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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k.daum.net/qna/view.html?qid=43d8A
먼저 유태인들에 대해 살펴보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백인 유태인들은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이 아닙니다. 현재 전 세계 유태인의 숫자는 약 1,500만~1,8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유태인들을 크게 ‘아쉬케나지’(Ashkenazim)와 ‘세파라디’(Sepharadim), 그리고 이디오피아계인 ‘팔라샤’(Falasha) 등 세 부류로 나눕니다.
현재 아쉬케나지는 미국, 이스라엘, 유럽, 남아공에 약 1,200만 명(전세계 유대 인구의 70%차지), 세파라디는 이스라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약 450만 명, 팔라샤는 이스라엘, 이디오피아, 예멘 지역을 합쳐 약 2만 명 정도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순수 셈족, 즉 아브라함의 후예인 이스라엘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 세파라디 유태인은 이스라엘 멸망후 서서히 유럽으로 이주한 유태인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거주했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말하며 이베리아 반도에 이주한 세파라디들은 중세시대 전 세계 유태인의 절반을 차지했고 라디노어(유대스페인어)를 사용했습니다. 일례로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주 경기장이 위치한 몬주익(Montjuic) 일대는 과거 유태인들의 집단 거주지였습니다. (몬주익은 `유태인의 산`을 뜻함)
당시의 유태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며 만약 개종하지 않으면 스페인에서 떠나야만 했기에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 약 50여만 명의 유태인중, 이 가운데 5만 명만이 1500년 가까이 살아온 고장을 떠나기 싫어 부득이 스페인에 잔류했으며 나머지 유태인들은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반면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북동 유럽거주 유태인으로 옛날 카자르(Khazar) 왕국을 세웠던 터키계 카자르인의 후손입니다.
이들에 대한 묘사들을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카자르인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북쪽으로 일곱번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머리 너머로는 북두칠성이 떠 있다. 그들의 땅은 차고 습하다. 따라서, 그들의 안색도 희며, 눈은 푸른색이다. 그들의 머리결은 물결치듯 굽어 있는데 붉은색이 압도적이다. 그들의 몸집은 크고, 성격은 냉정하다. 그들을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야만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곡[GOG]과 마곡[MAGOG]의 무리들---소름끼치는 얼굴을 하고, 야수같은 습성을 가졌으며, 피를 즐기는 야만인들”
“..넓고, 속눈썹이 없는 얼굴에다, 여자처럼 긴 머리를 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이 끔찍한 카자르인들의 무리는..”
“카자르인들은 터키인들과 닮지 않았다. 그들은 검은 머리를 가졌는데,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카라-하자르[Kara-Khazars](블랙 하자르[Black Khazars])라고 불리는 종족으로 이들은 마치 인도인들처럼 보이기도 하는, 짙은 검정에 가까운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졌으며, 다른 하나는 흰색 종족(아크-하자르 Ak-Khazars) (아슈카나지 Ashkanazi)으로 이들은 놀랄만큼 잘생겼다.”
이와같은 묘사들을 살펴볼 때, 카자르인들은 코카서스인과 터키계와 아리아인등이 혼합된 민족으로 보여집니다.
카자르 지방은 현재의 남러시아의 평원으로 8세기경 이 광대한 초원에 거주하던 카자르 족은 상인, 직인, 무사등의 계층으로 살았는데 이 무렵 카자르 왕국은 비잔틴의 기독교와 같은 기독교계통인 러시아 정교, 그리고 이슬람교등 양쪽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았었습니다. 이에 740년경 카자르 왕국의 불란(Bulan)왕은 양쪽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유태교를 국교로 정하고 국민 대다수를 유태교로 집단 개종시켰는데 이 것이 백인 유태인이 생겨난 뿌리가 된 사건입니다.
카자르 지배계층이 유대교를 받아들인 까닭은 (이슬람이나 기독교를 믿는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오늘날의 스위스처럼 중립으로 남는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배계층의 생각은 만약 이슬람교를 받아들인다면 기독교가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고, 반대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면 이슬람교도가 불쾌해 할 것으로 생각하여 양파가 다같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예수의 조상나라 종교에 해당하는 유태교를 받아들임으로서 이슬람교 및 기독교 양파로부터의 증오를 잘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전 국민들을 개종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태교를 국교로 삼은 결과, 수십 년 내에 민족 전체가 유태교도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자기들은 혈통적으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까지 말하게 되었습니다만 이들은 인종적으로는 셈족인 이스라엘민족과는 다른 백인계인 코카서스인종이 섞인 민족으로 사실상 말하자면 유태의 가면을 쓴 셈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유태인이 될 수 있는 조건에 따르면 다른 민족이라도 유태교로 개종하게 되면 본래 유태인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백인 유태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그 뒤 카자르 왕국은 9세기부터 국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슬라브족의 침략을 받게 되었으며, 급기야 956년 우크라이나 왕국의 스비아토스라프 왕의 침략을 받고 몰락했습니다. 그 후 아시아로부터 온 몽골군이 유럽으로 원정을 오자 카자르인 들은 몽골군을 피해 북서쪽으로 이동해야했고 그들은 러시아, 그리고 더 나아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독일 등의 지역으로 옮겨갔는데 그곳에서 공동체를 구성하여 카자르 인이 아니라 개종한대로 유태인으로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아쉬케나지 유태인들의 선조로 결국 매부리코로 유명한 동부 유럽의 아쉬케나지 유태인들은 실제 인종적으로는 카자르 족의 후손인 셈입니다.
