는 사실을
최대한 은밀하게 말해야 한다 오늘 밤에는,
오늘 밤에도
내 자랑을 겸손하게 해야 한다.
혼자 추는 왈츠처럼, 시끄러운 팬터마임처럼
달콤한 혀로 속삭이듯
포장술을 스스로 익히는 시간
다음 버전이 언제 업데이트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 쓰고 나면 어김없이 허기
아무리 먹어도 허깨비처럼 가벼워지는데
몇 줄의 거짓말처럼
내일 아침 문서가 열린다
문서상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다
♦ ㅡㅡㅡㅡㅡ 이력서 칸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포장술을 익히게 되다니..... 잘나고, 둥글둥글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요구에 맞추기 위한 생존전술의 대열에 일렬로 늘어선 스펙들, 요약된 과거와 스펙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일까. 삶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사회적 존재로써의 스펙을 업데이트 시키느라 놓치는 것들은 또 얼마일까.
이력서를 쓰는 일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힘이 빠지는 일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검색 창을 열면 이력서 쓰는 법은 물론 대필 사이트까지 줄줄이 쏟아지지만 대필은 불법, 은밀하게 또 치열하게 전술을 연마해야하는 취업의 길 위에서 ‘혼자 추는 왈츠처럼 쓸쓸하고, 시끄러운 팬터마임처럼’ 최대한의 포장술로 이력서 칸을 채워야하는 현실이라니....‘아무리 먹어도 허깨비처럼 가벼워지는’ 아침은 또 얼마나 가혹할까. 그러니 ‘문서상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라고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는 수밖에....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