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인생
by온기철 James Ohn방금
사람은 딱 한번 산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 진다. 언제 어디선가 살다가 죽는 다는 말이다. 한사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시대라고 한다. 시대는 그 사람에게 선택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다. 신이 점지한다고도 할 수도 있고 자연현상의 일부라고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는 공간은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다. 인류는 태고적 부터 열악한 환경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더 살기좋은 곳으로 이주 했다. 이것을 현대인들은 이민이라고 한다. 이민자들에게 왜 고국을 떠나서 이곳에 와서 사느냐고 물으면 여러가지 이유를 열거 하겠지만, 근본적인 동기는 “더 나은 삶”이 타향에 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저개발 국가에서 선진국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지중해의 피난민선도 멕시코 국경의 피난민을 가장한 망명자들도 다 더 잘살기 위해서 이다.
주인공 리 나의 삶은 근현대 동 아시아 사람들의 갈등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가족과 충효에 바탕을 둔 동양의 유교 문화와 개인의 자유와 의견을 존중하는 서양 문화 사이에서 일생동안 고민 했다.
수천년 동안 충효 사상과 조상숭배를 원칙으로 살아온 동 아시아 사람들은 “나” 보다도 “가족”을 위해서 살았다. 그런데 19세기 중반부터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서양문화는 이들의 의식구조를 혼란에 빠틀였다.
리 나와 그의 아버지는 이 시대의 변화가 만들어 낸 마찰을 연출 한다. 아버지는 가족의 영달을 위해서 세속적인 출세를 지양하는 삶을 살았다. 반면에 아들 리 나는 따뜻한 부자간의 애정을 갈구하고 아버지의 부당한 처신을 비판 한다.
아버지가 살던 시대의 동아시아는 역사상 사람들이 살기에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특히 19세기 초반
중국은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신해혁명, 만주국 청나라의 멸망, 위안스카이 시대, 군벌 시대, 중일전쟁, 일본의 패전, 중국내전, 장카이색의 대만 중화민국, 그리고 마오의 중국공화국(중공)으로 이어지는 혼란기는 사람들의 처신을 한 없이 어렵게 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권력의 향배는 정치를 하는 아버지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그는 중국의 장래는 일본에게 있다고 판단하고 장카이색의 라이벌인 왕징웨이에게 베팅 했다. 그러나 그의 도박은 일장춘몽으로 끝 났다.
장카이색의 마지막 배려로 감옥에서 나온 아버지는 공산치하의 중국에서 홍콩으로 망명하여 권토중래를 시도 한다. 홍콩에서 언론사의 편집장으로 일 하면서 공산당의 업적을 치하하는 글을 쓰며 예전의 친일에서 친공으로의 전환을 시도 한다. 그리고 아들과 같이 지내면서 정치교육을 시키며 좋지 않았던 아들과의 관계를 개선 했다. 이 모두가 아들을 중국에 진학 시켜 현 공산당 정부의 자신에 대한 의중을 떠보기 위한 일종의 계략이었다.
중국 개혁학교를 졸업한 리 나는 중국 대학 진학에 불 합격 했다. 의외의 불합격 통지를 받은 리 나는 학교 당국에 그 사유를 문의 했다. 당 간부는 아버지가 친일 파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받아 주지 않았고 아버지가 너를 이곳에 보낸 것은 아버지에 대한 당의 의중을 떠 보기 위해서 였다고 알려 주었다.
이 후 리 나는 홍콩으로 돌아 왔다. 이혼 후 신학원에 들어 가 있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자립하게 된 리 나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청 치 학부에 다 녔다. 직업교육 보다는 인성 교육에 강점을 둔 청 치 학부는 그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깨우 침을 준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만난 옛 중국 개혁학교 동창에게서 개혁학교에 대한 비참한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가 크게 싸운 후 우울증에 빠진다.
어느날 청 치 학부의 운동장 트랙에서 지쳐 빠질 때 까지 달리기를 한 후 우울증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 후 단거리 달리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학부 육상 팀에 들어 가서 교내외 100 미터와 200 미터 경기에서 우승하고 홍콩 제일의 단거리 육상 선수가 되었다. 에세이, 웅변등 경시 대회에서도 우승 하여 홍콩의 셀레브리티가 되었다.
이후 그는 자신감에 넘치는 청년이 되었다. 같은 육상 팀의 400 미터 달리기 선수 데이비드 린과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의 권유로 미국 메인주의 보우딘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고 미국에 오게 되었다.
홍콩을 떠나는 날 공항에서 그 동안 먼 것 처럼 느꼈던 어머니와 난생 처음으로 따뜻한 애정을 느낀다.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 했던 아버지가 공항에 자신을 배웅하려고 나온 것을 보고 리 나는 감격 한다.
뜨거운 포옹을 하면서 그 동안에 쌓였던 감정이 모두 봄날의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 여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었다.
미국 유학 하는 동안 리 나는 아버지에게 매주 편지를 써서 소식을 전했고 아버지는 꼬박 꼬박 답장을 해주었다. 아버지는 유교적인 훈계를 끊임 없이 편지에 적어 보냈다. 그 동안에 리 나는 서양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었 지만 아버지에 대한 시대적인 이해 또한 넓어 졌다.
리 나는 유학 생활을 성공리에 마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시스템의 교수가 되었다. 이민 9년만에 아버지를 미국에 초청하여 한달간 같이 보내면서 좀 더 인간적인 아버지의 일면을 발견하고 더욱 아버지에 관한 이해가 깊어 졌다. 아버지는 이후 그를 중국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찰스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아들이 중국사람이름 보다 미국사람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리 나는 매달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보냈다. 그것은 충요 사상에 의한 것이라고 리 나는 말하고 있다. 아무리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대학의 교수가 되었어도, 리 나의 마음 한 구석에은 유교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정신 세계의 다른 한 구석에는 서양문화가 작동하고 있다고 리 나는 말 한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 둘 다 잘한것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다고 그의 일생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리 나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멀리 떨어져서 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시대는 좋은 사람을 나쁘게도 만들고 나쁜 사람을 좋게도 만든다. 혼란한 시대는 기구한 운명을 수 없이 생산 한다. 구 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분단,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그랬다.
매국노, 친일파, 빨갱이 라고 멸시 당하고 투옥되고 죽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당 했다. 다 시대 탓으로 돌리고 용서 해줄 때가 되었지 않았나 생각 해 본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지만 이민자에게 이상적인 생활환경을 제공 하지는 않는 다. 리 나기 살던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 였고 고향 중국은 공산치하에 있었다. 미국은 리 나에게 더 많은 자유와 기회를 주었지만
인종 차별과 문화의 차이는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불편이었다.
온기철의 브런치입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본직은 의사이고 취미는 골프와 역사 공부입니다. 지루한 역사를 재미있게 이해시키기위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