그들은 유태교를 믿는 종교집단이지 유태민족이 아니며 출생이 가나안 땅이 아니라 아리안족의 발상지인 코카서스계가 섞인 민족으로 유전학적으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이 아니고 백인계가 섞였으며 이스라엘 민족인 셈족계열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재 이 들이 유태인의 주류이며 이 들이 전세계 경제를 한 손에 주무르고 있지요.
본래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교황의 힘이 매우 강했고 또한 기독교의 원칙상 고리대금업을 매우 천시했으므로 중세에 일반 기독교 인들은 고리대금업(사채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기에 마음껏 고리대금업 즉 사채업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들은 게토라는 거주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었고 토지소유를 비롯해 경제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기에 자신들의 재산을 축적할 당시 주로 금과 은, 보석등을 선호했으므로 이런 점이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주고 받을 때 매우 유리했으며 또한 주로 상업에 종사했던 이들이기에 정보에도 매우 빨라서 세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온 샤일록과 같은 유태인이 상인들에게 고리대금업의 대부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고리대금업이 결국 성장해 은행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은행이 결국 세상을 지배하고 부를 축적하게 만든 원인이지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로 대변되는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했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기는등 400년 영화를 누렸던 메디치가는 바로 은행연합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대표적인 가문으로 이 것을 통해 피렌체와 토스카나를 수세기에 걸쳐 지배했었습니다.
이 들은 사실상 왕이나 교황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당시 무려 4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피우스 4세, 레오 11세)을 배출했으며, 유럽의 여러 왕가와 혼인관계를 맺었는데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왕비가 된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마리 드 메디시스가 바로 그 들이지요.
은행이란 본래 금과 은을 사람들이 가지고 다닐 수 없으므로 그 것을 보관하는 곳인데 그 결과 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증서를 발행하게 됩니다. 이 것이 현금보관증인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은행권의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만원짜리 지폐에 적힌 한국은행권이라는 말이 바로 한국은행이 보증한다는 말로서 현재의 화폐는 불태환 화폐라 금과 교환이 안되지만 본래는 이 것을 가지고 가면 은행에서 금과 교환해주는 것으로 은행권은 본래가 금과 바꿔주는 태환화폐였던 것입니다. 바로 금보관증이지요. 이 은행을 통해 유태인들은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금융제국을 건설한 유태인 로스차일드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메이어 암셀 바우어(Mayer Amschel Bauer)는 1744년 2월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 암셀 모세 바우어(Amschel Moses Bauer)는 유럽 일대를 떠도는 골동품상이자, 고리대금업자였기에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해 하노버에 있는 오펜하이머 가문의 은행에 7년동안 수습생으로 일한 뒤 아버지 대부업을 계승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성씨를 로스차일드(Rothschild ; 독일어로 `rot` 붉은색`,schild`는 `방패`를 의미함)로 바꾸었는데 자신의 다섯 자녀들들 중 첫째 암셀 로스차일드는 프랑크푸르트에 로스차일드은행 본점을, 둘째 살로몬 로스차일드는 오스트리아 빈에 지점을, 셋째 네이선 로스차일드(Nathan Rothschild)는 런던을, 넷째 칼 로스차일드는 이탈리아 나폴리를, 다섯째 제임스는 프랑스 파리를 맡게 하고 전 유럽을 아우르는 거대한 은행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가운데 네이선 로스차일드는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브뤼셀 근교 워터루전투에서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과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국가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한 판 승부의 결과를 자신들 가문의 시스템을 통해 하루전에 영국군이 승리한 것을 알고 증권거래소에서 영국군이 패하여 영국국채를(consols) 모두 팔아 치우는 척하는 트릭을 써서, 국채 투매를 유도하여 영국국채의 액면가 5 %도 안되는 휴지조각 상태에서 재 매수하여 그 하루동안 20 배나 되는 차익을 챙겼습니다.
워털루 전투로 네이선은 영국 정부의 최고의 채권자로 등극했으며, 그때부터 공채 발행을 주도하고 잉글랜드 은행 (Bank of England)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영국 국채는 정부가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근거로 이제 영국인들은 그동안 정부에 내던 세금을 로스차일드 은행에 내야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 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는데 다시 말해 영국 정부는 화페 발행 권한이 없기때문에 반드시 민간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는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8%의 이자를 내야했습니다.
원금과 이자는 모두 금화로 계산 했으며 이렇게 네이선이 영국 국채를 대부분 손에 넣었다는 것은 국채 가격이나 영국 전체의 통화 공급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로서, 이때부터 화페 발행과 황금 가격을 포함한 중요한 결정권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잉글랜드은행의 핵심은 국왕과 왕실 가족의 개인 채무를 국가의 영구적 채무로 변환하는 것으로 전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잉글랜드은행이 채무에 기반을 둔 국가화페를 발행했던 것이며 이렇게 해서 국왕은 전쟁에 필요한 돈을 확보했고 정부도 뜻대로 정책을 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 한 나라의 정부가 은행가의 돈에 의존하면, 정국도 정부 지도자가 아닌 은행가가 장악하기 마련이다.
돈주머니를 줜 쪽이 아무래도 돈을 쓰는쪽보다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돈에는 조국이 없다. 금융 재벌은 무엇이 애국이고 고상함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이익을 얻는 것이다 "ㅡ나폴레옹 1815년
나폴레옹의 말처럼 은행을 통해 금융을 지배하는 자가 결국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지요.
M.A. 로스차일드는 1812년 세상을 떠나기 전 다음과 같이 엄격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1) 가문 은행의 모든 요직은 반드시 가문 내부에서 맡아야 하며, 외부인을 써서는 안 된다, 가족 가운데 남자만이 상업 활동에 참여 할 수 있다.
2) 사촌끼리 결혼함으로써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다.(이규정은 초기에는 엄격히 지켜졌느나, 나중에 완화되어 다른 유대인 은행가 집안과 통혼까지로 범위가 확대됨)
3) 재산 상황을 절대로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
4) 재산 상속 시 변호사의 개입을 절대 금지한다.
5) 집안의 모든 장자는 각 집안의 우두머리이며, 가족이 만장일치로 동의핳 경우에만 차남을 후계자로 할수 있다.
이 유서의 내용을 위반하는자는 재산 상속권 일체를 박탈한다.
1850년 전후해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총 60억 달러의 재산을 축척했으리라 짐작되며 수익률을 6%로 계산하면,
150 여 년 지난 오늘날 이들의 가족 자산은 최소한 50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일례로 요즘 유명한 미국의 유태계 금융인인 소로스의 재산도 사실상 로스차일드 가와 연관이 있습니다.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이사회 명단중, 이사 리처드 카츠 (Richard Katz)는 런던 로스차일드은행의 이사이자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탈리아 밀라노은행 총재이고, 이사 닐스 타우버(Nils Taube)는 런던은행 그룹 세인트제임스플레이스캐피텔의 CEO인데 이 캐피털의 주요 운영자는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이사 월리암 로드 레스-모그(William Lord Ress-Mogg) 역시 로스차일드 가문의 막후에 있는 세인트제임스플레이스 캐피털의 경영자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 외에도 미국 석유왕 록펠러의 석유독점사업에도 관여했으며(철도운송관련 영향력을 행사함으로 사실상 록펠러를 선택함)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FRB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FRB는 미국국가기관이 아니라 private company 곧 개인 회사, 개인들의 은행 카르텔입니다. 실제로 미국 전화번호부상에도 private firm 란에 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FRB는 설립당시 당대 은행가들을 중심으로 의회의 동의(반강제성)를 얻어 탄생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주주들의 면면을 보면 익숙한 이름이 많지요.
FRB 설립주주의 리스트를 적어보면
1. 로스차일드 뱅크 (유태인 로스차일드 계열자본)
2. 모시즈시프 뱅크 (이스라엘 유태인 자본)
3. 왈버그 ( 네덜란드 왕가계열 자본)
4. 체이스 맨하튼 뱅크 ( 유명한 유태인 록펠러 가문 자본 )
5. 골드만 삭스 뱅크 (헨리폴슨회장이 유태인)
6. JP 모건 계열 뱅크 ( 유태인인 JP 모건설립. 그 손자가 만든 회사가 모건스탠리)
따져보면 미국은 FRB를 통해 국채를 발행하고(돈을 빌림) 그 국채를 갚기위해 시민들의 세금을 걷는데 그 돈들은 FRB, 즉 미연방준비은행이라는 개인 은행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개인은행의 주인들이 대부분 유태인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지요?
근데 그 유태인들끼리는 서로 이자를 안받고 돈을 빌려주게 됩니다. 그게 그들의 관습이니까요. 그래서 서로 빨리빨리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간단하게 말해서 유태인들은 고리대금업과 상업을 통해 경제관념에 빨리 눈을 뜨게 되었고 후일 은행을 설립하게 되었는데 이 것이 부자가 된 원동력이며 그 부를 자녀들에게 세습시키고 부를 통한 철저한 교육으로 자녀들을 최고의 인텔리계층으로 만들었기에 전세계 최고의 집단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 들이 신대륙인 미국 발견이후 미국으로 많이 건너갔고 특히 2차대전 전후 더 많은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유태인들은 같은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풍습이 있기에 아이디어가 있는 유태인이 다른 유태인들의 도움으로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고 이 것이 유태인들이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부를 장악한 원인이 된 겁니다. 이로인해 결과적으로 미국의 부자들은 그 뿌리가 대부분 유태인들이지요.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첨부해야할 유태인과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와 성전기사단과의 관계등은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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